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선교

이 원 규(감신대 교수)

 


Ⅰ. 머리말

한국 교회는 이제 선교 2세기를 맞았고, 2000년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100년 남짓한 짧은 선교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가 그 동안 성취해 온 양적 성장과 발전은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 교회가 이루어 놓은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1990년 중반인 현재 한국 교회는 그 숫자에 있어서 3만을 넘어섰고 교인수도 1천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교회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우선 80년대 중반 이후 교회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성장 제일주의 일변도로 치달았던, 그래서 사회 봉사와 변혁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한국 교회에 대해 교회의 안과 밖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게다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한국 교회로서는 장기적인 목회 전략이나 선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방향 감각을 잃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설교에 관한 상이한 이해로 인하여 한국 교회는 개인 구원과 교회 성장에 집착하는 보수 집단과, 사회 구원 및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소수의 진보 집단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21세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는 양극화를 지양(止揚)하면서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을 함께 성취하고, 개인 영혼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정진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교회로 발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하고 예견하는 것은 선교라는 측면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즉 한국 교회는 선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선교적인 성취를 어떻게 이루어 왔는가, 그러한 선교의 한계와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가, 특히 21세기의 한국 사회의 변동 상황에 있어서 한국 교회의 선교적 과제는 무엇이겠는가 하는 문제들이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국 교회는 미래 지향적인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 필자는 21세기를 전망하면서 한국 교회의 선교 문제를 주로 종교 사회학적 관점에서 밝혀보려고 한다.

Ⅱ. 선교의 두 가지 의미

전통적으로 기독교 선교는 매우 단순한 식으로 이해되어 왔다. 즉 선교는 다양한 기독교 교회와 교파들이 교인을 확보하려는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노력을 의미했다. 따라서 여기서 선교는 주로 '전도' 혹은 '복음화'(evangelization)를 의미하게 된다. 국내외 비신자들에게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을 그 유일한 목표로 삼아 왔던 것이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었고, 한국 교회의 지배적인 선교 이해가 되어 왔다. 교회의 선교적 책임은 교회가 사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전통적인 선교 이해는 오늘날까지 복음주의(evangelism)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하여 모리어(Maurier)는 "참된 복음주의는 사람들에게 믿음과 회심을 일깨울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 안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복음주의 노선은 1974년 로잔대회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대회에서는 목음 전도의 사회적 책임, 복음 전도와 성서의 권위, 복음 전도의 목표로서의 교회 성장의 몬제를 다루고 있다. 비록 사회 참여 문제도 다루어지기도 했으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복음 전도였다. 그리고 교회 성장은 선교의 근본적인 열매로 이해되었다. 이 입장에서는 글래서(Glasser)가 지적하듯이 "교회 성장과 갱신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 선교의 으뜸가는, 영속적인, 돌이킬 수 없는 과제"이다. 이러한 선교 이해는 선교를 단순히 가능한 한 많은 영혼들을 영원한 저주로부터 구하려는 시도로 이해하거나, 교회를 단순히 적대적인 환경 가운데 있는 도피처로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성소로 이해하는 입장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겠다.

