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

성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입사식

 


로마카톨릭 교구에서 발전되었고 현재 수많은 예배전통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성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입사식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어떻게 강화할 수 있고 또한 교회 예배에 의해 지지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모델을 제시해 준다. RCIA은 세례로 이끄는 인격적 영적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며 제자도의 삶을 위한 세례의 의미와 중요성을 탐구한다. RCIA는 이해될 수 있는 일련의 진리를 구성하는 프로그램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살아져야만 하는 삶의 모델이다. 기독교 교육은 젊든지 늙든지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안에서 세례받고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는 이적을 감지하기 위하여 예배와 기도, 그리고 영적 방향설정(spiritual direction)으로 짜여진다. 다음 장은 RCIA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형편을 서술할 것이다. -


 

1. 예전적 교리문답의 역사

성인들을 위한 기독교 입사식은 교회의 교육사역(catechesis)과 예배(Liturgy)사역을 혼합한 오랜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 이 전통은 지난 2세기에 발견되었는데, 우리는 그 전통을 "예배(예전)운동"(liturgical movement)이라 부른다.

교리문답(catechesis)이란 말은 자구적으로 "공명"(sounding down), "다른 곳에서 이뤄지는 재공명"(再共鳴, re-echoring down to another)을 의미한다(헬라어 katechein에서 온 말인데, kata[아래로]와 echein[소리를 내다]의 합성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가르치는 양육사역에 그 용어를 채택하여 "입의 말에 의해 주어지는 교육"의 의미로 사용했다(예를 들어, 눅1:4, 행18:25, 고전14;19, 갈6:6). 예배(Liturgy: 이 단원에서 사용된 「예배」라는 말은 단원 서론에서와 같이 「예전」[liturgy]의 의미로 사용됨을 밝혀둔다.[역주])라는 말은 자구적으로 "백성들의/백성들을 위한 일"을 의미한다(헬라어 leitourgia에서 온 것인데, laitos/leitos[백성들의]와 ergon[일]의 합성어이다). 일반적으로, 그 말은 "공적인 섬김의 행위"(an act of the public service)를 나타낸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행위, 기부금 등 복음을 위한 행동(예를 들어, 빌2:30, 롬15:27, 고후9:12), 헌신으로서의 그리스도인 생활의 제물(예를 들어, 행13:2, 히8:2,6)을 의미하기 위해 그 말을 채용했다. 초기의 공동체에는 복음전파에서 교리문답, 교리문답에서 예배, 예배에서 더 진전된 교리문답과 복음봉사에 이르는 분명한 연속성과 흐름이 있었다. 이 연결된 목회사역의 공통적인 목적은 회심과정, 신앙, 그리스도인 생활과 증언의 신앙 여정(旅程)에서 제자들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어간에는 교리문답과 예배의 관계가 대부분 단절되었다. 교리문답과 예배는 독립적인 목회영역을 차지했다. 교리문답은 신앙 진리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축소되어 교리문답식(catechism)으로 정착되었고, 주로 아동들에게 지적인 동의와 이해를 위해 제공되었다. 예배는 목회적 실천과 이론으로 축소되었다. 목회학적으로 예배는 하나님의 영예와 영광을 위하여 수동적인 회중 앞에서 사제가 공적으로 수행하는 "예식"으로 이해되었다. 신학적으로 예배는 성례를 "만들기"에 필요한 최소의 주요한 것(물건과 형식)으로 감소되었다.

지난 세기에 교리문답과 예배양자는 확장된 갱신과정을 경험했다. 이제 어떻게 이 둘이 연결되며 어떤 형태의 예전적 교리문답(liturgical catechesis)을 형성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번 기사는 병행하고 있는 갱신 운동들을 조사하고, 교리문답과 예배의 관계를 가깝게 좁히는 역사적 목회사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예언적 교리문답의 성격과 핵심적인 특질을 숙고할 것이다.

------------------두 가지 갱신운동------------------

예배와 교리문답운동들은 19세기중엽과 말엽에 공통적인 뿌리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처럼 교회생활에서 "뿌리로 되돌아가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는 정체된 형태가 아니라 유기적 과정 안에서 재현될 수 있었다. 인간역사의 계시적 성격이 점진적으로 수용되었다. 역사성과 과정에 대한 동일한 인식이 인간성장과 발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인간의 삶에 대한 연구에 작용하였다. 이 기간동안, 조상들의 기록과 성경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교부운동과 성경운동을 양산했다. 새로운 교회론이 공동체와 공동체의 삶과 행동에 관한 보다 적극적이고 유기적인 인식을 낳았다. 예배와 교리문답운동이 형태를 취한 것은 바로 이 맥락에서였다.

예배운동(Liturgical Movement) : 예배운동은 연속적인 네 국면으로 나타났다. 19세기 후반부와 금세기를 통해 첫 국면은 수도원적 국면(monastic phase)으로 지칭되었다. 프랑스의 솔레메 수도원(the Abbey Solemes)에서 돔 구에랑거(Dom Gueranger)는 예배에 대한 연구, 특히 그레고리안 찬트 음악(The Gregorian Chant) 갱신에 앞장섰다. 여기서 예배운동은 예배회복에 대한 더 깊은 관심으로 나타나서 대체로 교회의 목회적 필요를 위해 그것을 채용하기보다는 수도원적 배경에서 시행되었다.

둘째 국면은 목회적 국면(the pastoral phase)인 바, 피우스 10세(Pius Ⅹ)의 motu proprio에 의해 교회음악 Tra le Sollecitudini(1903)에서 시작되어 돔 보우딘(Dom Beauduin)의 지도력 아래 1909년 벨기에의 말리(Malines)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더욱 확대되었다. 이 기간에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영성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다. 우선 순위가 백성들의 "능동적인 참여"에 주어졌고, 피우스 10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빈번한 성만찬이 개선되었다. 공동체의 노래가 회복되었다. 로마 미사(the Roman missal)는 회중을 위한 경건 책자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과 삶을 위하여 백성들을 교육하는 예배의 힘이 재발견되었다. 벨기에와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육성되어 (특히 요세프 융만[Josef Jungman]과 피우스 파쉬[Pius Parsh]에 의해) 후기에 미국에서 육성된 (특히 정의의 문제에도 헌신했던 돔 버질 미가엘[Dom Virgil Michael]에 의해) 이 목회적 관심들은 예배와 성례전 신학 갱신의 후원을 입었다. 독일에서 돔 오도 카젤(Dom Odo Casel)은 예배 드리는 회중 안에 능동적으로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토론을 고무시켰는데, 피우스 12세(Pius ?)와 바티칸 2차 회의(Vatican Ⅱ)에 영향을 미쳤고, 후에 쉴레백(Schillebeeckx)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발전된 성례의 "만남 모델(encounter model)"에 공헌하였다.

세 번째 국면은 예배에 대한 피우스 12세의 회칙인 신의 중보자(Mediator Dei, 1947)로 시작되어 바티칸 2차 회의에 의해 1963년에 공표된 성스러운 예배에 관한 법(the Constitution on the Sacred Liturgy)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동안, 예배운동의 목회적 국면에 대한 중심적 안건은 교회의 승인을 충분히 받았다. 자신의 회칙에서 피우스 12세는 공식적으로 예배에 대한 순수한 의식적(儀式的) 이해를 따로 분리시켜 그것을 전체적이며 신비스런 몸, 머리와 다른 지체들의 공적 예배라고 불렀다. 성찬의 신비를 예배 중심으로 환원시키면서 부활절 전야기도(The Easter Vigil)가 회복되고(1951) 성 고난주간(The Holy Week)이 개혁되었다(1955). 수적으로 더욱 증가된 참여자들을 위한 지침이 마련되었다(De Musica Sacra, 1955). 그리고 예배의식은 단순화되었다(1955). 1950년대 동안, 예배를 위한 국가적 세계적인 회의가 모임으로써, 이로써 목회적 신학적 관심이 함께 일어났고 또한 바티칸 2차회의의 논의를 위한 길이 마련되었다. 제 7 항목(S.C. 7)은 예배에 대하여 회의가 가르쳐 준 교육의 심장부이다. 그 가르침은 그리스도가 여러 방법으로 예배에 임재하시며, 예배는 사제만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몸된 그의 교회의 행위인 것을 설명하고 있다. 몇 가지 일들이 뒤따른다: 충분하리만큼 의식적(意識的)이며 능동적인 참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세례에 따르는 특권이자 의무이다(S.C. 14) ; 예배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제공되어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적으로만 아니라 외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S.C. 14, 19); 그리고 의식들은 현재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회중과 함께 축제화 되어야 한다(S. C. 27).

네 번째 국면은, 회의가 열린 시간이래 이뤄진, 보충과 갱신에 속한 한 국면이었다. 로마의식(The Roman rites)들은 예배갱신의 보충을 위해 바티칸 2차 회의에서 확립된 결정(consillium)아래 개정되었다. 그리고 그 의식들은 ICEL(International Commission on English in the Liturgy)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교육과 교리문답의 광범위한 프로그램들이 예배갱신 프로젝트 가운데 한 통합 부분이 되었다. 개혁과 갱신작업을 거친 의식적(意識的) 능동적 참여는 목회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과 원리를 남겨 놓았다.

교리문답 운동(Catechetical Movement). 원리, 역사성, 과정과 인간성장; 예배운동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던 주제들로 환원하고자 했던 19세기의 과제는 또한 교리문답 운동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반종교개혁 논쟁과 사변신학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교리문답적 접근방식에 불만을 품고서 종교교육가들은 인간심리학, 특히 학습이론으로 방향을 돌렸고, 후기에는 교리문답 갱신에 도움을 얻기 위해 발달심리학으로 방향 전환했다. 이런 경향은 효과적인 교리문답 방법들에 대한 관심을 진작시켰고, 이 세기 초기에 일어났던 교리문답 운동의 첫 국면으로 특징지워졌다.

