거짓의 사람들

(M. 스코트 펙 지음, 윤종석 옮김, 두란노, 1996)

 

이 책의 저자 스코트 펙(M. Scott Peck)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요, 수백만 독자들을 사로잡은 베스트 셀러 작가다. 이 책은 398쪽에 이르는 부피로 보아서나 취급되는 내용의 질로 보아서나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 붙잡으면 놓기 어려울 만큼 독자들을 깊이 빨려 들게 하는 매력을 지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치료했던 몇몇 환자들의 정신분석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하면서 무엇이 참으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일반적인 의사처럼 단지 심리적-정신적 차원에서만 정신 질환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병들게 한 가해자들(대개는 부모들)을 추적한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이들의 배후에 웅크리고 있는 무서운 어둠의 세력, 즉 악령의 실재까지 추궁해 나가는 과감성을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진지함을 더해 주는 바로 그 만큼 위험하다. 남을 도우려는 이 책이 도리어 남을 괴롭히는 데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겁이나 흥미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 질환의 치료와 예방의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저자가 경험한 여러 계층의 환자들은 깨어진 가정, 부패한 사회, 집단 악에 희생된 자들이었다. 이들을 올바로 치료하기 위해서 그는 악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며, 또한 우리가 악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둔감한지를 엄중히 질타한다. 아니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나 종종 악을 자행하였는지를 그는 솔직하게 고발한다(12-13쪽).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비난하기보다는 악의 실체를 정확히 직시함으로써, 악에서 벗어나고 또 악과 싸워 이기는 길을 독자에게 제시하려고 고심한다.

내가 애초에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제목 때문이었다. 신문 광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넉넉했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관행처럼 굳어진 "거짓말 둘러대기"의 현상을 뼈저리게 느껴 왔고, '어린이 신학'을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어린이와 달리 어른들이 거짓과 위선에 더 능하다는 점을 확신해 왔기 때문이다. 거짓은 인류의 보편적인 타락 현상이다. 뱀의 거짓말, 아담과 이브의 거짓말을 보라. 하지만 서양 사람들에 비해 동양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거짓에 더 능할 뿐만 아니라, 거짓에 더 너그러운 편인 것 같다. 아니 때로는 거짓이 가장 효율적인 생존 전략으로 추천되기도 된다. 심지어는 임시방편으로 둘러대거나 자신을 적절히 위장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도리어 모자라는 사람이나 바보로 취급되기 일쑤다.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탓일까, 아니면 당파 싸움에서 살아남는 전략이었을까?

여하튼 "죽고 사느냐"를 결정하는 싸움이나 국가의 안위와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전쟁터라면 또 모를까, 크지 않는 일에도 쉽사리 거짓을 둘러대고서야 어찌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떳떳할 수 있겠으며, 이 땅을 행복하게 꾸려 갈 수 있겠는가? 더욱이 오늘날의 국제적인 경제 전쟁에서도 이젠 거짓말은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의 IMF의 위기는 거짓 때문에 더 한층 가중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가 거짓을 퇴치하는 일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직해야 할 종교가 어째서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을 더 많이 양산할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직하게 살려고 하니까 도리어 위선이 더욱 돋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탐욕에 빠져 거짓과 위선을 일삼는 종교 지도자들 때문일까? 아니면 이중 생활(주일 따로, 평일 따로)을 하는 평신도들 때문일까? 종교가 본질적으로 이중 전략(거짓과 회개의 영원한 반복)을 더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들이 며칠 동안 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

이 책의 요지는 정신 질환의 근원적인 뿌리가 가해자와 또 피해자의 거짓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죄를 지을 수 있고, 또 거짓말할 수 있다. 그러나 거짓과 질병을 한사코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야말로 "거짓의 사람", "악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도무지 치유될 수도 없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다. 거짓은 사람을 혼돈시킨다. 악한 사람들은 "거짓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 기만을 쌓아 올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속이는 사람들이다(92-93쪽). 그런데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겁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모습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끊임없이 피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더 이상 지옥에 갈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93쪽). 악한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의 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죄의 난해성, 완고성, 경직성에 있다(96쪽).