선교를 단순히 복음화 혹은 전도로만 보거나 교회를 단순히 성소로 이해하는 입장에 대하여는 많은 비판이 있어 왔다. 칼 브라텐(Carl E. Braaten)은 "선교를 단순히 개인 영혼을 구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은 개인을 그가 속해 있는 사회 집단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구속하시는 계시의 포괄성을 무가치하게 하는 생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프레이지어(Frazier)도 "교회가 성소로 이해된다면 선교의 목표는 단순히 교회 멤버의 확장이 되어 버릴 것이고 그렇게 하여 교회는 항상 숫자에 사로잡히고, 따라서 세계와 그 문제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선교를 전도로만 이해하는 입장에서 파생되는 교회적, 사회적 역기능에 대하여 염필형은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개인 영혼 구원을 선교의 최대 목표로 두며 속된 세상 속에서의 구원의 방주 기능에 중점을 두다 보니까 교회나 개인이 속한 사회의 비리와 구조악의 근본적 개선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차원보다는 교회에로의 피신과 탈피를 통한 구원의 기쁨에 이르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히 비기독교적 요소를 죄악시하며, 배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 교회 중심주의는 교회의 물량적 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수적 증가는 곧 하나님 나라의 지상 확장이요 환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선교를 주로 복음화로 보는 복음주의 노선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선교 문제를 논의하는 입장이 생겨나게 되었 다. 이 입장은 선교를 주로 인간화(humanization)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선교는 하나님께서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악마적 힘들로부터 구원하는 희망의 근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존스(Tracey K. Jones)는 "기독교인들(개인들과 교회들)은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힘을 사용할 근원적인 선교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오늘날의 선교의 원초적인 과제는 사람들을 가난하고 무식하고 종속되고 망치게 만드는 압제 체제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선교의 내용과 폭이 넓어진다. 나일즈(D. T. Niles)가 지적하듯이 교회의 선교는 어느 곳에서나-어느 상황이든, 어느 지역과 나라에서든, 삶의 어느 영역에서든-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적인 선교 이해를 창출해 낸 결정적인 계기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소개된 빌링겐회의(1952),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 제4차 웁살라 WCC총회(1968) 등이었다. 선교를 인간화로 보는 데 있어서는 우선 피체돔(Vicedom)이 제안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매우 중요하고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피체돔에 따르면,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이 인간 구원을 위해 생각하시는 모든 것이 그가 보냈던 사람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그리하여 죄로부터 자유롭고 다른 나라로부터 옮겨지는 사람들이 그의 친교에로 또 다시 충분히 올 수 있는 하나님의 사업"이다. 즉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이 인간과 세계를 향해 움직이며 빛과 생명을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의 사회적 기능과 본질을 강조하면서 선교 이해를 재정립하고 타종교에 대한 수용의 태도를 보일 것이 결정되었다. 웁살라 WCC 총회는 기독교 선교의 목표가 '인간화'에 있음을 확인했던 회의였다. 즉 복음은 개인적인 결단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의 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 구조들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선교 이해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다.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선교의 목표는 모든 백성이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 것이며, 그 나라의 대리인으로서 교회는 그것이 역사의 종말론적 성취로서 기대하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브라텐은 강조하고 있다. 몰트만도 비슷하게 "선교의 의미의 요점은 교회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 이라고 보면서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자유에 대하여 전적으로 노예된 피조물의 전적인 해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앤더슨(W. Anderson)도 "선교는 동시에 하나님이 그의 도구로 인간들과 나누는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이라고 보면서 "하나님의 선교의 최종적인 실제 목표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선교에 대한 입장은 크게 나누어 선교를 복음화로 부는 보수주의 이해와, 그것을 인간화로 보는 진보적인 에큐메니칼 입장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선교를 전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며, 모이는 교회(gathering church), '오는 구조'(come-structure)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후자는 사회 구원의 측면에서 흩어지는 교회(diaspora), '가는 구조'(go-structure)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한 편만을 강조할 때에는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즉 복음화를 강조하는 교회 선교에서는 개인 영혼 편중, 교회 이식과 확장을 곧 선교의 전부로 생각하는 일,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소극적 자세, 타종교 문제에 대한 배타주의적 의식, 교회와 사회의 이원론적 구분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면, 인간화를 강조하는 하나님의 선교에서는 복음의 보편화, 사회적 개혁과 질서가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극단적 생각, 선교의 사회 갱신과 해방적 의미에의 편중,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한 편파적 선호, 이에 따른 기구적 교회에 대한 소홀 등이 문제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선교 이해는 복음화와 인간화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브라텐은 이에 대하여 복음화와 인간화는 서로 속해 있으며, 마찬가지로 복음과 사회적 관심, 신앙과 정치적 행동, 종교적 예배와 세속적 활동은 서로 속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교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근거로 한국 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되어 왔다.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Ⅲ.한국 교회의 선교적 성취와 문제점

한국 교회는 원래 보수적인 전통이 강하여 처음부터 선교를 복음화 혹은 전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었다. 신앙적인 보수 성향은, 사회-문화적인 가치 지향성에 있어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특수주의적, 권위주의적, 집합주의적 성향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초기부터 선교 대상은 보수적인 계층이었으며, 오랜 정치, 경제, 사회 구조의 불안정과 갈등 상황 속에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가치관이 강화되어 왔던 사실들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에는 교회성장학을 내세운 풀러 학풍이 소게되면서 로잔 복음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보수적인 교회 세력은 개신교의 거의 모든 교단에 확산되었고 이제는 한국 교회의 지배적인 성향이 되어 버렸다.

이들 보수 교회는 선교를 전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복음화에는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선교는 무엇보다 복음화였고, 따라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전도에 힘썼으며 열심히 교회를 세워 나갔다. 교단별, 개교회별로 배가 운동과 부흥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개척 교회 설립과 해외 선교사 파송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전도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평신도들에게 신앙적으로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시켰다. 그리하여 성서 연구, 기도회, 신앙 집회 등을 활성화했으며, 조직을 강화하고 다양한 전도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교단별로는 연차적으로 몇 교회 몇 신도라는 목표를 설정하여 교세 확장을 꾀했고, 개 교회별로는 교인 증가를 우선적인 목표로 삼아 이것의 성취를 위해 교인들을 동원했다. 그 결과는 교회 성장이었다.

이렇게 전도와 복음화를 최대의 목표로 삼은 각 개체 교회들은 커지기 시작했고 교단별로도 교회 수가 증가하고 전체 교인 수도 급증하게 되었다. 복음화를 우선적인 과제로 삼았기 때문에 양적인 성장이 성공의 척도가 되었고, 이에 경쟁적인 성장 정책을 추구해 갔던 것이다. 분명히 한국 교회의 양적인 성장은 대다수 교회들이 표방했던 '전도'로서의 선교 이해와 그에 대한 열정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특별히 크게 성장한 교단과 개체 교회가 모두 복음화를 선교의 절대 명령으로 삼은 교단이요 개체 교회였던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였다고 본다.

