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자본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교회의 전략

 울리히 두흐로 박사(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 경제윤리학 교수)

출처: 한국생명학연구원(http://www.oikozoe.or.kr , 원장: 김용복 박사)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는 1983년 밴쿠버 대회에서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의 보전"이라는 주제를 설정하면서 전세계 교회가 지역에서 또는 세계 교회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로 결정하였다. 그후 세계교회협의회는 정의의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세계화가 가난한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우려하였다. 또한 평화의 문제로서 핵무기를 비롯한 무기의 감축과 긴장완화에 주목하였다. 창조의 보전이라는 측면에서는, 환경의 파괴와 자원의 고갈이라는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정의의 문제는 최근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었는데 이는 제3세계의 부채탕감운동(2000년 희년 운동)과 세계화를 반대하는 교회의 입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두흐로 박사는 이 시대의 교회가, "너희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을 택하든지 맘몬(돈)을 택하든지 하라"는 예수의 주장이나 "너희가 바알이 하나님이거든 그를 택하고, 하나님이 하나님이거든 그를 택하라"는 엘리야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즉 교회가 성경대로 하나님을 따르며, 이 세상의 황금만능을 거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하나님이 이 시대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계시는데 교회의 입장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흐로 박사는 지적하기를 서구 교회는 가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들을 자선의 마음으로 도와주는데 그치고, 그런 개인을 만들어내는 사회제도는 문제 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두흐로 박사는 교회가 초국적 자본이 책임을 다하도록 이끌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가 가난한 자들과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두흐로 박사는 교회가 사유 재산과 화폐경제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먼저 자본과 그것의 파괴적인 영향을 알기 위해서는 사유 재산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화폐가 사용된 것은 기원전 8세기 그리이스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 소작인들에게 이자와 소작료를 받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더욱 더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소작인들은 이자나 소작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노예가 되거나 땅을 빼앗기게 되었고, 지주들은 더욱 부를 축적해 나갔다. 사유재산제가 형성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성경은 이와 같은 사유재산제와 고리대금업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저당을 금지하고 있고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매 7년마다 빚을 탕감해 주고, 매 50년마다 토지를 재분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땅과 그 소산의 주인이지 어떤 인간도 그 주인이 아니라고 성경은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가난을 이유로 노예가 될 수 없다. 성경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인이 노예가 되는 것을 해방시킨 이야기를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사유재산을 정당화하려던 로마제국에 맞선 예수와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금하던 사적 소유에 대한 서구의 생각은 차츰 도전받게 된다.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로마제국의 법이 등장하고, 14세기가 되면 현대 사유재산제와 화폐경제의 초석이 형성되어 간다. 존 로크, 데카르트 등이 토지의 사적 소유와 노동의 대가로 형성되는 부의 축척을 용인하였다. 그리하여 사유제는 서구 사회의 절대적인 법칙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각 국가의 헌법에 국가는 개인의 사유 권리를 보장한다고 규정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교회는 초국적 자본이 아무런 사회적인 책임을 느끼지 않고 더욱더 가속적으로 부를 축적해 나가는 현 상황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첫째,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부를 축적해 나가는 초국적 기업을 규제함으로써 사유재산을 절대화하는 현 체제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유럽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런 세계화의 제도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입으로 고백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것은 신용할 수 없다. 교회는 오늘날 윤리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 교회는 자신들의 자산을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기관에서 빼내어 대안적인 금융에 예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업적인 은행은 부자들이 절세 내지는 탈세하는 것을 돕는 제도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일반 은행에 교회의 돈을 맡긴다는 것은 교회가 자신들의 고백과 행동이 동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교회는 정부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본에 대해 압력을 가하도록 납세자를 지원하고, 그들이 정부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조세의 부담은 자본으로부터 일반 사무원이나 노동자에게로 급속히 전환되었다. 세금 감면 또는 면제가 투자를 유치하는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부에 대한 조세 감면에 대해 교회는 그 부당성을 적시해야 한다.

교회는 시민 사회와 연대하여 초국적 자본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를 실현하기 위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 초국적 기업과 그 자본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서구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정치적인 압력을 넣기 위해 시민단체와 교회가 적극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①금융이윤에 대해 세금을 매기도록 촉구하는 일을 교회가 할 수 있을 것이다. ②투기 자본에 대해 세금을 매기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③신자유주의를 촉진하는 기구들(IMF, WTO)에 저항하는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즉, 국제경제제도를 공공 토론의 주제가 되도록 하고 IMF의 힘을 약화시키고 해체하도록 노력하며 초국적 기업을 규제하고 세계경제를 규제하는 민주적 틀을 만들기 위한 유엔과 같은 세계기구를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세계자본을 규제하기 위해 교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