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경전에 나오는 아동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파악되고 있다. 발달이 덜된 상태의 미성숙하다는 개념이 불교에서는 아직 완성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현대의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고 있어 매우 광의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에서 미성숙하다는 개념은 발달적인 차원이 아닌, 깨달음에 입각하여 이를 성취하지 못한 인간을 의미한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아동은 발달단계에 따라 구분된다기보다는, 인간의 본질적인 면에 초점을 둔 인간관에 파악되는 존재이다. 불교에서의 아동개념이 발달상의 구분과는 개념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전을 보면, 동자(童子), 동녀(童女, 사미(沙彌), 사미니(沙彌尼), 영아(영兒), 영동(영童)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들 불교용어는 오늘 날 아동에 해당되는 포괄적인 개념의 용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자, 동녀라는 용어는 범어로는 쿠마라(kumara), 쿠마리카(kumarika)라 하여 8-15세까지의 미혼남녀로서 출가하여 수행승이 될 것을 발원했으나, 아직 수계하지 못하고 준비과정에 있는 견습기의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미, 사미니는 범어로 쉬라마네라(sramanera), 쉬라마네리카(sramanerka)이다. 구족계를 받은 비구, 비구니가 되기 전이 출가한 도제승으로 출가하여 십계를 받은 7세 이상에서 20세 미만의 남녀이다. 영아, 영동은 영아행(영兒行), 영동심(?童心)이라는 합성어로 많이 쓰인다. 연령적으로는 10-6세까지로 신생아와 유아기를 포함하며, 동자, 동녀에 이르기 이전의 어린이를 가리킨다고 여겨진다. (20)

부처님의 교설 가운데서 인간 일반의 본질과 현실에 대해서는 대단히 논리 정연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아동의 발달적 특수성이나 본질에 대해서는 별도의 해명이 발견되고 있지 않다. 이는 아동의 특수성이 깊이 인식되고 있지 않던 역사적 한계에서 유래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불교 자체의 교리적 입장에서 볼 때에는, 인간은 남녀와 노소 및 신분 등의 구별 없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존재이고, 부처님은 그 깨달음으로 교도함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므로, 부처님 자신에게는 굳이 연령이 어리다 하여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평등하다 해도 현실적 수준과 상황에 있어서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며, 이 차이에 따라 부처님 자신의 교화방법이나 교설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부처님 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진 원시교단의 생활규범이나 교화사례 가운데 아동과 관련된 것들을 검토하여 원시불교에 대한 아동관을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의 원시교단에서는 원래 출가하여 비구가 되는 자격에 있어서 나이에 따 차별이 없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성숙자인 성인이나 미성숙자인 아동이나 모두 비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것은 어린이도 본질적으로 성인과 마찬가지로 불법을 성취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는 인간관의 반영이며, 아동의 청정한 성품을 인격적으로 신뢰한 결과라고 본다. "함아자아경"의 "세기경"에는 중생의 선업(善業)이 많아지고 수행이 경지에 도달하면, 다음 생에 아동의 순수한 심성과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내용이 있다. 아동의 순수한 심성이나 형상이야말로 중생이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선한 인간의 모습임을 상기시키는 내용이다...  부처님은 원래 아동을 그 근본에 있어서 성인과 다른 존재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동들에 대해서 수계와 출가를 제한하거나 성인과 차이를 둔 것은 대부분 계율을 감당하기 어려운 아동의 심신상의 조건과 당시의 사회적 통념이나 부모들의 관념에 적응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22-24)

대승불교에 오면 대단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아동관 지배적이다. 대승불교의 반야중관 계통에서는 불교적 아동인 동자(童子)가 단지 축소된 성인으로서의 미성숙자가 아니라, 대승불교의 현실에 있어서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보살로 표상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아완성과 중생구제의 생활, 즉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항상 실천함으로써 끊임없이 이상향을 전진하고 있는 이상적 구도자로서 표상되고 있다. 원시불교의 최초의 아동관이 일면 낭만적인 아동관을 보여 주었다는 점을 지적한다면, 대승불교에서는 아동이 불법의 구도자, 즉 보살로 표상되고 심지어는 아동의 순수성은 성인도 본받아야 한다는, 다분히 아동을 신성시하는 모습도 있다.

이러한 점은 연기론에 있어서 대승불교사상의 최고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선재동자가 대승보살의 구도적 실천자의 대표적 상징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보적경"과 "법화경"에는 동녀들이 대승보살행자로 묘사되고 있음도 주목을 끈다. "대보적경" 98권에는 8세의 묘혜동녀(妙慧童女)가 부처님으로부터 대승보살의 10가지 행법(行法)을 듣고 그 수행을 발원하여 대승법을 설교하였다고 한다. 또 같은 경 111권에는 파사익 왕의 어린 딸 정신동녀(淨信童女)가 선의 근본을 심고 대승법을 성취하였음을 인정받아 성불(成佛)을 수기(授記)하였다고 한다. 특히 "법화경"의 '방편품'에는 아동들이 장난으로 모래를 쌓아 불탑을 만들거나 또는 나뭇가지나 손가락으로 불상으로 그려도 그 공덕으로 성불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같은 "법화경"의 '보문품'에는 동자나 동녀를 위해 관세음보살이 동자나 동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설교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열반경"에는 보살이 닦아야 할 오행(五行: 聖行, 梵行, 天行, 영兒行, 病行) 가운데 영아행(?兒行)이 나오는데, 영아행은 자비심으로 나타나는 선한 행동을 말한다. 즉 보살이 지녀야 할 행동은 어린이와 같은 깨끗하고 거짓 없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교의 중심 경전인 "대일경"에서도 영동심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대일경"을 보면, 해탈을 구하는 중생이 선심(善心)을 지속시켜 점차 완성해 가는 과정을 8단계로 표현하고 있는 바, 맨 마지막 단계를 '영동심'으로 하고 있다. 즉 어린이는 그 마음에 잡념이 없이 신앙에 의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순수한 존재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27-28)

(黃玉子 저, 불교아동교육론, 불교시대사, 1994)

불교에서는 본질적으로는 아동은 성인과 동일하게 불성을 지니고 있어서 성불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현상적으로는 아동은 아집이 없는 순수한 마음 상태 때문에 깨달을 수 있으나, 성인은 외계의 사물을 실체라고 인식하기 쉬운 성격, 즉 실아(實我)로서 집착하기 쉬운 성질 때문에 깨닫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166)

(尹惠珍, 불교의 아동 자아관, 한국불교학 제17집,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