물론 한국 교회의 성장은 이러한 교회 내적 요인 이외에도 교회 외적 요인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6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이 교회 성장에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즉 불안한 한국의 정치 상황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복지감을 교회가 마련해 주었고, 경제 성장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물질주의 가치관과 상대적 박탈감에 대하여 축복과 희망(적극적 사고 방식 등)을 불어 넣어 주었으며, 급격한 도시화로 인하여 공동체성이 봉괴된 도시인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심어 주었던 교회의 기능적 역할이 한국 교회 성장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던 것이다. 어쨌든 선교를 전도로 이해하고 복음화에 치중했던 대부분의 교회들에 의해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이해가 초래한 역기능들이 많이 있었음을 또한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교를 전도로만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자연히 '구원 방주' 신앙을 가지게 된다. 즉 선교의 목적은 세속화된 세계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거룩한 안식처, 곧 교회로 끌어들이는 데 있게 된다. 자연히 성-속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현상을 보게 되며, 거룩한 영역에 속하는 자신들을 선민으로 생각하는 자기-우월의식이 생겨난다. 이러한 태도는 쉬사리 비신자들에 대한 배타성과 거부감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이념을 달리 하는 집단에 대한 정좌와 차별을 서슴치 않게 된다. 그 결과는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갈등과 긴장을 야기시킨다.

둘째로, 선교를 전도로만 이해하면 개교회주의가 강화된다. 선교를 전도로 보기 때문에 관심의 초점은 '우리 교회'에 있게 된다. 즉 전도를 통해 사람들을 우리 교회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끌어들이려고 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교인들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개체 교회의 성장에 집증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점차 교단과는 독립적으로 선교사 파송, 개척 교회 설립, 선교 활동 등 거의 모든 사업을 개교회 중심으로 전개한다. 때로는 개교회가 막강한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하면서 개교회 왕국이 되어 버리는 수도 있다.

셌째로, 선교를 전도로만 이해하게 되면 성공의 척도는 가시적인 숫자와 물량에 두게 된다. 따라서 물량주의가 지배적인 가치로 받아들여 진다. 이렇게 하여 한국 교회에는 물질에 대한 축복이 중심적인 관심이 되어 왔고, 이러한 요구에 대한 응답이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 물질주의 가치관이 팽대하여 인간 가치가 물질 가치로 대체되고, 물질 획득을 위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도 나도 한탕 하려는, 저질 문화가 지배적인 상황이고 보면 교회의 성공 척도, 교인의 신앙 척도가 모두 물질적인 용어로 설명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 하겠다.

마지박으로, 선교를 단순히 전도로만 이해하게 되면 교회는 성장 제일주의를 표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사회적인 역할을 소홀히 하게 된다. 성장 제일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쏟고 이를 위해 교회가 노력할 여유가 없다. 그들은 복음화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고 개인 구원에만, 복음 전도에만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기 때문에, 교회의 사회적 봉사와 비판 기능의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게 된다.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은 주로 교회 성장을 위해서만 투입된다. 이렇게 교회는 기복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탈사회적 집단으 되어 버리기 쉽다.

한편 선교를 '하나님의 선교' 신학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입장의 진보 집단에게 있어서는 관심의 초점은 복음화보다는 인간화에 두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들의 진보적 입장을 조장한 것은 현실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문제적인 상황이었고, 이념적으로는 급진 신학의 발전이었다. 우선 현실적으로 보면, 60년대 이후 지속되어 왔던 정치적 비민주성, 군부 독재, 장기 집권, 권위주의로 특징지어졌던, 그리고 그것이 타성화되어 왔던 정치적 상황은 양심있는 지성적 종교인들을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몇십년간 경제 성장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경제적 불평등은 분배 정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했고, 이에 따라 항상 약자의 편에서 억압받아 왔던 농민, 노동자, 도시 빈민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그 밖에도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있던 제문제들,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들이 표출되면서 사회 참여, 정치 참여는 신앙의 구체적인 표현일 수밖에 없다는 의식이 진보적인 교회 집단에게서 생겨났던 것이다.

한편 이들 진보 집단이 선교를 주로 인간화로 보게 되었던 다른 근거는 이념적인 것으로서, 신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선교 개념 이외에도 삶의 구체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 신학의 영향이 컸다고 하겠다. 특히 마르크스적인 계급 도식을 수용하면서 억압된 계층의 입장에서 신학 문제를 풀어 나갔던 해방 신학과 민중 신학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도 아시아 신학, 제3세계 신학 등이 진보적인 선교 이해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신학들은 선교의 목적을 민중 해방과 인간화에 둠으로써 적극적인 사회 변혁 운동의 촉진제가 되었던 것이다.

선교를 인간화로 보는 진보 교회 집단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구조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 세력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배 정의문제, 사회 복지 문제도 그들이 선교적 성취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았다. 그들은 민중 해방을 강조하기 때문에 특히 농임 선교, 노동 선교, 도시 빈민 선교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다. 복음주의의 입장을 표방하는 교회로서는 기껏해야 농촌에 교회를 개척, 지원하거나 아니면 교회 성장의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는 농촌, 도시 빈민 지역을 포기하고 도시 인구 밀집 지역을 주로 전도의 전략적 요충지로 보고 그 지역에 대해 집중적인 공략을 폈던 것에 비해, 선교를 인간화의 수단으로 보는 진보 집단에서는 농촌, 도시 빈민 지역, 노동 현장에 뛰어 둘어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의 입장을 크게 옹호하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그들의 전략은 근본적인 사회 제도의 변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민증 선교는 다분히 정치 성향을 띠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민중 선교를 정치 투쟁의 발판으로 삼기도 했던 것이다.

