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와 미국문화

(G.M.마스든 지음, 박용규 옮김, 생명의 말씀사, 1997)

 

 

1980년대 후반에 격렬하게 전개되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독일 언론인들에게도 큰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마침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한국 사회를 특집으로 다루는 독일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이 방송을 진행하던 한 독일인의 결론에 의하면 한국의 심층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샤머니즘이고, 일상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미국의 양키 문화라는 것이었다. 기분이 조금 나빴다. 그의 판단대로라면, 한국 민족은 완전히 외래 문화의 지배를 받는 얼빠진 민족이 되고 만다. 우리 문화의 주체성이나 독창성은 전혀 없는 셈이 된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당시 독일 기자의 결론을 반박할 논리가 궁색해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국인의 심성, 문화 의식과 종교 관행을 살펴보면, 실로 샤머니즘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일상 문화는 미국 문화로 일색(一色)이다. 거리의 간판과 상품의 이름, 요즘 한창 유행하는 음악을 보라. 우리 나라가 미국의 문화적 속국이라도 된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대체로 샤머니즘적 신앙 형태와 깊이 결합된 교회가 수적으로 부흥한다.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 선교는 압도적으로 미국 선교사들의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미국 문화가 교회 안에서 주류를 이룬다. 찬송과 찬양, 교회당 양식과 예전, 예복 등 ... 미국식이 아닌 것이 거의 없다. 추수 감사절조차 가을걷이가 한참 지난 후, 그것도 미국 달력에 맞춰 지켜진다. 이제는 우리의 전통 문화(고전 음악, 고전 악기 등)가 낯선 이방 문화가 되었다.

사정이 이런 판국이니, 한국 기독교인의 종교적 심성도 완전히 미국의 그것을 빼어 닮았으리라고 우리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문화는 한국 교회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한국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기독교는 이른바 "미국제 복음주의"와 "미국제 근본주의"이다.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는 책을 통해 나는 이미 미국적 복음주의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사실 "복음주의"라는 용어 자체도 순전히 미국제라고 할 수 있다. 유럽 기독교 사회에는 애초에 이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복음적"(Evangelisch)이라는 용어는 로마 카톨릭을 개혁한 개신교회의 특징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유럽에서 "복음적"이라는 말은 통상 "개신교적"(Protestantisch)이라는 말의 동의어이다. 그래서 나중에 독일교회는 개신교(Protestantismus)를 새로운 "복음주의"와 구분하기 위하여 후자를 칭하는 단어(Evangelikalismus)를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복음주의적"(Evangelical)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새삼 내가 근본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근본주의가 미국 문화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서도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 근본주의를 모르고서는 한국 교회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은 대체로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자들이었고, 그들에 의해 한국에 이식된 미국적 근본주의는 한국 근본주의 지도자들의 정치적 주도권 장악과 보수주의적 유교사상 등의 영향 아래 지금도 한국교회를 막강하게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근본주의는 "성결운동"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소속된 성결교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근본주의의 연구는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독일에서 유학한 나로서도 미국 기독교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근본주의의 연구서로서 탁월하다고 정평이 난 "근본주의와 미국문화"를 읽어보기로 결심하였다. 모든 내용을 다 읽지는 못했다. 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과 그 내용의 압축성 때문이다. 방대한 자료, 예리한 통찰력, 균형잡힌 해석으로 뛰어난 이 책은 근본주의를 옹호하고 찬양하는 다른 책(예를 들면, David Beale 저, 김효성 역, 근본주의의 역사,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460쪽)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신학 용어와 신앙 현상도 역시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것이다. 미국 근본주의의 핵심 교리인 "성서의 무오성(無誤性)"은 1881년에 프린스턴 신학대학의 하지(A. A. Hodge)와 워필드(B. Warfield)에 의해 처음으로 고안되었다고 한다(7쪽). 종교개혁자들조차도 성서의 문자적 무오성(축자영감설)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근본주의는 미국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읽고 인류의 역사를 정확한 시간대로 나누는 "세대주의"(世代主義)와 예수의 재림 전에 인류는 날로 타락과 멸망으로 치닫는다는 비관주의적 역사관을 대변하는 "전천년설"(前千年說)이 묘하게 결합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분리주의자였던 다비(J.N.Darby: 1800-1882)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4쪽). 비록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칼빈(J.Calvin)의 엄격한 추종자였지만, 칼빈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창안하거나 믿지 않았다.

근본주의는 성서에 대한 완전한 신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과 같은 근본적인 교리를 믿는 강력한 종교 운동이며, 20세기 초엽에 미국 환경에 의해 독특하게 형성된 복음주의의 두드러진 변형(變形)이다(21쪽). 나의 소견으로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대개의 한국교회도 교리적으로 "근본주의"에 크게 치우쳐 있거나, 근본주의와 거의 구분될 수가 없을 정도다. 반(反)현대적이고 협소하며 분파적인 근본주의를 극복하려고 출현한, 이른바 포용적인 "신복음주의"(C.Henry, B.Ramm, B.Graham 등)는 한국 교회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의 성결교회는 근본주의와 매우 친근하였고, 근래의 성결교회는 대체로 포용적 복음주의와 친근하다고 여겨지지만, 교리적으로, 또 교회정치적으로 근본주의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근본주의는 전투적인 "반현대주의 개신교 복음주의"다. 근본주의는 기독교를 현대 사조에 맞추려는 현대주의자들의 도전에 대항함으로써 연합된 다양한 연맹이다(23쪽). "성경무오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함께 "개인주의적, 문화부정적, 영혼구령적 전통"은 근본주의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이런 특징은 주로 무디(D.L.Moody)의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2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마드슨은 근본주의를 단순히 종교현상만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현상, 정치적 현상, 지성적 현상, 미국적 현상으로도 본다.

