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마 6:9b-13)에서의 종말론과 윤리

- 구조주의 비평에 의거해서

김덕기

 

I. 들어가는 말

21세기를 앞두고 우리의 신학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최근의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학적인 입장과 그 경제윤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바로 문턱에서 지난해(1998년) 12월 3일-14일 사이에 짐바브베의 하라레(Harare)에서 열렸던 제8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서는 "하나님께 돌아오라 - 소망 가운데 기뻐하라"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부채 탕감의 희년 정신과 대화공간(Forum)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제시된 신학의 방향은 제국주의에 의해서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지구화(globalization)의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와 이에 따르는 문화적, 정치적, 윤리적 및 생태학적 문제들에 대항하여 가난한 나라와 제3세계가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을 근원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 20세기를 청산하려는 부채 탕감의 희년 정신을 이어받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WCC의 '프로그램 지침안 준비위원회'가 모든 교파들과 기독교단체들과 정보화 사회의 결정과정에서 소외될 수 없는 모든 구성원들을 대화공간에 초청하려는 정신이다. 이것은 각자의 신앙과 직제를 문제삼지 않고 새로 마련된 WCC 교리헌장에서의 '교회들의 코이노니아'(교제)를 기준으로 아무 차별이나 특권 없이 개방하고 참여를 유도하여 대화하려는 정신이다.

위의 제8차 WCC의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교회에서 늘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을 빚 탕감과 대화공간의 자리에 입각하여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주기도문이 개인주의적인 종교성의 기초로서 우리의 심층구조에 뿌리깊이 자리잡는 한 우리는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새 도래를 기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20세기를 청산하기 위해서도 종말론과 윤리와의 역동적인 관계를 우리의 심층구조에서부터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주기도문은 보프(L. Boff)나 로호만(J. M. Lochman)같은 신학자도 주석을 통해서 자기시대의 정치적 현실을 타개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교회들과의 대화의 자리로서 예수의 실천에 입각해서 주기도문의 특성들을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특히 경제적 질서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여 주기도문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를 제시하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놀랍게도 주기도문이 이러한 역사적 정황에서 새롭게 읽는 작업보다는 주기도문의 주석적 문제와 번역의 문제, 그리고 복음서 기자의 신학의 문제가 주로 제기되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주기도문을 우리의 현실 한 복판에서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을 통하여 평신도들에게도 그 사회적, 신학적 의미를 보다 역동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적 통찰과 당시의 시대사적 배경에 비추어 보면, 주기도문 안에 나타난 죄의 용서는 빚 탕감의 정신을 직접 드러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 구조는 예수의 삶의 실천적 과정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정치와 경제의 접합적 구조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II.에서는 예레미아스(J. Jeremias)와 페린(N. Perrin)이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기술하고, 이에 대해서 문화인류학, 종교사와 사회과학적 접근방법에 의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크로싼(J. D. Crossan)과 홀슬리(R. Horsley)의 해석의 논점과 그 한계를 고찰할 것이다. III.에서는 알튀세르(L. Althusser)와 라깡(J. Lacan)의 구조주의 문제틀과 방법론을 개괄적으로 소개할 것이다. IV.에서는 예수의 실천에 비추어서 주기도문의 접합적 구조를 보여주고, 알튀세르와 라깡의 구조주의에 근거해서 주기도문을 재해석하게 될 것이다. V. 결론 장에서는 위의 분석을 요약하고 그 결과에 대한 현대적 함의(含意)를 간략히 기술하게 될 것이다.

 

II. 연구의 최근 경향과 문제제기

주기도문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예레미아스(J. Jeremias)와 페린(N. Perrin)이 아람어 원어와의 관련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시간성에 초점을 두어 논의해왔다. 예를 들면, 예레미아스에 의하면, '일용할'의 아람어 <mahar>가 '생존에 필요한'보다는 '내일의'의 의미를 갖고 있어서 '오늘'과 대조된다. 페린은 이러한 현재와 미래와의 시간적 긴장을 종말론의 윤리적 성격과 의미를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특히 종말론과 윤리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마 6:10)에서 '죄 지은 자를 사하여'는 희랍어로는 과거형이지만 아람어로는 완료형으로서 현재의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우리말 '죄들'의 희랍어 는 '죄'의 의미를 가진 아람어 <hoba>의 문자적 번역어이다. 이러한 아람어의 어법에 근거해서, 이 주기도문의 삶의 정황이 제자들과의 식탁교제라는 사실에 비추어서 제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죄의 용서의 경험이 하나님의 용서에 필요불가결한 선행조건이 되면서 이것과 시간적으로 동시에 가능하게 된다고 해석함으로써 페린은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레미아스와 페린이 시간성에 집중하여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러한 탐구방식이 예수의 원래의 말씀을 아람어의 의미를 복원하려는 양식비평적 연구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비사회적 해석을 도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종말론적 지평과 윤리적 행위는 시간적으로 동시적인 차원에서 서로의 상호보족적 관계를 설정하였고, 그 접촉점을 개인의 영적인 결단의 차원에 한정하게 된 것이다.