1900년대 초기에 독일에서 고안되어 1920년대에 미국에 수입된 "타협방법"(Munich method)은 이후에 이태리,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에 영감을 불어넣음으로써 병행적인 시도를 일으켰다.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에 대한 관심, 행동의 가치에 대한 관심, 그리고 행동함으로써 배우는 학습에 대한 관심은 "방법적인" 국면을 넘어서 현재의 교리문답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대에, 교리문답 운동은 통상 "케리그마적"(kerygmatic) 국면으로 묘사되는 둘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요세프 융만(Josef Jungman)이 쓴 「복음과 우리 자신의 신앙전파」(The Good news and Our Own Preaching of the Faith)라는 책이 1936년에 출판되어 방법에서 내용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교리문답에서 전달된 메시지는 "케리그마", 즉 나사렛 예수의 인격에 중심을 둔 구원사였다. 교리문답의 목표는 살아 있는 신앙인데, 이 신앙은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차후의 교리문답 이론과 문서들은 그리스도 중심주의(Chirstocentrism)와 "케리그마적" 국면에서 채택된 말씀의 중심성(the centerality of the Word)이었다. 이 기간동안에 다른 지도자였던 요하네스 호핑거(Johannes Hofinger)는 교리문답은 목회사역의 한 형태, 특히 말씀 사역의 한 형태라고 강조했다. 이 주제는 마찬가지로 교리문답 운동의 한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교활동(A.G.)과 감독의 목회직무(C.D.)에 관한 바티칸 2차 회의의 선언에 병합되었다. 방법은 무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네 가지 용어들 - 성서적, 예전적, 실존적 그리고 교리적 -에서 재강조되어 케리그마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 "부호 교육학"(pedagogy of signs)은 1940년대와 50년대, 특히 브뤼셀의 루멘 비테센터(The Lumen Vitae Center in Brussels)에서 발전되었고, 미합중국 카톨릭주교회의(NCCB)의 교리문답주소록(National Catechetical Directory[N.C.D.])위에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이 20년간, 주제상으로만 아니라 요셉 융만(Joseph Jungmann)과 버질 마이클(Virgil Michel)의 운동에 포함된 여러 인물들에게 있어서도 교리문답 운동과 예배 운동사이에는 접촉점이 있었다.

교리문답 운동의 셋째 국면은, 아직 진행중이지만, 종종 "선교적" 혹은 "정치적" 국면으로 특징지워진다. 케리그마적 국면 기간에 구원사(救援史)에 대한 초기의 강조가 현대의 인간 경험을 위한 보충적 관심으로 신속히 옮아갔다. 일련의 국제적 연구 주간, 특히 아이히쉬타트(Eichstatt, 1960)로부터 메델린(Medellin, 1968)에 이르는 기간은 인류학적 관심의 등장에서 이뤄진 자연적 변화를 제공하였다. 이 연구 주간은, 모두가 제 3 세계에서 개최되었지만, 교리문답 주제를 선교 맥락 안에 두었다. 교리문답이 말씀사역 형태라는 이해 - 둘째 국면에서 다듬어지고 바티칸 2차 회의에서 제기되었다 - 가 확대되어 이 연구 주간에 감응되었다. 마치 복음전도가 전(前)복음전도의 연장이듯이 교리문답은 복음전도에서 처음으로 성취된 케리그마 선포의 연장으로 알려졌다.

이 전체적인 말씀사역이 효과적이 되게 하기 위해 말씀사역은 백성들을 그 자신들의 상황 안에 두어야 한다. 제 3 세계의 경험이 쉬운 실례가 되듯이, 그 상황은 정치적, 문화적, 사회-경제적 그리고 환경적 요인들로 구성된 복잡한 그물 조직이다. 정의와 해방 주제들은 교리문답적 메시지의 부분이 된다. 그리고 오랜 기간 교리문답 운동과 미합중국이 끼친 의미있는 공헌의 영역가운데 일부가 되어 왔던 경험적 교리문답(the experiential catechesis)은 더 이상 독립적인 개인 경험에 초점을 맞출 내용이 될 수 없다. 경험적 교리문답은 지역적, 국가적, 세계적 범위 안에서 이뤄질 더 큰 인간의 상호의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집중과 확산. 두 가지 갱신운동에는 여러 가지 접촉점이 있다. 공통적인 주제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 말씀의 우위성, 교리문답과 예배에 단순히 참여하고 수용하는 자로서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행자가 되어야 할 필요성, 교리문답과 예배행위에 공통되는 과정과 응답의 역동성, 그리고 학습과 축제과정에 대한 좀 더 상징적이며 완전한 접근의 필요성과 같은 주제들이 병행한다.

관심과 에너지의 잠재적 확산의 씨앗들 또한 두 운동에 잠재되어 있다. 셋째 국면에서도 이미 살펴보았듯이, 성숙한 예배 운동은 교회의 재가를 받아내었는데, 바티칸 2차 회의의 성스런 예배에 대한 규약(Constitution on the Sacred Liturgy)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래서 성숙한 예배 운동의 모습은 통합과 보완의 하나가 되어 왔다. 교리문답과 예배의 관계에 관하여 예전 문서들에 나타난 조짐들은 어느 정도 혼합되었다. 예배 갱신을 보완하는 여러 후속적인 문서들에서처럼 예배규례 그 자체에서(S.C. 14, 19) 예전적 교리문답에 대한 비전이 갱신된 의식(儀式)과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가르치는 "예전교육"(liturgical instruction)프로그램으로 축소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입문자들의 회복현상은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과 의례적 축제의 과정(RCIA 75, 244-247)에 통합된 전(前)세례교리문답의 광범위한 비전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적" 혹은 "선교적" 국면에는 교리 문답운동에 대한 교회의 재가가 명백한 상호 의존 안에서 일어났고, 교리문답에 대한 비젼이 점차 확대되었다.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sm)의 주제와 교리문답을 말씀의 계시사역 범주 안에 두려는 경향이 여러 다양한 조정법령들(conciliar decrees), 특히 말씀 사역의 우선권을 확정한(C.D. 12-13, 44) 주교들의 목회직무법(1965))에 강한 영향을 미쳤고, 또한 신앙 입문자를 복음전도의 목회사역 범주 내에 둔(A.G. 13-15) 선교사역(1965)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교리문답 운동과 공식 문서들 사이의 특별한 상호 영향력의 궤도는 추적될 수 있다. 첫째로, 주교들의 목회직무에 관한 법령은 그리스도인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교리문답사전(General Catechetical Dictionary)을 준비하도록 했다(C.D. 44). 그 사전(G.C.D)은 1971년에 출판되어 로마에서 개최된 제 1회 국제 교리문답회의(the First International Catechetical Congress)(1971)와 국가적 성명을 위한 준비, 그리고 NCCB의 카톨릭 종교교육을 위한 기초교육(Basic Teachings for Catholic Religions Education)(1973)신앙의 빛 공유: 교리문답사전(Sharing the Light of Faith: National Catechetical Dictionary)(1977: N.C.D)과 같은 사전들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로, 선교 활동에 관한 법령은 후속적인 국제 교리문답 연구 주간을 위한 안건과 신학적 비전을 세우는데 기여했는바, 이 국제 교리문답 연구주간(International Catechetical Study Weeks)은 제 3세계에서 행할 선교활동과 교리문답과의 관계를 탐구했다. 이 주제들은 로마에서 개최된 제 1회 국제 교리문답 회의(1971)로부터 시작하여 근세의 일반 종교회의(the General Synod)(1974), 교리문답에 관한 일반 종교회의(1974)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 이 종교회의들은 1975년에 이뤄진 바울 6세(Paul Ⅵ)의 사도들에 관한 권고 Evangeli Nuntiandi(E.N.), 1979년의 요한 바울 2세(John Paul Ⅱ)의 Catechesii Tradendae(C.T)로 이어졌다. 이 두 상호 영향 흐름 안에는 교리문답을 교회의 목회 직무 범주 내에 있는 말씀사역형태로 보는 시종일관한 강조가 있었다. 영향의 제 3 계통은 기독교교육에 관한 법령(1965)에서 카톨릭교육에 관한 NCCB의 목회메시지인 예수방식의 교육(To Teach as Jesus Did)(1972)에 이른다. NCCB의 기초교육(Basic Teachings)에서처럼 이 문서들 안에는 교리문답의 통합적 내용에 관한 관심이 우세하다.

------------------교리문답과 예배-------------------

위에서 한 고찰은 교리문답(catechesis)과 예배(Liturgy)와의 밀접한 관계(C.T 234; N.C.D. 36, 113)와 또한 양자사이의 협력(N.C.D. 139)이 있어야 함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목회의 실제와 신학적 토의에서 교리문답과 예배는 간혹 공존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양자간의 관계에 대한 면밀한 성찰이 필요하다.

으뜸가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교리문답과 예배(Liturgy) 양자를 포함하는 보다 통합된 목회사역에 대한 비전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엠마오(Emmaus) : 첫 번째 것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 관한 이야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갖고 있는 "첫 성만찬"(the first Eucharist)이야기이다. 그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혼란에 처한 그들의 세계, 메시아로 기대했던 그들의 예수에 대한 신앙이 산산 조각난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여행하는 두 제자를 만난다. 그들이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바랐노라"(눅24:21)고 한 말은 그들의 환멸의 깊이를 나타낸다. 많은 군중을 돌아보셨던 그 낯선 사람은 그들이 가진 상처와 당황 안에 있는 경험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들이 한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 그 낯선 이는 다른 관점, 승리라는 관점에서 그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4:26) 자기들의 경험을 바꾸어 놓으시는 분의 말씀에 마음이 사로잡힌 나머지, 그들은 그 낯선 이에게 함께 유숙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그 낯선 이는 빵을 떼며 그들을 접대했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았다"(눅24:31). 이제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을 느낄 수 있었다. 부활신앙으로 새롭게 되어,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갖고 되돌아가서 말했다;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24:35)

몇 가지 설명들이 순서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 두 제자들의 여정은 산산 조각난 처음 신앙으로부터 충만한 부활절 신앙으로의 여정이다. 현대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목회적 만남(pastoral encounter)으로부터 교리문답(catechesis)으로, 교리문답으로부터 예배(Liturgy)로, 그리고 예배로부터 비법전수(mystagogy)와 선교에 이르는 여정이다. 교리문답은 그 낯선 자가 먼저 두 제자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그러나 익숙한 성경적인 말로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했기 때문에 효과가 있었다. 교리문답의 효과는 제자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한 것이었고 그 뒤에 따른 의례 계기를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빵을 뗄 때 제자들이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 그 낯선 이를 부활하신 주님으로 알고 믿는 제자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교리문답의 덕택이었다. 제자들이 증인으로 선교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깨달음의 순간 자체가 그렇게도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리문답과 예배의 연관성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낯선 자는 주인-교리문답 교수자-예배 인도자(host-catechist-Liturgist)의 모델이다.