악한 사람들의 행동에 있는 지배적인 특징은 곧 남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책임 전가에 있다(103쪽). 책임 전가 행위의 뿌리와 핵심적인 죄는 자기를 미워할 줄 모르는 것, 자신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이다(105쪽). "자신을 거스르는 수고를 묵묵히 감내하는 자만이 예수님이 기쁘게 거하시는 처소가 될 수 있다"고 성녀 테레사는 말하지 않았는가?(101쪽) 하지만 악한 사람들은 자기가 완전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양심의 결손이 아니라 양심을 공정하게 다루기를 거부하는 태도다(107쪽). 증오를 덮고 있는 미소, 분노의 탈을 쓴 부드러운 매너, 불끈 쥔 주먹을 감싸고 있는 비단 장갑 등은 악한 사람들의 위장술이다.

그런데 이를 어찌할꼬!! "악한 사람들의 주된 동기는 위장인 까닭에 악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발견되는 장소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교회"(마틴 부버)라는 것이다. 악한 사람들은 종교가 보장하는 위장과 은폐를 찾아 그 경건 속으로 숨어 들어가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108쪽). 보석과 귀중품에 모조품이 가장 많듯이, 가장 귀한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가짜가 많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창녀나 세리보다는 거룩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을 더 준열하게 통박하였던 예수의 태도로 보아서도, "이 세상의 악은 영적인 특권층에 의해 저질러진다"(101쪽)는 저자의 말에 일면 수긍이 간다.

악의 사람들은 자기 도취적 성향이 크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길 밖에 갈 줄 모르며,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111쪽). 자신의 내적 죄성과 불완전함을 터무니 없이 부정하는 이 오만한 자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은 경험에 의한 유전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부모의 사랑과 이해를 충분히 받지 못한 자녀들의 방어 현상일 거라고 저자는 생각한다(114쪽). "악의 피해자로서 가장 전형적인 사람은 어린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구성원들이다"(155쪽)는 저자의 지적은 예수의 통찰과 일치하면서, 최근의 나의 "어린이 신학"의 출발점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악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이 아니라 악의 추방, 질병의 치유에 있다. 의사는 상담과 기도, 축사(마귀 추방) 의식을 통하여 환자들을 치료하지만, 치료를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치료자는 기도와 의식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279쪽). 그런데 하나님도 악을 물리치시기 위해 힘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힘을 포기하셨다. 즉 무능하게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무기였다(307쪽).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이긴 셈이다. 악을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생을 자발적으로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인간 안에서 그 악을 그냥 질식시켜 버리는 것이다. 악(Evil)을 거꾸로 하면 생명(Live)이다. 악은 생명을 파괴하지만, 생명은 희생을 통하여 생명을 낳는다. 그러기에 악을 사랑으로 이기는 일에도 자발적인 사랑의 희생이 요구된다. 즉 치유자는 희생적으로 악을 흡수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신비하게도 피해자가 승리자로 뒤바뀌게 된다(393쪽). 죽어야 살고,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도 있다는 이치, 아니 신비다.

저자의 경험과 통찰은 가히 독자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단지 저자 자신의 말대로, 우리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며,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을 무조건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11쪽). 특히 사탄의 실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서 문구를 문자적으로 끌어오는 것은 조금 소박한 성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도 사탄은 자신의 실체를 결코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위장의 전문가가 아닌가?

한 마디 덧붙인다면, 미국인인 저자로서 미국이 월남 전쟁에서 저질렀던 집단 악까지 거침없이 지적하는 내용은 이 책의 신뢰성을 더하여 준다. 양심적이길 가장하는 많은 미국인보다는 훨씬 더 양심적인, 아니 양심적이길 원하는 미국인인 것 같다.

심리치료가요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이 쓴 풍부한 경험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쓴 이 책은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 지도자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우리는 모두 시대의 아들이고, 이 땅의 자식들이 아닌가? 우리가 얼마나 자주 "거짓의 아비"(요 8:44) 노릇을 하였을꼬? 우리가 병들게 한 자식들과 이웃들은 얼마나 많으며, 하나님을 슬프게 한 일도 얼마나 많을꼬? 아니 예수님을 다시 골고다로 보낸 적도 얼마나 많을꼬? 이 책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때묻은 양심의 거울을 닦는 일에 더 한층 매진할 것을, 선생된 나부터 먼저 회개할 것을 매섭게 가르친다. 아, 우리가 이미 지옥 안에 들어가 있지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 지옥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할 때까지 주여, 제발 더디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