타이쎈(Gehard Theissen)은 위의 예레미아스와 페린의 분석을 토대로 몇 가지 자신의 관점을 덧붙인다. 타이센은 그의 책『역사적 예수』(1996)에서 예수의 주기도문의 종교사적 배경으로서 묵시문학 이외에 예언문학과 전통 유대교에서의 왕으로서의 하나님 이해를 강조한다. 누가의 전승이 예수의 진정한 말씀에 더 가깝기 때문에, Q 공동체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과의 긴장을 보존하고 있다. 타이센은 예레미아스의 분석을 받아들여 주기도문의 2인칭 단수 기도형식은 미래의 활동을 드러내고, 1인칭 복수 형식은 현재의 활동을 나타낸다고 간주한다. 여기에서 시간적 긴장을 강조한 것은 새로운 시대와 옛 시대, 낡은 세계의 권력들과 새로운 세계의 권력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다. 또한, 역사적 삶에서의 일상생활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해방의 관점에서 재조명된다. 이러한 전제 하에 그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활동이 인간의 윤리적 용서 활동의 조건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타이쎈은 묵시문학과 다른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전승의 신학적 특성과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대상(référent)을 제시한다.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묵시문학적 전승에서 선포된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을 예언자적 문학형식에 의해서 선포한 메시지이다. 예레미아스와 페린과 달리, 여기에서 타이센은 하나님 나라의 지시대상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이중성이라고 주장한다.

홀슬리(R. Horsley)는 예레미아스가 아람어에 의해 원래의 주의 기도를 재건한 것이 '영성화'(Spiritualizing)와 개인주의적 해석을 산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특히 누가가 '빚들'을 '죄들'로, '용서하다'의 과거형을 현재형으로 바꾸고, 특정한 죄나 빚을 일반화시키게('모든 사람의 죄를')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태도 예전적인 요소들을 첨가함으로써('하늘에 계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다만 악에서 구하옵시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예수의 삶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요구와 하나님 나라의 지시대상(référent)의 구체성의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였다고 간주한다. 특히 홀슬리에 의하면, 마태복음에서의 '죄들'을 사회경제적인 의미의 '빚들'로 간주하여야 하고, '용서한다'의 희랍어는 누가 4:18과 이사야 61:1에서의 명사형(자유)처럼 포로들의 석방과 박해받은 자들에 대한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것은 경제적인 빚과 법적인 의무로부터의 면제의 의미를 포함한다. 또한 '내일의 빵'이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빵이건, 주의 기도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주의 기도의 간구는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 농부들이 직면하는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빚으로부터의 해방과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식의 제공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홀슬리가 이러한 사회경제적 또는 정치경제적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해석의 거점을 양식사비평에서의 원시교회의 '삶의 정황'이 아니라 갈릴리의 지정학적 환경과 '지역사회'의 삶의 자리에서의 사회경제학적 차원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종말론적 지평을 그 도래의 시간성에 기초하여 개인적이고 영적인 측면에서의 윤리를 도출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혁신적 변혁의 구체성으로 확정하고 윤리와의 관계를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종말론은 지역사회의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행위의 요구에 의해서 구체화되고 완성될 수 있다고 간주하였다.

