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화와 생명신학

김용복 박사(한국생명학연구원원장)


출처: 한국생명학연구원(http://www.oikozoe.or.kr)

 

우리는 (1)지구화를 민중의 경험을 통하여 성찰하여 보고 (2) 민중의 생명을 비롯한 생명파괴의 시각에서 지구화를 성찰할 것이며 (3) 새 생명을 위한 비전을 모색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길을 모색할 것이다. 이것이 민중신학에서 얻은 지혜를 토대로 하여 진행 될 것이다.

지구화는 민중의 삶과 생명을 위한 희생과 투쟁의 경험을 통하여 다양하게 보여진다.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차원에서 지구화는 지구 북반부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적 자본이 확산되면서 민중과 우주의 생명계에 횡포를 강도 높게 가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동구나 사회주의권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는 소위 선진산업 국가사회에 살고있는 가난한 사람들도 경험하고 있다.

우선 지구화의 과정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역사와 함께 하였고 서구식민주의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 이 역사를 도외시하고서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지구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과 미래의 지구화는 과거의 지구화와 달리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특징들이 민중의 경험을 상당부분 결정하여 준다고 하겠다.

우선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를 지구적 시장으로 개편하는 주체는 시장을 장악한 자본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는 거대 산업 국가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이지만 그런 형태의 자본 세력들이 지구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지구시장을 팽창시키고 있다.

최근 이 지구시장은 세계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 = WTO) 체제를 구축하여 가고 있으며, 국제금융기구 (International Monetary Fund)와 같은 국제기구가 중요한 역할을 당당하고 있다. 특히 세계금융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기적 금융자본이 세계경제와 지구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맘몬(mammon)의 마수는 생명을 희생시킬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투기적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생명(민중과 우주)파괴 현실을 분석해 보려고 한다.

민중의 삶과 생명은 직간접으로 수탈(Exploitation)당하고 있으며 이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배제(Exclusion) 당하고 있다. 이 과정은 우선 금융자본이 생산과정과 분리되고 사회자본과 분리되면서, 민중의 삶과 분리되고 민중을 배제하고 있다. 동시에 금융자본은 민중을 빚의 쇠사슬로 얽매어 버린다. 이미 민중은 직, 간접으로 사적, 공적으로 빚의 늪에 깊이 빠져 있다.

이런 투기적 금융자본의 실체는 지구시장을 지배하는 이윤극대화의 논리, 이를 위한 무한 경쟁의 논리, 결국은 적자생존의 논리를 인간사회와 우주 속에 가열하고 가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시장의 모든 부분이 이 투기적 금융자본의 논리를 직간접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지구시장의 거래의 98%정도가 금융거래라고 하니 그 영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 지구화 과정을 이해하여 보자.

일차산업에 종사하는 농가는 한국경제성장과정에서 재정적으로 착취당했다. 한국경제성장전략은 농민의 금융자산을 총동원하여 2차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농협네트워크, 새마을금고네트워크, 신용협동조합네트워크, 일반금융기관네트워크, 사채네트워크는 모두 농민의 금융자산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농가를 시장에 통합하는 과정에서 농산물가격을 저곡가로 통제하고 농민의 구매활동은 그들을 깊이 빚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농산물무역개방정책은 곡물, 육류, 과일 등을 서방으로부터 수입하여 농업생산을 감퇴시켰다. 특히W. T. O.체제는 한국농산물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케 하여 농민의 입지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정부통계에 의하면1999년 농가부채는 18,530,000원으로 전년 보다 9% 증가하였다고 한다. 어떤 이는 증가율이 30.7%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이해구의원주장) 이 과정에서 주채권자의 하나인 농협은 약1조원의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것이 민중의 현주소이고 빚에 얽매인 농민은 앞으로도 지구화의 과정에서 계속적인 희생자가 될 전망이다.

생명산업이냐? 죽임의 산업이냐?