선교를 인간화로 보는 이러한 지보 집단의 노력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에 크게 공헌했다. 그 절정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서 보여졌던 바, 그들은 부단히 집권 정치 세력의 부도덕성에 대해 예언자적 비판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악한 농촌 사정에 대하여, 불리한 노동 조건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개선을 촉구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 주었고, 따라서 양적 성장의 부작용에 대하여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많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에게 스스로 빼앗긴 권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구적인 노력을 할 수 있는 각성의 동기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력의 일부는 너무 급진화되면서 교회의 신앙적 열정이 감소되고, 때로는 사회적 긴장과 갈등의 상황을 야기시킨 역기능을 초래했던 사실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특히 계급성과 당파성을 내세우는 급진 집단에게는 대중성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그 활동이 사회 운동화되어 가면서 종교적인 본질 혹은 신앙적 순수성이 약화되는 결과가 야기되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선교 문제와 관련된 한국 교회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선교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에서 선교적 노력을 기울였던 보수와 진보 교회의 관계가 점차 양극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한국 교회의 보수-진보 양극화는 결국 선교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양극화의 극복이 한국 교회의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 집단에서 각각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서로 긍정적인 요소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는 일이다. 복음화를 강조하는 교회가 종교적 부흥에 기여하고, 개인적 윤리성 회복에 공헌하며, 사회 질서를 존중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인간화를 강조하는 교회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일깨워 주고,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을 밝혀내는 데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과제는 복음화와 인간화를 종합하는 총체적인 선교관을 확립하고 이를 실천하는 길이다.

Ⅳ. 21세기의 한국 사회

우리는 이제 곧 21세기를 맞게 된다. 21세기는 과연 어떠한 사회이며 한국 사회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겨날까? 미래 사회는 앞으로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대처해야 할 상황이기에 이에 대한 탐구는 중요하다. 우선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살펴보기로 하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앞으로 전개될,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는 사회적 변화를 열 가지 측면에서 소개한 바 있다.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열거하자면, 우선 미래는 자본보다는 지식, 두뇌가 중요하고, 데이타에 근거한 정보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정보화 사회가 되며, 고도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감성적 측면이 중요해지는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중앙 집권 구조가 분권화 구조로, 위계 서열 중심에서 수평 사회로 바뀌고, 다종 선택 즉 다원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미래적인, 그러나 이미 시작되고 있는 사회 변화 상황이다.

나이스비트는 최근에 2000년대에 생겨날 변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썼다. 여기서 그는 세계 경제는 앞으로 호황을 맞을 것이고, 생활의 여유로 인해 예술이 부흥하며, 생산 양식이 세계적으로 표준화되면서도 한편 문화적 민족주의가 강화될 것을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복지 정책이 민영화되고 환태평양 지역이 정치-경제적으로 부상되고,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며, 유전 공학이 크게 발전하고, 종교적 복고주의가 부흥할 것이며,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를 압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다니엘 벨(Daniel Bell)도 2000년대의 세계 질서를 예견함에 있어서 국제 정세는 공산주의의 몰락, 유럽의 재통합, 미국의 세기의 종언, 환태펑양권의 부상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런한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나아가서 벨은 미래에는 인종 및 민족 분규가 심각해지고, 인공 지능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정보 산업 사회의 상황이다. 그가 후기 산업 사회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 사회의 특징은 3차 산업(전문업, 서비스업)이 중심적 산업 구조가 되고, 전문 기술이 중요해지며, 정보가 생활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엘빈 토플러도 미래에 대해 예견하고 있는데, 그는 미래(그러나 이미 시작된)의 변화 상황을 '제3의 파도'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즉 그는 농업 혁명을 '제1의 파도'로, 산업 혁명을 '제2의 파도'로 설명하면서 제3의 파도는 미래 지향적인 사회적 변동 상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정보화 시대이다. 여기서는 획일화를 벗어나고, 유전자 산업이 발달하며, 지식 정보와 전자 산업이 중요하게 된다. 노동은 창의적 작업 형태로 발전할 것이고, 경제는 정보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을 넘어선 사회 체제가 형성될 것이고, 탈표준화의 개성적 양상 즉 개별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토플러는 보고 있다.

그러면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어떠할까? 앞에서 제시한 시대적 변화 추세가 한국 사회에도 상당 부분 적용될 것이지만, 한국 사회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변화도 겪게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상당히 전척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치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정경 유착, 관료적 권위주의, 극으롸 극좌의 이념적 대립, 정당 정치의 미정착, 중앙 집권적 통치와 같은 문제들이 국민들의 정치 의식 수준의 향상되면서 상당 부분 극복되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문민 정치가 실현되고 자유주의가 확산되며,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될 것이다. 기술 관료가 부상되고 재벌의 정치적 입김이 강화될 것이다.

