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이창신 옮김, 김영사

 

오성현(서울신학대학교 교수)

 

 

1.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

이 책은 하버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를 책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김영사에서 번역 출간한 이 책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5월 24일 출간된 이후로 3개월 만에 32만부가 팔리면서, 문학서적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인문과학서적으로서 출판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서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강연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대중적인 인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하버드 대학의 명성이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한다(일종의 파퓰리즘). “하버드 대학교에서 20년간 최고의 명강의”라는 표제어가, 세계최고일류대학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매혹했으리라 여겨진다. 세계최고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은 교육에 대한 관심도 물론 한 몫 했을 것이다. 둘째로는 “정의론”이라는 아주 무거운 주제를 아주 가볍게 끌고 간 이 책(강의)은 호흡이 짧은 글읽기와 생각하기에 익숙한 현대한국의 독자들에게 수용되기 쉬웠다. 어떤 독자는 “수업보다는 대형 토크쇼”와 같았다고 서평을 쓰고 있는 정도다. 셋째로는 매스컴의 보도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책읽는 밤”의 주토론 도서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휴가독서대상 도서로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이 책에 대한 여러 정치인들의 관심이 소개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더욱 누리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로는 현 정세의 흐름에 대한 반동의 일환으로 여겨질 수 있다. “발전”, “경쟁”, “자유지상주의”를 모토로 하는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에서 느끼는 “정의”라는 주제에 대한 갈증이 이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에 화두로 던진 “중소기업에 대한 호혜”나, “공정한 사회”에 대한 언급(8.15)은 이런 향방을 드러내고 있다. 다섯째로는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교수법에 대한 관심이 이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수 천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단일한 주제(“정의”)로서, 그것도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평가받는 인문과학(정치철학) 과목으로 이루어지는 강의가 최고의 명강의가 되게 한 비결을 알고 싶어 하는 교수들의 열망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한 요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본 발제에서는 먼저 마이클 샌델의 교수법을 추정해보고, 이어서 그의 정의론을 내용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2. 마이클 샌델의 교수법

이 책은 샌델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강의와 책쓰기는 “매우 다르다”. 그러기에 이 책을 통해서는 그의 교수법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 이 책에 부록으로 있는 DVD가 강의 현장과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인터뷰를 짤막하게(27분 분량) 소개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이 그의 강의록을 옮겨놓은 것이리라는 전제하에서, 그리고 DVD에 나오는 현장의 모습과 학생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교수법을 추정,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2.1 사례 중심의 귀납적 접근

학생들은 이 강의가 “재미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가 나오게 된 데에는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용이성과 현재적 관심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소개이다. 주제에 대한 다른 관점의 변화도 반대되는 사례에 대한 소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례들에 대한 충분한 소개와 논의를 소개한 후에 이론적인 접근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주 철저하게 귀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교수가 말하고 싶은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례를 제시하는 식이 아니라, 사례를 제시하여 이에 대해서 학생들과 충분히 토의를 하고서, 그 후에 간신히(?) 교수가 소개하고 싶은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을 성급하게 쏟아 붓기보다는, 학생들이 스스로 접근하고 다룰만한 사례에서 출발하여 교수가 말하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자진해서 오게 하는 셈이다. 원하는 수업내용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의 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서 샌델 교수 본인뿐만 아니라 조교들도 열심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2.2 토론식 수업

수백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형 강의이지만, 학생들의 토론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 되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 각각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는 극장식 강의실, 극장의 주인공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조명 시설, 학생들의 토론을 돕고자 무선 마이크를 들고 대기하고 있는 조교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아울러서 학생들과의 토론을 즐거워할뿐더러, 아주 진지하게 대하는 - 동일한 주제에 대한 반복된 토론으로 대답이 뻔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토론에 맥없이 끌려가는 듯한 인상까지 줄 정도로 - 교수의 태도도 눈에 띤다. 매너가 있어 보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핀잔을 받지 않고 어떤 주장을 펼쳐도 될 것처럼 보이는 온화한 교수의 태도는 학생들로 하여금 토론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서게 한다.

