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제임스 H. 콘 지음, 정철수 옮김, 갑인공방, 2005년, 592쪽)

 

 

이신건

 

1. 오늘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미국에 대해 전혀 상반된, 아니 서로 모순된 견해를 갖는다. 이런 모순 때문에 우리의 내면과 우리 사회 안에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충돌이 자꾸 생겨나는 것 같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미국이 우리 나라에 - 비록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 해방을 안겨준 은인의 나라임과 동시에 우리 나라를 분단시킨 - 그리하여 결국 동족상잔에도 일정한 책임을 지고 있는 - 주범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어릴 때에 미국은 우리에게 우유와 밀가루를 먹여준 고마운 은인이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공포의 세력처럼 느껴진다. "미국이 이라크를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일에 실패하였다"고 말하는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한 8월 16일자 신문을 본 후, 또 한번 나는 이런 모순을 강하게 느낀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했다고 겉으로는 여전히 호언장담했지만, 민주적인 새 헌법 제정의 난항 때문에 미국의 한 관리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신문은 덧붙인다. 하지만 충격보다 더 큰 난제는 다른 곳에 있다. 정신적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줄어들 수 있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꼬이고 겹쳐져 선악의 경계를 알 수 없는 도덕적 모순은 누가,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실로 이런 모순은 애초부터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작은 깡패를 잡는답시고 더 큰 깡패 짓을 일삼고, 엄연한 주권국가를 민주화한답시고 무력침공을 자행하고, 남의 나라 백성을 불안에서 해방한답시고 자기의 안방까지 테러를 끌어들이다니, 이 무슨 모순 덩어리란 말인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은 강하고 아름다운 꿈의 나라로 숭배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은 무섭고 추악한 악의 나라로 타도의 대상의 되고 있는 현실도 참으로 풀기 어려운 모순이다. 이런 모순을 풀지 않는 한, 우리에게도 밝은 미래가 없다고 여겨진다.  

지금까지 미국이 연출해 온 모순, 미국의 추악한 위선과 더러운 거짓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여러 방법으로 폭로되었지만, 최근에『흑인 신학』의 대변자인 제임스 H. 콘이 쓴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이라는 새로운 책도 새로운 각도로 이런 시도를 감행한다. 콘은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흑인 해방 혹은 인간 해방을 위해 두 사람이 걸어간, 서로 "다르지만 같은 길"을 전기 형태로 설명하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콘이 노리는 진정한 의도는 여전히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계급 착취와 제국주의, 폭력의 악순환 등과 같은 심각한 모순에 빠져 있는 오늘의 미국에게 의미심장한 교훈을 던지려는 데 있다. 이 책의 편집 방식도 조금 특이하다. 많은 책들이 서로 다른 사상이나 인물을 직렬 형태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상호 간의 비교와 결론적 교훈은 대개 독자들의 능력과 상상력에 맡기는 방식을 취한다면, 이 책은 병렬 형태를 취함으로써, 그리고 그 안에서도 종종 교차 형태를 취함으로써, 두 사람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더욱 극명히 드러낸다. 두 사람이 가장 예리하게 폭로하고 극복하기를 원했던 미국 사회의 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심사인 듯,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는 두 인물 혹은 두 사상을 서로 긴밀하게 교직(交織)하는 서술 방식은 이 책을 읽은 묘미와 효과를 극대화한다.

사진으로 보는 맬컴과 마틴은 외모 상으로 서로 너무 다르다. 맬컴은 깡마르고 날씬한 키에 각진 얼굴, 예리한 눈과 쫑긋한 귀, 긴 턱으로 상대방을 초미에 압도하는 듯하다. 마틴은 그와 달리 키땅딸막하고 얼굴도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게 보여서, 모든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푸근한 인상을 풍긴다. 외모처럼 두 사람이 태어나고 걸어간 길과 그들이 선택한 사상과 투쟁 방법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흑인 해방과 인간 해방을 위해 일평생 투신하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겸허하게 배우고 서로를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우연하게도 같은 나이(39살)에 같은 방법으로 - 맬컴은 흑인의 손에, 마틴은 백인의 손에 - 저격을 당해 죽었다는 점에서도 서로 뗄 수 없는 운명적인 동지와 같았다.