오순절(Pentecost) : 두 번째 기억은 오순절 이야기에 뒤이어 초기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던 "첫 모방"(the first imitation) 이야기에 간직되어 있다. 그 이야기 안에는 두 개의 질문들, 두 개의 순간들 그리고 두 가지 발안들이 새로운 길에 들어선 첫 회심자들의 경험의 토대를 이룬다. 오순절 사건을 증언한 후, 그들은 놀라움으로 충만되었고, 심지어 새 술에 취했다는 비평까지 받았다. 그들이 가졌던 최초의 질문은 "이 무슨 일인가?"(행2:12)라는 호기심에 찬 질문가운데 하나였다. 이 질문은 케리그마적 순간(a Kerygmatic moment)의 발단이 되는데, 그 순간 베드로는 예언서와 시편을 인용하여 그들이 경험한 바에 대해 다른 각도의 빛을 조명한다. 그들의 질문은 이제 극히 개인적인 질문이 된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떻게 할꼬?"(2:37) 이 새로운 물음에서, 그들은 지성이 갖는 호기심으로부터 이제는 회심과 신앙에 대해 개방적인 마음의 탐구에 이르는 획을 그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교리문답적 계기를 이끌어 들이는 바, 베드로는 그들을 가르치고 "이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2:40)는 말로 그들을 강권한다. 이 기사는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2:41-47)에게 공통된 이상화(理想化)된 삶에 대한 설명으로 끝난다.

다시 한 번 몇 가지 언급이 계속된다. 이 기사는 복음전도와 회심자들이 발전시키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련된 교리문답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엠마오 기사처럼, 그들이 가진 인간적 경험은 출발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이 던진 질문은 새로운 국면을 조성한다. 또한 엠마오 기사에서처럼, 교리문답은 의례 행위의 문맥 안에 설정된 신앙고백으로 이끈다. 이 계기는 비법전수(mystagogy), 예전적 축제 그리고 상호 섬김으로 이어진다.

입문자 : 세 번째 실례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그 이유는 고대의 입문자는 그리스도인 성인 입사식(RCIA)에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RCIA에서 교리문답과 축제 의례는 함께 회상되었는데, 특히 입문기간(RCIA 244-247)에 그랬다. 교리문답과 예배는 함께 이미 공개된 과정, 즉 영적 순례과정(RCIA 4.5)에 설정되어 있었다.

파스칼(그리스도의 희생제사) 신비(Pascal mystery)에서 그리스도는 과정의 중심을 나타낸다(RCIA 8). 그리고 전체 공동체는 새로운 회원들의 입사에 대하여 능동적인 책임을 갖는다(RCIA 9). RCIA는 교리문답 운동과 예배 운동(liturgical movement)이 회복하고자 했던 것을 실현시킨다.

교리문답과 예배(liturgy) : 오랜 전승의 입장에서 몇 가지 자료를 수집하노라면, 교리문답과 예배는 본질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교리문답 없는 예배는 쉽게 무기력하고 공허한 의식주의(儀式主義)가 될 수 있고, 예배없는 교리문답은 지나칠 정도로 지성화될 수밖에 없다(C.T. 23). 양자 모두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교리문답과 예배는 각기 나름대로 사람들이 삶에서 신앙의 의미를 성찰할 때 그 신앙을 표현하고 육성하고 강화시킨다. 교리문답과 예배의 목표는 동일하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위해 살게하고, 세상에서 예언자적 외침을 하게 하고, 다음 세대와 더불어 그들이 가진 신앙과 삶의 방식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 너무 극단적인 분리를 배격하는 요소가 또한 존재한다. 예배(Liturgy) 자체는 규범적인 힘(a formative power)을 지니며(N.C.D. 36) 말씀선포와 상징적인 의례 제스처를 통하여 실행된다. 말씀사역인 교리문답 역시 일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하여 선포된 말씀과 축제화 된 수단에 대한 성찰을 통해 신앙을 형성하고 규범적인 힘을 갖는다. 어떤 의미에서 교리문답 그 자체는 축제적인 것이다. 그러나 교리문답과 예배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목회적 돌봄이란 거시적 안목에서 보면, 교리문답은 우선 사람들에게 예배를 위하여 충분하고, 의식적이며, 적극적인 참여를 준비시키며, 그 예배에서 얻어진 경험을 일상생활에 관련시키도록 돕는다(N.C.D. 113). 그러므로 교리문답과 예배는 반복적인 회로와 같은 바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교리문답과 예배의 관계를 좀 더 분명하게 규명하기 위해 교리문답은 성경, 예전적 선포와 성례전 축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경험과 하나님에 대한 봉사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숙고하기 위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묘사될 수 있다. 케리그마적 교리문답(kerygmatic catechesis)과 부호교육학(the pedagogy of signs)에 중심이 되는 이 이해는 교리문답과 예전 사이의 한 중대한 면을 지시한다. 교리문답에서, 선포에서 경험된 하나님의 부르심의 직접성, 축하 그리고 살아있는 봉사는 그 경험의 반성적 사유(私有)(reflective appropriation)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예배가 "일차신학"(first theology)이며 신학자들이 행하는 것은 "이차신학"(second theology)이라는 고전적 신학적 견해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비교를 제공한다. 규범적인 힘을 가진 예전은 "일차 교리문답"인 반면, 교리문답의 지도 아래 이뤄진 그 경험에 대한 조직적인 성찰은 "이차 교리문답"이다.

-------------------예전적 교리문답------------------

그러면 예전적 교리문답이란 무엇이며 효과적인 예전적 교리문답을 위해서는 어떤 특질이 필요한가?

범위와 한도 : 교리문답에 대한 한 근본적인 설명은 이렇다; "목회활동의 범주 내에서 교리문답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공동체와 개인 모두를 성숙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교회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어휘이다"(G.C.D. 21). 이 견해에서 교리문답의 과제는 "성숙한 신앙을 육성하는 일"(N.C.D. 33),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로 만나게 할 뿐 아니라 교제하게 하는 것"(C.T. 5)이다. 이와 비슷하게 예전적 교리문답의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외적으로 신앙을 축하하는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S.C.19).

명칭 그 자체가 제시하듯이, 예전적 교리문답은 더 광범위한 교리문답 사역의 한 부분이다. 그것을 예언적(liturgical) 교리문답으로 부르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교리문답의 초점을 좁히는 것을 암시한다. 그와 같은 하나의 초점은 예배(예전)를 대상화하는 것, 즉 교리문답의 내용이다. 만일 이것이 유일한 초점이라면, 예전적 교리문답은 사람들을 자기 중심적인 예배자로 만들며 예배자들이 사용하는 상징들을 교훈적인 부호로 환원시킨다. 초점을 더 좁히는 다른 방법은 교리문답 과정에 예전적 골격과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다. 기도와 축하의 여러 다양한 형태들이 교리문답 과정에 통합되어 참여자들이 기도로부터 시작하여 축제까지 이르는 흐름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입회자들은 가르침을 위해서 모일뿐만 아니라 말씀, 축복, 기름부음, 그리고 그 외라는 것들을 위해서도 모인다. 예전에 초점을 두는 셋째 방식은 예전 경험을 예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전에서 축하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관계를 음미할 목적으로 교리 문답적 반성(catechetical reflection)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셋째 방식은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이 방식은 예전적 교리문답에 중심이 된다.

입사를 위해 준비된 모델과 병행하여 두 종류의 예전적 교리문답이 구분되어야 한다. RCIA는 전(前)세례 교리문답과 후(後)세례 교리문답(mystagogia)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모든 성례(聖禮)를 위한 규범은 전세례 교리문답과 후세례 교리문답 모두가 되어야 한다. 전자는 성례 의식을 위해 입사자들을 준비시키고 특수한 기간에 시행되며, 초보적인 단계이다. 후자는 인생 전반에 걸친 과정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위하여 그들의 성례전적 경험(sacramental experience)과 그것의 의미를 숙고하게 한다(N.C.D. 6). 전성례전적 교리문답(pre-sacramental catechesis)에서는 의례의 시연(試演)과 상징들에 대한 상세한 해석이 입사자들의 영적 준비보다 덜 중요하다. 사람이든지 종교적인 것이든지 상징적인 방법으로 주님과의 성장하는 관계 안으로 받는 초대는, 이 교리문답을 위해서 목회적 우선권을 갖는다. 후기 성례적 교리문답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행위에 대한 예전적 경험(liturgical experience)이 교리 문답적 반성을 위한 출발점과 초점이 된다. 넓은 의미에서 이 미스타고지(mystagogy)는 예전 자체에서 시작된 "상징의 개안(開眼)"(opening up of symbols)에 관한 끊임없는 반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NCCB, Environment and Art in Catholic Worship, 15).

요구되는 질(質) : "예전적 교리문답(Liturgical catechesis)은 그리스도 중심적, 규범적, 변혁적, 상호적이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Christ-centered) : 예전적 교리문답의 최우선적 관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공동적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돕는 것이다(RCIA).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의 삶, 예배 그리고 교리문답의 중심이며, 그의 죽음의 신비(pascal mystery)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핵심이다. 예전적 교리문답의 궁극적 관심은 예전의 역사, 의식, 상징적 대상물들이나 예전에 의해 "가르침을 받은" 진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교회 회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는가 하는 것이다. 예전적 교리문답을 위한 핵심 자료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계시된 곳, 즉 선포된 말씀, 성례전적 몸짓, 그리고 예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증인의 삶에서 발견된다.

