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과제보다 주어진 은사로 시작하기


 

어린이는 자기가 우리 어른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이 자기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음이 자기에게 주어진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모든 존재에 의해 자기의 삶이 풍성해질 것을 기대한다. 어린이는 자기가 어른을 위해 과제를 짊어지고 있을 만큼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우리 어른을 다름 아닌 선물로 여김으로써 그가 정말로 우리를 위해 해내야 할 과제를 손쉽게 해낸다. 즉 어린이는 그에게 주어진 어른이라는 선물에 다름 아닌 자기 자신으로 보답한다. 기쁨에 넘쳐있는 어린이를 보라. 그는 그 기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우리를 위한 선물이게 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어린이가 우리를 위해 해내야 할 과제가 어떤 것인지가 드러난다. 이는 그 어떤 어른이 짊어질 수 있는 과제보다도 더 큰 과제로서, 곧 우리를 미소짓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는 일, 우리가 마침내 조금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도록 돕는 일, 이것이 어린이가 우리 어른을 위해 해내야 할 과제이다. 누가 우리를 위해 이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린이 말고 그 누가 이런 과제를 해낼 수 있겠는가? 우리 품안에 뛰어들어오는 아이를 통해 우리는 긍정된다. 이 긍정은 한계를 모르는, 따라서 한계를 무너뜨리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 사랑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난 자는 자기를 속전(贖錢)으로 내어준다.

어린이이기를 그만두는 사람은 그때부터 자기가 짊어진 과제들만을 본다. 이는 우리의 자기 의식, 남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구, 더 많은 업적을 쌓으려는 우리의 명예욕과 일치한다.

우리가 마음을 돌이킨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 주는 일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도록 마음을 여는 일이다. 내 삶에 주어진 한 인간이 나의 기쁨이기는커녕 그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내게 주어지도록 마음을 열며, 그를 형제 혹은 자매로서 받아들이고, 그가 가진 모든 허물들과 함께 그를 참아내고 견디는 일, 이것이야말로 어린이를 본받는 삶의 자세이리라. 성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고쳐주고 또 우리의 삶의 태도를 본받도록 가르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성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견디어내며 그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로서 주어지도록 마음을 여는 일이 곧 우리의 과제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