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

- The Geography of Thought -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김영사, 2004년, 248쪽)


이신건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반복적 행동이 습관을 만들며, 습관이 성격을 만들고,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반대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생각과 운명이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누가 부인하랴! 타고난 운명인지는 몰라도, 나의 관심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에 자꾸 쏠린다. 그래서 나는 주로 심리학과 철학, 신학 서적들을 많이 읽은 편이다. 하지만 인류의 방대한 정신적 업적들을 제대로 소화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 터다. 그래서 나는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는 책들, 즉 사상의 역사 혹은 생각의 구조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는 편이다.

기억에 가장 남는 몇 권을 들라면, 서양 문화의 양대 줄기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비교, 분석한 보만의〈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는 성서와 신학의 맥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신학의 역사를 요약한 책으로는 한스 큉의〈그리스도교〉가 단연 압권이다. 여섯 가지 패러다임으로 방대한 신학의 흐름을 정리한 이 책의 가치를 추월할 책은 당분간, 아니 영원히 없으리라! 서양적 서적과 사상에 치우쳐 있는 나를 교정하려고 종종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책을 찾아본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대개 한자로 뒤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기피되어 버린다. 이러한 불행에서 나를 건진 것은 한국인의 독특한 사유 체계를 분석한 우실하의〈전통문화의 구성원리〉라는 책이다. 남자와 여자의 생각 혹은 성격의 차이를 분석한 책으로는 최근에 출판된 폴 투르니에의〈여성 그대의 사명은〉이라는 책도 유익했다. 그리하여 나는 약삭빠르게도 책을 조금 읽고도 많은 것을 아는 척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최근에 발견한 책을 들라면,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분석한 <생각의 지도〉가 있다. 여기서 미국의 대표적 문화심리학자로 떠오르는 리처드 니스벳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동양인(중국인과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한국인과 일본인)과 서양인(유럽인)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것을 검증한다. 저자는 그 동안 여러 학계에서 수시로 제기되어온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여,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드러내는 '생각의 지도'를 그려보는 연구에 착수했다. 왜 동양인들은 기하학을 발달시키지 못한 반면, 고대 그리스는 기하학에서 눈부신 진보를 보였을까? 왜 서양인들은 좁은 범위의 '대상'을 보고, 동양인들은 '맥락'에 집착할까? 왜 동양인들은 전체를 보고, 서양인들은 부분을 볼까? 왜 서양인들은 흑과 백을 명백히 구분하지만, 동양인들은 흑이 심지어 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동양인들은 더불어 살고, 서양인들은 홀로 살기를 좋아할까?

어느 날 저자가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왜 이렇게 다른지를 한 중국 철학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야 서양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고, 동양에는 공자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서양의 문명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며, 동양의 문명은 중국에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떤 단체와 조직보다 개인의 행복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으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를 연구했다. 그리고 행복이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탁월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탁월성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와 달리 동양의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에서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의 탁월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의 우애와 관계를 중시했고 튀지 않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로부터 서양에서 권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동양에서 권리는 공동체 전체의 권리 중 자신의 몫을 담당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피상적인 문화적 차이만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데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를 저자는 '동사'를 즐겨 쓰는 동양인과 '명사'를 즐겨 쓰는 서양인의 언어적 차이로 표현하기도 한다. 동양인은 '동사'를 통해 사고하고, 서양인들은 '명사'를 통해 사유한다고 한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의 결정적인 기원을 저자는 지리학적 차이(농경사회/수렵사회), 경제적 차이(농업 중심, 농촌 중심/상업 중심, 도시 중심)에서 찾는다. 농경이 주산업이었던 중세에는 서양도 그리 개인주의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의 유럽 농부들은 사고방식이나 사회적 행동양식에서 중국의 농부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이다. 결국 오늘날의 차이는 산업혁명 시기에 가장 극명하게 갈렸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문화상대주의적인 입장에 선다. 동양인이면서 서양인보다 더 서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익하다.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모두가 장점과 단점을 안고 있다. 저자는 모든 인간은 어떤 면에서 이중문화적이며,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견해를 결론으로 내린다.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가자는 제언이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양과 동양은 실로 점점 더 수렴될 것이다. 먼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좁쌀보다 작다. 이 작은 땅에서 서로 잘 났다고 싸우는 것은 <걸리버 여행기>의 난쟁이들이 마치 달걀을 깨먹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서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인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한심한 짓일 것이다. 크게 보면, 아니 창조주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동서양의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하물며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인간과 동물의 생각의 차이도 뭐 그리 대수일까 싶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도 소홀함이 없되, 생각은 가급적 폭넓게 할수록 더 좋지 않을까!? 그래야만 좁은 지구에서 인류가 화목하게 살 수 있고, 더욱이 천국 백성이 될 자격까지 갖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