특별히 최근에 크로싼(John Dominic Crossan)은 주기도문의 일상생활의 필요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그 종교사적 배경과 하나님 나라의 특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크로싼은 그의 책『역사적 예수: 지중해의 유대 농부의 삶』(1991)에서 예수의 주기도문의 종교사적 배경으로서 지혜문학과 농민과의 유대성(紐帶性)을 강조한다. 예수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일용할 양식을 강조한 것은 현존 사회질서의 도덕성을 급격히 비판하는 윤리적 완전성, 지금 여기의 삶의 방식, 그리고 자유, 정의, 덕의 도덕적 지혜를 강조하는 지혜문학 전통에서의 하나님 나라와 스토익적-견유학파(Stoic-Cynicism)가 강조하는 자연의 평범한 삶의 리듬과 같은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필요와 관계 있다. 이것은 예수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눅 11:9-10=마 7:7-8), '씨뿌리는 자'(막 4:3-8=마 13:3b-8=눅 8:5-8a), '염려에 반대하여'(눅 12:22-31=마 6:22-33)에서 드러나듯이, 주기도문에서 일상생활에서의 음식과 빚에 대한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한다. 또한 종말론과 윤리에 관해서 그는 마 6:10-11절에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활동의 신학과 인간의 인간에 대한 활동의 윤리 사이에는 연속성이나 인과성(因果性) 보다는 동시성과 상호성이 주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신학과 윤리의 밀접한 상호관계는 예수의 '용서에 대한 용서'(막 11:25=마 6:14-15=눅 6:37=마 7:1-20), '판단에 대한 판단'(눅 6:37a=마 7:1-20), '척도에 대한 척도'(눅 6:38bc=마 7: 2b=막 4:24b)에서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또한, 크로싼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규정짓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회적 전승의 특성과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대상을 제시한다.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는 가신계급에 속하는 식자층에 의해서 형성된 '大전통'(The Great Tradition)의 '선포된 묵시문학'(proclaimed Apocalypses)이 아니라 농촌 계급에 의해 형성된 '小전통'(The Little Tradition)의 '실행된 묵시문학'(performed Apocalypses)을 통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역사적 평가에 관해서는, 주기도문 전체는, 그것이 마태나 누가의 것이든 혹은 {열 두 사도들의 가르침』(didache)의 것일지라도, 예수의 진정한 말씀이 아니라 유대교와 다른 기독교의 정체성이 확립된 원시기독교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요약한 문서로서 이해하였다. 그는 특히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문화적 차원의 지시대상을 헬레니즘의 지중해 전반과 관련된 거시적 수준(macrolevel)과, 식탁교제에서 제시된 유대교의 묵시문학적 지혜문학적인 민족주의의 중시적 수준(mesolevel)과, 공동체의 안/밖의 정결/비정결의 기준을 적용하는 음식에 관한 규정과 관련된 미시적 수준(microlevel)을 나누어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준거대상에 대한 세 가지 관점에서 공통되는 특성은 하나님 나라의 지시대상은 왕이 아니라 지배자들, 지역이 아니라 권력과 지배가, 장소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서의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위에서 홀슬리와 크로싼이 페린의 해석의 틀을 정당하게 비판하고 주기도문의 정치-경제적 차원을 복원하였지만 종말론과 윤리에 대한 보다 역동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비판적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들은 주기도문의 경제적 측면이나 일상생활의 염려로부터의 해방의 측면을 고찰하기 위해서 몇 가지 단어를 재해석하고 사회적 정황이나 종교사적 배경을 결합시켰을 뿐, 주기도문 전체에서 기능하는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를 구조론적으로 다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홀슬리는 마 6:10-11절의 사회-경제적 차원이 의미 전체를 결정시키는 것처럼 해석하였기 때문에 정치적 차원과 종교적 측면이 경제적 차원과 접합하게 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주의 기도 전부와 연계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크로싼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의 성격을 실행된 지혜전승과 관련시켰고 식자층의 大전통이 아니라 농민계층과 연계된 小전통의 실행된 묵시문학에 의해서 재해석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전제 때문에 크로싼은 마 6장 10-11절의 역사적 예수의 것이 이 이외의 주기도문의 다른 부분들과 접합하여 형성된 새로운 구조의 성격을 규명하지 못하였다. 결국 주기도문의 전체 특성에 입각하여 종말론과 윤리의 관계에 대한 구조론적 연관성은 예수의 진정한 말씀에 대한 통시적 구분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강조 때문에 연구되지 못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에 대해서 사회 전체와 관련짓는 방식과 지시대상에 대한 보다 세련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제시하는 윤리적 성격을 규정짓는 방식의 문제가 새롭게 제시된다. 홀슬리와 크로싼은 둘 다 당시 농민 대중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가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대상을 규정짓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홀슬리는 이것을 묵시문학적인 성격으로 강조하면서 사회 구조적 변혁적 차원을 중요시하는 반면, 크로싼은 지혜문학에서의 염려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면서 삶의 질적인 자유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이 두 학자들은 주기도문의 전승이 현재의 형태로 변화하면서 역사적 사건이 새로운 구조를 창출하게 되었던 과정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예수의 원래의 말씀이 사회 구조이든 삶의 방식의 질이건 기존의 문화를 변형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기독교의 생산양식으로서의 새로운 구조를 형성시켰던 문화와 역사의 접합적 과정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려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대상을 예수 당시 시대의 종교적 배경에 의해서 규정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는 새로운 사회구성체를 형성하려는 예수의 실천에 의해서, 그리고 주기도문 전체의 의미 구조가 보다 지속적으로 형성시켜 왔던 사회구성체의 접합적 구조로서 제시되는 생산양식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홀슬리와 크로싼은 둘 다 주기도문의 본문과 그 현실적인 대상을 직접 연결시킴으로써 언어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소박한 반영론을 전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홀슬리는 예수 자신의 진정한 말씀과 원시기독교의 해석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당시의 지역사회의 농촌 경제의 문제들에 대해서 의미 있는 부분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반면 크로싼은, 다른 예수의 최고층의 전승들과 연계시켜서 주기도문에서의 진정한 말씀의 부분을 추출하고 이것을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부터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분하여서, 전자를 지혜문학과 스토익적 - 견유학파에서의 일상생활의 문제에 대한 강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의 진정한 말씀의 부분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차적인 지시대상으로서 예수의 실천과 연관되고, 이 예수의 실천을 매개로 그 이후의 현재의 주기도문의 의미 구조는 기독교 공동체가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구성체의 접합구조로서의 생산양식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말씀과 현재의 주기도문 사이의 엄격한 통시적(通時的)인 시간 구분이 아니라, 이 둘 사이에는 단절과 연속, 사실과 허구가 공존한다는 전제 하에 예수의 진정한 말씀 속에서 오히려 허구성을, 원시교회의 해석에서 오히려 사실성을 고찰할 수 있는 공시적(共時的)인 시기 구분을 지향하는 역사기술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접근방법에 수반되는 사회관과 역사관, 그리고 그 인식론적 근거를 보다 명료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III. 알튀세르와 라깡의 연구방법론의 개괄적 이해