만약 두 사람이 사후의 세계에서 서로를 만나 대화할 수 있다면, 서로를 어떻게 대하며 서로 어떻게 토론할지, 서로의 장점과 약점으로부터 얼마나 배웠고, 그래서 서로 간에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 그래서 서로 안에서 얼마나 큰 안식과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생뚱맞게 이 글을 사후의 인터뷰 형식으로 써 볼까 구상하였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단 한번, 그것도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서로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래서 사후에서나마 서로를 더 가까이 만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이 글이 생동성과 현장성을 충분히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글재주와 지나친 상상의 위험성 때문에 다시금 해묵은 서평 방식으로 돌아가련다.

 

2. 내용 요약

《들어가는 말》에서 콘은 마틴과 맬컴의 짧은 만남을 기술하고, 두 사람이 걸어갔던 서로 다른 노선의 뿌리를 밝힌다. 두 사람의 만남은 흑인 해방 운동에서 매우 심오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일대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이 만남의 의미는 두 지도자가 만난 데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 속에 자리잡은 두 가지 커다란 저항의 전통이 만났기 때문이다. 기독교 통합주의자인 마틴과 무슬림 민족주의자인 맬컴은 함께 인종 차별에 맞서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은 미국의 괴상한 모순, 이중의식, 두 개의 영혼과 사상이었다. 이런 모순은 "나는 미국인이면서 검둥이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낳았다. 통합주의자 마틴은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 유대교와 기독교 정신에 기초하여 "그렇다"라고 말하고, 흑인 민족주의자 맬컴은 미국의 추악한 현실과 무슬림의 가르침 등에 기초하여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대답은 다만 두 사람의 입장 차이만이 아니라 그들 이전의 서로 다른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콘은 말한다.

《1장과 2장》은 마틴의 꿈과 맬컴의 악몽이 생겨난 사회적 기원을 분석하기 위해 두 사람의 성장 과정을 살핀다. 흑인과 백인, 아니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마틴의 꿈(아메리칸 드림)은 그가 태어난 남부의 중산층 가정과 조부모의 영향, 흑인교회의 영성과 교육 등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가정과 교회는 그의 초기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부모는 "기독교인은 인간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백인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환기시켰다. 교회의 신앙은 흑인의 존엄성과 인간의 평등함을 가르쳤다. 니버(Niehbur)의 신학, 사회복음, 개인주의 철학 공부는 정의에 대한 관심과 낙관주의를 표현할 수 있는 지적인 구조를 만들었고, 백인 중심의 사회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다.

마틴과 달리 미국의 파멸을 기대한 맬컴의 악몽은 북부의 가난한 흑인 대중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도 아버지로부터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공식 교육은 8년으로 끝났지만, 흑인의 비참한 현실로부터 더 많은 비공식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의 가족은 KKK단에 의해 쫓겨났고, 부모와 형제 간의 폭력, 아버지의 살해(?), 굶주림, 어머니의 정신병 등은 미국에 대해 그 어떤 꿈도 꿀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니 미국은 그에게 악몽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무슬림 지도자 일라이저 무하마드를 만났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무하마드는 백인을 악마로 규정하고 미국의 멸망을 예언했으며,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긍정하였다. 아프리카의 성을 상징하는 엑스(X)라는 새 이름도 그로부터 받았다.

《3장과 4장》은 성직에 종사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1963년과 1964년에 걸쳐 두 사람이 각각 꿈과 악몽을 생각하게 된 과정과 단계를 구체적으로 찾아 나간다. 이런 과정에서 마틴은 고귀한 윤리적 기준, 혼신을 다해 일하기, 지적이고 강한 리더십의 필요성, 비폭력의 원칙을 강조한다. 마틴과는 달리 맬컴은 신의 정의, 흑인 간의 화합, 정신적인 자각, 자기방어, 흑백분리를 강조한다.  

《5장과 6장》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미국관을 낳은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이 형성된 과정을 보여준다. 흑인 기독교는 통합주의와 관련이 있는 반면, 이슬람 민족은 반(反)백인, 친(親)흑인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자였다. 정의와 사랑, 희망은 흑인 기독교 전통과 마틴의 신앙과 신학의 핵심이었다. 흑인 침례교 전통 속에서 자란 마틴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확신, 노예와 주인의 화해의 꿈을 갖게 되었다. 십자가는 분리에 대한 반대, 통일과 화해, 비폭력의 원천과 표현이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백인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 마틴과 달리 맬컴에게 백인의 천국은 곧 흑인의 지옥이었다. 그의 신념은 이슬람 민족주의와 어릴 적의 소외감으로부터 자라났다. 그는 스스로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려갔으며, 흑인 하층민의 욕구를 반영했다. 그는 사랑보다 정의를 강조했고, 알라 신의 정의로운 심판과 백인의 임박한 몰락을 선포하였다. 그는 백인 지배의 종교인 기독교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였고, "천성적으로 흑인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흑인(민족)성의 회복을 주창하였다.