한편 국력 신장, 냉전의 종식, 주변 강대국들과의 우호 관계, 남북 대화 등으로 2000년 전후로 통일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물론 통일의 성취에 있어서는 많은 변수들이 작용할 것이겠지만, 일단 통일이 되면 1990년도를 기준으로 해 볼 때 전체 인구는 6,427만(남 4,286만, 북 2,142만), 국토 면적은 22.2만㎢(남 9.9만㎢, 북 12.3만㎢), 1인당 국민 소득은 4,079달러(남 5,569달러, 북 1,095달러), 국민 총생산은 2,614억 달러(남 2,379억 달러, 북 235억 달러)가 될 것이다. 어떤 종류의 통일이든 통일이 되면 얼마간은 통일 경비(북한의 경제 수준을 끌어 올리는 데 드는 경비)를 감당해야 하겠으나, 경제 수준이 점차 평준화된다면 통일 한국의 국력은 막강해지리라고 본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굳어져 왔던 체제와 이념의 장벽을 허무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남한 인구만 5천만이 될 것이고, 출산율 감소와 의료 기술의 발달 및 충분한 영양 섭취 등에 힘입어 인구 구조가 크게 바뀌어 소년 인구는 감소하고(14세 이하 1960년 42.9%, 1980년 34.0%, 2000년 25.1%), 대신에 노년 인구는 증가될 것이다(65세 이상 1960년 3.3%, 1980년 3.8%, 2000년 6.2%). 이와 같이 인구가 점차 고령화될 뿐만 아니라 평균 수명이 길어져(2000년 72세 예상) 노인층에 대한 복지 부담이 증가될 것이다. 가족 형태는 더욱 핵가족화 되어 그 비율이 2000년에는 85%에 달하게 될 것이고, 이혼율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고학격 여성, 기혼 여성의 취업이 늘어나고, 여성 지도자 진출이 많아질 것이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2000년에 접어들면서 60%에 육박할 것이고(1960년 26.8%, 1980년 42.0%), 그 비율은 미혼 여성보다 기혼 여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도시화는 가속화되어 2000년에는 전체 인구의 78.1%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인데(1968년 28.0%, 1980년 57.2%), 특히 서울과 부산의 인구가 급증할 것이다(두 도시의 전체 인구 비율 1960년 14.4%, 1980년 30.8%, 2000년 44.3%).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2000년에는 국민 총 생산액이 7,600억 달러에 이를 것이고, 1인당 GNP는 17,000 달러가 될 것이다. 산업 구조도 크게 바뀌어 취업자 비율이 1차(농림어업), 2차(광공업), 3차(사회 간접 자본, 서비스) 산업에 있어서 1963년에는 각각 63.0%, 29.7%, 20.0%였던 것이, 1983년에는 각각 29.7%, 23.3%, 47.0%로 바뀌었고, 2000년에는 각각 16.1%, 27.9%, 56.0%로 바뀔 것이 예상된다. 그리하여 노동 집약적 산업 사회(60, 70년대)에서 기술 집약적 산업 사회(80, 90년대)로의 전환에 이어 2000년대에는 지식 집약적 산업 사회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금융, 보험, 서비스 산업, 정보 산업, 여가 산업, 컨설팅 산업, 문화 산업이 크게 발달하며 정보 사회가 된다. 사회 복지가 확대되겠지만 이에 대한 부담은 점점 커져서 2000년에는 1인당 연간 150만원씩 복지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두드러진 변화는 과학 영역에서 보여질 것이 예상된다. 정보, 통신,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반도체 기술의 집적도가 향상되며, 생명 공학이 실용화되고, 신소재가 개발되고 활용될 것이다. 그리하여 초고집적 반도체, 종합 정보 통신망(ISDN:전화선을 디지털 회선으로 바꾸어 음성, 영상 데이타 등 복합 정보를 얻는 장치), 고화질 TV(HDTV), 전기 자동차, 인공 지능 컴퓨터, 첨단 생산 체계, 대체 에너지, 전자 첨단 소재 등이 개발될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에 있어서도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교환이 중심적인 역활을 담당할 것이다.

계층 구조에 있어서는 80년대말에 대체로 상층 2%, 농민 20%, 노동자 25%, 구(舊)중간 계급(자영업 등) 25%, 신(新)중간 계급(화이트 칼라) 20%, 기타 8% 정도이던 것이 2000년대에는 농민은 10% 이하로, 구 중간 계급은 20% 이하로, 신 중간 계급은 40% 이상으로, 노동자는 30% 이상으로 증가될 것이다. 신 중간 계급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중산층의 폭은 넓어져 2000년대에는 70%에 이를 것이 예상된다. 특히 직업 분포에 있어서는 전문직, 기술직 계급이 두드러지게 되고, 이에 따라 사회-경제적(socio-economic) 사회에서 시회-기술적(socio-technical) 사회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정치, 경제 영역에서는 새로이 등장한 계층인 기술 관료들(technocrats)이 중심적 역활을 하게 되며, 기술 관료주의(technocracy)가 사회를 움직이는 이념적 토대가 될 것이다. 과학과 테크놀러지적 지식이 사람들의 생활을 자동화할 것이고 그들에게 여가를 즐길 여유를 제공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이미 발달하기 시작한 여러 산업과 유흥 산업이 크게 번창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 변동 상황이 사람들에게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이기를 제공해 줄 것이지만, 한편 많은 사회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는 공동체 의식의 상실, 주민의 이질감 증대, 핵가족 제도의 확산을 초래했고, 이에 따라 사회적 통제력이 약화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윤리 의식이 약화되고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심화되어 왔는데, 이 경향은 2000년대에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급격한 사회 이동(직업 이동, 거주지 이동)은 비인격적이고 계약적인, 그리고 타산적인 인간 관계를 심화 시킬 것이다. 생활의 기계화, 자동화, 전산화는 개인의 자율성을 빼앗아가 버리기 쉽다. 물질 만능주의 풍조에서 생겨난 돈이라는 우상 이외에도 과학 기술이 또 하나의 우상이 될 위험성이 있다. 즉 '과학 기술의 패권주의'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정의, 자유의 수사학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풍요, 부유, 생산적 능력 가운데서도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중산층의 폭이 넓어지면서 한국 사회가 중산층 사회가 되고, 또 중산층 문화가 정착되기는 하겠지만,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도시 빈민등의 하류층에서는 '가난 문화'가 형성되고 빈곤의 악순환이 생겨날 수 있다. 한편 상류층의 과소비 사치 성향이 자제되지 않으면 중산층 사이에서 이미 확산되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 증대될 것이다. 기술 관료 엘리트들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서비스 산업 구조에서의 근로 대중들 사이에서 새로운 소외가 창출될 수 있다.