또한 지구시장은 농민에게 환경파괴의 하수인 역할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은 기아에 허덕이는 민중을 구출하기 위하여 식량을 대량으로 생산하여야한다는 미명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의 유수한 초국적기업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우리 농민들은 농산물을 증산하기 위하여 화학 비료, 살충제, 제초제를 대량으로 살포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오염된 사료를 소비하여야하며 나아가서 생화학적으로 유전자공학처리 된 씨앗과 종자를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농민은 이런 환경파괴와 오염의 과정에서 제1차적인 건강상의 희생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으나 이미 우리나라의 토양은 화학물질이 더 이상 투여되어서는 안 될 포화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식품의 70∼80%가 유전자공학조작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 서구 선진국가에서는 이런 식품오염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결과를 지구시장에서 지구 남반부의 민중을 희생양으로 하여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지구시장이 식품을 규격화(Codification)하는 일이 이런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생명이 지구시장의 메커니즘에 볼모로 잡혀 있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공학의 발전을 통하여 인간생명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비밀을 알아내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근절하며 인간이 더 오래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완벽한 의료체계를 수립하기 위한다는 미명'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유전자공학을 통하여 이루지는 의료체계나 우생학과정은 시장이 추구하는 이윤의 극대화의 논리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유전자공학의 발전에 있어서 가공할만한 사실은 과거 히틀러가 우생학적인 발상에서 유태인 대량학살이라는 비극을 연출한 사실을 논하지 않더라도 생화학무기의 개발과 이것의 실전배치가 바로 그 현실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유전자공학을 통하여 개발된 생화학무기는 원자의 핵에너지를 이용한 핵폭탄 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더 파괴적이라고 한다. 생명은 이런 시각에서 지구시장의 볼모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지구시장은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격렬하게 모순적 대결로 몰아 가고 있다. 지구시장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효율성의 논리는 시장은 지구에 있는 그리고 우주에 주어진 자원을 정복의 논리로 착취하고 있으며 자연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나아가서 경제적 효율성을 위하여 자연생태계를 파괴하여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상생적 생명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W·T·O에서는 지구화과정이 생태계에 대하여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것은 지구화과정에서 생태계의 파괴는 가속화되리라는 전망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시장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미명 아래 이러한 묵시록적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생명을 객체화하고 지배하는가?

이런 지구화과정에는 과학과 기술의 고도의 발전이 내포되어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지구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역사가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전쟁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 생산의 도구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시장의 이윤극대화의 논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학적 사고는 인간을 인식의 주체로 삼고 모든 것을 특히 생명체까지도 객체화한다. 기술은 이러한 과학적 명제를 효율적으로 실행한다. 오늘날 고도의 과학과 기술은 생명과 사물을 객체화할 뿐 아니라 인간과 우주 안에 있는 과정을 초고속으로 가속화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관계를 치열한 경쟁관계로 몰아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뚜렷한 과정과 관계가 투기적 금융거래에서 나타나고 있다.

평화는 생명의 정원

지구시장의 투기적 행태는 세계의 지정학적상황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준다. 이것이 가져다 주는 변화는 동북아시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정학적인 변화는 지구화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냉전대결테제의 해체와 지구시장에로의 내포됨이다. 4대강국과 남북한의 지정학적인 관계는 지구화와 이에 동반하는 지구시장의 과정 속에서 새롭게 변하고 있다. 냉전체제 아래서 조·중·소(러)의 군사동맹은 고도의 과학적· 기술적 군사동맹/협력체였고 한·미·일 군사체제는 동맹체제는 아니었으나 고도의 기술적 군사협력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지구시장의 경쟁관계가 동북아에서 지정학적인 대결구도로 전환될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경제력의 급속한 증진과 이에 따른 지정학적 위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National Missile Defence프로그램은 군사미사일경쟁으로 치닫고 있으며 전쟁과 평화를 불문하고 이러한 대치관계는 동북아 민중과 자연계의 생명에 지대한 위협을 가져다 주고 있다. 따라서 동북아에 있어서 평화와 생명은 지구화과정과 이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한반도의 민족적 차원에서 조명하여 볼 때 생명과 평화의 문제는 지상의 과제로 부각된다. 우리는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그리고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과 평화를 지켜야 할 것이다. 이것은 동북아 민족들 뿐 아니라 세계민족들의 생명과 우주의 생명을 위하여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생명의 정치경제와 죽임의 정치경제의 대결

지구화와 지구의 시장화는 인간사회를 생명과 행복의 이름으로 죽임의 정치경제체제를 확장하여가고 있다.