우리는, 위의 주기도문의 전체의 성격과 하나님 나라의 지시대상, 역사기술방법에 있어서의 공시성과 통시성의 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본문과 현실을 매개하는 방식에 대해서 어떤 인식론적 전제를 재설정하고, 역사의 해석에서 시기 구분을 하게 되는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는 역사관(역사기술방법)과 사회관과 이에 대한 명료한 인식론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위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인 틀을 알튀세르(L. Althusser)와 라깡(J. Lacan)의 구조주의로부터 빌려오고자 한다.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프로이드와 라깡의 '중층결정'(surdétermination)의 개념을 빌려와서 사회구성체를 복합적이고-불균등하게-구조화된-결정된 구조로 제시하였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지시대상'(référent)으로서 제시되는 복합적인 第실천들의 양식으로 이루어진 사회구성체를 설명하고, 주기도문의 의미 구조가 드러내려고 하는 '지시'(référence: 또는 대상지시)의 세계를 생산양식으로서 파악하는데 사용하게 될 것이다. 알튀세르에 의하면, 사회구성체는 생산관계를 그 기반으로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론적 실천의 제요소들로 구성된 복합적 통일체의 구조이다. 여기에서 알튀세르는 '실천'(le pratique 또는 실천양식)을 인간 노동(노동력)이 특정한 노동수단들을 통하여 특정한 1차 자료인 노동 대상을 변형시키는 생산과정으로 이해하였다. 우리는 또한 라깡의 정신분석학적인 경험의 세 가지 분류체계인 '상징계'(le Symbolique), '상상계'(l'Imaginaire) '실재계'(le Réel)에 근거해서 주기도문이 지시하는 사회구성체의 중층결정된(surdéterminé) 구조를 설명할 것이다. 여기에서 언어, 개념체계, 문화적 규율로 구성된 상징계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면서 이것의 파괴를 위협하는 비동일성의 원리로서 잠재되어 보이지 않는 차이의 순수 기표 자체인 실재계에 근거해서 의미작용을 생산한다. 또한 상상계는 6개월에서 18개월 된 아이가 거울에 비치는 실상과 그 像과의 관계에서처럼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관계를 나타낸다. 이것에 의해서 개인은 자발적으로 상징계에 종속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라깡은 경험주의나 관념론과 소박한 반영론과 달리 상징계가 현실을 구조화하고, 이 상징계는 실재계를 통해서 그 가능성의 조건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모순을 상징계를 통해서만 알 수 있고 실재계의 모순을 결코 표상할 수 없다.

우리는 라깡의 이러한 정신분석학적인 개념을 알뛰세르가 사회분석과 본문 분석에 적용하기 위하여 형성된 사회관과 역사관을 수용할 것이다. 알뛰세르는 라깡의 프로이드 해석에 의거해서 프로이드의 무의식에서는 "모순의 부재가 모든 모순의 조건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사회는 실재로서 기능하는 사회적 적대를 야기시키는 피지배 이데올로기나 현실적 모순을 배제함으로써 상징적 질서를 작동시키게 된다. 이러한 기제를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인식에 대한 과학과 상식, 이전의 사회적 구성체와 새로운 구성체와의 '인식론적 단절'(coupure epistemologique)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수용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위에서 논의한 구조주의적 사회관과 인식론에 근거하여 형성된 알튀세르의 '문제틀'(problématique) 개념을 수용할 것이다. 문제 틀의 개념은, 문제를 제기하는 인식의 장을 설정함으로써 문제의 위치의 정확한 장소를 발견하고, 사용된 개념들에 대한 규정들을 탐구함으로써, 그 개념들이 지시하는 대상들의 발생 조건들을 보다 폭넓은 시기 구분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위의 두 방법론적 개념들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를 기술할 때 시간성의 통시적 관점에서 서술하기 보다 역사적 계기들의 연관성을 공시적 관점에서 서술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연구하는 새로운 문제 틀을 설정함으로써 예수의 진정한 말씀을 기준으로 도출되는 성서본문의 의도된 의미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구조가 현재의 보이는 구조를 생산하게되는 과정을 탐색하는 '징후적 독해'(lecture symptomale)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우리는 위의 이론과 그 관점에 근거해서 우선 성서 본문이 그 자체의 정합한 의미 구조를 가지고 현실을 구조화하고 있는 '중층결정된'(surdéterminé) 논리를 내포한 상징적 질서의 구조라고 제시하려고 한다. 또한 우리는 예레미아스와 크로싼이 역사적 예수와 원시기독교의 관계를 통시적 관점에서 엄격히 구분하여 제시한 연구 결과를 참고하지만, 이 두 관계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성서 본문과 연관된 구조의 요소들의 공시성(synchronie)을 통시성(diachronie)보다 우선시함으로써 본문의 의미 구조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주기도문이 원시기독교의 정체성을 나타내준다는 크로싼의 견해를 받아들여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전체가 제시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자기 정체성의 구조적 성격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마태복음 6:9a-13절 전체에서 역사적 예수의 원래의 말씀을 추출하여 여기에서 종말론과 윤리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원래의 말씀의 구조론적 접합점으로서 예수의 실천을 제시하고, 이를 매개로 해서 본문 전체가 제시하는 의미생산 방식과 그 결과로서의 의미 구조를 설정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의미 구조가 제시하는 '지시'로서의 생산양식에서 하나님의 생산과정에서 제공하는 실천과 인간의 생산과정에서의 실천이 어떻게 접합되는지 살펴봄으로써 종말론과 윤리와의 그 관계를 재설정 하려고 한다.

 

IV. 본론 : 구조주의적 분석과 해석

우선 주기도문의 배열에 있어서 그 특징을 보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구조주의적 통찰을 얻게 된다. 예레미아스의 견해에 의하면 누가의 짧은 기도를 기준으로 그 배열의 구조와 비교하면 마태가 각 기도의 형식의 마지막 부분에 자신의 해석을 첨가하였다.1 또한 디다케 8 : 2b (Didache 8:2b)에는 송영 부분에서 나라가 빠져 있는 형식("권능과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함께 할 지어다")과 달리 '나라'가 첨가되었다.2

 

1) 호격 : 아버지여 - '하늘에 계신'

2) 2인칭 단수 :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3) 1인칭 복수 : 양식과 하나님과 인간에게 빚 탕감, 그리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4) 3인칭 단수 송영 :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 속할 지어다. - '나라와'.