논리적, 실천적, 도구적, 현실적 성격을 띤 기술 관료주의는 전통적, 관습적, 심미적, 직관적 가치관과 심한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특히 합리주의, 인본주의, 과학주의의 발달은 심미성, 영성, 종교성을 크게 약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가 산업의 발달이 휴식과 긴장 이완에 도움을 주기는 하겠으나 이것은 이미 심각해진 천민적 오락주의와 퇴폐적 향락주의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자원의 무절제한 사용과 환경의 남용은 심각한 자원 결핍, 공해와 오염, 환경 파괴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가치 혼란과 갈등은 심화될 것인데, 특히 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시민 윤리가 정착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배적인 가치관은 이기적인 개인주의일 것이고, 가치의 다원화는 집단간(특히 종교 집단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시나리오는 물둁론 노력 여하에 따라 개선되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어쨌든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보다 발전적인 변화의 양상이 예측될 수 있는 반면에, 기존의 그리고 새로운 사회 문제들이 심화되거나 생성되어 사회 발전에 심각한 위협적 상황이 생겨날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며, 바로 여기에 교회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제기되고 21세기의 새로운 선교적 과제가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Ⅴ. 미래의 선교적 전망과 과제

우리는 앞에서 한국 교회에는 서로 상반된 선교 이해가 있어 왔고 이에 따라 몇 가지 문제가 야기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미래 사회의 변동 상황을 예견해 보았다.

그러면 미래의 선교는 어떻게 전망될 수 있을까? 선교의 장애 요소가 되고 있고 또 앞으로 심화될 상황과 조건은 무엇이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선교적 측면에서 한국 교회는 어떻게 전망될 수 있으며 또한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이 여기서 논의될 것이다.

우선 선교를 복음화 혹은 전도로 이해하는 교회들에 있어서는 미래의 선교가 어떻게 전망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는 전도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교회 성장율이 80년대 중반부터 둔화되기 시작했으나 그 추세는 21세기에 접어들면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로, 한국 사회는 미래에 보다 더 다원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 사회를 다원 사회라고 부르고 있듯이 오늘날에는 어느 사회의 가치도 절대적인 지위를 향유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양한 가치, 다양한 이념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특징인 바, 이러한 가치 다원주의가 21세기에는 보다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이미 90년대말 한국에 거의 모든 세계 종교가 들어와 있고 각 종파도 여러 교파나 종파로 나뉘어 있다. 예컨대, 개신교의 경우 교파가 94개에 이르고 있고 불교도 18개 종단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한국 고유의 종교도 많은 분파로 발전해 왔다. 뿐만 아니라, 신흥 종교도 동학계, 정역계, 증산계, 단군계, 각세도계, 유교계, 물법계, 무속계, 기독교계, 불교계, 외래계, 연합계, 계통 불명 등으로 이미 393개에 이르고 있다. 종교, 종파, 신흥 종교의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교회로서는 날이 갈수록 신도 확보에 있어서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고 자연히 전도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앞으로 교회의 복음화에 걸림돌이 될 요소로 기능적 대행물(functional altanatives)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교회는 위로와 도움, 심리적 안정과 긴장 해소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식으로 그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기능을 대신해 주는 여가 산업과 유흥 산업이 발달하면서 교회는 기능적 혹은 잠제적 신도를 빼앗기기 시작했고, 이 경향은 21세기가 가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세속적인 이데올로기(민족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의 발달, 정신 의학과 상당 기술의 발달, 정치적 행동과 참여의 기회의 확대 등이 모두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과 불만, 소외와 받탈감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교회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여가 산업의 발달이다. 여러가지 취미, 오락, 유흥을 위한 편하고 다양한 시설들, 도구들, 방법과 수단들의 발달은 이제 복잡하고 지쳐있는 현대적 삶의 리듬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었다. 특히 승용차의 증가, 도로망의 확장, 휴양지의 개발 등은 ?은 사람들로 하여금 휴식 및 위락을 위해 주말에 도심을 떠나가게 만들 것이고, 이것은 교인들의 교회 출석율을 감소시킬 것이다.

