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진 말씀

 

슈패만


어린이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말을 그 말의 본래 의도 그래도 받아들이며, 순전한 마음으로 그 말에 따른다. 주어진 말을 우선 자기 머릿속에서 뒤집어보고 그 말이 가진 힘을 약하게 함으로써 결국은 그 말이 자기의 나약함을 감춰주게 하거나 자기 이익에 이바지하게 하는 그런 행동을 어린이는 하지 않는다.

우리 어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든 우리 자신의 욕심이라는 차원으로 끌어내려 해석하려 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은 흔히 그저 안락한 삶을 살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는 도피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은혜의 법을 이 세상의 법 안에 집어넣고 또 이 법에 종속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찾아오는 시간에 이 말씀이 지닌 하나님의 요청을 어린이처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 요청이 지닌 자유하게 하고 해방하는 능력도 받지 못한다.

"우리가 산상수훈의 요구들을 그렇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도대체 우리는 결국 어디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가 결국 도달하는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적당히 조정된 공물을 바치는 듯이 사는 것일 뿐,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삶은 아니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 걸림돌이 되는 것,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는 것, 이것을 감수할 때라야 우리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구세주로서 선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복음의 진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가장 설득력 있게 선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복음을 따르는 일이다.

우리는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 의미가 사랑 가운데 내어주는 일임을 믿으며,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다 팔아도 되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것을 단 한 한가지도 움켜쥐지 않을 때만이 이 소중한 진주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빛나도록 할 수 있으며, 우리 스스로도 이 진주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