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신좌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년)

 

이신건

 

오늘날 인간에 대한 이해는 유전자 연구에 의해 크게 지배되고 있다. 유전자 연구가 대개 생명과 질병의 현상을 규명하려는 데 집중되고 있는 편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도 이해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우리를 놀라게 하나의 책이 발간되었는데, 바로 리처드 도킨스(R. Dawkins)가 쓴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 1993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 주장에 의하면 사람과 모든 동물은 이기적인 유전자들을 맹목적으로 보존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기계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불멸(영원)하고, 이기적이다.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된 모든 것은 이기적이다. 이타주의로 보이는 행위도 실제로는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유전자의 수준에서 이타주의는 악이고, 이기주의는 선이다. 이와 같은 주장들로 인해 도킨스는 사회생물학과 진화 논쟁에서 중심적이고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에 그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책이 발간되었다. 바로 매트 리들리(M. Ridley)가 쓴『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라는 책이다. 도킨스처럼 역시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한 후부터 재능 있는 과학 저술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붉은 여왕』을 쓴 것을 계기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게놈』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했다. "인류는 본성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인가 아니면 반사회적인 동물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인간 사회의 뿌리를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선배들의 이론이 절반만 옳았음을, 즉 인간 사회의 뿌리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문자 그대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이타적 유전자』에서 그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정신은 이기적인 유전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성과 협동성, 신뢰성을 지향한다. 인간은 사회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이타주의의 이면에는 분명히 이기성이 숨어 있다. 사랑과 상호부조의 내밀한 성소(聖所)인 자궁에서조차 냉혹한 이기적인 관계가 발견된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협동, 이타적 행위, 아량, 동정, 친절, 자기 희생 등과 같은 미덕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것은 모든 인종의 공통적인 심리적 경향이다. 인간은 개미와 꿀벌보다 더 상호의존적이다. 그러므로 호혜주의는 인간 본성의 불가결한 일부, 즉 본능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 사회에서는 호혜주의가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사회적 이타주의에 관한 한, 인간은 아주 독보적인 존재다.

인간의 가장 큰 이점은 노동 분화다. 이것은 다른 사회적 동물과 구별짓는 특징이다. 인간의 면역 체계를 보더라도, 이기적인 세포도 결과적으로는 인체 전체의 이익을 지향한다. 인생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다. 나의 성공이 반드시 너의 희생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둘 다 승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 외에 어떤 영장류도 남편과 아내의 노동 분화를 하지 않았다. 우리의 언어와 생활은 온통 호혜주의적 관념 투성이다. 인간에게는 호의와 호의에 대한 상대방의 보답을 감시하는 본능이 있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의 뇌보다 뛰어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르다. 인간의 뇌에는 호혜주의를 구사하여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동물에게는 감정 이입이 없다. 하지만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신뢰도를 높이는 구속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정을 활용한다. 인간의 감정은 사회 속에서 신뢰가 유지될 수 있게 해주고 헌신성을 보장하는 정신적 도구다. 감정은 인간이 서로 호혜성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위한 정교한 도구다.

그 밖에도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짓는 것은 문화다. 의례는 협동과 희생을 고양하는 기능이 있다. 음악은 감동과 정서를 보장한다. 그러므로 음악은 집단에 대한 헌신성을 과시한다. 상호 이익을 위한 교역은 오랜 옛날부터 인간다움의 조건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다른 동물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생태학적인 장점이다. 집단 간에 비교우위의 법칙을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태학적인 비장의 무기 가운데 하나다.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므로 도킨스와 리들리 중에서 누가 더 옳은지를 판단할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단순한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사람은 자기 성격과 취향과 소원대로 만사를 바라볼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도킨스는 유전자의 이기적인 특징을 더 즐겨 보고 싶었을 것이고, 리들리는 그와는 정반대로 유전자의 이타적 특징을 더 즐겨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에게는 만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리 보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기적인 요소도 생각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타적으로 보일 것이고, 그 역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나아가 만물의 상극적(相剋的) 요소들도 더 높은 차원에서는 실로 긴밀하게 상생(相生)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기적인 것이 곧 이타적인 것이 될 것이고, 이타적인 것도 곧 이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자연과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이 꿈꾸는 대로 되어가도록 상당한 자유와 가능성을 허락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자연과 하나님은 인간의 무한한 탐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탁월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요소들은 불행히도 생태학적으로는 혹독한 결과를 가져왔다. 북아메리카에 인간이 출현한 다음에 대형 포유동물의 73퍼센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인간들끼리는 협동적으로 발전해 온 인간이 왜 유독 환경에 대해서만은 이다지도 이기적일까? 저자의 결론대로 인류에게는 환경 윤리와 같은 것, 즉 자제의 습관을 계발하고 가르치는 내재적인 경향은 없고, 따라서 환경 윤리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스르면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용기를 권한다. <게임 이론>을 통해 검증해 본 결과로 인간은 비열한 전략보다는 우호적인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론들과 자료들을 동원하여, 그리고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풍성히 곁들어, 매우 어려운 이론을 아주 쉽게, 그리고 매우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 저자의 혜안에 감동한 기억이 새삼 새롭다. 덥고 나른한 계절에 누워서도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여,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뚜껑을 덮는 동시에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넓어지고 인생의 지혜도 더욱 풍성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리라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