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G. MacDonald 지음, 홍화옥 옮김, IVP 출판부)


 

사람들마다 살면서 겪는 인생의 시련도 다양하지만, 시련을 대하는 방법도 사람들마다, 나라마다 제 각각이라고 한다. 경제 불황이 닥칠 때, 미국인들은 주로 영화를 보면서 시름을 잊고, 일본인들은 주로 책을 읽으면서 내면 세계를 다지는 반면, 한국인들은 주로 술로써 한숨을 달랜다고 한다. 이러니 한국의 출판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 복합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기독교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지는 않다. 대중 문화의 소비자가 대개 청소년이듯이, 신앙 서적이나 신학 서적들을 즐겨 읽는 자도 대개 젊은 청년이나 신학생, 젊은 목회자일 것이다. 그런데 젊은이의 호주머니가 가장 얇을 수 밖에 없으니, 기독교 출판계도 불황에 허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잘 팔리는 진기한 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의 책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다. 1990년에 출판된 이 책이 올해로 43쇄를 기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한번에 대개 천권을 찍는다면, 지금까지 43,000권이 팔린 셈이다. 물론 일반 서적의 베스트 셀러가 대개 10만 권을 상회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이 그다지 많이 팔린 편은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 출판계에서 8년 동안 이 만큼 팔린 책은 흔치 않다.

왜 이 책이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을까? 불확실성의 시대(갈브레이드)에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내면의 불안을 극복할 대안을 이 책에서 찾고 있을까? 경제 위기 앞에서 기독교인들은 시선을 안으로 돌려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걸까? 이 책이 잘 팔리는 것은, 대체로 질서가 잘 잡힌 교회와는 달리 신자들의 내면 세계가 여전히 어지럽고, 외형적으로 큰 성장을 이룩한 교회와는 달리 신자들의 영적인 성장이 아직도 초라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걸까?

그 이유야 어떠하든지 간에,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내면 세계와 영적 성장의 정도를 한번 점검해 볼 겸해서, 모처럼 짬을 내어 선물로 받은 이 책을 정독하였다. 여기서는 이 책에 대한 일절의 평가를 접어 두고, 주요 내용을 독자에게 소개하련다.

저자는 "개인적인 삶에 질서를 잡는 일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갈등임을 알게 되었으며, 내면 세계에 질서를 잡는 일이야말로 저자에게도 가장 심각한 싸움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로, 실패감, 환멸감 등을 느끼며 살고 있다. 저자는 이를 "함몰 웅덩이 증상"이라고 부른다. 이 증상에 빠진 사람들은 신경 쇠약, 정신 파탄, 자아 붕괴의 현상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이고 영적인 세계에 질서를 세우는 문제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고 있는 책이 많지 않음"을 보고,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긍지, 동기와 가치관 그리고 헌신에 대한 기본적인 결정, 하나님과의 교제는 바로 이 내면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저자는 내면 세계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동기부여, 시간 사용, 지혜와 지식, 영적인 힘, 회복).

제1부(동기 부여)에서 저자는 사람들을 두 가지 유형, 즉 "쫓겨 다니는 사람"과 "부름받은 사람"으로 나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는 과정을 무시하고 오직 성취함으로써만 만족을 얻는다. 그는 권력을 늘 의식하고 이를 휘두르고 소유하려고 애쓴다. 그는 보통 절제되지 않은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전인적(全人的)인 인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다. 그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서툴고 미숙하다. 그는 반대나 불신에 부딪히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기도 하다. 그는 대개 비정상적으로 바쁘다.

세상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가끔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과도한 성취욕 때문에 건강과 결혼 생활, 가족을 희생시킨다. 과도한 성취욕의 원인은 대개 불안정한 성장 배경과 어린 시절의 심각한 상실감, 수치감에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사람의 내면 세계에 위대한 일을 하신 적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부르신 사람들과 일하기를 더 원하셨기 때문이다. 부름받은 사람들은 내부에서 용솟는 힘, 외부의 어떤 타격에도 굴하지 않는 인내와 힘을 갖고 있다. 부름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청지기 의식, 자기(정체성) 인식, 자신의 역할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역할에 대한 확고한 위탁이다. 이들은 직업과 무관한 평안과 기쁨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대개 광야(고통과 고독, 고난)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며, 흥하든 쇠하든 모든 결과를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에게 맡긴다.