세번째로 지적할 것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증가되고 있는 현실 때문에 전도로서의 선교가 앞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잃어가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회적 봉사와 비판 기능을 한국 교회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단지 교세 확장에만 노력하며 파벌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는 인식이 퍼져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데, 1989년 한국 갤럽 조사 연구소의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교의 영향력이 증가되는 것에 대하여 '좋은 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1.8%로 5년전에 비해 18.9%나 감소한 반면에, '좋지 못한 일'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5.7%로 같은 기간 동안 18.3%나 늘어났다. 또한 종교 단체 수에 대하여는 67.9%가 '많다'고 보고 있는데, 이것을 '좋은 일'이라고 보는 비율은 그들 가운데 29.2%로 5년 전보다 5.9% 감소된 반면에, '좋지 못한 일'로 보는 비율은 44.4%로 같은 기간 동안 7.6%가 증가되었다. 응답자의 80.9%가 "종교 간의 분열과 마찰이 많다"고 보았고, 70.4%는 "요즈음 품위나 자격이 없는 성직자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63.6%가 "대부분의 종교 단체가 본래의 참 뜻을 잃어가고 있다"고 응답했고, 76.8%는 "요즈음 종교 단체는 참 진리의 추구보다는 교세 확장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 평가가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특히 기독교에 해당된다고 하는 증거가 있다. 즉 비종교인의 과거 신앙 경험을 물었을 때 종교를 가졌던 경험이 있었다는 응답자 가운데서 그것이 개신교라고 응답한 비율이 74.5%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다음이 불교(23.2%), 천주교(10.0%) 순(복수 응답)이었다. 타종교로의 개종율에 있어서도 불교나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경우보다는 개신교에서 불교나 천주교로 개종하는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들은 한국 교회의 공신력 상실의 실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이미 1천만 신도를 확보한 한국 교회로서는 나머지 인국가 주로 타종교인 내지는 반기독교적 무종교인임을 감안한다면, 복음화라는 선교의 미래적 성취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겠다.

