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릭 워렌 지음, 고성삼 옮김, 도서출판 디모데, 2003년)

 

이신건

 

세계에서 대형 교회로 손꼽히는 교회가 한국에 무려 7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한국 목회자들은 미국의 대형 교회를 즐겨 방문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 목회자들이 여전히 친미적 발상에 젖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미국 교회가 미국 여행의 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걸까? 좌우간 한국 목회자들이 즐겨 방문하는 교회 중에는 새들백 교회가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교회 중의 하나인 이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는 릭 워렌(R. Warren)는 성공적인 목회자로서 부러움을 살뿐만 아니라, 여러 베스트 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책『새들백 교회 이야기』(The Purpose Driven Church)는 전 세계의 20개 언어로 출간되어 수백만 부수가 팔렸고, 20세기를 변화시킨 100권의 신앙 서적 가운데서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쓴 또 다른 책『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이 다시금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 필자가 가지고 있는 이 책은 2003년도에 처음 나온 이래 2005년 2월까지 무려 206쇄를 기록하고 있으니, 경이적인 성공작이 아닐 수 없다.

교회(Church)라는 이름만 뺀다면, 두 책은 제목이 같다. 두 책의 공통점은 목적(The Purpose)이라는 단어에 있다. 워렌 목사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처럼 보이며, 그가 정한 분명한 목적은 반드시 성취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목적만 분명하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 듯이 보인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누군들 모르겠는가? 더욱이 기독교는 목적론적 사고를 분명히 가르치는 종교가 아닌가? 이처럼 매우 진부한 진리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유달리 많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명쾌하고 문장이 간단하기 때문일까? 저자의 유명세 때문에 책이 덤으로 인기를 누리는 걸까? 아니면 인생의 목적을 몰라서 방황하고 영적으로 침체하는 교인들에게 멋진 대답과 강한 도전을 주기 때문일까?

이 책은 단순히 독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40일 동안 읽고 묵상하도록 40개의 소주제로 짜여진 묵상서적의 성격도 갖고 있다. 40개의 소주제는 6개의 소제목 아래 치밀하게 배열되어 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1."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2."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3."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3."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받았다." 4."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록으로 "토론을 위한 질문"과 "참고 자료"를 제공한다. 제목에 걸맞게 처음부터 저자의 분명한 목적 아래 쓰여진 책임을 보여준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고도 오래지 않아 기쁨도 감격도 동기도 시들해진 채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분명히 알 때, 우리의 삶은 소망과 기쁨과 힘으로 넘치게 된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축복이다. 그런 점에서 축복과 평안과 향락을 쫓기를 원하는 많은 교인들에게 이 책은 분명히 신앙의 좋은 교과서가 될만하다. 그리고 추천사를 쓴 옥한음 목사의 말대로 한국교회는 구원과 은혜와 복에 대해서는 많이 가르치고 있지만, 삶의 목적을 막연하고 소극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몰려드는 군중만 양산한 책임이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많은 평신도들에게 큰 해답과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시 추천사를 쓴 이동원 목사의 말대로 이 책은 '명목상의 교인들'에게 개인적인 나침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옥에 티가 보인다. 먼저 비슷한 내용이 자주 중첩되고, 저자가 제시하는 목적이 때로는 혼란스럽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 때문이다."(32쪽)라고 말하다가,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만들어졌다."(111쪽)라고도 말한다. "그분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32쪽)라고 말하다가,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해서 존재한다."(71쪽)라고도 말한다. 두 목적은 서로 상충되는가, 아니면 궁극적으로는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가?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제사)를 매우 강조하는 P(사제) 문서도 실로 다른 이방 종교들과는 달리 인간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축복(사랑)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비록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인간의 마땅한 도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섬기도록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너무 이교적이고 이기적이지 않은가?

이 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는 하나님의 계획, 결정, 섭리, 목적, 설계, 통제, 맞춤제작 등이다. 이 책의 저술 목적에 맞게 이런 단어가 자주 나오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획하기 때문에(257쪽) 인간에게는 자유와 모험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듯이 보이고, 우주에도 우연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저자의 사고가 목적론적, 결정론적 혹은 예정론적 사고에 너무 이끌리다 보니, 마치 하나님이 범죄와 실수도 계획하시는 분처럼 오해될 수 있다. 이런 세계관은 쉽사리 운명론으로 인도한다. 더욱이 저자는 현실의 삶을 다음 삶을 위한 준비과정(예비학교)으로만 봄으로써, 이 땅에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약화한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인생의 목적도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구미에 맞게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다. 즉 세계 평화와 사회적 정의와 같은 거시적 담론보다는 사랑과 기쁨과 같은 미시적 담론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