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  

그리스도교적 종말론의 근거와 의미에 대한 연구
(위르겐 몰트만, 이신건 역, 대한기독교서회, 366쪽,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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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건

 

스위스의 무명의 시골 목사 칼 바르트를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로 만든 책이『로마서 강해』(1921년)라고 한다면, 33살의 새파란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책은『희망의 신학 - 그리스도교적 종말론의 근거와 의미에 대한 연구』(1964)이다. 이 책은 양대 세계대전 이후에 풍미하던 실존주의 신학과 세속화 신학에 종지부를 찍었다. 1967년에 "희망의 신학"이 미국에 출간되었을 때,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는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은 희망의 신학 때문에 기반을 잃어버렸다."고 논평했다. 1967년에 잡지 "슈피겔"(Der Speigel)은 "그리스도인의 창백한 피 속에 철분을 공급하였다."고 논평했다. 비록 몰트만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역사와 종말론"이 차지하는 중심적인 비중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를 가장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대변한 신학자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 책은 1973년에 박봉랑 박사님과 전경연 박사님에 의해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며, 작년까지 20쇄를 기록할 만큼 독자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이 책을 다시 번역한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문적인 신학서 중에서 이 책만큼 많이 읽힌 책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판매 부수로 본다면, 본회퍼의 명저들, 예컨대 "나를 따르라", "성도의 공동생활"과 같은 책들은 세계적으로 훨씬 더 많이 소개되고 읽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전문적인 신학서로서, 그리고 신학적인 영향 면에서 "희망의 신학"은 단연 압도적이라고 확신한다.

『희망의 신학』은 "Evangelische Theologie"(개신교 신학)의 발행인들이 1958년으로부터 1964년까지 전개하였던 논쟁으로부터 생겨났다. 여기서 그는 게하르트 폰 라트(G. v. Rad), 발터 침멀리(W. Zimmerli), 한스 발터 볼프(H-W. Wolff),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 등에 의해 대변되었던 구약성서 신학과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에 의해 초석이 놓여지고 에른스트 케제만(E. K semann)에 의해 수정, 발전되었던 신약성서 신학 사이를 중재해 보려고 했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역사 이해에 대한 질문이었다. 현실 전체는 인간의 희망을 깨우는 하나님의 약속의 맥락 안에서 역사로 경험되는가, 아니면 그 맥락과 대립하는 가운데서 역사로 경험되는가? 아니면 역사는 인간 실존의 역사성에 근거하고 있는가?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우며 더 인간적인 세상에 대한 미래의 전망을 획득하기 위하여 몰트만은 전쟁 이후에 풍미하였던 실존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희망의 신학』에서 몰트만은 다양한 신학의 재료들을 서로 엮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서 사용된 신학의 재료들은 구약성서의 약속의 신학, 신약성서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Parusia)의 신학, 홀랜드의 사도직의 신학, 혁명적인 윤리였다. 사실 몰트만의 신학 사고는 괴팅겐 대학교 시절부터 침멀리와 케제만에 의해 이미 이런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네델란드 신학자 아놀드 반 룰러(Arnold van Ruler)를 통해 종말론적 방향과 메시야적 동기를 갖는 "사도직의 신학"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1958년과 1961년까지 발표한 논문에서 종말론적 희망과 역사적 실천의 관계에 대해 다루었다.

그러나『희망의 신학』의 집필에 결정적인 동기를 준 것은 에른스트 블로흐(E. Bloch)의『희망의 원리』(Prinzip Hoffnung)이다. 1960년의 스위스 휴가 길에 이 책을 지참한 그는 자연 경관을 쳐다볼 틈도 없이 이 책에 매료되었다. 이 책을 읽은 후 몰트만은 즉각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그리스도교 신학은 바로 그 자신의 주제가 되어야 할 이 희망이라는 주제를 내팽개쳤는가?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초대교회의 희망의 영이 어디에 남아 있는가?

『희망의 신학』에서 몰트만은 성서에 나타난 약속, 묵시적 희망, 사도직, 하나님 나라의 신학,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실천을 지향하는 희망의 철학을 서로 결합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듯이, 몰트만이 블로흐의 철학을 계승하거나 각색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 바젤(Basel)에 있던 칼 바르트가 의심한 것처럼 몰트만은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에 "세례를 베풀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신학적 전제들 위에서 그에 필적하는 신학을 전개하고 싶었다. 블로흐가 현대적 무신론을 희망의 토대로 삼아 "무신론이 없다면 메시야 사상의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면, 몰트만은 처형당한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세계의 미래의 주님으로 삼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다. 블로흐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행복을 누릴 사회적 유토피아를 다시금 복원하고, 멸시받고 천대받는 자들이 인간적 존엄성을 되찾게 될 정의의 유토피아를 불러들이려고 했다면, 몰트만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생, 성서의 증언에 토대를 둔 희망을 중시하고, 이를 사회적 유토피아와 정의의 유토피아의 토대로 삼으려고 했다.