넷째로, 한국 사회의 발전이 전도로서의 선교를 앞으로 어렵게 할 또 다른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앞에서 우리는 한국의 급변하는 사회 상황 가운데서 야기되었던 여러가지 문제점들, 즉 정치적 불안,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안정, 도시화에 따른 많은 사회 심리적 문제가 오히려 교회 성장에는 촉진 요인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 사회에서 정치, 경제, 사회 질서가 보다 안정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복지 제도가 확립된다면 서구 선진 사회에서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현상처럼 교회 성장은 다소 약화될 것이다. 정체성의 위기, 의미의 상실, 경제적 및 사회적 박탈감과 같은 문제들이 안정된 정치 체계, 경제 구조, 사회 질서 안에서는 많이 해결되고 보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인구학적 변화가 전도로서의 선교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21세기에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며 취업 여성이 크게 늘고 경력을 중요시하는 여성 인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의 종교 참여도는 감소할 것이다. 원래 여성들이 더 종교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여성들이 취업하고 경력을 쌓는 일에 ?두할수록 종교에의 참여도는 감소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전체 교인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교회 참여도가 앞으로 그들이 사회 진출을 많이 할수록 떨어질 것이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는 인구가 점차 고령화되고 젊은 층은 감소될 것이기 때문에 교인 구성도 고령화되어 가는 한편 젊은 층들의 비중은 약해질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게다가 젊은 층은 더욱 기술 관료주의적 사고를 하며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를 신봉할 계층이기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교회에서의 차세대 주역이 크게 약화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미국에서 널리 확산되어 왔던 것처럼 대중 매체를 통한 선교가 이루어지면서 교회 중심의 선교는 다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즉 정보 사회로 접어들어 TV부흥사들(televangelists)이 생겨날 것이고, 폐쇄 회로를 통해 가정에서 혹은 휴양지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모이는 교회로서의 전도적 성과는 약화될 수 있고, 교회의 대형화는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여러 교회의 예배 가운데서 선택적으로 골라 TV화면으로 예배를 드리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선교를 인간화라는 측면에서 주로 이해하고 있는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예견될 수 있는가? 우선 선교를 이런한 진보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교회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 저적되어야 할 것이다. 복음화를 강조하는 보수 교회는 신앙 제일주의, 성장 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열심히 전도하여 교세가 신장되기 쉬운 반면에, 진보 교회는 정치 의식, 사회 의식, 역사 의식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히 신앙적인 열정은 그만큼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 진보적인 선교 이해를 가지고 있는 교회는 양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화라는 참여적 활동이나 운동과 관계된 것으로 선교를 이해하게 될 때 그 교회의 선교적인 미래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로,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보다 인간화가 이루어지는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평등화, 사회적 복지화가 더욱 정착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도움이나 인도 없이도 인간화는 사회적으로 점차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에, 선교를 인간화 과정으로만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교회는 그 명분이 크게 줄어들면서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로, 미래 사회에서는 중산층의 폭이 넓어지면서 이들 진보 교회 집단의 신학과 실천이 급진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산층 의식은 다소 보수적이거나 아니면 온건 개량주의 노선을 선호한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 내지는 점진적 개혁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중산층 사회가 되면 급진적 선교 이해를 가지고 있는 교회로서는 선교 활동에 있어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미 급진 신학과 급진 사회 이데올로기를 토대로하여 인간화 작업에 앞장섰던 교회 세력이 그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로, 미래의 종교적 성향 자체가 지금까지의 인간화(제도적, 구조적 모순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다은 인간화(인간의 내면성을 강조하는)를 추구할 것이며, 이것은 급진적 선교 이해와는 다른 신앙적 요구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종교는 보다 영적이고 신비적이고 구속적일 것으로 종교 사회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와 조직,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활 방식,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는 오히려 반작용으로 신비성이나 영성을 추구할 가능성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성은 다분히 사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도적인 종교 자체는 강화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즉 개인적으로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조직화된 제도 종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는 나이스비트도 미래에는 사람들이 영적인 것에는 찬성하지만 조직화된 종교에는 반대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종교성은 급진적인 선교관에 토대를 둔 인간화 선교가 앞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상의 모든 조건과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21세기 한국 교회의 선교는 그것이 복음화를 의미하든 인간화를 의미하든 낙관할 수 없는 결과가 예측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에 대해서 그 대책을 미리 세워 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보다 바람직한, 그리고 성공적인 미래의 선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한국 교회가 해야 할 과제를 몇 가지 논의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선교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한다. 죽 복음화로서만의 선교도 아니요 인간화오서만의 선교도 아닌, 양자를 종합한 총체적 선교 이해가 필요하다. 교회의 에너지와 관심이 양분되어 있고, 상반된 선교 이해에서 기인한 대립적 교회 잡단의 갈등 구조가 먼저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래에 선교적 성취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복음화와 인간화를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교회의 모든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한다. 복음화와 인간화 과정이 가지고 있는 공헌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를 모두 수행하는 선교적 실천을 확립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치유와 화해, 통합을 촉진하는 사제적 기능을, 다른 한편으로는 봉사와 비판을 통해 사회 변혁을 촉구하는 예언적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미 상실, 정체성 상실, 소속감 상실이라는 사회 문제들에 대한 대처 눙력을 배양하고, 사회의 민주화, 평등화, 복지화에도 앞장설 수 있는 적극성을 함께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로, 사회적 공신력 회복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사회에 부정적인 인상을 보여 주는 한, 앞으로의 선교는 어려워질 것이다. 공신력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실제로 한국 교회는 사회 봉사에는 매우 인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인적, 물적 자원을 교회 성장에만 투자하거나 급진적 사회 운동에 투입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가 겸손히 사회를 섬긴다는 자세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공신력 회복을 위해서는 한국 교회가 지나친 배타성을 극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종교 가운데서 타집단에 대하여 가장 배타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배타성과 독선은 사회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분열과 파벌 의식도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보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물질주의와 과소비도 교회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한국 교회는 공신력을 회복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앞으로의 선교도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한국 교회는 이제 교인들에 대한 질적 성숙의 훈련을 강화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믿음'만을 강조해 왔고, '하나님 신앙'만을 신앙의 척도로 여겨 왔다. 사람의 실천이 없는 믿음,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신앙, 이웃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수직적 신앙이 이제는 성숙한 형태로 바뀔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일깨워야 한다. 사실상, 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는 기독교인의 영향(말과 행실)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친구, 친척, 이웃, 직장 동료들에게 종교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교인들을 믿음과 사랑의 실천을 함께 하는 성숙한 교인으로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넷째로, 교회와 가정 안에서의 종교적 사회화 과정이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젊은 층에 대한 신앙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종교가 부흥, 발전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 가은데 하나는 그 구성원이 정상적인 나이와 성(性)의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연구가 있다. 따라서 교회의 바람직한 미래는 특히 젊은 층의 확보와 신앙적 사회화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에서 가장 소홀히 취급받고 있는 영역이 교회 학교이며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인구 구조가 점차 고령화될 것이라는 미래적 전망을 고려해 본다면 이 문제는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다섯째로, 앞으로 한국 교회는 여가 산업과 같은 다양한 '기능적 대행물'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주말에 야외로 빠녀 나가는 많은 인구들에 대해 종교적 관심을 가지고 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할 전략적 방법들이 모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마지막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진 이후 북한 선교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에 관해 깊이 연구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경쟁적인 양적 팽창을 목적으로 하는 성장 위주의 전도만으로는 멀지 않아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가 재현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선교도 총체적인 선교의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Ⅵ. 맺는 말

우리는 얼마 후에 21세기를 맞는다. 21세기에는 한국 사회와 교회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가 변화되면서 교회도 변화되어 왔는데, 이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의 미래는 한국 사회의 변화 과정이라는 맥락에서 잘 이해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다수의 보수 교회들에 의해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소수의 짐보교회들에 의해서는 사회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양 집단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선교 이해는 한국 교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고 이와 관련되어 미래의 선교적 전망은 어둡게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복음화로서의 선교든 인간화로의 선교든, 지금과 같은 편향된 선교적 태도를 가지고는 21세기의 선교적 성취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복음화와 인간화를 조화시키는 선교 신학과 선교적 실천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전문화, 과학 기술화, 정보화, 자동화되는 분위기 가운데서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는 안정과 복지가 보다 잘 이루어질 것이다. 이에 따라 종교에 대한 요구가 감소되고 종교의 기능적 역할이 축소될 전망이다. 그러나 너무 급변할 사회이기에 그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교회는 낙후되어 버릴 것이다. 나아가서 한국 교회가 미래의 선교적 성취에 장애 요소가 되는 문제들을 바로 파악하고 새로운 선교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새로은 선교 이해와 선교적 실천을 통해서만 21세기에 한국 교회는 성장과 성숙 가운데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