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웃 나라

(제7권 일본, 일본인 편)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0년)

 

이신건

 

인종적, 지리적으로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다. 하지만 심리적, 문화적으로 일본은 우리와 가장 먼 나라다. 한류 열풍으로 가까워지는 듯 싶던 일본이 독도 문제로 인해 다시금 매우 멀어졌다. 독도 문제가 일본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 혹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점도 없지는 않으나, 일본인과는 달리 감정적으로 잘 흥분하는 터라, 일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금방 식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안방극장에서 방영된 드라마(토지와 불멸의 이순신)를 보노라면, "일본(인)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식민시대에 관한 정보를 제외하면,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거의 무지하다시피 하다. 우리의 일본 이해는 고작『축소지향의 일본인』(이어령) 정도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싶다. 그 밖의 일본 이해는 기껏해야 저널리스트가 쓴 에세이 수준의 책들(『일본은 없다』혹은『일본은 있다』)을 통해 형성된, 그야말로 아마추어 수준의 것이었다. 아마도 한국을 연구하는 일본인이 수백 명을 넘는다면, 일본을 연구하는 한국인은 수십 명도 정도일 것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우리가 일본을 이해하기는커녕 과연 극복이나 할 수 있겠는가?

요즘 나는 이순신이 해전에서 거둔 연전연승의 비결에 주목한다. 일본수군보다 더 막강한 조선수군의 화력이 거장 큰 비결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과 탁월한 전술도 큰 힘을 발휘했을 법하다. 전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는 일본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고, 전란 중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아직도 그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최근에 이원복 교수가『먼 나라 이웃 나라』시리즈에서 2권에 걸쳐 일본을 상세히 소개한 점이다. 비록 만화의 형태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이 책을 위해 12년 동안 준비했고, 일본을 40차례 이상 여행했으며, 일본인 교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이해를 돕는 점에서 아마도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은 당분간 나오지 않으리라고 본다. 제1권은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다루지만, 상당한 분량을 일본의 경제적 성공과 고민에 할애한다. 제2권은 일본의 역사를 다루는데, 지루할 정도로 상세하게 역사를 나열한다. 하지만 역사와 의식은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관련성을 지니기 때문에 두 책은 연계성을 갖는다.  

논리적, 역사적으로 가장 큰 호소력과 설득력을 주며, 그래서 내용 설명에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지정학적 설명이다. 섬이라는 특수성이야말로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잣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은 여러 면에서 영국과 매우 흡사한 특징을 갖는다. 아직도 왕을 두고 있다거나 유혈혁명을 겪은 적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공통점이다. 특히 섬나라의 일본의 특징은 조화(調和)라고 한다. 사방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싸우면 결국 모두가 망하게 되므로 신성불가침적인 하늘신(천황)을 모셔놓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려고 힘쓴다. 하지만 질서를 유지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붓과 글을 무기로 삼은 선비문화가 발달한 조선사회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칼을 사용한 무사 중심의 사회가 발달하였다. 천황을 상징적인 존재로 삼고 막부(幕府)가 실질권력을 장악해 왔던 것도 바로 화(和)의 정신 때문이다. 이와 같은 화(和) 사상은 철저한 신분사회 혹은 계급사회를 만들었고, 분수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일본의 경제적 성공과 일본인의 이중적 성격은 바로 이로부터 비롯한다.

지정학적 설명은 한 민족의 의식과 역사를 설명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생명의 역사를 보더라도, 환경의 중요성은 지대하다. 더욱이 인간 생명에게 환경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대한 중국 대륙의 사람들은 확실히 배포가 크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잘 흡수한다. 반도에서 사는 우리 민족은 솔직히 주체성이 약하고 사대적 근성이 강한 편이다. 오랫동안 고립된 섬나라 일본은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섬나라는 폐쇄적이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섬나라 일본이 세계의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폐쇄성을 잘 극복하고 다른 나라의 뛰어난 문화를 부단히 수용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비록 문명의 출발은 늦었지만, 일본은 대륙(백제와 중국)과 대양(미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강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비극도 바로 이로부터 비롯한다. 일본은 힘을 가질 때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하려는 제국주의적 본성을 자주 드러내었다. 섬나라의 열등감 때문이든, 자국의 문제를 대외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술책이든, 일본은 남의 은혜를 침략으로 갚으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이 된 일본은 문화적으로는 열등 민족이 아닐 수 없다. 경제와 기술을 제외하면, 사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별로 없다. 일본인의 종교적 특징은 다종교적, 혼합종교적이고 그래서 비종교적이다. 일본인의 문화적 특징은 모방적이고, 그래서 창조적이지 못하다. 일본의 철학에 대해서는 내가 들은 바는 별로, 아니 전혀 없다. 이런 일본이 유엔의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꼴을 쳐다보자니, 참으로 졸부의 정신적 미성숙을 우리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암담할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일본이 없다"(전여옥)는 소리만큼 정신이 나간 소리도 없다. 일본의 침략을 다시는 받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동아시아의 균형 혹은 지도 세력으로 부상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려면,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어떤 점에서는 일본으로부터 많이 배워야 한다.

어려운 이야기를 재미있는 만화로 풀어내는 탁월한 재주꾼 이원복 교수로부터도 우리는 많은 점을 배워야 한다. 아직도 구시대적 글쓰기와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그는 참신하게 다가온다. 다만 남의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열심히 배우고 전파하려는 그가 사학의 병폐로 신음하는 덕성여대에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이하다. 이젠 밥그릇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유명세를 탄 그가 무엇 때문에 불의에 침묵하면서까지 구차하게 교수 생명을 연장하려는지 궁금하다. 약삭빠른 장사꾼 일본인에게 한 수를 배운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