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는 번번이 예수에 의해 천국에 들어간 자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어린아이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한 이유는 가면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이며, 아무런 위선 없이 그들이 느끼는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천국의 원형인 다른 이유는 어린아이가 내면 세계와 자유로운 연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자아 태도를 갖고 예수에게 왔다.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큽니까?" 이런 태도는 우쭐거리고 싶어하는 자아의 오래된 욕망이다. 자아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천국을 이용하려고 하는 한.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누구든지 거짓된 외양 없이, 내면과 외면의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상상력과 자발성과 창조성이 샘솟는 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어린아이의 이미지는 유치함의 반대이다. 우리 모두는 내부에 유아기적 자기를 갖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아동 심리의 잔재이고 부분적으로는 본성의 원형인 유아적 자기는 심리학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만일 우리가 내면의 어린아이를 부정함으로써 그로부터 해방되려고 한다면, 유아적이고 퇴행적이고 의존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유아적인 자기의 합법성을 인식하고 수용하여 작은 어린아이가 된다면, 유아적인 자기는 우리의 인성에서 자유와 창조와 내면의 새로운 삶의 계속적인 생성으로 표현된다.

(John A. Sandford, 이기승 옮김, 내 안에 있는 천국, 두란노, 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