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이후적인 현대

(볼프강 벨쉬)

 

이길용

 

 하나, 말머리에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 포스트모던이란 말뜻을 헤아리기 위해 고민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어찌 이 말을 우리말로 바꾸어야 제대로 그 말뜻이 살아날까 고민 고민하다 포기한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시름의 연장 속에 가까스로 토해낸 단어가 '현대이후' 입니다. 물론 저는 이 단어의 번역을 위해 그동안 선배 학인들이 펼쳐놓은 언어들도 주섬거리며 훑어보았습니다. 그 분들 대부분은 이 말에 대한 번역어로서 영어표현 그대로인 '포스트모던'이라 하던지, 혹자는 '탈현대' 그리고 어떤 이들은 '후기현대' 등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짧은 생각에 이러한 기존의 번역어들은 포스트모던의 의미를 생생히 우리말로 전달해주는데 여전히 모자라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선 영어식 표현 그대로 '포스트모던'이라 사용하는 것은, 이미 포스트모던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암호성을 아무런 해명없이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지라 가장 먼저 적당치 않을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탈현대'라고 하는 표현 역시 포스트모던을 '현대로부터의 벗어남'에 비중을 두고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지라, 오늘 우리들이 다루게 될 벨쉬(Welsch)의 견해와도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또한 예선에서 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후기현대'는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와의 일대일 대응적 번역이라 할 수 있는데, 여전히 시대적 함의성만이 강하게 부각되는 터라 역시 쓸만한 옮김이라고는 보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민 끝에 그런대로 적당할 것이라 여겨지는 말 하나를 찾아내 보았습니다. 그것이 '현대이후'입니다. 포스트모던 자체가 이미 기존의 '현대성'에 대한 비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현대와의 구별은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또 그러한 구분이 꼭 시대적으로 적합성을 지닐 필요는 없기에 '현대이후'는 이러한 제반의 조건을 그런대로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어 찾기에서 어렴풋이 떠올랐던 생각은 '현대이후'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목적론적 의도였습니다. 이것은 뒤의 제 소견을 밝히는 공간을 통해 서툴게나마 제기해볼까 합니다.

 

둘, 내용 요약

지은이는 이 장에서 '현대'와 '현대이후'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시도의 첫 물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도 있겠습니다.

"현대는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또 그 개념은 무엇인가?"

그는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막연히 '현대', '현대이후'라고 불리워지던 구별을 좀더 세밀히 나누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근대'-'현대'-'현대이후'로 나누어지는 시기구분을 좀더 잘게 구분지어 근대와 현대 사이에 '근대적 현대'를, 그리고 현대와 현대이후 사이에 '20세기적 현대'를 삽입함으로써 모호해지기 쉬운 이들 시기들의 성격을 보다 세밀히 구분하려고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지은이는 '현대이후'를 '철저한 현대'라고 '번역함'으로써 '현대이후'와 또 '근대'부터 '현대이후'에 이르는 그의 시대구분의 잣대를 암암리에 확인시켜 줍니다.


1. 근대의 개념

철학이 '근대' 혹은 '근대성'이라고 하는 사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쯤의 일입니다. 그후 본격적인 '철학적 근대'의 시작은 데카르트에서입니다. 헤겔은 데카르트를 가리켜 '자아확신에 대한 원리'와 '근거있는 사유의 원리'를 창시한 '근대의 아버지'라 추켜세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시대의 데카르트에 대한 평가는 헤겔의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데카르트와 더불어 '엄밀한 과학', '보편적 수학', '체계적인 세계지배', 그리고 '과학-기술문명' 등에 대한 단초가 세워졌다고 보고있습니다. 여하튼 많은 경우에서 철학적 근대의 시작을, 즉 '근대적'이라고 하는 인류 정신사에서 분명하게 특징지울 수 있는 어느 특정한 정신사조의 시작을 데카르트로부터 셈하는 것에는 어느정도 동의되어지고 있다고 보아도 큰 과는 없을 것 같습니다. 베이컨과 갈릴레이의 경험주의적 토목공사 위에 데카르트는 '보편적 수학'이라는 아스팔트를 닦으므로 과학-기술적 세계를 연 근대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는 평가 역시 이런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달리 정리하자면, 근대란 도구적 이성의 기본유형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제기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통하여 중세, 르네상스와 근대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라는 질문 말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데카르트에 의해 새로운 학문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학문은 개량적인 모습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고도 철저한 새로운 시작과 체계적인 건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시작과 개혁'을 위한 무기는 바로 '보편타당한 수학'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중세와 구별되는 데카르트의 근대적 에토스가 자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새로운 방법은 어느 특정한 분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지식분야를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편적 수학의 시대정신으로서의 등극은 근대의 시기를 '철저성'과 '보편성'으로 특징 짓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도구를 통해 과학-기술적 세계로의 전진이 가능해졌고, 바로 그것이 근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2. 근대와 근대적 현대

