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들 살해 충격, 강자중심 사회의 비극

 

 

시드니 올림픽의 와중에 우리나라에서 30대 주부가 선청성 장애를 갖고 있는 7살 난 아들을 살해했다는 기사를 봤다. 경찰에 자수하면서 “아들은 성인이 돼도 정상적 삶을 살 수 없을 게 뻔했고, 그동안 너무나 힘들어했다”며 “아들이 평생 겪을 고통을 내가 짊어질 각오가 돼있다”라고 얘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주부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얘기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는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영국에서는 서로 몸이 붙은 채로 태어난 쌍둥이의 분리 수술을 두고 사회가 시끄럽다. 하나밖에 없는 심장과 폐를 공유하고 있는 쌍둥이의 분리수술은 한쪽 아이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는 분리수술을 해야 한쪽이라도 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수술을 반대하고 있다. 법원에서 수술을 명령했지만 부모는 법적 대응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부모가 더이상의 법적 대응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제는 분리수술을 받아들였지만, 심장과 폐가 없이 태어난 아이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 논쟁에서 누구도 그 쌍둥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상적인' 삶이란 단지 사지가 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에서 부모가 살해한 7살 난 아이의 장애가 하나의 심장과 폐를 공유하는 쌍둥이보다 더 심한 것일까. 누가 그 주부를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그런 세상에 살고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나라는 정녕 그런 나라인가. 정용만/영국 런던 레이톤스톤

[한겨레 신문 2000.10.2 국민기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