규범적, 변혁적(formative - transformative) : 모든 교리문답과 예전 그 자체처럼, 예전적 교리문답은 규범적 경험이다. 신앙과 회심에서 이뤄지는 형성(formation)은 양자 모두를 위한 타당한 목표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으로 들어가는 일과 그 교제 안에서의 성장은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뤄지는 변화의 경험(transformative experience)이다. 예전과 교리문답 양자의 타당한 목표는 사람들을 변화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예전적 교리문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적 교리문답은 변화를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변화는 인생 전반에 걸친 신앙과 회심의 과정이기 때문에, 예전적 교리문답은 모든 시대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다(S.C.19; N.C.D. 177-189).

상호적(communal) : 본질상 예전은 상호적인 행위이다. 회중 그 자체는 가장 중요한 예전 부호(liturgical signs)이다(NCCB, Environment and Art in Catholic Worship, 28). 모이는 행위, 공중기도에서 1인칭을 복수로 끊임없이 사용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공동으로 듣는 행위, 그리고 모든 예배 참여자들이 그리스도를 함께 만나는 공동행위인 예전 경험은 모두 성례전적 행위이다. 예전적 교리문답은 배경과 형식을 요구하는데, 예전경험의 의미에 대한 성찰은 의미가 공적이며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통으로 이뤄진다. 예전적 교리문답은 공동체 내에서 모든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공동 사역이라는 면에서 또한 상호적이다. 모든 구성원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규범적 역할을 갖는다(RCIA 9). 특히 성인들은 자신들의 교리문답에서 중심역할을 한다(N.C.D. 185).

경험적 바탕(experientially based) : 만일 교리문답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갖는 더 의미심장한 경험에 주의를 갖도록 하는 것이라면(G.C.D. 74), 이 사실은 특히 예전적 교리문답에 대해서도 진리이다. 그리고 만일 목표와 학습뿐 아니라 연구될 대상까지를 고려에 넣는 일이 절대적이라면, 예전적 교리문답은 예전적 경험의 특징에 주의를 기울일 방법론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네 가지 특징을 열거할 수 있다.

첫째로, 예전 축제는 반복적이다. 모임과 헤어짐의 일반적인 구조적 행태, 말씀과 행위, 규정된 의례 대화, 그리고 규범화된 행동은 모든 의례에서 반복된다. 예전 의례 내에서 대부분의 말은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의례적 상호행동은 스타일로 굳혀지고 예견되어진다. 모든 의례처럼 예전은 "알려진 언어"(known language)로서 사람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직의 여정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그 언어를 사용한다.

둘째로, 예전 축제는 표현상 상징적이다. 이것은 의례 행위에 대해서만 아니라 사용하는 말의 범위에 있어서도 사실이다. 예전은 설명이나 가르치는 행위에 의해 의미를 전달하지 않고 비유적, 환기적 방법으로 전달한다. 상징들은 모든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며, 지식의 공유를 위해 지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공간, 시간, 행동 그리고 말은 예전 언어를 연결하는 고도의 비언어적 의장(衣欌)이다. 부가적으로, 예전에서 사용된 상징들은 종교 전통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방식에도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예를 들어, 목욕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붓고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는 인간적이며 종교적 상징 모두로서 기능을 발휘한다. 종교적 상징주의(Religious Symbolism)는 전형적으로 인간적 상징주의(human symbolism)와 함께 작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는다.

셋째로, 예전 축제는 그 중심에 상징적인 의례행위(ritual action)를 둔다. 의례(ritual)는 말에 앞서서 그리고 가끔 말 없이도 자신의 독특한 가치판단과 앎의 방식을 갖는다. 예전 의례(liturgical rites)는 의미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의미를 창조한다. 예전에서 하나님과 백성들은 문자그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약을 보유한다. 예전은 그리스도안에서 선포된 완전한 하나님-인간의 아멘(God-human Amen)에 대해 말하고 행동한다(고후1:20).

넷째, 예전 축제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행하므로 반복된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더라도, 상징적으로 행해진 의미는 개인적 차원을 초월하는 공유된 공적(公的) 의미이다. 의례의 순간에 개인의 이야기와 여정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더 큰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된다.

이 네 가지 특성은 함께 예전적 교리문답이 몇 가지 일을 행하는 절차를 따르게 만든다. 인간 경험의 관점에서 볼 때, 예전적 교리문답은 개인적 표현이 아니라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 경제적 상황 안에서 먼저 묻고, 몸을 씻고,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예전적 상징 아래 경험을 유도한다. 예전적 교리문답은 상징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면에도 관심을 갖는데, 예를 들자면 우리는 음식물로 연합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둘째로, 예전적 교리문답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경험을 충분하게(in its fullness)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해석하게 한다. 셋째로, 예전적 교리문답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살고있는 세상 안에서의 인간경험을 신앙과 긴밀한 공명 관계 속에서 갖게 하므로 그들이 어떻게 예수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첫째, 예전적 교리문답은 예전 그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에서 출발할 것이다. 예전적 교리문답은 상징과 의례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현존을 보고 그 자리를 간파하도록 도우며 더 깊은 회심으로의 부르심을 듣도록 돕는다. 둘째, 더 큰 예전 전통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역사로 제시될 것인데, 그들은 신앙 여정에서 우리의 동반자로 걸음으로써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이야기에 관련될 수 있게 하는 자들이다. 셋째, 오늘과 내일의 사람들을 위한 예전의 의미는 강요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현대의 인간 경험의 창조적 만남과 수용된 전통에서 환기되어야 한다.

예전과 교리문답에서 일어난 두 가지 새 운동들은 이 두 사역 사이의 밀접한 동반관계에 대하여 문을 개방해주었다. 예전과 교리문답이 상호 협력적이며 보완적이 되므로 더 완전한 목회사역에 대한 비전은 이제 회복될 수 있다. 그 비전으로부터 그리스도-중심적, 규범적-변혁적, 상호적, 그리고 경험이 바탕이 되는 예전적 교리문답이 형태를 드러낼 것이다.

2. 기독교 성인 입사식 개론(RCIA)

이 단원은 로마 카톨릭교회가 새신자들을 자체의 공동생활로 이끄는 전 과정을 설명한다. 이 과정은 부활절 전야(Easter Vigil)에 받는 세례로 절정에 달하는데 이 세례전후에는 교육과 영성 형성(spritual formation)이 따른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 한 때, 카톨릭교회에 가입하고자 했던 성인들은 6주간의 "회심교육"(convert instruction) 과정을 거쳤고, 몇 명의 친척이 동석한 가운데(아마도 친척 중 두 사람은 대부모(代父母)였을 것이며 어두운 교회 안에서 주일 오후 엄숙히 세례 받았다. 조금 뒤 아마도 그 다음 주일, 새회심자들은 첫 성찬에 참여했지만 주님의 식탁에서 이뤄지는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견신례는 그 다음 주일과 방문할 때까지 보류되었다. 1972년이래 성인 세례에 대한 이 접근방식은 급진적으로 변화되었는 바, 이 변화는 기독교 성인 입사식(RCIA) 덕분이었다.

----------------RCIA과정의 "새" 국면---------------

RCIA는 위에서 설명한 시나리오에 네 가지 필수적인 변화를 만든다. 첫째, RCIA는 입사 성례인 세례, 견신례 그리고 성만찬의 원초적 순서를 회복시킨다. 세 가지 성례전은 부활절 전야(Easter Vigil)에 한 개의 입사 성례로 축하되었다.

둘째, RCIA는 성찬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교회의 살아있는 경험에 대한 필요를 강조한다. 비록 RCIA가 신앙의 사실에 대한 가르침을 내포하지만, 가르침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갖는 더 큰 살아있는 신앙 경험의 한 부분일 뿐이다. 토마스 머턴(Thomas Merton)이 일곱 가지 이야기 산(The Seven Story Mountain)에서 카톨릭으로 회심한 자신의 회심 경험을 말했다: "결국 6주간의 교육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카톨릭 교인의 실제 생활에 관한 지식의 빛은 거의 부족했다."

셋째, RCIA는 거의 은밀한 성인 세례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공적인 공동체 사건 안으로 환영한다. 먼저 사제는 종종 회심자들이 접촉하는 교구 공동체의 유일한 회원이었다. 이 사실은 불가피하게 회심자들에게 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매우 제한된 경험을 부여하였다. 그 사실은 또한 회심자들이 세례받은 후 주일에 공동체에 가담하게 되었을 때, 매우 고립감을 갖게 했는데, 그 이유는 교구 식구들에게 좀처럼 소개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넷째로, RCIA는 회심은 성령으로 시작되며 성령에 의해 확대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표출하는 욕구는 성령이 이미 시작하신 사역에 대한 응답이며, 6주간의 "회심자 교육" 이상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신앙 여정의 맥락에서 드러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1972년에 공포된 새로운 그리스도교 성인 입사식은 바티칸 2차 회의의 갱신에서 비롯된 가장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문서이다. RCIA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들의 뿌리로 돌아가게 하고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학습하도록 도전을 주는 면에서 급진적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진보적이게 하고 우리를 내일의 교회가 되도록 부르기 때문에 혁명적이다.

--------------간략한 성인 입사식 역사---------------

RCIA가 급진적이며 혁명적인 반면, 그것은 실제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초기 교회사에서 성인 세례는 규범이었다. 유아들은 오로지 부모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을 경우에 한하여 세례를 받았다.

초기교회는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을 신앙 여정에 있는 신앙공동체에 가입하도록 초청했다. 초청을 수락한 사람들은 입사성례(세례, 견신례, 그리고 성찬)를 위한 후보자가 되었다. 후보자들은 입문자(catechumens)로 불렸고 교회의 정회원이 되기 위한 단계적인 과정에 들어갔다. 카테큐메네이트(catechumenate)라 불린 이 과정은 형성(formation), 교육, 그리고 시험이라는 1년 내지 3년의 긴 기간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입문자가 그가 속한 이교도적 배경의 고리를 단절하고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살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신중한 분별 시간이었다. 그것은 또한 신입자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더불어 교회의 선교와 사역을 수행함에 있어 자신들의 책임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교회에 가입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해의 시대에 그와 같은 헌신은 가볍게 취해질 것이 아니었다.

전체 교회는 입문자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복음의 가치를 가르치고, 교회의 신앙생활을 나누며, 환영과 소속의 특별한 의례를 행하면서 그들의 신앙 여정의 단계 단계를 축하하곤 했다. 한 개인이 신앙으로 귀의하는 것 - 그리스도교로의 회심 - 은 공동체의 책임으로 간주되었고 전체 공동체의 참여를 요구하는 사건이었다.