 

종말론과 윤리의 관계를 실천의 차원에서 고찰하려는 우리의 과제를 위해서 우리는 마태복음의 내용을 하나님의 활동과 인간의 활동의 연결점을 다음과 같이 구조론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3

 

1) 아버지를 부름 - 일용할 양식 - 영광 : 식탁교제의 실천

2) 이름 거룩 - 빚 탕감 - 권능 : 선교의 연대 실천

3) 나라의 임함 - 시험에 들지 않음 - 나라 : 치료와 성전에 대한 상징적 실천

 

또한, 우리는 예수의 삶에 있어서 실천을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대상으로 다음과 같이 각각의 기도의 내용과 구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1) 예수의 개방된 식탁교제 형성의 실천 : 예수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친밀감과 권위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내면서 아무런 매개 없이 부를 수 있도록 하였다. 아바로 우선 부를 수 있는 자들은 예수를 적극적으로 따라 다녔던 당시의 하류층의 땅의 백성들인(amm? h?-'?res), 가난한자들(11:28, 눅: 7:22), 지극히 작은 자(마 25:40)들, 소자들(막 9:42), 죄인들, 소작료 징수인 세리들, 미혼의 여성들(막 2:16=마11:19=눅 15:1, 마 21:32)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4 당시의 사회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적인 사회로서 후원자와 피후원자를 중개자가 이를 매개하는 후원제제도(patronage)에 기반한 상류층과 하류층의 이원계급 대립적 권력 구조로 이루어졌으므로, 국가에서는 맨 위에 정치 지배자인 황제와 종교 지배자로서 대제사장을, 그리고 가정에서는 아버지를 그 후원자로 피후원자들인 백성들과 유대교 이스라엘인들과 자녀들을 각각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예수는 후원자인 세상의 어떤 황제나 대제사장이나 아버지의 후원자를 인정하지 않았고(마 23:8-11), 어떤 중개자들(직업 군인들, 세리들, 청지기들)의 도움 없이 피후원자들(당시의 피지배 계급인 농민, 장인, 비천한 계급, 그리고 소모적 계급)이 친밀하고 신뢰 받을만한 아바 하나님으로 부르고, 이들이 명예와 수치의 문화와 가치체계를 넘어서 아무 차별 없이 식탁교제에 참여하여 함께 식사할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제공받기를 기도하셨다. 5

2) 적빈자들(赤貧者 : destitudes)인 가난한 자들과 농민계급과의 연대의 실천 : 당시에 빚진자들은 소작농으로 팔려가거나 떠돌이 방랑자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는 이들을 향하여 "가난한 자(적빈자들)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b)라고 선포하셨다. 이들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물질적 재산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억압받고, 갇히고, 애통하고, 슬퍼하고, 포로된자들, 소망 없는 사람을 나타낸다.6 그리고 이들이 배낭이나 신발이나 지팡이가 없이 둘이 짝이 되어 집 있는 자들의 영접을 받아 병을 무상으로 치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것을 명령하셨다.(눅 10:2-11) 이와 같은 방랑하는 선교는 당시의 후원자제도나 중개자에 의한 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삶의 스타일을 제시한다. 예수는 이들이 연대하여 새로운 삶의 스타일과 가치를 가진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당시의 지배계급인 부자들과 지주, 대상인들이 고리대금으로 이자를 받는 것에 대해서 이들이 빚을 탕감하게 되는 회개의 활동에 의해서 하나님의 용서가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래서 이러한 부채탕감의 활동의 상징적 활동으로서 적빈자들인 방랑자와 집이 있는 가난한 자들 사이의 연결망(networking)을 형성하여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실천하실 것을 제안하였다.7

3) 영적인 나눔을 위한 무상의 치료/성전에 대한 상징적 활동의 실천 : 예수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부정한자들로 취급된 비천한 계급과 소모적 계급의 사람들에게 사회에 복귀하도록 무상으로 그들의 병을 고치셨고, 내일의 일용할 양식에 대한 두려움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귀신들린 상태에 빠진 주로 농민계층의 사람들도 치료하셨다. 그래서 이 두 집단들이 어떠한 중개자나 후원자의 매개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영적으로 능력을 받아 치료되는 경험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개방된 식탁교제의 경험을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의 영성훈련의 기초를 이룩하시려고 하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종교지도자들의 사제집단들과 충돌하면서 상징적으로 성전을 파괴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갱신을 상징하는 성전 파괴의 예언을 하셨기 때문에 로마의 군인들로부터 체포되어 민중을 선동하고 가이사에게 충성을 거절하는 혐의로 십자가 처형당하셨다. 그는 성전-국가와 다른 이스라엘의 갱신된 사회질서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진정으로 새롭게 이루어질 것을 원하셨다.8

위의 하나님의 활동과 인간의 활동의 접합점으로서 예수의 실천을 고려하여서 주기도문의 핵심점을 주석하면 다음과 같이 주석할 수 있을 것이다.

1) 아버지를 부름 -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비천한 계급과 소모적 계급)을 식탁에 차별 없이 초대하여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당신을 친밀하고 신뢰받을 아바로 부르게 되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옵소서.

2) 이름 거룩 - 집이 있는 사람들은 유랑자처럼 떠돌아다니는 빚 진자들을 탕감한 것처럼, 지배계층이 우리 가난한 자들과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하게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에게 빚진 것들을 용서하셔서 우리를 구별된 영의 능력에 의해 인도되는 공동체를 만드시옵소서.