『희망의 신학』은 신학이 어떻게 희망으로부터 시작하고 종말론적인 빛 안에서 그 주제들을 숙고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려고 했다. 아니 이 신학은 종말론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교의 선포, 그리스도의 실존, 전 교회의 성격을 지배하는 것임을 실증하려고 했다. 몰트만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는 단지 부록에서만이 아니라 전적으로 종말론이고 희망이요, 그래서 현재의 혁신과 변화이기도 하다. 종말론적인 것은 그리스도교에 덧붙여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매체, 모든 것이 조화되어 있는 원음, 모든 것이 잠겨 있는 기대된 새 날의 여명의 빛이다. 그러므로 몰트만에 의하면 신학에는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 즉 미래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성서의 하나님은 세계 안에 있거나 세계 밖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계 앞에 있는 하나님, 즉 희망의 하나님(롬 15:13)이기 때문이다. 그는 밤중의 불기둥처럼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출13:21)이요, "존재의 본질로서의 미래"(블로흐)를 가진 하나님이요, 그렇기 때문에 그의 미래의 약속에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종말론은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미래 일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현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현실에서 출발해서 그 미래, 미래의 가능성, 미래의 힘을 알린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야말로 종말론적 정신과 유토피아적 정신의 토대요, 그 시금석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하늘의 영원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가 서 있는 바로 그 땅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본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미래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이 땅의 희망이다. 희망은 고난 중의 위로일 뿐만 아니라 고난에 맞선 하나님의 약속의 저항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둔 사람은 더 이상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고 현실 때문에 고난받고 현실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세상과의 불화를 의미한다.

몰트만은『희망의 신학』에서 이러한 그의 신학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당대의 신학 주제를 놓고 비판적 대화를 전개했다. "희망에 관한 명상"(서론)에 이어 몰트만은 "종말론과 계시"(I장)에서 초기 바르트의 하나님의 초월적 주체성의 신학, 불트만의 인간의 초월적 주체성의 신학, 구원사적 종말론, 판넨베르크의 보편사적 종말론과 치밀하게 논쟁하면서 "계시의 종말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몰트만은 계시가 약속의 성격을 갖고 있고 희망으로 파악된다는 점을 역설힌다. 그리고 그는 "약속과 역사"(ll장)에서 약속과 계시의 상관성, 그 특징을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미래"(Ⅲ장)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종말론을 설명한다. "종말론과 역사"(Ⅳ장)에서 그는 현대의 역사이해를 개관, 비판한 후에 종말론적 역사이해를 제시하며, 마지막으로 "탈출 공동체"(V장)에서 그는 미래의 지평을 세계에 열어 주는 교회의 사명을 강조한다.

『희망의 신학』은 세계의 신학계에 큰 공감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전에도 이런 방향을 주도한 신학자들이 없지는 않았다. 블룸하르트(Blumhardt) 부자(父子)의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희망의 폭탄처럼 떨어졌지만, 종교사회주의 운동을 거쳐가는 동안 그 힘이 소진되고 있었다. 바이쓰(J, Weiss)와 슈바이처(A. Schweitzer)가 자유주의 신학의 둑을 무너뜨리고 묵시적 종말론의 태풍을 몰고 왔으나, 결국 자유주의적 그리스도교 이해로 되돌아갔다. 실존주의 신학이 다시금 종말론을 신학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일에는 성공했으나, 인류와 교회에게 희망의 위로를 주기에는 너무나 협소했다. 몰트만은 이러한 신학의 터전 위에서 온 인류의 가슴을 적시는 희망의 물꼬를 터놓았다. 이리하여 그는 하나의 놀라운 신학적 전환을 이룩했다.

비록 몰트만이 미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1964년에『희망의 신학』은 분명히 결정적인 때를 맞이하였다. 즉 이 주제는 유행을 타기 시작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현대 세계의 문제들을 향해 문호를 개방하였다.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민권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동유럽의 프라하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라고 일컬어진 마르크스 사상의 개혁운동이 생겨났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성공한 쿠바 혁명이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지성인들의 희망을 일으켰다. 서독에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나은 사회 정의"를 향한 의지와 "핵무기에 대한 투쟁"이 침체되어가던 전후(戰後) 시기의 상황을 극복하였다. 1960년대는 실로 미래를 향한 출발과 전향의 시대였으며, 희망을 통해 거듭난 시대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 당시에 매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위대한 희망은 작고 제한된 많은 활동들, 즉 환경 운동, 평화 운동, 여성 운동과 다른 운동들 속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메츠(J. B. Metz)의 "정치신학", 콘(J. Cone)의 "혹인신학", 구티에레즈(G. Guti rrez) 등의 "해방신학", "제3세계의 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은 직접-간접적으로 역사적, 종말론적 전망을 갖춘 실천적 신학으로서『희망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스 큉(H. Kueng)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신학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하는 가운데서 형성되어 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고대교회-헬레니즘 패러다임, 중세-로마 카톨릭 패러다임, 종교개혁-개신교 패러다임, 근대-계몽주의 패러다임은 제 각기 정교회, 로마 카톨릭, 개신교, 자유주의 속에서 계승되거나 보존되어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의 어머니(케제만)라고 할 수 있는 원시 그리스도교-묵시문학 패러다임은 이슬람 속에서만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원래의 모판으로부터 떠나 다른 모판 위에서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누가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초대 그리스도교의 희망의 영은 오늘날 어디에 살아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종말론의 근거와 의미를 탁월하게 규명함으로써 인류의 참된 희망을 증언한 몰트만의 노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도도히 밀려오는 포스터모던 패러다임 앞에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보편성, 인류의 미래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할수록 40여년 전에 몰트만이 제기한 질문은 오늘날에도 다시금 새로운 타당성을 갖고서 우리를 압박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