입사 이전에 갖는 최후의 사순절(Lent)은 입문자들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마치 40일간의 퇴수회와도 같았는데, 거기에는 입문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교회에 받아들여질 준비가 되었을 때 행하는 기도, 금식, 그리고 여타의 자기통제가 포함되었다.

애초에 사순절의 목적은 전적으로 세례와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입문자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사할 준비 시간이었고, 신자들(이미 입사한) 편에서 자신들의 세례적 헌신(baptismal commitment)을 기억하고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

초기교회는 입문자들의 신앙 여정의 절정을 즐겁게 인식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축하하는 위대한 파스칼 축제(pascal feast)인 부활절 전야(the Vigil of Easter)에 입사 성례를 축하함으로써 파스칼 신비가 주는 구원의 실제에 그들을 초대하였다. 입사 성례는 일년에 한 차례 오로지 부활절 전야에 거행되었다. 입문자들의 수세(受洗)후에는 신입교인을 위한 다른 교육기간이 있었다. 즉, 그것은 깊은 신앙의 신비 안으로 그들을 이끄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공동체가 후원하는 이 아름다운 신앙여정의 수명은 짧았다.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회심으로 그리스도교는 박해받는 종교가 아니라 유명한 종교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 세례받을 별 의사없이 제국(帝國)안에서 직장이나 어떤 특별한 지위를 얻기 위해 입문과정에 들어왔다. 입문과정의 표준들이 느슨해지고 말았다.

5세기 초 쯤에 입문과정 자체는 그야말로 사라지고 말았다. 입사성례는 별도의 시간에 축하되므로써 세 가지 분리된 성례가 되었다. 이윽고 성인세례는 쇠퇴했다. 유아세례가 규범이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성인 입사식은 초기그리스도교 시대에 영영 사라진 예술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지나면서 교회는 새신자들을 환영하는 신선한 방법의 필요성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속출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이루 지역에서는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의 유산을 찾아내어 이 고대의 입문과정을 현대상황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관습으로 돌아간 이 환원은 교회에 들어오는 회심자들 사이에 큰 안정감을 주기 위한 욕구를 자극하였다. 회심자들의 성숙을 위해 좀 더 긴 준비와 교육기간이 이뤄졌다. 그와 같은 좋은 결과가 제 2 차 바티칸회의 때 주교들에게 보도되었고, 그들은 이 성인 입사식 과정에 대한 연구와 복구를 요구하게 되었다.

1972년, 그러니까 10년의 연구와 탐색 후, 이 새롭고도 오래된 그리스도교 입사과정, 개정된 성인 입사의례에 대한 공식적인 교본(라틴어로)이 출판되었다. 의례는 다시 한 번 교회의 성례시스템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1974년에 영역본이 출판되었다.

----------------RCIA란 무엇인가?-------------------

개정된 RCIA는 토마스 머튼이 경험한 확대된 "회심자 교육"(convert instruction)보다 훨씬 더 나은 것임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RCIA는 회심 과정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것은 기독교인 형성 과정에 있어서 초보자의 진보에 상응하는 네 가지 지속적인 국면으로 구분되어진다. 그러나 의례의 특이한 구조와 국면들을 논의하기에 앞서 RCIA의 중요한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1) RCIA는 최초의 과정이다. 그것을 특히 정적(靜的)인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은 의례의 역동적 성질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것은 RCIA가 사람을 위한 것이고 또한 사람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사실이다. 사람은 계속 움직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새로워지며, 성령 안에서 거듭나며 신앙 여정을 밟는다. - 그리고 사람의 신앙 여정이 프로그램화될 수 없는 이유는 프로그램이 회심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

(2) RCIA는 공동체의 사건이다. 성인 입사는 새로운 회원을 공동체에 입사시키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입사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 어떤 방식으로든지 입사는 개인적인 축하나 과정이 될 수 없다. RCIA는 교회를 공동체, 즉 우리들로 보며 또한 우리를 RCIA의 주요 사역으로 간주한다.

(3) RCIA의 사역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증언이며 환대(hospitality)이다. 비록 RCIA가 후원자, 교리 문답자, 기도자, 영적 권면자 그리고 사회정의 지도자와 같은 다양한 사역 안에서 수많은 교구 회원들을 포함하지만, 공동체 안에 소속된 모든 개인은 자신의 삶의 증거와 개방적인 태도에 의해 앞으로 회심할 자들을 위한 사역에 책임을 갖는다. 기록문서는 이 점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고 있다. "성인입사는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에 관심하며 또 그들이 해야할 사업이다"(RCIA 41).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각 구성원은 전체 회심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참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전체 공동체가 신입회원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보여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새신자들을 입사할 때, 우리는 그들을 신자의 살과 피의 몸(Hesh-and-blood body)안으로 환영하며, 새로운 그리스도인과 교회자체인 우리들 사이에 살아있는 결속을 이룬다.

------------------과정 속의 행보--------------------

여정(旅程)은 출발, 중간단계, 그리고 목적지를 갖는다. 그것 또한 단계 단계를 나타내주는 어떤 경계나 지계표를 갖는데, 그럼으로써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우리의 여행을 돕는다. 그리스도교 입사를 위해 후보자들이 거쳐야 할 네 단계 신앙여정도 그러한 구조를 갖는다.

첫단계 :전(前)입문과정 : RCIA여정은 전(前)교리문답과정(The precatechumenate)으로 시작하는데, 다른 문서에서처럼 이 용어는 고대의 입사식에서 빌어온 것이다. 이 과정은 신앙여정에 있어서 준비단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질문시간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공동체 회원들이 질문자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질문자들이 갖는 질문들은 "당신은 왜 카톨릭 신자입니까?" "당신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당신 교회의 문(門)에 있는 저 작은 접시들은 무얼하는 겁니까?" "마리아(Mary)는 왜 그다지도 당신에게 소중합니까?" "당신은 묵주기도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질문들은 신학적 논술로 대답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각 사람의 마음과 신앙으로부터 답변되어진다.

이 과정 기간은 우리가 새로운 직장이나 일터를 구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진지하게 회사의 한 회원으로 영입되는 반면에 그 직장을 수용하기 전에 일의 내용과 성격을 알아보기 위해 긴 시간을 갖는다. 신앙 여정에서 입문자들은 이 준비기간동안 교회를 오래 살핀다. 신앙공동체가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신앙을 어떻게 나누는지는 이 기간동안 질문자에게 큰 관심거리가 된다.

어떤 사람들을 우리 가정에 환영할 때 우리가 갖는 따스한 마음과 초대하는 정성은 어떤 육체적 동작 - 예를 들어 악수나 포옹 -을 필요로 하듯이, 환영하는 신앙공동체는 이 입사과정에서 신입 회원을 환영하기 위해 몇 가지 의례를 필요로 한다.

RCIA는 입문자들이 그 다음 회심 과정의 국면으로 진행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을 위해 그와 같은 의례를 제공한다. 이 의례는 "입문과정에 들어가는 입사식"(the Rite of Enterance to the Catechumenate)이라 불린다. 이 의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회중)가 참여한 가운데 축하되며, 아마도 공동체가 입문자들을 신앙여정의 다음 단계로 환영하기 위해 일요일 미사때 거행된다.

두 번째 단계 : 입문과정(The Catechumenate) : RCIA의 입문과정으로 환영을 받는, 질문자들은 "카테큐멘"(catechumen)으로 불린다. 의례와 새로운 명칭은 열망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차이(변화)를 나타낸다. 아직은 완전한 교회의 정회원이 못될지언정 그들은 질문자러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이미 시작한 자들이 된다.

여기서 입문자들은 지도자, 동료 그리고 그들을 위한 신앙의 모델로서 봉사하는 공동체의 후원자들과 연합을 이룬다. 후원자들의 사역은 극히 중요한 사역이다. 후원자들은 입문자들에게 개인적인 후원을 하며 그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누며, 그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후원자들은 자신들을 헌신하여 입문자와 공동체 사이에 생동력 넘치는 결속을 만든다. 그들은 RCIA과정 전체에 걸쳐 후보자들을 교회에 제시하며 교회를 초보자들에게 재(再)제시한다.

입문과정은 종종 RCIA과정에 있어서 가장 긴 기간이다. 시간적 길이는 입문자와 공동체의 성격과 필요에 의해 결정되지만, 5∼6개월에서 3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 이 기간동안 입문자들은 신앙교육을 받으며,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하며, 공동체의 기도와 예배에 참여하며, 교회의 사도적 삶을 위하여 공동체와 더불어 활동적으로 사역한다.

비록 입문자들이 공동체의 예배에 초청받지만, 그들은 말씀의 예전 후에 성만찬 축제에 참여하지 않고 돌아간다. 그들은 완전히 입사되지 않았고 회중과 함께 성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가르치는 교리문답교수자(catechist)(때로는 후원자와 함께)와 함께 떠나 방금 들은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바티칸 2차 회의 이전에 이 과정은 "입문자 미사"(Massof Catechumens), "믿는 자의 미사"(Mass of the Faithful)로 불렸다.

입문자들이 입사 성례를 통해 신앙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할 준비가 될 때, RCIA는 다시 한 번 회심 과정에 있는 이 단계를 구체화할 의례를 제공한다. 이 의례는 "선택 의례"(Rite of Election)로 불린다. 이 의례는 사순절 첫 주에 갖도록 계획되며 입문자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증하는 교회의 방식이다. 의례를 통해 입문자들은 부활절 입사 성례에서 통하여 공식적으로 교회에 가입할 것을 요구받고, 교회는 "우리는 당신의 삶에서 신앙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증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절에 당신을 교회 안으로 환영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므로써 그 요구에 응답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 단계 : 입사 전의 사순절 기간. "선택 의례"(The Rite of Election)는 신앙 여정의 이 셋째 단계를 소개하며 또한 입문자들이 입사 성례를 받기 전 마지막 사순절(Lent)을 포함한다. 사순절 첫 일요일로 시작하여, 입문자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을 심화하는데 초점을 둔 40일간의 퇴수회에 들어간다.