3) 나라의 임함 - 우리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시험이나, 외국 침략으로 인해 참여하게 되는 메시야 왕국을 위한 결정적인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악한 영의 활동을 제거하도록 우리를 치료해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직접 다스리게 하옵소서. 지금 예루살렘의 성전이나 황제가 중개되어 다스리는 나라를 철폐하시고, 당신이 직접 이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소서.

이제 우리는 위의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대상'으로서 예수의 실천을 제시한 것을 고려하여 주기도문의 의미 구조가 제시하는 '지시'로서 사회구성체의 구조적 특성(생산 양식)을 알뛰세와 라깡의 개념들에 의해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주기도문'(Lord's Prayer)의 의미 구조

A. 9b-10: (하늘에 계신) 아바 아버지를 부름, 이름 거룩, 나라의 도래, (뜻의 이룸)

B. 11-12: 일용할 양식과 하나님과 채무자로부터 빚 탕감

-B. 13a: 시험에 들지 말 것 (악으로부터의 보호)

A'. 13b: 축도-- (나라), 권능,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속함.

 

이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지배의 도래와 그 나라의 경영방식을 생산과정에서의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제안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여짐(노동수단)에 따라 그의 뜻(노동력)이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 그 자녀(가난한자 지극히 작은 자)와의 관계와 채권자와 채무자와의 관계(생산관계: 노동대상의 요소들)를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시켜서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가치를 산출하는 경영방식과 아바<Abba> 아버지로서 하나님이 자녀에 의해서 하나님의 지배가 영원하게 될 수 있도록 권능과 영광(생산품)을 산출하게 한다.

여기에서 대체로 A와 A'는 하나님의 지배의 생산과정을 주로 나타내는 반면, B와 -B는 인간의 유통의 생산과정을 기술한다. 특히 B에서는 채권자는 채무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일용할 양식과 빚 탕감의 두 가지 요소들에 의해서 변형시킨다. 이를 소위 '자본의 공식' '화폐-상품-화폐'(M--C--M')9를 유비적으로 적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의 경제적 공식이 성립된다 : '빚 탕감 - 양식 - 빚 탕감' (D-F-D').

채권자는 채무자와 채권자 둘 다 일용할 양식(F)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D) 한다. 이것은 마치 자본가가 생산을 위해 원재료인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빚 탕감을 하고 일용할 양식을 사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마찬가지로 자본가는 구입한 원재료에 의해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서 다시 이것을 시장에 판매하여 잉여가치를 포함한 화폐(자본)로 만드는 것처럼, 이 채권자는 빚 탕감에 의해 마련된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빚 탕감을 얻게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는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는 것,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빚 탕감을 받는 것으로 각각 변용되지만, 그 가치는 인간간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변형시키면서 형성된다. 이것은 노동자가 노동수단을 통하여 노동대상에 변형을 가하여 새로운 생산품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빚 탕감과 일용할 양식에 의해서(노동수단) 채권자(노동력)가 자신과 채무자와의 관계(노동대상)에게 변형을 가하여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그의 권능과 영광을 산출하는 생산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생산과정과 인간의 생산과정은 각각 소유관련과 전유관련의 두 가지 관계를 내포한다.10 신뢰와 권능을 가진 아바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A에서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의 자녀 인간에게 그의 이름을 사용하고 그 뜻을 알아서 실행하기를 원하신다는 의미에서 인간에게 그의 나라의 운영의 책임(전유관련)을 위임하신다. 또한 A'에서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영원히 권능과 영광과 함께 소유하시기 원하신다.(소유관련) 다른 한편 B와 -B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둘 다 일용할 양식만을 소유하기 위해서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빚을 탕감함으로써 법적 전유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채권자는 이러한 일용할 양식의 소유관계와 빚 탕감의 전유관계의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빚진 것을 탕감 받게 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 뜻을 이루는 전유관련을 성립시키게 된다(전유관련). 이러한 전유관련은 유혹과 악에 의해서 전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의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그의 나라가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도록 해야한다(소유관련).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과 인간의 생산과정은 상호 침투하여 접합되고, 소유관련과 전유관련을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생산과정에서 자연인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의 경영의 책임을 위임받는다. 그래서 인간은 여기에서 아바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생산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또한 인간의 생산과정에서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빚의 탕감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빚의 탕감과 접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산과정에서 변형의 각각의 계기에서는 하나님의 생산 활동이 이전에 연루된 인간의 소유관련과 전유관련을 절단하게 되는 계기로서 참여하게 된다.

이 본문의 의미생산 과정을 라깡의 세 가지 정신분석학적 경험의 분류의 범주에 의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A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서 부름으로써 명명자는 그와 친밀성과 권위와 신뢰를 수용하는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갖게 된다. 이것은 상징계의 한 기표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지배의 상징적 질서에 돌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땅에 있는 현실적인 아버지와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면서 사회적 적대의 실마리로서 실재를 숨기지만 이것은 실재계의 고정점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B에서는 위임받은 하나님의 자녀 인간은 '상징적인 것'(또는 상징계)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경영방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한 개인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일상적 삶이나 다른 세상의 나라의 권능으로부터 분리될 것을 요구한다. 반면 -B에서는 인간은 두 가지 하나님 나라의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우선 여기에서 위의 두 가지 하나님과 인간의 소유관계와 전유관계를 개인에게 접합시키는 '상상적인 것'(또는 상상계)의 기능이 작동된다. 개인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 일원이 되도록 하나님의 생산활동의 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다른 한편 악의 세력과 적대적 관계에 의해서 순수 기표로서의 하나님과 악과의 차이는 그 '실재'(또는 실재계)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위의 하나님의 나라의 경영 방식이 상징계에서 운용되도록 한다. A'에서는 송영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위의 의미생산과정에서 확정되는 중층 결정된 구조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상징적 질서를 확증하고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 보증의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영광과 권능이 이 중층 결정된 구조에서 지배적 역할을 담당하는 종교적 심급들이나 수준과 층위를 최종결정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기도문의 의미구조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로서의 생산양식은 세 가지 요소들과 두 가지 관련들로 구성된 구조를 이루게 된다. 상징계와 상상계와 실재계의 의미작용들이 복합되고,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영역들과, 하나님과 인간의 실천들이 중층 결정된 구조를 이룬다.

