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구미정(대구대 필휴먼생명학연구소 전임연구원ㆍ영남신대 강사)

 

일본의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평범한 열 살짜리 소녀 치히로가 어쩌다 너무나 낯선 환경, 곧 온갖 요괴와 도깨비들이 들끓는 온천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가 줄거리다. 마녀(유바바)에 의해 운영되는 그 온천장은 누구든지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곳, 심지어 열 살짜리 어린이의 노동력마저 가혹하게 착취하는 곳으로서, 이것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로 평정된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하겠다. 특히 황금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가오나시' 신은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반신적 우상을 적절히 묘사한 캐릭터로 이해된다.

영화는, 치히로네 가족이 이사하던 중, 길을 잃고 어느 터널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 터널 밖이 바로 '신들의 온천장'이라는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치히로는 이 온천장으로 유배된 것이다. 스스로 선택해서라기보다 부모 때문에, 더 정확히 말하면 '돼지'로 변해 버린 부모의 탐심 때문에 온천장에 갇히게 된 치히로는 어쩌면 후기 자본주의 시대 속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던져진 현대인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마녀는 치히로에게 새 이름 '센'을 부여해준다. 치히로는 '천 길', 즉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높은 세계를 의미하지만, 센은 단순히 숫자 '천'을 의미할 뿐이다. 이제 센으로 살게 된 치히로는 유배지에서 철저한 정체성 말살의 통과의례를 거치게 된다. 치히로(세대)는 부모(세대)의 자본 우상화를 치유할 책임을 떠안은 셈이다. 이 어린 소녀는 과연 자기 자신과 부모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센의 은밀한 조력자로 나오는 하쿠는 센에게 이름을 잊지 말도록 당부한다. 이름을 잊어버리면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센은 죽기 살기로 자기 옛 이름 치히로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자기의 본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영화에서 그것은 이 소녀가 맺는 관계의 특이성에서 암시된다.

예를 들어보자. 치히로의 첫 손님은 일명 '오물'신이다. 그에게서 풍기는 악취로 온천장의 다른 일꾼들이 모두 코를 막으며 도망친다. 그러나 치히로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을 다 토해내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게끔 그 오물신을 정성을 다해 모시고 보살핀다. 다른 한편 자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황금을 뿌려대는 '가오나시'신 앞에서도 그는 전혀 미혹되지 않는다. 온천장 주인의 아들인 망나니 '보우'와도 친구가 되고, 마침내 마녀 유바바마저 참회시키는 힘이 치히로에게는 있다.

이와 같이 이 영화에서 감독은 치히로라는 어린 소녀의 캐릭터를 통해, 전지구적ㆍ가부장적 소비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맘몬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거래/경쟁 관계로 왜곡시키고, 인생의 가치를 수량화하며,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식의 천박한 맘몬적 패러다임에 물든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도전하여, 감독은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참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줄 거울로서 치히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미국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류의 구원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근육질 남성 네오이고, 그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취하는 방식이 전쟁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혁명에 가까운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서양 영화의 상상력은 대부분의 경우 메시아적 캐릭터를 성인 남성에게 국한시키고 있으며, 여성, 그것도 섹시미가 강조된 여성은 다만 그의 조력자로 배치될 뿐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감독은 과감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인류의 미래가 여성 어린이, 즉 부드럽고 여리고 민감하고 유연하며 자연친화적이고 다른 존재와의 교감능력이 탁월한 소녀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생태여성신학적 상상력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