데카르트류의 '보편적 수학에 대한 강한 믿음'이 온 유럽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도 이런 사조에 대항하는 또다른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 흐름들을 일컬어 '심미적 저항들'이라 이름지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은이 벨쉬는 이들 역시 근대의 '아이들'일 뿐, 궁극적으로는 근대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지은이가 근대적 현대라고 명명한 그 당시의 '건조한 이성'에 대한 반기를 든 용사들을 일별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데카르트적인 학문과 합리주의와 수학, 그리고 물리학으로 경도되고 있는 학문적 풍토에 분명한 반대표를 던진 비코(Vico), 또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루소는 {학문 및 예술론(Discours surles Sciences et les Arts)}(1750)이란 논문의 한 각주를 통해 데카르트를 근대문화와 더불어 청산해야만 할 인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미학(Aesthetica)}이란 저작을 펴낸 바움가르텐(Baumgarten), '심미적 혁명'에 관한 주장을 설포한 쉴레겔(Schlegel) 등 등... 이미 데카르트 이후 곧바로 보편적 수학으로 인한 건조한 이성의 횡포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어 집니다. 그리고 19세기로 넘어와서는 과학-기술적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거부 작업들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1850년에 학문과 도덕에 대한 심미적 저항을 강조한 보드리야르(Baudelaire), 19세기말 예술가를 통한 학문의 해체를 선포한 광기의 철인 니체, 그리고 예술적 구성을 도구로 해서 과학적 허무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던 벤(Benn)과 초(超)아방가르드적인 예술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적 근대정신에 저항했던 많은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벨쉬는 이러한 이중적인 근대의 모습을, '근대는 한편으로는 합리화를 선택하고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합리화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계몽적인 치료가로서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벨쉬의 논리를 따라가자면, 앞서 열거한 비코와 루소로부터 시작한 반근대적인 운동 역시 근대에 속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반근대적인 움직임들도 어느 일정한 부분은 그들의 반대자들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논리 속에는 근대의 형식적인 특징들인-합리성과 보편성-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미학적 자극은 오히려 합리성을 더욱 고양-확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헤겔과 쉘링에게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근대가 가지는 역동성의 표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를 염두에 두고 최종적으로 근대의 전형적 특징들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새로운 시작, 철저성, 배타성, 보편성....

 

3. 20세기적 현대

20세기에 이르러 많은 것들이 변하였습니다. 우선 꼽아보자면, 이제 더 이상 다원성과 개별성은 이상(理想) 속에 머물러 있는 '꿈돌이'가 아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앞서 열거한 근대적 특성들에 삐딱한 반응을 보이는 이러한 다원성과 개별성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바로 우리의 눈 앞에 현실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현상은 과학과 예술의 영역에서부터 분명한 발언권을 지니고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과학분야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그리고 괴델(G?el)의 보편적 수학에 대한 포기는 '전체'에 대한 그 어떠한 시도도 이제는 더 이상 쓸모있는 일이 아니요, 모든 인식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제한적이라는 현대 과학인의 고백을 의미합니다. 그후 그들의 뒤를 잇고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전체성의 시대'가 끝났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전체를 얘기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통일성이라고 하는 것도 기껏해야 어느 특정한 차원에서만 가능한 '제한적인 통일성'일 뿐입니다. 이러한 과학분야의 전환적 움직임은 과학-기술적 세계인 근대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즉 보편적 수학, 객관성에 대한 믿음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근대의 시대정신이었던 합리성, 보편성 등과 같은 거창한 가치들은 이제 근대의 문을 연 개국공신들이었던 과학의 분야에서부터 불연속성, 반대성, 객관성 등과 같은 개념들에 의해 대체되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예술의 영역에서는 '양식다원주의(Stilpluralismus)'와 같은 움직임들이 이러한 시대흐름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철학의 경우는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철학계는 이러한 근대와 현대성의 예민한 변화를 뒤늦게 감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철학적인 현대이후주의'란 근대의 20세기적 현대의 단초를 결정한 다원주의의 중요한 실천, 그리고 그에 대한 이론적인 반성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4. 현대이후