입사 전의 이 마지막 사순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시대(時代)의 회개와 화해를 표현하는 것을 돕기 위해 교회는 또한 scrutinies라 부르는 다른 의례를 거행한다. 이것들은 공동체가 사용하는 치유의 기도들인데 (사순절의 셋째, 넷째, 다섯째 주일), 입문자들은 입사, 지속적인 회개, 그리고 성숙한 신앙여정을 향해 여정의 길을 걸으면서 악을 이길 힘을 얻고 죄에서 깨끗하게 된다.

이 의례는 힘있는 의례이므로 세례를 이미 받은 신자들(the Faithful: 입문자를 말함 [역주])은 사순절의 일부인 통회, 치료, 회개 그리고 화해를 필요로 한다. RCIA가 일단 한 교구 안에서 보충되면, 사순절은 입문자 없이 사순절이 못된다. 우리가 입문자들을 위해 사역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들에게 사순절의 의미를 일깨워주며, 그들의 존재는 우리가 하는 사역의 배경이 된다.

그런 뒤 최후로 위대한 밤이 다가온다 - 입사성례가 거행되는 부활절 전야(the night of Easter Vigil)가 축하되고 입문자들은 교회라 불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된다. 이는 공동체와 갖는 최후의 의례 몸짓인 바,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속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오십시오. 당신을 주님의 식탁에 초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회심 여정의 절정이나 신앙 여정의 끝은 아니다.

넷째 단계 : 입사후의 국면. 신앙 여정의 이 결론 부분은 미스타고기아(mystagogia;신비 mystery라는 말에서 왔다)라 불린다. 초기 교회에서 그것은 공동체가 입문자에게 그/그녀가 경험한 성례전의 신비를 설명해 준 시간이었다. 오늘날은 성례가 대개 부활절 전야(Easter Vigil)전에 설명되기 때문에, 이 단계는 새롭게 입사된 자들과 신앙공동체가 함께 서로간에 더 친밀한 관계를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생동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단계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RCIA는 이 국면을 부활절 절기(부활절과 오순절 사이의 50일) 안에 두지만, 실제적으로 이 국면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간동안 지속된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더 밀접한 관계와 신앙의 신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향해 성장한다.

-------------회심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RCIA는 우리에게 완전한 순환 과정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수세(受洗)이후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를 재촉하여 우리 집단의 뿌리를 비평적으로 보게 하며 우리들이 가진 전통의 빛에서 우리 자신을 갱신하게 만든다. RCIA는 유아시절 수세한 우리들에게 진실로 우리들의 신앙과 그 신앙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재시험하고 갱신할 기회를 부여한다.

일단 RCIA가 한 교구에서 시작되면, 그것은 오로지 개인을 위해 시작하고 절정에 도달하는 끊임없는 과정이지만, 실제적으로 교구공동체(parish community)가 관계되어 있는 한 결코 끝나지 않는다.

성인 입사는 전체 교회의 삶을 위한 것이지 회심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교구 안에 있는 최초의 회심을 향한 여정에 있는 입문자의 존재는 우리 모두가 부름받고 있는 깊은 단계의 모델이 된다. 결국 회심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항상 우리 주변에 있거나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님과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을 - 특히 사순절 동안에 - 경험한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이야기 작가인 오코너(Flannery O'Connor)는 카톨릭 종교에 귀의할 것을 생각하고 있던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나는 회심을 단 한 번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회심 과정은 계속되어 당신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면서 당신 자신의 중심성에서 벗어나므로 그것이 얼마나 필요했는가를 절감하게 될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내가 아닌 모든 것에서 측량합니다. 나는 바로 그것에서 시작합니다(The Habit of Being: The Letters of Flannery O'Connor [New York: Farrar, Straus, Giroux, 1979].)

RCIA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산드라 데지디오(Sandrar De Gidio)

3. 전(前) 입문과정

RCIA과정은 전입문과정(precatechumenate)으로 알려진 기도와 준비기간으로 시작된다. 이 단계 기간동안, 복음이 선포되고 잠재력을 지닌 모든 입문자들이 공동체에 의해 환영과 포옹을 받는다. 그 다음 이 과정의 공식적 구조를 위한 준비가 뒤따른다.

그리스도교 성인 입사식의 각 단계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비록 의식들이 지역의 필요에 따라 창조성과 적용점을 갖지만, 과정은 임의적으로 번득이는 아이디어에 넓게 개방되어 있지는 않다. 그것은 층을 이룬 경험에 적합한 명확한 구조를 갖는다. 의식들은 네 가지 독특한 단계들을 묘사하며, 직면될 특수한 영역들을 규명하며,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 전에 각 단계들에서 이뤄진 증명될 수 있는 진보를 위한 지침을 마련한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전 과정의 효과는 그 구조에 대한 민감성에 달려있다. 만일 한 단계가 실제 상황에서 쉽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면 무리한 힘이 과정에 개입된다.

만일 당신이 RCIA를 모으고, 듣고, 나누고, 보내는 일을 구체화하는 어떤 좋은 의례와 연결한다면, 전(前)입문과정은 모임(the gathering)을 대표한다.

-------------------이야기를 대화함------------------

이 첫 단계는 탐문과 복음화의 시간 - "복음을 처음 듣는" 시간으로 묘사된다(RCIA 8-9). 여기의 문맥은 사도적 케리그마(the apostolic kerygma), 첫 만남(encounter)이다.: "선생이여, 어디에 머무르시나이까?" "와서 보라." 그 문맥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이는 문제(a matter of gathering)이다.

모든 사람 개개인은 개인의 이야기, 내가 어디서부터 왔는지에 대한 기억, 어쩔 수 없는 현재의 정지상황,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희망이나 불안을 갖고 있다. 나는 이야기를 가져야만 한다. - 그것은 나의 정체성(identity)이다.

그 이야기 없이 나는 건망증 환자이며 관계의 세상에서 단절되고 고립된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꿈을 갖듯이 이야기도 갖고 있다. 그러나 꿈처럼 우리는 이야기를 의식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사람들 가운데는 이야기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야기를 말함)의 첫째 목적은 그 의식을 고양하고 개인적 경험과 접촉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그 경험을 복음의 빛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실상 이것은 복음전도의 다이나믹이자 개인의 이야기와 복음 이야기 사이의 대화이다. 개인적 신앙공유(faith-sharing)가 촉매를 제공하는 사실을 아는 데는 큰 주의가 요청되는데, 그 촉매에 의해 탐문자가 그들 자신의 삶에서 이 대화를 규명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전(前)입문과정이 하는 일이다.

만일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관계에 대한 문제가 전(前)입문과정에서 중대 사안이 된다면 교리적 문제들은 이차적이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만일 "지적인" 질문들이 많다면, 인간과 신이 만나는 핵심적인 복음전도 대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좋은 암시가 될 수 있다. RCIA팀이 그런 문제들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와 같은 피상적인 관심들이 주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분별하는 우선적인 과제를 뒤집어 엎는가를 분별하기 위해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들은 결코 등한시되어서는 안되며 올바로 취급되어야 한다. 전(前)입문과정은 질문의 시간, 어떤 한 조직의 규칙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질문 - 쿼바디스 (Quo vadis?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이까?) - 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전입문과정은 카톨릭교회가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하고 메마른 답변(cut-and-dried answer)이라는 사실을 추측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체성과 방향성, 회심과 신앙의 기본적인 물음이 답을 얻기까지 교회의 물음은 지속될 것이다. 다른 한 편, 그 어떤 다른 시간도 전입문 과정에서 그리스도가 실제이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추구하는 것은 실제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임을 발견하는 시간보다 더 생생하지 않다.

전(前)입문과정의 핵심적인 문제는 RCIA를 다룬 15항에서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은 영적 생활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의 기초에 뿌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 이 기초들은 먼저 신앙, 최초의 회심, 회개에 대한 인식, 기도의 실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공동사회와 영의 첫 경험들이다! 신앙, 회심, 회개, 기도, 그리스도교 공동체 사회 - 이것들은 가르쳐야할 항목들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할 경험들이다. 전제(前提)는 질문자들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접촉하여 이 경험을 "얻는" 것이다.

-----------------전입문과정의 실제------------------

어떻게 이 모든 내용들을 보완할 수 있을까? 만일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 경험들의 배경이라면, 전입문과정에서 환대가 본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환대(hospitality)가 차디차고 무감각한 교회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것을 금하셨다. 만일 질문자들이 "사회와 그리스도인의 영"(Society and Spirit of Christians)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초기 단계에서 훨씬 더 많은 양육적이고 긍정적이며 사적인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명령처럼 느껴진다. 그리스도인 가정 환경은 훨씬 더 창조적이다. 그리고 가정에서 얻는 유익은 전입문과정 사역에 아주 적합하다.

(1) 그룹들은 개인적 나눔과 정직한 질문을 수행하기에 친밀한 크기로 제한되어야 한다.

(2) 작고 친밀한 그룹 안에서 질문자들이 의식(儀式)을 갖기가 훨씬 용이하다. 이와 반면, 강의실에서는 의식이 항상 팀 리더의 것이 된다.

(3) 작은 핵심 그룹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서로 보호해주며 후원할지를 배우므로 건강한 공동체(authentic community)가 된다.

(4) 그들은 함께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5) 후원자들은 약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적 결합에 의해 "영혼의 친구"(Soul-friends)가 된다.

(6) RCIA팀은 최후의 말(the final say)을 가진 "숙련사들"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리스도인다움(christian authenticity)이 공동으로 소유되는 공동체의 대표회원들이 된다.

(7) 이 작은 가족스타일의 공동체는 사람들을 교구 공동체 대신에 "RCIA 자격 심사위원회"안으로 입사시키려는 보편적이며 유해한 경향을 갖는다.

(8) 마지막으로, 전입문과정은 RCIA팀이 개인이나 가족을 후원하는 일에 좋은 신뢰를 쌓을 것을 요구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뜻은 돌봄과 기도가 후원자의 선택과 훈련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후원자 자신들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의 만남에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팀 지도자들은 회심과 신앙이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divine initiator)의 사역이라는 건강한 인식을 견지해야 한다.