《7장과 8장》은 맬컴과 마틴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과 사건으로부터 결별하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맬컴은 무하마드의 정치적 무관심, 그의 타락과 위선을 목도한 후로 그와 서서히 결별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통합주의, 흑인 민족주의와 시민 운동의 정치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생애 마지막 한 해 동안 그는 인종과 종교에 관한 흑인 무슬림의 믿음을 점점 버리면서, 미국에서의 흑인 자유 투쟁에 대한 자신의 헌신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류애를 위한 보편적인 시각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 목표에 이르기 전에 그는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졌다.

맬컴의 죽음 이후 마틴도 비로소 '아메리칸 드림'에서 급진적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고, 맬컴이 꾼 악몽의 공포를 서서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백인의 무자비한 폭력과 흑인의 비참한 현실을 점점 더 심각하게 깨닫게 된 후로 미국에 대한 마틴의 낙관적인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법적, 형식적 평등보다 실질적, 경제적 평등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블랙 파워'를 목도한 후부터 그는 흑인의 자부심과 자기 결정권을 위해 흑인 분리주의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미국의 폭력성과 경제적 모순)에 대한 실망감은 미국의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그도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고, 그 결과로 맬컴이 사망한 지 3년 후에 마틴도 결국 백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9장》은 마틴과 맬컴의 관계를 상호보완과 교정자의 관계로 설명한다. 두 사람이 걸었던 길은 "자유로 가는 두 갈래 길"이었다는 것이다.《10장》은 두 사람이 간과하거나 무시하였던 두 가지 문제(성차별주의와 계급주의)를 지적한다. 《11장》은 두 사람의 성과와 유산을 아홉 가지 측면(흑인 문화와 흑인적 자각, 정치 참여, 미국 기독교 비판, 지도자의 자질, 자기 비판과 인간성, 비폭력과 자기방어, 투쟁 정신과 유머, 군중과의 결속, 그 밖의 권리 확장 운동)에서 분석한다.《맺는 말》에서 콘은 우리 시대의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콘은 여전히 추악하고 만신창이가 된 '공포의 나라' 미국을 목도하면서, 우리 시대의 마틴과 맬컴이 누구인지를 물으며, 우리 모두가 마틴과 맬컴처럼 인류의 목표(사랑하는 인간들의 공동체)를 위해 힘차게 투쟁할 것을 촉구한다.    

 

3. 나가는 말

오랫동안 잊혀진 흑인 해방의 전사 맬컴과 마틴을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게 만든 콘의 노고에 우리는 깊이 감사하게 된다. 특히 우리에게 그 동안 다소 생소했던 맬컴을 생생히 소개해 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이 두 사람은 미국과 세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이 역사는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맬컴과 마틴, 그리고 이들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콘도 역시 같은 흑인으로서 흑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 과제에 진지하게 몸을 던진 사람으로서 높은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은 어린이와 노인, 장애자, 병약자, 더 나아가 자연 생명에 가하는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에는 무관심하였다. 이들은 미국이, 그리고 미국의 일방적 지배 아래 수많은 나라와 인간이 지금도 인간과 지구를 얼마나 더럽히고 망가뜨리는지, 그 중에서 미국이 얼마나 추악한 선봉장 노릇을 - 그것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 하는지를 충분히 간파하지 못한 듯하다. 이 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과 미국의 기독교의 젖줄만을 열심히 빨아대는 미숙한 우리에게 이 과제는 얼마나 벅차고 요원한 것인가!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나 "오늘 우리에게 인간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 더 시급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맬컴과 마틴, 그리고 콘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맬컴과 마틴, 그리고 콘도 - 그리고 하나님도! - 엘리트적이고 영웅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진지한 대답과 결연한 투신을 기대하고 있다. 어제나 오늘에나 오직 든든한 결속(연대)만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기독교사상 2005년 9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