근본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복음주의는 사회개혁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35쪽 이하), 과학에 대해서도 무제한적인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43쪽).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는 미국인들의 기질에 호소력이 있었다(45쪽). 그런데 미국 복음주의의 전열을 흩트리기 시작한 것은 다윈사상(진화론)이었다(50쪽 이하). "과학과 종교" 문제 때문에 복음주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서에 대한 고등 비평, 관념주의 철학과 신학은 강한 진동을 일으켰다(66쪽). 남북전쟁의 종식과 함께 복음주의는 결국 두 지류로 갈라졌다(72쪽). 기득권을 상실한 복음주의자들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문화와 분리하는 경향으로 기울게 되고 말았다(80쪽).

근본주의에 대한 무디의 공헌은 대단하였다. 그는 근본주의의 최고 원조(元祖)였다. 그는 성서의 무오성과 전천년설을 믿었으며, 그의 동료들의 다수가 근본주의 운동에 직접 참여하였다(82쪽). 그는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던 19세기 초엽의 복음주의와는 달리 직접적인 사회참여를 회피하였고(90쪽 이하), 성결(聖潔)의 교리를 가르쳤다. 무디는 전천년설의 비관적 문화관이 복음 전도에 강력한 추진력을 주기 때문에 이를 좋아한다고 고백하였다(93쪽).

웨슬리(J.Wesley)의 감리교회와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에 뿌리를 둔 "성결운동"도 수정을 겪으면서 미국의 근본주의와 결합하였다(169쪽). 초창기 성결운동가들은 대체로 사회적 성향이 강하였다고 한다. 비록 그들은 비관적 사회관에 사로잡혀 있긴 하였지만, 사회봉사에 대한 그들의 경력은 어떤 집단의 경력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190쪽). 그런데 1920년대가 되자 이런 관심은 수수께끼와 같이 사라졌다(191쪽). 제1차 세계대전은 사회적 무관심을 더 강화시켰고, 라우센부쉬(W.Rauschenbusch)의 자유주의적인 "사회복음"(Social Gospel)에 대한 집중 공격 속에서 진보적인 사회적 태도는 불행히도 큰 상처를 받았다(205쪽). 성결 교리의 주창자들이 현대주의에 대한 싸움에 협력한 것은 독특한 근본주의가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230쪽).

결론적으로 저자가 "근본주의"를 네 가지 각도에서 분석한 내용은 근본주의를 쉽게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된다.

1. 사회현상으로서의 근본주의: 근본주의는 기반상실, 소외의식을 경험한 소수의 이민 공동체가 응집력을 부여하기 위해 개인적인 투철한 신앙과 핵심 신조를 강조한 현상이다. 근본주의와 이민은 모종의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431쪽 이하).

2. 정치적 현상으로서의 근본주의: 근본주의자들은 어떤 조직적인 형태로 정치적 견해를 완성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근본주의의 선구자들은 정치를 지향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었으며,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적인 방향으로 표류하였다(438쪽 이하).

3. 지성적 현상으로서의 근본주의: 무지는 근본주의 운동의 한 특징이다. 미국의 부흥운동과 근본주의는 반지성주의의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근본주의는 편집증적 형태, 편견화된 마음을 반영하는 일종의 반지성주의로 확인된다(460쪽 이하).

4. 미국적 현상으로서의 근본주의: 근본주의적 신앙은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에서만큼 뚜렷하고 침투적인 역할을 한 곳은 미국 외에는 거의 어디에도 없었다. 그 당시에 영국에도 보수 복음주의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미국에서처럼 호전성과 문화에의 충격이 없었다(480쪽 이하).

이 책의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지 못하였거니와, 또 그리 하였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근본주의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으로 이를 제대로 평가하기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저자 마드슨의 글로써 서평을 대신할까 한다: "많은 저술가들은 미국의 교회사에서 기독교가 각 시대의 "주의"(主義)들과 서로 뒤얽혀 있음을 지적해 왔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과학주의, 주관주의, 문화적 낙관주의, 문화적 비관주의, 지성주의, 반지성주의, 자아주의, 물질주의 등등 다양하다. 근본주의는 ... 이들 가운데 일부를 기독교에 대한 자체의 시각에 흡수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확실히 일부 그런 결합 현상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문화적으로 형성된 가설들, 이상들, 가치 체계들과 혼합 내지 혼동될 수 있다. 그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문화적 특성을 지닌 우리의 사랑과 충절과 이해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압도하거나 거기에 우선하게 되는 것이다"(498쪽).

관련 자료

 

박찬희: 근본주의와 미국문화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