지구시장은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정치경제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투기적 국제금융거래의 실체를 지적하였다. 모든 1차산업, 2차산업, 3차산업, 정보/컴뮤니케이션산업, 문화산업이 모두 지구적 차원에서 이윤극대회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 이로 말미임아 지구적 차원에서 기아는 극심하여지고 질병은 만연하여지고 있으며 빈부의 격차는 현격하여지고 있다. 우리는 가난과 질병을 지구화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지구적 정치경제질서에서 새롭게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경제질서는 이윤극대화와 효율성을 위해서는 모든 제약과 통제를 거부하려는 초국적기업들과 같은 금권조직이 좌우한다. 이러한 금권세력은 국가조직, 국제조직, 문화조직, 과학기출체제를 장악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체제는 사회주의 정치경제체제와 자유주의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이 병존하고 있으며 이 정치경제체제들은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지구화에 대응하여 나가는 상황에 처하여 있다. 이 과정에서 W·T·O가 요구하는 경제체제개방화는 경제적 약자들을 축출하고 배제하는 정책을 강요한다. 동아시아의 민중들은 지구시장의 각종 횡포에 노출된다. 주식시장은 투기성 국제금융자본의 출입, 중소기업의 부도, 농가의 피폐, 노동자의 고용불안정, 사회경제의 약화, 환경정책의 약화 등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비공식부문의 서비스업은 팽창되면서 민중은 희생의 도가니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소위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미명아래 노동자는 해고되고 여성노동은 착취당하게 되며, 지구화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토대로 한 임금의 격차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국경을 넘어 이주하나 그들의 인권과 사회적 권리는 여지없이 유린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안에서도 전통적으로 누리던 노동자의 권리와 살림살이를 향유할 수 없게 된다.

인간공동체가 살림살이를 경영하고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도(道)인데 지구화는 죽임의 정치경제의 길로 질주하고 있으며 이를 중단할 제어장치는 존재하기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의 정치경제를 꿈꾸게 된다. 인간과 생명을 죽임의 정치경제체제에서 새로운 생명의 정치경제체제로 해방하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생명을 위하여 인간공동체가 협동하고 자연과 인간공동체가 상생하는 생명의 정치경제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경제의 요체이며 그 이름은 정의이다. 정의는 협동과 상생의 근간이요 기반인 것이다.

국민국가의 파라독스

지구화와 지구시장화는 동북아의 국가들에게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민족국가체제들은 공고히 유지되었다. 따라서 국민국가의 틀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행태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교통체계의 변화, 컴뮤니케이션체제의 변화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국경을 초월하는 과정을 창출하여 내고 있다. 이것은 동북 아시아의 경제적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며 인적 교류, 문화적 교류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줄 것이다. 동시에 동북아의 국가들은 지구시장의 맹주들에 의하여 직간접으로 영향을 깊이 받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민중과 생명은 지구시장의 횡포에 노출 될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국가는 국민을 지구시장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데 한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개방의 대가이다. 지구시장의 경쟁은 국경을 넘어서 치열하게 진입할 것이며 심지어는 투기성 금융자본이 침투하여 들어올 것이다. 나아가서 지구시장의 정보·컴뮤니케이션의 영향이 지대하게 진입하게 될 것이다. 결국 지구화와 지구시장의 침투는 국민국가의 민주적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민중은 지구시장에서 정치적 주권을 희생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민족의 자주성, 민중의 참여, 생명의 주체성을 위한 <참여와 연대의 운동>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체제의 변혁을 요청한다. 민주주의는 대내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실현하여야 하며 다양한 직접참여의 길을 제도화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민주주의(Local Democracy)와 국제적 시민/민중연대를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우주안의 생명의 공생과 인간과 자연의 생명의 상생을 위한 연대/협력체제가 힘차게 발전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지구화, 민과 생명의 지구화라고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생의 도와 약육강식/적자생존

지구화에 따른 성장질서는 가장 첨예한 그리고 강도 높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신사회다윈주의(New Social Darwinism)의 소용돌이이다. 전통적인 갈등과 모순들도 일정한 질서에 의하여 조정되고 통제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의 갈등과 모순들도 지구적인 차원으로 그 지평이 넓어 졌고 그 강도는 높아졌으며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모순과 갈등은 무제한적인 폭력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구화과정에서 세계의 지정학적인 구도는 일극체제(Mono-polar System)가 되었고 이 일극체제 안에서 국가 간의 관계는 폭력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모든 약소 국가들은 일극체제에서 일정한 독립과 자결을 영위하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지역분쟁, 인종전쟁, 종교전쟁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사태와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과연 일극체제 아래에서 세계평화는 안정적으로 이루어 질 것인가?

사회갈등과 모순은 무한히 다양하고 변화무쌍하여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제기구나 국가기관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갈등과 모순으로 인한 폭력충돌을 통제하고 제어하기 어렵게 되어간다. 이런 악성폭력과정이 생명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살림살이를 흩뜨려 놓는다.

지구화의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의 조정과 조절, 통제와 제어가 가능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새로운 생명의 질서> 즉 정의와 태평의 질서를 새롭게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협동, 공생, 상생, 화해와 평화의 관계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논리와 질서를 대치하여야 할 것이다.