토론에 나선 학생의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대형 강의가 가지는 익명성을 극복하고 있었다. 한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나면, 그때 교수는 그의 이름을 묻고,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토론을 이어가거나, 그 주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토론에 응한 학생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인 친밀성을 가져다 줄 것이며, 다른 학생들의 토론 참여도 독려하게 될 것이다. 

또한 토론식 수업을 위해서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학생들을 “도덕적 딜레마”(예를 들어서, 전차 이야기)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 딜레마에서 어느 쪽을 택할 지에 대해서 전체 학생들이 거수로 의사결정을 하게 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이 토론의 어느 한편으로든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그런 결정의 이유를 설명하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이 토론에 나서게 한다. 또한 이런 도덕적 딜레마는 다른 주제로 옮겨가게 할 때도 사용된다. 공리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넘어갈 때도, 자유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넘어갈 때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함으로써, 새로운 주제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강요(?)당했다고 강의 참여 학생들은 소회를 밝히고 있다.

교수의 일방적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이 이론을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서 학생들은 ‘이론을 따라하기’를 배운다. 말하자면 철학(신학) 이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함(신학함)을 배우게 했고, 따라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직접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롤즈와 토론함을 통해서 배웠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학문에 대한 자신감도 고취되는 효과도 보였다.

DVD에 나오는 토론 장면을 보면, 학생들 상호간에, 그리고 학생과 교수간에 토론이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주장이든 비난을 받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감정적으로도 격해지지 않는 토론 능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단시간에 만들어진 능력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학생들과 교수는 자신들의 논증근거를 오로지 ‘이성’에만 호소하면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고 있다. 합리성만 띤다면, 어떤 주장이든 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점이 토론을 활력 있게 만들고, 그래서 그 강의를 명강의로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토론 자체에 익숙하지 못할뿐더러, 교조적 테두리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 신학대학교(신학과)의 교육 여건에 토론식 수업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2.3 간단한 수업내용

강의에서 다루려는 이론의 양이 많지 않다. 아마도 학생들이 관련 서적을 이미 읽고 공부를 하고 오기에, 교수가 그 내용을 다시금 세세히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강의(책)에서 사례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의 토론이 양적으로 중심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강의)을 이론적 관점에서만 소개한다면, 논문 한 편의 분량도 되지 않을 정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공리주의, 존 롤스, 자유주의자, 맥킨타이어의 정의론을 그것도 아주 간략한 수준에서 소개하고 있다. 수업계획서로 본다면 아주 적은 내용이다. 아주 적고 간단한 내용을 학생들이 충분히 소화해내게 한 것이 이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인 요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3.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이 책(강의)에서 저자는 정의론의 근본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 정의론의 관심사라고 말한다.

저자는 정의에 대한 이해방식을 다음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3.1 공리주의적 정의관(벤담, 밀): 행복의 극대화를 이루는 것이 정의다. 시장중심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전락시켰고, 인간 행위의 가치를 획일적인 가치로 환산시켜야 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

3.2 자유주의적 정의관(칸트, 자유방임주의, 롤즈): 정의는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자유방임주의(자유시장주의)는 성인들의 합의에 따른 자발적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이 정의라고 여긴다. 평등옹호 자유주의(롤즈)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바로잡고, 모든 이에게 성공할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주어야 한다(무지의 장막의 원칙, 차등의 원칙)고 주장한다.

3.3 목적론적, 공동체주의적 정의관(아리스토텔레스, 맥킨타이어, 저자):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독립적, 획일적 존재(자유주의의 견해)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경험(역사적 경험, 종교적 신념)에서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서사적 존재(맥킨타이어)이며, 이런 바탕 위에서 좋은 삶(공동선, 아리스토텔레스)을 추구(텔로스)한다. 따라서 정의란 사람들이 공동선으로서의 좋은 삶에 도달하기에 합당하도록, 마땅히 받아야 할 것(재화 등)을 각자에게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희생, 봉사”하는 시민 의식을 함양하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공론화시켜야 하며, 사회 내의 “불평등”을 최소화려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며, 좋은 삶에 대한 “종교적, 도덕적 신념”이 공적인 정치적 담론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노정시킨 “정의 문제”의 약점을 사회적 연대의식과 책임을 통해서 극복해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