 

하나님의 나라의 중층 결정된 구조와 생산과정

A, A' B, B'

노동력 : 하나님의 뜻 채권자

노동수단 : 이름을 거룩하게 함 일용할 양식과 빚 탕감

노동대상 :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아바 하나님과 그 자녀 인간의 관계 채권자와 채무자

非노동자 : 소유관련과 전유관련

악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 악의 시험을 이김

생산품 :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성 ; 권능과 영광 (하나님 나라의 새 가치)

A. 상징계의 기표와 동일시 ; B. 상상계의 규칙 ;

-B. 실재계 ; A'. 상징계의 확증과 최종심급의 결정

 

V. 결론 :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

주기도문에서 아람어의 진정한 말씀을 복원함으로써 예수의 메시지의 종말론적 차원을 드러내주는 예레미아스의 결정적인 연구는 정치적 사회적 차원을 상실하였다. 그 이후 크로싼과 홀슬리의 비판적 연구는 하나님의 나라의 지시대상에 대해서 각각 문화적 코드와 정치 - 사회적 차원을 조명해 주었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원시기독교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에서조차 끝없이 낭송되는 이 주기도문의 구조론적 성격과 이것이 의미할 수 있는 사회적 비전(vision)의 구조론적 성격을 간파하지 못하였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기도문의 내적 구조와 예수의 실천의 핵심적 내용을 연결시키면서 그 주석적 재해석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매개적 재해석의 토대 위에 우리는 마 6:9b-13절의 완성된 형태로서의 주기도문이 당시의 원시기독교의 사회구성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다는 것을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우리는 알뛰세르와 라깡의 구조주의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이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라깡과 알뛰세르의 구조주의에 근거하여 주기도문을 중층 결정된 구조로 이해하게 될 때 생산관계(아버지와 그 자녀, 채권자와 채무자)가 종말론과 윤리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여기에서 종말은 부재(不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과 악과의 적대적 관계에 의해서 현실적 모순을 표출하면서 윤리적 효과를 산출하는 부재중(不在 中) 결과의 효과로서 윤리를 결정한다. 이 주기도문의 의미 구조에서 특히 A, B, -B, A'의 의미 생산과정에서 각각 상징적 동일시, 상징계의 차이의 법칙의 기제, 상상계의 작동과 실재계의 선과 악의 순수기표, 그리고 상징계의 확증의 단계를 밟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지배의 생산과정(A, A')과 인간의 유통의 생산과정(B, -B)에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부여하는 전유관련과 소유관련에 인간의 윤리적 실천이 관여하고, 인간의 채무자에 대한 전유관련과 소유관련에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실천이 연관됨으로써 종말론은 이전의 관련들과의 윤리적 절단의 계기에 의해서, 윤리는 종말론적 절단의 계기에 의해서 종말론과 윤리는 상호연관을 맺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주기도문의 중층 결정된 복합적 구조의 전체의 의미 생산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실천이 인간의 윤리적 실천을 최종결정 하게 된다.

21세기를 맞이하여 빚 탕감과 교회와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과제에 대해서 주기도문은 우리의 실천의 방향을 제시한다. 주기도문은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종말론과 윤리, 하나님의 통치방식과 인간의 실천, 경제와 정치가 서로와 서로를 맞물려 있는 상호접합적 구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주기도문의 종말론과 윤리는 예수의 실천에 대한 기억에 의해서 상호 연결시키도록 제안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그의 활동의 선명한 방향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계속 펼쳐가야 한다. 이 주기도문의 재해석에 따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지구화와 빚의 악순환의 조직적 악에 맞서서 하나님의 도래를 위한 경제정의를 재 설정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격한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인간끼리의 빚 탕감과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빚 탕감의 관계는 구조론적으로 새로운 사회구성체를 형성하는데 필요불가결 하다는 것이 우리가 제안하는 결정적인 결론이다. 주기도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확신이 빚 탕감의 윤리적 명제와 대화의 공간에서의 만남을 우리의 삶 속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각주】

1) 예레미아스,『신약신학』, 286-289.

2)『디다케』, 61-63.

3) Bruce Chilton, Pure Kingdom : Jesus' Vision of God (Grand Rapids: W. B. Eedrdmans Pub., 1996), 56-60. 쉴톤은 마태의 첨가는 첨가 직전의 예수의 말씀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기도의 첫 부분의 세 가지 아버지를 부름, 이름 거룩, 나라의 임함(9절-10a))과 나머지 세 부분의 일용할 양식, 빚 탕감, 시험에 들지 않음(11-12)이 각각 의미상 연결된다고 본다. 필자는 여기에 송영 부분의 영광과 권능과 나라가 각각 구조론적으로 연결되고, 예수의 중요한 세 가지 실천을 연결시켰다.