리오타르(J. Lyotard)는 그의 책 {현대이후적인 조건(La Condition postmoderne)}에서 근대의 거대담론이 그동안 누려왔던 길고긴 천수가 다했음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즉 '철저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체화를 시도하는 모든 움직임은 거부당하고 있고, 또 근본적인 유한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하여 다원성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감지, 그리고 그에 대한 실천이 현대이후적인 철학의 주과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리오타르는 이를 20세기 학문의 '근본적 위기'라 명명합니다. 이러한 20세기 학문의 근본적 위기 속에서 이전 까지의 시대정신으로 작용해왔던 지식이 가지고 있었던 근대적인 전체성적인 영감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근대적 합리성, 보편성이라는 에토스는 '제한성', '다원성' 등과같은 개념들에 그 왕좌를 물려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지은이는 이러한 현대이후적인 철학적 움직임을 크게 세부류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익명의 현대이후주의, 애매한 현대이후주의 그리고 엄밀한 현대이후주의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우선 '익명의 현대이후주의'란 자신의 입장이 현대이후적이긴 하나 그것을 공포하거나 인식하지 않은 종류의 학자들을 포괄합니다. 이들은 다원성이 가지고 있는 비지양성(Unaufhebbarkeit)와 실증성(Positivit?)에 대한 자의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엄밀한 현대의 일신교적 사상에 종언을 고하며, 언어놀이의 환원불가능한 다양성을 주장한 비트겐슈타인과 윈치(Winch)의 문화상대주의, 쿤(Kuhn)과 포이어아벤트(Feyerabend) 등과 같은 과학이론적 환원주의자들, 다자의 사실성을 강조한 블루멘베르크(Blumenberg)와 원칙주의에 대항한 마르쿠아르트(Marquard) 등과 같은 리터(Ritter)학파의 후계자들도 이 부류에 속하는 이들입니다. 이 줄에 가다머와 롬바하(Rombach)의 해석학, 그리고 데리다와 들뢰즈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도 서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구분인 '애매한 현대이후주의'란 가쉽거리 같은 글 속에서 자칭 '현대이후주의자들'로서 행동하며, 엄밀한 '현대의 종말'로 인해 실질적인 이익을 보며,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어떠한 충분한 이론으로도 발전되지 않았던 현대이후적인 실천방식을 발전시킨 이들이 속해있는 사조를 지칭합니다. 이들에게는 '신화, 감성, 예술, 현대이후적인 합리성' 등이 어울리는 표제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낡은 반현대'일 뿐입니다. 이들 사이비 현대이후주의자들은 다원주의를 '반성의 영역'으로서가 아니라 '해체의 자격'으로 이해하고 행동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류에는 '엄밀한 현대이후주의'가 자리합니다. 이들은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이미 제기된 다원성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사려깊게 통찰하고 문화적으로 옹호합니다.

5. 근대-근대적 현대-20세기적 현대-현대이후

현대이후적이라 불리우는 것은 '다원주의에 대한 강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원주의는 현대이후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이미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20세기의 현대에 이르러 보다 주도적이고, 또한 사실적인 구속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 단지 그것만이 새로운 것입니다. 리오타르는 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현대이후적인 것은 현대 이후에도, 또 현대에 거슬러 대항하는 곳에도 자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현대' 속에 포함되어있는 것이며, 단지 휘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리오타르는 현대이후적인 사고의 모범을 비트겐슈타인, 칸트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까지 소급해 들어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이후는 모든 과거에 대한 명의적인 부정으로부터 근대적-현대적-진보적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비동시대적인 현대의 동시대성을 직면해서 보는 것이고, 역사에 대한 혐오감없이 과거성을 조사하고 또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적인 현대이후주의란 철저한 다원성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철학입니다. 금세기의 엄격하고 철저한 근대에 대한 사상적인 발전이요 동시에 해결책인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이후적(post-modern)'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철저한 현대(radikal-modern)'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셋, 소견(所見)