나는 전체적인 전입문 과정경험이 작은 그룹 만남에 제한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전체 그룹이 전입문과정 기간동안 축제적 방식으로 많이 만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이럴 때 사회화되며 나누는 개인 그룹 경험들 - 그들이 나타내고 있는 진보, 두려움, 기쁨, 재미있는 이야기들 - 은 타당한 핵심 주제이다. 입문과정의 의례(儀禮) 시간이 가까이 다가올 때, 이런 종류의 모임이 자주 있다면, 후보자들이 더 큰 공동체에 적응하는 일이 쉬워진다.

핵심적인 공동체 주소는 후보자들과의 첫 번째의 개인적 인터뷰에 대한 욕구를 제거하지 않는다. 인터뷰의 목적은 무엇이 후보자들을 질문 상황으로 이끌었는지를 발견하고 개인의 욕구와 태도를 식별하고, 그리고 때에 알맞는 주의를 요청하는 특수한 상황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과정 전체에 걸친 육성 인터뷰(follow-up interviews)는 후보자들이 입문과정에 들어갈 즈음 분별하는 과정에 지도와 도움을 준다는 의식(意識)을 줄 수 있다.

내가 기록문서들에 대한 감각을 가질 때, 비록 전입문 과정이 복음을 "처음으로 듣는 시간"이지만, 그것은 일요일 말씀의 성례전에 후보자들을 모으는 시간이 아니다. 결국 그들 자신은 이 신앙 가족에게 헌신하는 결단을 하지 못했다. RCIA의 11항에 의하면 이때 후보자들에게 제시된 복음에 관하여 설명 순서가 있어서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찾고 있는 도움을 받는다." 환언하면, 핵심 그룹 내에서 선택된 복음 이야기는 어떤 각 개인이 그/그녀의 삶 어디에 처해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다. 이것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오로지 의식의 절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삶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후보자들이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가르치고 말하는데 신경쓰고 있다.

------------------신앙에 의한 분별------------------

질문자들이 결단을 향해 나아갈 때, 분별의 중요한 책임은 입문과정의 팀과 목사에게 달려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지침들은 15항에 분명히 열거되어 있다: 후보자들은 신앙, 회심, 기도, 그리고 그리스도인 영(靈)의 경험에 대한 예비적 국면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분별은 개종시키려는 태도(proselytic attitude)를 가지고서는 접근할 수 없다. 과거에 오직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것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그 방향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식(儀式)들은 초보자들이 전(前)입문과정을 완수하기 이전에 그들에게 엄중한 과제를 부과한다. 입문과정 팀 편에서 준비성뿐만 아니라 준비의 미흡함을 분별할 수 있는 용기의 부족은 그리스도인 헌신(christian commitment)을 약화시키고 얕은 동기부여를 일으키며, 입문과정에 혼란을 초래하며, 궁극적으로 전체 과정을 회원 자격을 취득하기만 하려는 충동으로 만들 위험성에 빠진다. 회심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RCIA의 월력에 억지로 적용시키려고 주님의 시간표에 무리한 힘을 가할 수 없고 또한 초보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실제를 가지고 도전을 주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호간의 기도와 신중성 있는 경청을 통하여, 목사나 목사를 대표하는 자들은 초보자들과 함께 입문자의 삶에 헌신할 적당한 시간이 언제인지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보비 힉손(Bobbie Hixon)

4. 입문과정

RCIA과정의 둘째 단계는 구조를 갖춘 기도와 연구시간이다. 이 단계에서 입문자들은 규모가 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멘토(mentor: 지도자 [역주])들의 지도아래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한 기본적인 가르침과 행동을 배우기 위해 함께 활동한다.

입문과정은 미결정된 시간적 길이를 정하는 기간인데, 이 기간동안 그리스도인공동체에 가입하고자 하는 개인이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이 개인들을 돕기 위해 선택된 신앙공동체의 회원들과 제휴하여 기도하고 연구하고 분별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편입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의 회심, 개인의 변화를 요구한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인간 공동체내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인격발달과정의 중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의례(儀禮)는 기존사회의 성인 회원이 되는 에릭슨의 과정(Erikson's process)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입사는 개인의 욕구와 공동체의 욕구사이에 균형을 만든다. 개인은 수용되기를 바라고 집단의 철학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기 위하여 소속감을 경험하고자 한다. 다른 한 편, 공동체는 새로운 회원이 집단에 의해 고백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 되며, 공동체 내에서 자신들의 삶을 추구하는 집단 회원들을 후원하는 자가 되리라는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삶을 산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이 삶을 향한 회심은 복음전파를 통해 천국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제시한 도전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몸, 즉 교회에 편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행한 이 선교를 위해 수난을 감수한다. 교회의 회원 자격은 규칙과 가르침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사는 삶, 특히 기도를 통하여 사는 삶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사는 삶, 특히 삶에 대한 접근에서 그리고 교회의 예전 안에 존재하는 일치의 표현에서 증명된 바인 복음전파를 통해 이뤄지는 삶이다.

역사적 증거는 반니케아 공동체(ante-Nicene communities) 안에 입문과정이 존재했음을 가르친다. 입문과정 기간동안(5∼6개월에서 몇 년까지 지속되었다), 개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동안 성장을 경험하였다. 공동체 회원들은 변화된 삶의 스타일을 위해 개인과 함께 일했다. 입문과정 기간동안, 초보자들은 기도와 금식의 삶을 지탱했다. 분별하는 과정동안에 개인과 공동체 양편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순간들을 명시하기 위해 여러 다양한 의례들이 사용되었다.

제 2차 바티칸 회의의 칙령가운데 포함된 것은 입문과정의 복구에 대한 요구이다:

성인을 위해 몇 가지 독특한 단계로 구성된 입문과정이 복구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이 말의 뜻은 적합한 교육기간으로 의도된 입문과정 시간이 성스런 의례 행위에 의해 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S.C. 64).

예전법(Liturgy Constitution)에 명시된 도전은 1972년 1월에 선포된 그리스도인 성인 입사식과 부응하였다. 거룩한 예배(Divine Worship)를 위해 회의에서 선포한 법령에 포함된 것은 입문과정의 복구였다.

입문과정은 전(前)입문과정으로 종종 언급된 복음화 기간에 뒤따른다. 이 기간동안, 구원의 복된 소식이 신앙을 추구하는 개인에게 제일 먼저 들려진다. 아직 신앙공동체의 회원이 아닌 자들은 비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때 복음의 가치를 소개받고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듣기 시작한다.

입문과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 기간이다. 그것은 분별과 기도를 위한 시간이다. 교회가 지닌 여러 다양한 교조(敎條)와 개념들을 사제나 교리문답 교수자가 소개하는 반면, 주요 강조점은 신자들이 모인 회중의 맥락 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취하는데 두며, 그런 뒤 그 말씀이 모든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특히 입문자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해 토의한다. 입문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의 사역을 포함하여 회중의 공동생활에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다양한 예전 의례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형성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편입하고자 하는 개인은 일반적으로 형성과정(formation process)에 함께 참여하는 개인들의 집단인 입문자들(catechumens)의 서열에 참여하므로 공동체 회원들의 신앙을 함께 나누며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사도적 사역(apostolic works)에 참여한다. 입문자들의 형성(formation)에 대한 책임이 전체 공동체에 주어지는 반면, 일부 회원들은 직접적으로 그 과정의 사역을 담당하기 위해 선택된다. 입문자들은 이 개인들과 함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예전(the Liturgy of the Word)의 문맥에서 신앙을 함께 나눈다.

교리문답 교수자와 다른 사역자들은 입문자들이 말씀을 그들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서 성찰하도록 격려한다. 예배지침서(lectionary)를 기초한 이 교리문답(lectionary-based catechesis)은 성경 읽기를 기초로 하는데, 이는 교회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 예전적 교리문답(liturgical catechesis)은 가르침이 되기보다는 입문자들에게 성경말씀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준다. 교리문답은 단순히 교육이 아니라 회심이다. 그리고 회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교리문답은 기도의 맥락 안에서 일어난다. 이 기간동안의 예전 의례들은 입문자들의 형성(formation)을 돕기 위해 계획된다. 이 의례들이 지닌 공적(公的) 성격은 입문자들뿐 아니라 전체 공동체 회원이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입문과정의 첫 번째 의례는 "입문자들의 서열에 받아들이는 의식"(rite of acceptance into the order of catechumens)이다. 회중 앞에서 사제나 장로가 입문자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자들에게 인사를 나눈다. 예전을 거행하는 동안, 사제나 장로가 입문자들에게 십자가를 긋고 복음서를 준다. 입문자들의 이름이 등록부에 기록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공동체의 기도가 끝난 후, 그들은 돌아간다. 입문자들은 부활절 전야(Easter Vigil)까지 성만찬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런 절차들이 의례에 대해 이뤄지는 일반적인 편입표식인 반면, 그 외 다른 선택적인 의식들은 특별한 문화가 그와 같은 편입과 관계된 독특한 의례 행동을 갖는 곳에서 허락된다.

일단 입문자의 서열에 받아들여지면 이제 각 개인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특별한 관계를 누린다. 입문자는 회중의 모임에서 주간(週間)으로 선포되는 말씀을 듣게 된다. 이 기간동안 일어나는 죽음의 사건 안에서, 입문자는 공동체의 한 회원으로서 장사(葬死)된다.

입문과정에서 어떤 개인이 소요하는 시간적 길이는 그 사람과 공동체의 특별한 요구에 달려있다. 입문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회심과정에 들어가는 반면, 집단은 계급이 아니라 공동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신앙을 공유하는 개인들이다. 그러므로 집단 가운데 일부회원들은 다음 형성단계에 들어갈 준비가 이뤄진다.

말씀의 축제를 위해 주간으로 모이는 모임에 참여하는 일 외에 여러 다양한 예전 의례들이 이 입문과정 기간동안에 마련된다. 여러 가지 적은 규모의 축귀(exorcism), 축복(blessing), 그리고 기름 붓는 의식에 유연성이 따르며 이런 것들은 한 개인의 일생동안의 회심과정을 위해 이뤄진다. 교리문답 교수자(catechists), 사제, 장로들 혹은 그 외 다른 성직자들은 기도로 입문자들을 이끌고 필요할 때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례를 공급한다.