제2부(시간 사용)에서 저자는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계획적인 삶을 강조한다.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약점이 있는 곳으로 흐르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고, 긴급한 일에 소모되며, 대중의 갈채를 받는 일에 바쳐진다. 시간을 다스릴 수 있으려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생활 리듬을 알아야 하고, 시간 사용 방법의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 하고, 시간을 통제하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제3부(지혜와 지식)에서 저자는 날마다 지식과 지혜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강조한다. 우리의 정신은 사고하고 분석하고 혁신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개인의 경건을 주로 강조하는 "복음주의자들이 합리적인 지성, 정신의 계발을 가장 쉽게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고집스럽고 뻣뻣하며, 변화나 혁신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정 관념에 심각한 도전이 가해질 때, 그들은 분노와 비난을 퍼붓는다."고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독창성이 풍부하고 혁신적인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폭넓게, 가장 창조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폭넓은 지적 가능성을 가진다. 그는 묵은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오래된 진리를 새로운 언어와 형태로 기술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주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비전을 보도록 하며, 이전에 발견치 못했던 새로운 방법으로 장애를 극복해 낸다.

제4부(영적인 힘)에서 저자는 내면 세계에 영적인 중심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 중심부를 정원처럼 잘 가꾸기를 권한다. 이 중심부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중심부를 가꾸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영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1.고독과 침묵: 하나님은 침묵의 친구이시다. 우리의 영혼을 울리려면, 침묵이 필요하다. 2.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내면 세계의 정원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일기 쓰기이다. 3.사색과 명상: 명상은 우리의 영을 천국의 주파수에 맞추는 것과 같다. 어떤 성경 본문을 택하여 그 말씀이 자아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하면, 확신과 찬양과 감사가 우러나온다. 4.기도(예배와 중보): 내면 세계의 정원에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고양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기도이다. 기도의 내용은 찬양과 고백으로 이루어지며, 중보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렵고 가장 위대한 특권이다.

제5부(회복)에서 저자는 안식일적인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휴식은 사치가 아니라 성장과 성숙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일중독증에 빠져 녹초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정기적으로 휴식하여야 한다. 최초의 휴식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휴식은 먼저 되돌아보는 시간, 지난 일을 해석하고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휴식은 삶의 근거가 되고 있는 진리와 헌신을 정리하고 내일의 일을 숙고하며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이다.

나는 이 책의 내용에 전폭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아니 이 책은 내면적인 질서를 바로잡고 영적인 훈련을 쌓는 일에 등한한 나를 따끔하게 질타한다. 이 책은 그리 두꺼운 책도 아니고 예화와 실례로 풍부하기 때문에, 번역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버겁지 않다.

이 책이 갖는 한계점을 들라면, 사람의 갈등을 오직 개인적, 내면적인 차원으로부터만 바라본다는 데 있다. 즉 이 책은 영성(靈性)의 사회적, 물질적 측면을 무시하고,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개인주의적인 함정을 갖고 있다. 사람은 사회구조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지 아니 한가? 자신의 일로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로 그치고 마는 오류에 쉽게 빠지지 않는가? 더욱이 오늘날 우리는 탐욕의 문명이 저지르는 환경 오염과 생명 파괴의 위기 앞에서 인류 전체의 생존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는가? 언제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내면 문제만을 위해 씨름해야 하는가? 마틴 부버(M. Buber)의 말대로, 비록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였더라도, 결코 자신을 목표로 삼지는 않아야 한다. 각자가 제 자리에서 성화(聖化)를 달성해야 하지만, 세상 일에 무관심한 이기주의자, 바리새인처럼 오만한 자가 되어서 안된다. 실제로 경건하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얼마나 자주 그래 왔던가?

하지만 언제나 약점은 장점의 뒷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모든 문제를 남의 탓, 사회구조의 탓, 운명이나 팔자의 탓으로 돌려 왔는가? 다시금 마틴 부버(M. Buber)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자신 밖에서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자신과 평화를 이룬 사람은 세상에서 평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큰 일을 하려면, 모름지기 먼저 본연의 깊은 자아부터 찾아야 한다. 고로 세계의 갱신을 외치는 사람은 자신부터 먼저 갱신할 일이다. 개인주의로 함몰하는 위험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이 책으로부터 독자들은 매사에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비결, 아니 그리스도안에서 만사를 감당할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