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존 호트 지음, 신재식 옮김, 지성사, 2004년)

 

이신건

 

개인적인 고백으로부터 서평을 시작하고 싶다. 나의 신앙은 이른바 모태신앙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독교적 세계관은 자명한 것이었다. 최초의 지적인 회의는 칸트로부터 왔다. 유신 철폐 데모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약 일년 동안 집에서 틀어박혀 지내던 시절에 철학사를 대충 정리해 보고 싶은 욕심이 발동했다. 철학사를 읽어내려 가던 중에 나의 신앙을 가장 예리하게 뒤흔든 것은 바로 유신론 논쟁, 아니 무신론이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철썩 같이 믿고 있던 하나님 신앙을 공격한 논리들은 시대와 사람만큼 다채롭고 다양하였지만, 특히 칸트의 철학 논리는 가장 정교하고 예리했다. 그래서 한 동안 나는 칸트의 '신증명 불가능성'(정확히 말하면, 전통적 유신론의 모순) 때문에 번민했다. 그러다가 한순간 나는 마치 득도라도 하듯이 칸트를 극복했다. 유신론은 실천이성의 요청이 아니라 계시에 응답하는 신앙 사건이다. 무신론은 유신론의 위험한 적군이 아니라 오히려 유신론의 진정한 동맹군이다. 증명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다. 그 후로부터 나는 칸트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복학 후에 다시금 나의 신앙을 가장 심각하게 뒤흔든 것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 즉 진화론이었다. 진화론은 유물론(마르크스)과 심층심리학(프로이트)보다 더 신앙에 파괴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과학혁명 이래 진화론만큼 하나님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앙을 뒤흔든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진화론을 공격하고 창조론을 변증하는 책만을 골라 읽었다. 그래서 진화론 때문에 내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진화론 때문에 내 신앙은 더 견고해갔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부인하던 진화론은 점점 더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우주와 지구, 생명의 기원과 생성을 설명하는 모든 이론들은 오직 진화론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스스로 되물었다. 진화론자들은 창조과학자들보다 더 무식한가? 아니면 진화론자들의 홍보력은 창조론자들의 전도열보다 더 효과적인가? 단지 그것만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카톨릭 신부와 기독교 신학자가 번역한 샤르댕 신부의 책들을 통해 '진화론적 신학'을 처음으로 접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도저히 공략할 수 없는 숙적과의 전략적인 동침인가? 과학과 신학의 새로운 공명인가? 그 후에 나는 몰트만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서구 신학자들도 진화론을 거의(!) 당연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리하여 나는 과학과 신학이 적군이 아님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아니 신학이 오랫동안 과학의 적군으로 자처해 왔음을 특히 '지동설 논쟁'을 통해 알았다. 카톨릭 신학자만이 아니라 개신교 신학자들(루터와 칼빈, 심지어 웨슬리까지)도 과학적으로 오랫동안 자명한 논리로 받아들여진 지동설을 문자적인 성서 이해를 근거로 약 5백년 동안이나(!) 계속 부인하다니! 여기서 나는 과학 문맹의 광신을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는 나는 독단적인 과학 문맹이 교리적인 이단사상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단은 소수만을 위험에 빠뜨리지만, 과학 문맹은 다수를 암흑 속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기우를 씻기라도 하듯이, 최근에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화를 모색하는 책  한 권이 출판되었다.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교 신학과 교수로서 '과학과 종교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존 호트(J. F. Haught)가 쓰고, 호남신학대학교의 교수로서 '진화론적인 유신론과 케노시스의 하나님'이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는 신재식에 의해 번역된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이다. 이 책은 진화론과 창조론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101가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과 그 이후의 진화과학이 기독교 신앙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진화론적 유신론'의 입장에서 '진화론적 신학'을 제시한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읽는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을 창조론의 철천지원수로만 여기고, 오직 '유신론적 창조론'만을 정통 과학, 아니 정통 신앙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정작 두 이론을 조화롭게 연결하며 설명하려는 '유신론적 진화론'은 거의 소개하지 않고 있다. 진화에 대한 다양한 기독교적 입장을 외면하고 특정한 신학적 입장만을 반영하는 그들은 과학적 문맹들인가, 아니면 십자군 전사들인가?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교과서의 정답을 거절한 대가로 좋은 점수를 얻지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통 신앙과 정통 과학을 고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첨단 과학이 가져온 대중적인 혜택은 모두 누리면서, 대중적인 과학 이론만은 완강히 거부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언제까지 유지하고 확산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번역한 신재식은 이 책이 여전히 과학혁명 이전의 시대, 특히 다윈 이전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이 진화와 현대과학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 한국 사회와 기독교에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기독교 내의 다양한 입장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어, 신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나도 이 책으로 말미암아 진화론과 창조론의 무익한 논쟁이 지동설을 둘러싼 어리석은 논쟁보다는 더 오랜 세월을 끌지 않기를 제발 바란다! 창조의 하나님, 우리의 무식함을 도와주소서!(200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