벨쉬는 근대적인 것이 특징인 합리성과 보편성이 근대 이후를 넘어오면서 새로이 부각되는 가치체계인 다원성과 개별성에 의해 현대이후적인 사고가 등장했다고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적인 변화인가? 그의 말처럼 근대의 시작은 보편적 수학의 제위식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왕관의 제작자는 데카르트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위기를 거쳐 그리고 수없이 많은 과학적 발전을 발판삼아, 이제는 다원성과 개별성이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보편적 수학에 지지를 받았던 합리성과 보편성이라는 제왕들은 페위되었다? 라는 설명은 왠지 제한적이고 꺼림직하기까지 합니다. 저의 견해에 '근대'는, '근대의 에토스'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학의 예를 들더라도 제 아무리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이든지 간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전체성과 보편성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한 연구결과로서 제시한다 하더라도, 확실한 것에 대한 염원을 담은 근대 수학의 정신은 여전히 남는 것입니다. 변한 것은 단지 결과물에 대한 '해석학적 시각'일 뿐... 그들의 의도는 바뀌었다고 보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비록 지금까지의 척도 기준이었던 보편성, 유일성 등이 사라졌다고 하나, 지금의 다원성 개별성 역시 또다른 의미의 보편성이라고 과연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그들이 부정하고 있는 보편성과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의 역기능'이라고 하는 그들의 '계산된 판단'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들의 근대와 계몽에 대한 비판은 근대로 인해 파생된 결과물들에 대한 거부이지 근대의 목적의식에 대한 반대라고는 보기 힘들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이점이 저에게는 아직도 투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불만의 뒤에는 반계몽적인 작업을 하고있는 이들 조차 계몽적인 이성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따라서 그들의 이성에 대한 비판은 단지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류는 여전히 '이성'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또 하나 떠오르는 문제는 '동아시아에서의 근대성'에 관한 물음입니다. 지은이를 비롯한 서구학자들의 견해를 따라가노라면, 그들이 얘기하는 근대, 내지는 근대성이 내포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투박하게 표현하자면, '종교로부터의 탈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세계를 종교라고 하는 아편에 의지해서 해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설명가능하고 예측가능한 정교한 수학적 구도 하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서구세계에서 그러한 근대의 발견 이후 수학에 기초한 많은 자연과학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이 규정해놓은 근대성의 모습은 일면 납득이 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대성의 잣대로 동아시아, 그것도 한·중·일로 묶여지는 유교문화권 국가들을 측량한다면 어떤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두 번째 궁금증입니다. 꼭 베버식의 '탈주술화'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행히도 유교문화권에서는 이미 이천년전에 이러한 탈주술화, 세계해석의 비신화화에 성공을 거둡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적 감성은 현실세계에 대한 엄숙한 실천형식을 통해 드러날 뿐, 더 이상 종교적 신화에 기초하여 이 세계를 설명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세계이해방식은 역사 속에서 신화를 말살시켜 갔습니다. 그래서 몇몇 제한된 자료들 외에 유교문화가 기승을 부린 동네에서 신화를 찾아내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 만큼이나 곤란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공자를 위시한 원시유교에서 가끔씩 등장하던 인격적인 모습의 천(天)은 남송(南宋)시대의 주희에 이르러서는 '이기이원론'이란 논리구조 속에 세계는, 그리고 우주는 철저하게 세속화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세속적 윤리의 보편적 잣대(人倫)가 물리적 세계(天倫)와 완전히 결합되는 유교적 자연법 사상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거의 500년 가가운 세월을 지배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물론 불행히도 이들 나라에서는 영국의 산업혁명과도 같은 보편적 수학에 기초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원할치 않아 근대이후의 세계시장을 서구제국주의에게 넘겨주긴 하였지만, 그들이 이천년전에 구축해놓은 '세계이해의 세속화, 내지는 비신화화'는 한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곧이어 파생하는 문제로 시대구분의 보편성 획득에 의한 난제입니다. 작금의 한국사가들은 별반 고민없이 원시-고대-중세-근대-현대라고 하는 맑스류의 직선사관적인 시대구분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직선적 시간구분이 과연 역사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잣대가 되겠는가? 에는 상당한 회의가 스며듭니다. 이즈음에서 이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도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히 시대구분을 직선적인 토막 위에 나열하고 게다가 그 구분위에 고대보다는 중세, 중세보다는 근대, 근대보다는 현대라는 식의 가치평가적인 순위매김까지 감행한다면 너무 무모한 짓이 아닌가 되물어 봅니다. 과연 인류의 역사가 그 진행의 고금에 따라 그들이 구축해놓은 문화와 문명마져도 또 그것들을 포함한 생활세계마져도 선(善)한 방향으로 옮겨갔는가? 막말로 정말 중세는 암흑이었고, 루터의 신명나는 나팔소리가 없었다면 여전히 인류는 신 앞에 고고한 단독자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말았을까? 따라서 인간을 종교라고 하는 잠속에서 깨운 계몽의 아침은 선한 것이고, 그 후로부터 인류는 현대적인 가치관들인 자유, 평등, 민주, 평화, 박애 같은 것들을 쟁취할 수 있게 되었는가? 따라서 모든 것은 근대적인 것이 되어야만 하고, 또 반근대적이거나 비근대적인 것은 반드시 사라져줘야할 역사의 사생아들인가? 등과 같은 질문들이 연이어 몰려듭니다. 과연 무엇을 가지고 이러한 조물주적인 가치판단을 역사 위에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저의 궁금증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의 세계가 그처럼 혁명적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식의 논리에 전폭적인 수용의 박수를 보내는데 무척 주저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도 보다 '미시적인 자리잡음'이 필요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에 이런 질문도 던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