삶과 생명의 문화와 죽임과 주검의 문화

지구화의 과정은 문화산업을 증진시키는 문화시장을 확장하고 새로운 정보사회, 하이텍컴뮤니케이션을 통하여 문화적 헤제모니와 지배과정을 이룰 것이다. 이 문화산업은 지구화산업의 핵심적인 부문으로서 지구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금융거래도 고도의 정보통신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나아가서 유전자공학이나 천문학의 발전도 이 정보통신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컴뮤니케이션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민족들을 지구적 맥락에서 그 정체성을 재구성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지구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민족들은 그들의 전통적 문화적 정체성 와해를 경험하고 시장문화의 절대적 지배를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민족들은 문화적, 혁명적 경험을 하게 되지만 이것은 문화적 소외, 문화적 배제, 문화적 억압, 문화지배 나아가서 문화적 피폐와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역사가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세계사에 있어서 문명간의 접촉과 충돌을 이야기하여 왔다. 그것은 주로 서구문명과 비서구문명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헌팅튼의 <문명의 총돌>에 대한 논의도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전제는 서구문명이 지구시장을 통하여 전 지구를 문화적으로 제패하리라는 역사적 전망이다. 지구화의 과정에서 문화시장의 확장과 문화적 지배가 문명의 충돌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지구의 민족들의 문화적 죽음은 물론 생명문화를 궁극적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주검과 생명을 가리는 문화는 정체성의 문제, 가치의 문제, 삶의 양식의 문제, 감성의 문제, 심미적 감성의 문제, 나아가서는 영성의 문제까지를 포함할 것이다.

이러한 지구화의 과정에서 문화적 삶과 생명 그리고 크게는 생명의 문화운동은 생명을 지탱하고 풍요롭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인간과 우주는 상생하면서 생명의 문화를 창출하였고 생명을 지탱하며 생명을 풍요롭게 하여 왔다, 이제 지구화과정에서 민족의 생명문화는 궁극적 도전을 받고 있다. 이 도전은 지구시장의 도전으로서 문화산업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임과 주검의 문화의 지배로 이어지고 있다. 이 죽임과 주검의 문화를 극복하는 문화적 생명력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주는 생명의 모태이며 생명의 원동력은 우주적 사랑이다. 메시아운동에서 죽음의 세력을 극복하는 생명의 정원 즉 생명의 정치경제를 이루어 간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죽음의 역사에 대하여 저항하는 하나님의 정치경제를 논하여 왔다. 이것은 하나님은 생명을 주체적 존재 즉 하나님과의 상생자로 창조하였고 우주 안에서의 생명의 상생과정을 창조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세력에 저항하는 생명창조의 하나님

창세기의 이야기는 <흑암과 혼돈>의 세력을 극복하고 <생명의 동산>을 지으신 하나님과 인간과 생명의 돌봄에 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생명신학은 민중신학에서와 같이 죽음과 주임의 세력에 저항하는 신학이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주검의 세력은 바빌론제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마르둑>과 <티아맡>으로 상징되는 절대적 존재로서, 생명창조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나타난다. 이 세력은 단순히 생명을 파괴 할 뿐 아니라 생명의 동산에 인간과 하나님, 인간자신과 그 자신,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생명사이에 적대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를 종교로, 문화로 또 정치경제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주검의 정치경제는 에집트의 노예로부터 로마의 노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주의 모든 생명을 정복하여 굴종시키는 종교적, 정치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이 상황에서 출애급의 사건은 생명창조의 핵심적 사건으로서 노예해방, 노동해방, 인간과 그 공동체의 해방, 생명의 정원으로 복원된다. 이것은 계약법전에, 희년법전에 명기되었듯이 쥬빌리 즉 희년의 비전을 창출한다. 이 생명해방의 운동은 생명파괴의 정치경제를 허용하지 않고 특히 그 체제의 절대화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주를 살생과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생명의 정원으로 재창조하여 하나님의 생명창조적 정치경제를 수립하는 운동이 바로 예언자들의 운동이었고 그들이 바로 정의와 평화를 토대로 하는 생명문화를 창출하는 주역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생명창조주 하나님에게 충실한 것이었다. 주검의 세력이 우주에 팽배해 있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새하늘과 새땅을 틀로 하는 생명의 정원 즉 생명의 정치경제를 비전으로 안고 그것을 희구하였다.

