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짐 없이 바라보는 눈


 

어린이는 위를 바라보며 살고 또 온전히 빛에 속하기 때문에 흐트러짐이 전혀 없는 눈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는 위를 바라보되 자기를 되돌아보거나 옆 사람을 곁눈질하느라 눈길을 흐트리는 법이 없다.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볼 때, 어린이는 미리 일정한 목적을 설정해 주고 바라보지 않는다. 그의 눈길은 평온하고 객관적이며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는 사물들의 영광과 그것들의 근원이 가진 영광을 보며, 그것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어린이는 피조물 하나 하나가 다른 피조물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본다.

위를 우러러보는 어린이가 가진 잔잔하고 평온하며 기다림과 신뢰로 가득 찬 눈길, 아무런 다른 의도 없이 순전하기만 한 그의 눈길, 바로 이런 눈길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가 마음을 돌이킴에 빠져서는 안될 요소이다.

자기의 어린이다움을 잊어버렸거나 억눌러 버리는 어른, 모든 것을 그저 자기 밑에 있는 것으로 보거나 또 그렇게 보려는 어른은 눈으로 집어삼킬 듯이 바라보며, 이는 사진기의 렌즈처럼 서둘러 목표물을 붙잡아 고정시키려는 목적 위주의 바라봄이다. 오늘날 사진기는 흔히 사람이 자기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을 대신해 주고 있다. 보는 일은 더 이상 주된 관심사가 아니고, 그 대신 일어난 일을 소유하는 일, 손에 넣는 일, 어떤 일정한 목적을 위해 언제든지 그 사건을 자유자재로 재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목적이야 물론 여러 가지다. 명성을 얻기 위해, 후에 그 일을 다시 보며 즐거움을 얻기 위해, 선전하기 위해, 지식을 얻기 위해, 산업을 위해, 권력을 얻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등등. 그렇게 하여 모든 사물은 따로따로 분리되고 그것들이 가진 연계는 점점 사라져 간다. 오직 여러 목적들이 맞아떨어짐으로써만 그들의 밀접한 관계가 잠시나마 유지될 뿐이다. 그러나 목적들이 없으면 사물들은 허물어져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인간도 역시 허물어진다. 그의 눈에 목적이 보이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더 이상 목적이 없게 되면, 그는 만물을 이어주는 끈을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 자신도 아무런 연관을 가지지 못한다. 그는 이를 "아무런 목적도 더 이상 없다"고 표현한다.

전체, 배경, 의미, 오직 아무런 다른 의도 없이 순전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이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바라볼 눈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가? 바로 이렇게 바라보는 일도 역시 예수를 따르는 일임을 깨닫는가? 아니면 우리는 바라보되 곧장 무엇인가를 행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며 시간을 빼앗긴다고 믿는 나머지, 진정으로 바라보는 일을 못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시간을 번 것 같지만 영원을 잃는 경우가 있고, 시간을 잃는 것 같지만 실은 영원을 얻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