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은 널리 알려진대로 1923년 5월 1일에 소파 방정환 선생이 색동회를 조직하고 천도교의 후원을 배경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기념하며 시작된 날이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애녀석', '아해놈'과 같은 비칭(卑稱) 대신 어린이라는 새말을 보급시킨 진정 근현대 어린이운동의 선구자이셨다.

그런데 이러한 어린이운동의 배경과 사상적 연원은 동학에 있었다. 김기전 선생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선포하기 한해 전인 1922년 5월 1일에 천도교소년회를 만들고 이날을 기념했다. 또한 김기전 선생과 방정환 선생 등은 천도교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분이셨을 뿐 아니라, 처음 어린이-소년 문제를 공론화했던 '개벽'이라는 잡지도 천도교에 발행한 것이었다. 방정환 선생은 동학의 3대교조이자 천도교로 개명했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셋째 사위이기도 했다. 요컨대 어린이운동의 배경은 동학, 혹은 동학사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년운동은 개화기의 소년교육운동이 있긴 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 보면,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한다. YMCA가 주도한 소년척후대(보이스카웃)와 사회주의계열의 무산소년운동, 그리고 천도교의 소년회-어린이운동이 그것이다. 이중 앞의 둘이 외래소년운동을 수용한 것이라면, 소년회-어린이운동은 그야말로 자생적인 것이었다.

특히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선생의 뒤를 이어 동학의 몸을 일으켜 세운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한울님처럼 모신다)은 어린이운동의 직접적인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해월 선생은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 등과 함께 조선의 소년운동을 이끌었던 소춘(小春) 김기전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무를 보라, 그 줄기와 뿌리의 전체는 오로지 그 적고 적은 햇순 하나 떠받치고 있지 아니한가?

동학의 한울님사상은 방정환 선생의 말씀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 첫호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한울나라! 그것은 우리의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는 때까지든지 이 한울나라를 더럽히지 말하야 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사람이 모다 깨끗한 나라에서 살게 되도록 우리의 나라를 넓혀 가야 할 것입니다 .

그리고 천도교월회보(1923년)에서 기고한 '소년의 지도에 관하여'에 관한 글 가운데서 방정환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생겨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오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소춘과 소파를 비롯한 어린이운동의 지도자들은 어린이를 한울님으로, 거룩한 주체로 모셨다. 이런 이유로 가정에서나 밖에서 어린이들에게도 존대어를 썼다. 존대어 쓰기와 관련해 소춘 김기전 선생의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한 어린이가 선생의 집 지붕에 있는 파란기와를 팔 요량으로 몰래 지붕에 올랐다. 그런데 기와를 가지고 내려오려던 순간, 선생을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깜짝 놀란 소년은 겁에 질린 나머지 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다. 이에 선생도 놀라 얼른 사다리를 가지고 와 손수 소년을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그까지 기와가 뭐 대단하다고 몰래 가져가려 했어요?" 하면서 파란 기와를 아이 손에 들려주었다.

어찌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선생은 소년을 꾸짖기는커녕 기와를 손에 들려주었고, 더욱이 그 소년에게 경어로 일관했다. 그 당시의 통념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김기전 선생은 나중에 천도교청년당의 대표를 맡으시고, 오심당이라는 비빌결사를 조직한 혁명가이셨지만, 어린이들 앞에서는 당신을 낮추고 또 낮추신 분이었다. 때문에 한울 사람을 거룩히 모시되 그 사람을 억압하는 제도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가령 여기에 어떤 반석 밑에 눌리운 풀싹이 있다 하면 그 반을 그대로 두고 그 풀을 구한다는 말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오늘 조선의 소년은 과연 눌리운 풀이다. 누르는 그것을 제거치 아니하고 다른 문제를 운위한다면 그것은 모두 일시일시의 고식책이 아니면 눌리워 있는 그 현상을 교묘하게 옹호하고자 하는 술책에 지나지 아니할 바이다.

소파와 소춘, 두 분의 호에는 작을 소(小)가 들어 있다. 풀어 말하면 '잔 물결'과 '작은 봄'이다. 물론 소춘(小春)의 원래 의미는 음력 10월 상달을 가르키는 말로서 ‘작은 봄’이라는 풀이는 어거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가능하지 않을까. 새순같고 잔물결같은 어린이가 우주적(한울님) 파장과 생성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강압통치와 외래사조의 거센물결 속에서도 자생적인 어린이운동의 잔물결이 거대한 파장의 첫 출발이 되었다.

최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