새 생명의 창조주 메시아 예수

예수의 메시아운동은 그의 죽음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주검에서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의 진입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그의 메시아운동 즉 민중운동의 요체이다. 그는 새로운 생명의 정치경제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맘몬의 지배는 하나님의 정치경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설정하였다. 맘몬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몰록의 변신이라고 지적되었다. 맘몬은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어 로마의 정치경제의 희생자들이 하나님의 정치경제의 주역이 되고 그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하는 운동이 곧 예수의 메시아 운동이다.

예수가 성전경제가 로마의 정치경제에 깊이 사로잡혀있는 상황에 대하여 분노한 것은 지극히 시사적이다. 종교도 주검의 정치경제에 깊이 함몰될 수 있으며 맘몬이 돈을 신격화하는 것이라면 주검의 정치경제를 신격화하고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예수는 당시 로마나 예루살렘의 정치경제를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실체를 노출시켰다. 즉 돈은 신의 이름으로 생명창조주에 도전하고 생명을 희생시키며, 성전도 <도둑의 소굴>이 되어 <기도하는 집>의 역할을 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의 정치경제적 상황도 신학적 분석을 요한다.

예수의 새생명운동은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생명을 창조하는 운동, 주검의 정치경제에 화육하는 메시아적 도전, 로마정치경제로 대표되는 맘몬의 정치경제에 도전하는 운동, 주검의 정치경제에서 희생당하는 병자, 굶주린 자, 약자 등 민중 속에 생명의 요체인 사랑을 일으키는 운동 그리고 이 생명운동의 영원한 생명에로의 진입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한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아운동은 민중의 생명의 정치경제운동이다.

생명의 영은 생명공동체운동의 원동력이다.

우선 생명은 생명창조의 원동력인 하나님의 영과 메시아의 영에 의하여 생명공동체의 주체로 새롭게 복원되고 새롭게 창조된다. 묵시록적 비전에 의하면 우주 안의 모든 생명은 주검의 세력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으며 성령은 우주적 생명의 새창조를 위하여 운동하고 있다.

예루살렘신앙공동체는 생명의 정치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코이노니아운동이었다, 그곳에 생명의 정치경제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로마의 정치경제를 극복하는 나눔의 행동이 있었고 로마의 민중들을 불러 일으켜 생명의 주역이 되게 하는 운동이었다. 이 신앙공동체는 로마의 정치경제를 뒤집어 놓는 혁명적이고 개벽적인 운동이었다.

요한이 제시한 새 하늘. 새 땅, 새 도시, 새 생명, 생명강, 생명나무는 모두 생명의 정치경제의 비전이며 로마제국으로 대표되는 주검의 정치경제를 극복하는 영적 운동이다.

생명학과 생명신학

생명신학은 생명학이어야 한다. 신학은 일반학문에서 소외되어 있다. 또 일반 學문이 지구시장에 종사하는 한 신학은 대안학문이여 한다. 따라서 생명학은 생명신학을 기반으로 하는 대안적 學문이다.

지구시장의 지배세력에 종속되어 있는 學문은 생명학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을 객체화하여 생명을 희생시키는 근대학문에 대한 저항적 學문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곧 생명학이다. 생명신학이 생명의 정치경제를 지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생명학에 속한다.

그러나 근대학문은 생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분석적이고 파편적이며 축소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총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명학은 필연적으로 총합적 學문이어야 한다.

생명신학의 지평으로서의 생명학

신학은 생명의 종교. 생명철학과 생명사상, 생명의 정치경제, 총합적이고 특히 인문학적 차원에서 보는 생물학과 생명과학, 생명 우주학 등을 신학의 지평으로 삼고 생명과 주검의 대결이라는 차원에서 신학적 분석을 하여야 할 것이다.

생명신학은 지구화의 과정에서 생명을 파괴하는 세력과 이를 정당화는 모든 이론과 실천에 저항한다.

생명신학은 생명의 창조는 하나님의 영적 행동 즉 생명에 대한 사랑의 행동이라고 믿는다.

생명신학은 하나님은 주검의 세력에 저항하고, 생명을 해방시키는 분으로 인식한다,

생명신학은 지구시장의 투기적 금융자본을 맘몬으로 규명한다.

생명신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핵전쟁, 생화학전쟁을 악마적인 것으로 규명한다.

생명신학은 하나님의 사람에 근거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생명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설정하고 신사회다윈주의를 거부한다.

생명신학은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생명의 정원을 비전으로 안고 이를 실현하여 간다.

생명신학은 모든 생명종교의 가르침과 철학, 사상을 포용한다.

생명신학을 실현하기 위하여 생명학을 대안적 學문으로 정립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