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신화다

(티모스 프리크/피터 갠디, 승영조 역, 동아일보, 2002)

 

이신건



   얼마 전에 "예수는 없다"(오강남)라는 책이 세인의 관심을 끌더니, 최근에는 "예수는 신화다"(티모스 프리크/피터 갠디, 승영조 역)라는 또 하나의 별난 이름의 책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앞의 책의 제목도 원래는 "그런 예수는 없다"였는데, 독자를 자극하기 위해 "그런 ..."이라는 말을 빼고 출판하였단다. 나는 정말 저자가 "예수는 없다"라고 선언하였는가 싶어 얼른 책을 사보고는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 나온 책의 원래 제목도 "예수의 비밀"인데 출판사(동아일보)가 "예수는 신화다"라는 제목으로 바꿔놓았으니, 독자들을 미혹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관행적인 상술은 너그럽게 눈감고 주기로 하자.


   정말 심각한 것은 이 책의 내용이 갖는 엄청난 파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앞의 책과는 감히 비교될 수가 없다. 이 책의 영향을 얼마나 두려워했던지, 국민일보는 연일 반대 기사를 올렸고, 한기총은 동아일보 불매 운동 운운하며 판매 금지의 압력까지 넣었다. 결국 동아일보는 압력에 굴복하여 이 책을 절판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붉은 악마"에 대한 대응처럼 이번의 대처도 오히려 기독교의 허약성과 야만성(?)을 드러낸 것만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기독교를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책이 어디 한 둘인가? 오히려 이 책을 더 선전한 꼴이 되지는 않았는가?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에 관한 성경의 보도들은 모두 고대 세계의 신비종교에서 이미 표현된 신화와 표상들을 유대교적으로 각색한 것들이고, 그래서 그것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순전한 신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자주의를 믿는 기독교가 신화적인 기독교를 박해하고 승리한 결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사실에 근거한 종교인 것처럼 착각해 왔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원래 영지주의 신화로부터 유래한 종교임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특히 고대 세계에 유행했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를 철저히 조사한 후에 이를 성경과 꼼꼼하게 대조한다. 저자의 지식이 얼마나 해박하고 논리가 얼마나 치밀한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염려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주장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독일의 "종교사학파"를 비롯하여, "탈신화화"를 주창한 불트만에게 이르기까지 이런 주장은 다양한 모습으로 부활하였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예수 세미나" 학파들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역사가 신화로 바뀌고 신화가 역사로 바뀌는 일을 흔히 보는 우리에게 "역사와 신화"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다. 분명히 역사적 문서인 성경도 주변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는 성경의 배경을 통해 그 시대의 인물과 역사를 더 진솔하고 친숙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없다"라는 책처럼 이 책도 기독교인의 지나친 문자주의를 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공헌한다고 보아야 한다. 자유주의를 무너뜨린 신정통주의자 칼 바르트도 문자주의(축자영감주의)를 "종이교황숭배"라고 칭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유사한 것들은 항상 복제를 통해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전제, 고대 신화와 역사 자료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유대교적 전승과 예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무관심 등은 이 책의 허점을 드러낸다. 가장 치명적인 허점은 기독교가 믿는 진리는 신화라고 우롱하면서도, 영지주의 신화는 영원한 진리라고 강변하면서 은근히 전도까지 하는 속셈을 드러내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교회가 자신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데 유용한 재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시황과 히틀러처럼 책을 불사른다고 해서,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