입문과정 전 과정에서 극히 중요한 것은 부활전야(Easter Vigil)의 성례전을 준비하기 위해 갖는 퇴수회인 사순절(Lent)계절이다. 사순절 첫 주일에 입문자들은 회중 앞에서 그들의 형성(formation)에 관련된 일들을 증언한다. 그러면 교회는 이 증언을 받아들여 교회에 편입될 입문자들을 선택한다. 일반적으로, 선택은 입사를 원하는 자들의 이름 등록에 뒤따른다.

이제 "선택된 자들"은 그들의 마지막 준비단계인 사순절 축제에 참여한다. 이 정결과 계몽기간동안, 그들의 영적 형성(spritual formation)은 더욱 강화된다. 대부모들은 입문자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이 과정에서 더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특별한 의례인들이 이 과정을 돕는다. 사순절 주일 동안에 거행되는 예전 안에는 회심 과정안에 있는 입문자들을 돕기 위한 말씀의 예전과 엑소시즘(exorcism)이 동반된다. 사순절 마지막 날은 사도신경과 주님의 기도가 공식적으로 입문자들에게 제시된다.

메리 알리스 필(Mary Alice Pill)

5. 후기입문과정

부활전야의 세례에 뒤이어 RCIA는 그리스도인의 세례의 목적과 중요성에 대한 성찰기간으로 끝맺는다. 초기교회의 관습에 따라서 이것은 비법전수(mystagogy)의 기간으로 알려진 바, 이제는 삶의 한 부분인 의미를 깨닫도록 가르치는 시간이다.

그리스도교 성인 입사식에 관해 발간된 책자 안에 포함된 이 단원은 세례후기의 교리문답이나 비법전수를 다루고 있는데 약 두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예식서의 분위기는 놀랍다. 본문은 오로지 이 네 번째 주요한 형성기간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할 지에 관한 명쾌하고도 간략한 윤곽을 제공해 준다.

RCIA를 보충하는 초기 시기에는 이 기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대부분의 교구 RCIA팀은 부활절 아침에는 힘이 지쳐 이 미스타고지(mystagogy)를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할 지에 대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지혜가 나타나서 이 시기는 성례에 관해 가르치고 초신자들에게 여러 다양한 조직과 사역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RCIA팀들은 정규적인 주간 회합 스케줄을 유지하였으나, 이제는 초점이 성례전 신학의 제공에 있게 되었다. 교구 지도자들은 그들이 가진 특별한 관심을 위해 일할 새로운 사역자들을 모집하는데 이상적인 기회로 삼았다.

입사에 관한 더 나은 이해는 우리가 입문과정 기간을 - 비법전수시간이 아닌 - 초보자들과 입문자들에게 성례전과 공동체의 목회적 삶을 소개하는데 가장 적당한 시간으로 간주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일 한 공동체가 성례전과 선교, 그리고 사역에 관한 개념을 제시하기 위해 비법전수 때까지 기다렸다면, 입문자의 형성(formation)은 불완전해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새 회원들에게 우리가 지닌 신앙의 "비밀"이나 성례전 혹은 선교에 관해 말하는 5세기의 비법전수(mystagogy)시대에 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비법전수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성례전과 선교에 관해 배우는 많은 시간을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RCIA팀이 직면한 도전은 이 비법전수 과제를 어떻게 최상으로 성취하는가, 그리고 세례후기의 교리문답을 어떻게 초신자로 하여금 새롭고 활기찬 방식으로 선교에 초점을 둔 성례전적 공동체에 소속된 의미를 갖게 만드는 기회로 삼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주 분명한 사실을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비법전수 기간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의식(儀式)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기간동안에 우리가 하는 목회 에너지의 근본 초점이 초신자들을 교구 조직에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나 이 기간동안의 모임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 주일 회중 안에서 일어나는 것에 있어야만 한다는 분명한 사실로 충격을 받는다. 비법전수 기간에 "어떻게 그것을 하는가?"(how to do it)에 관한 실제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다음 사실은 분명하다. 즉 그들이 가진 관심은, 첫째로도 그렇고 최대로 그러한데, 주일 회중 안에서 일어나는 것에 둘 필요가 있다.

비법 전수적 교리문답(mystagogical catechesis)의 역사적 뿌리에 관한 성찰은 이 통찰이 최종 목표임을 확증해 준다. 고대교회에 의해 우리에게 유증된 비법전수의 고전적 실례들은 예전적 모임(Liturgical gathering)가운데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 비법전수는 대부활 전야(the Great Vigil) 동안에 부어진 새 삶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모임에서 초신자와 나머지 공동체 회원들 앞에서 주교 설교사(bishop-homilist)가 행한 것이었다.

설교(the Homilies)는 전체 공동체를 위한 중대한 진술로 인식되었다. 설교는 기록되어 애초부터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설교의 목적은 모여든 회중이 즉시 경험한 것에 대해 논평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주교가 한 비법 전수적 설교(mystagogical homiles)는 중요한 진술(statements)이었는 바, 공동체의 항구적인 삶을 형성하고 지도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인 됨(christian belonging)의 근본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21세기 초엽의 RCIA전략가들은 그들 자신이 속한 지역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 중요한 것을 포착하는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RCIA를 보완하기 위해 초기에 한 노력의 직관은 옳았다. 성례전에 대한 이해와 선교는 비법 전수적 과제의 성공에 절대적인 것이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해, 성례전과 선교의 연결성에 대한 타당한 이해는 비법전수기간이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한 열쇠이다.

의식(儀式)은 주일 집회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몇 가지 단서들을 제공한다. 의식은 초신자들이 한 집단으로 대부분의 후원자들과 함께 앉아서 일반적인 중보 기도와 설교 듣는 일에 참여함을 보여준다. 전체 공동체의 참여가 요구되며 예배지침서(lectionary)의 낭독 A부분이 추천된다. 사실 그런 본문을 조심스럽게 읽는 것이 비법전수의 의미를 정교화하는데 근본적이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읽기에 있어서, 새 삶에 관한 주제들, 공동체에의 소속, 성례에의 참여,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선교 문제 등이 밀접하게 얽혀있다. 비법전수 기간에 책임을 지는 자들은 교구생활의 지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그와 같은 본문들을 심사숙고할 것을 요구한다. 실제적으로 말해, 그것은 초신자들에게 제시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전에 관한 교구 지도력(혹은 RCIA 교리문답 교수자 혹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설교로 초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 준비라는 직접적인 과제를 이루기 오래 전에 설교가들은 교구 공동체의 삶을 위해 기초가 되는 이 본문들을 숙고하는데 가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성찰 사역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자들은 성례전적 참여(sacramental participation)와 그리스도교 선교에 대한 헌신 사이의 연관성 문제와 씨름을 해야 한다.

성례전적 참여에 관한 정책을 재평가하는 교구생활에서 보다 나은 시간이 있는가? 그리고 성례전을 축하하는 교구가 취하는 방식 가운데 한 부분이 되어야 하는 회심을 불러일으킬 좋은 시간은 무엇인가? 교구 안에서 청지기직에 대해 논의하는 더 좋은 상황은 무엇인가?

초점은 헌금 모금에 있지 않음을 성경 읽기를 통해 알 것이다. 그 대신, 성경 읽기는 우리 모두에게 공동체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받았음을 분명히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성례전적 축제에서 공동체가 부활하신 분과 만나게 되므로써 예배지침서 A 읽기에 포함된 그리스도인 선교(christian mission)는 적절한 맥락을 갖게된다. 이 성례전적 만남(sacramental encounter)에서 성령이 우리위에 부어지고 주님의 식탁에서 양육받을 때, 우리는 말로다 설명할 수 있는 풍성한 은사를 받는다.

만일 RCIA팀이 교구 공동체의 삶을 위해 비법전수 본문들이 지닌 의미를 숙고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면, 더 넓은 공동체의 대화의 폭을 넓히기 위해 설교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논리적 단계가 될 것이다. 일부 설교가들은 초기 생활에서 얻은 결과를 규명하는 근본적 의미에 관해 회중과 기꺼이 대화할 것이다. 오래된 교구 식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따름으로써 그들에게 발생한 일들 곧 이제는 그들의 입사가 "완성되었다"고 말한 것을 요구한다고 가정해 보라! 혹은 초신자들이 성경을 어떻게 읽어서 그리스도인의 선교 사명을 갖게 되었는가를 증언할 것을 부탁했다고 가정해 보라! 아무리 이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고 해도, 완전한 비법 전수적 교리문답(mystagogical catechesis)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한 신자와 공동체가 성례에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난 사건이 어떻게 세상을 위한 선교에 부르시는 소명이 되었는가를 깨닫는 보다 더 진지한 성찰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 대부분의 언급은 RCIA팀이 어떻게 사역의 초점을 비법 전수기간동안의 주일축제에 두었는가하는 문제에 할애되었다. 이렇게 한 것은 신중한 선택이었다. 많은 공동체가 "업무설명"(job description)과 우선 순위(priority)의 문제를 재숙고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어떻게 할 것인가(how-to's)에 대한 항목만을 요구하는 자들에게는 다소 힘든 일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일모임(Sunday gathering)에 초점을 두고자 하는 결정 - 특히 비법전수적 설교의 선포를 위해 - 은 지극히 "실제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법전수에서 갖는 우리의 노력이 주일모임으로 중단된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초보자들이 동화되고 그들이 한 경험을 새롭게 통합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뜻은 주일 모임 외에도 다른 모임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부활절 전야(vigil)에 그들이 경험한 힘있는 의례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입문자들은 또한 성만찬에 참여한 새로운 경험을 서술하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래서 그들이 공동체에 대해 갖는 소속감의 새로운 인식이 확립될 수 있고, 미래에 그들의 신앙에 대해 정의할 수 있다. 확실히 어느 정도 그들이 목회활동과 선교의 새로운 방식에 참여하는 일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원의 가입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이 발견한 의미의 결과에서 된 것이어야 한다. 비법전수 기간에 대한 계획수립에서 강조점은 항상 행위(doing)가 아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존재(being)의 의미를 나누는데 두어야 한다.

로버트 드간(Robert, D. Duggan)

6. 성인 입사식에 관한 도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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