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향한 기대


 

어린이는 우러러본다. 어린이의 가장 어린이다운 특징은 바로 그 눈길의 방향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큰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비교를 일삼는, 전형적으로 현세적인 세계 한가운데 머물러 있다. 이런 세계에서 위쪽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아래쪽을 업신여기듯 내려다보는 일을 삶의 의미로 삼는다. 그리고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난을 내려다보며 산다.

어린이의 기대는 어린이의 위에 있지, 아래에 있지 않다. 그의 현존의 잔은 위를 향해 열려 있다. 이 잔은 위로부터 채워진다. 그리고 어린이는 그의 잔에 부어진 것을 단 한 방울도 흘려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아직 비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어린이는 그 잔을 흔들어 위로부터 주어진 것을 비워 버리고 자기가 만들어 낸 다른 것을 그 안에 집어넣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자기에게 주어지도록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있다. 그리고 빛은 주어진 그 모든 것 안에서 어린이에게 스스로를 선물로 내어준다. 그것은 어린이가 위를 향해 우러러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이 빛을 받아 빛난다.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의 얼굴을 보라. 환히 빛나지 않는가!

위를 향해 우러러보는 눈길은 곧 예수의 눈길이다.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빵을 떼는 잔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이 문장은 예수의 존재 양태와 그분의 소명의 진수를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향해 우러러보는 눈길 속으로 모든 피조물을,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두를 다 담아 넣으신다. 그리고 그분이 가진 것 중에 아버지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께서는 위를 향해 철저히 열려 있는 분이다. 온 세상을 위해. 하늘을 향해 자신을 열고 계신 분이다. 그분의 이 열려 있음은 동시에 감사요 축복이다. 이는 곧 그분이 아버지를,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아버지를 위한 것을 모두 사랑 가운데 긍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또한 그분께서 찬란한 실존 전체로 하나님과 인간들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가 더 이상 우러러보지 않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차리도록 애써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곳에서 우리의 구원 가능성은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보다 가난한 주위의 인간을 대하는 우리의 눈길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그보다 더 소유할 수 있음은 그가 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인데도, 우리는 그를 대할 때 습관적으로 주는 사람 혹은 강요하는 사람의 태도를 취한다. 우리가 그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로 하여금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행동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 사람 위에 있다고 볼 뿐, 그 사람 밑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가 더 이상 위를 향해 우러러보지 않는 곳을 우리는 우리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소유의 대상,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랑 가운데 이 물건을 선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이를 받아들일 자세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 물건을 다시 그분의 손에 되돌려드릴 만큼 마음이 열려 있지도 않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취하는 자세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움켜쥐려고만 하는 태도, 모든 것을 우리 것을 삼으려는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