4) 예레미아스,『신약신학』, 168-174..

5) 크로싼은 렌스키(G. E. Lenski)의 고대농경사회의 9 단계의 계급설과 크르와(G. E. M. de Ste Croix)의 후원자 제도(patronage)에 의거해서 당시 팔레스틴 사회를 기술하려 하였다. 렌스키는 경제적 특권과 소유에 따르는 계급, 명예로 인한 특권에 따르는 신분, 정치적 힘에 따르는 파당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계급을 분류하였다: 상류 지배층으로 통치 계급, 가신 계급, 상인 계급, 제사장 계급, 그리고 하류 피지배층으로 농민, 장인, 비천한 계급, 소모적 계급. 또한 크르와는 제국 전체를 가정의 후원자인 아버지가 피후원자인 아내와 자녀들을 거느리는 모양의 연장으로 이해하였고, 특히 가신계급과 같은 여러 종류의 중개인들이 이 후원자와 계급과 피후원자를 밀접히 연결시키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사회와 같은 중산층이 존재하지 않은 이원 계층구조로 보았다. Crossan, The Historical Jesus, 43-71; John Dominic Crossan, Jesus: A Revolutionary Biography (Sanfrancisco: HarperSan francisco, 1994), 54-74.

6) 가난한 자들에 관해서는, 요하킴 예레미아스,『신약신학』, 168-174; Crossan, Historical Jesus, 470-474.

7) Crossan, 윗책,  Crossan, Jesus, 95-122.  

8) Crossan, The Historical Jesus, 354-360; Crossan, Jesus: A Revolutionary Biography, 123-158; E. P. 샌더스,『예수운동과 하나님나라: 유대교와의 갈등과 예수의 죽음』, 117-172를 볼 것.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실천과 십자가 처형의 관계에 관해서는, 크로싼이 상징적 성전파괴를 중요하게 언급하고, 샌더스가 종말론적 성전 파괴 예언을 강조한다. 반면 홀슬리는 예수가 성전 앞에서 예언하면서 언급한 하나님의 집을 이스라엘로 간주하고, 묵시문학적 배경에서 이 예언을 이해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역사 현실에서의 새 이스라엘의 건립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활동으로 보았다. 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Horsley, Jesus and the Spiral of Violence, 385-394.   

9) K. 마르크스,『자본론 I』[상] 김수행 역 (서울: 비봉출판사, 1989), 183-194.

10) 전유관련과 소유관련은 알뛰세르의 제자 발리바르(E. Balibar)가 맑스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구조주의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한 그 양식의 관계를 지배하는 두 가지 요소들이다. 그는 맑스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1) 노동자, (2) 생산수단: i). 노동대상, ii) 노동수단, (3) 비노동자: A) 소유관련, B) 현실적 또는 물질적 전유관련의 다섯 가지 요소들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는 소유관련에서 자본가가 노동력이외에 생산물과 생산수단과 노동을 소유한다. 전유관련에서 자본가는 생산의 조직자로서 생산수단을 통제함으로써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전유하게 된다. 이 두 가지 관련들간의 상호의존적인 결합의 복합성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조를 결정한다. 필자는 이러한 생산양식의 구조 개념을 주기도문의 지시하는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설명하는데 적용하였다. 에티엔 발리바르, "제3부 사적 유물론의 기본개념,"『자본론을 읽는다』, 272-279.    

 

【 참고도서 】

김기봉, 1997. "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세계사상}. 겨울 제 1권 3호. 서울: 동문선: 316-339.

김덕기, 1996. "예수의 비유(parable)의 장르 규정에 대한 구조주의 비평의 공헌." {현대와 신학 제21집}. 서울: 연세대 연신원, 1996. 6: 235-269.

나채운, {주기도 ·사도신경· 축도}(개정판).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881.

나요섭, "누가복음에 나타난 죄 용서를 위한 회개로서의 빚 탕감에 관한 연구." {신약성서의 경제관},한국신약학회 편. 서울: 한들 출판사, 1998.

로흐만, J. M. 1995.『기도와 정치}. 정권모 옮김. 서울: 기독교서회.

마르크스, K.『자본론 I』. 1989. [상] 김수행 역. 서울: 비봉출판사.

베스트, 토마스 F. 1996. "하나님께로 돌아가라-소망 안에서 기뻐하라!: WCC 제8차 총회의 주제에 대한 접근,"『로고스』. 서울: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대원 신학과 학우회: 253-265.

보프, L. 1986.『주의 기도},이정희 역. 서울: 한국신학출판소.

비트머, 페터. 1998.『욕망의 전복}, 홍준기 이승미 역. 서울: 한울 아카데미.

알뛰세르, 루이. 1997.『맑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서울: 백의.

_____, "맑스와 프로이드에 대하여." 1991.『맑스주의의 역사}, 윤소영 엮음. 서울: 민맥: 99-124.

______,『자본론을 읽는다』. 1991. 김진엽 옮김. 서울: 두레.

에반스, 딜런. 1998.『라깡 정신분석 사전』. 김종주 외 옮김. 서울: 인간 사랑.

예레미아스, 요하킴. 1990.『신약신학』. 서울: 새순출판사.

이형기, 1999. "제8차 하라레 WCC총회 보고."『장신원보: '99.3.9.

정양모 역주, 1993.『디다케 :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서울: 분도출판사.

조성애 엮음, 1996.『사회비평과 이데올로기 분석}, 서울: 백의.

페린, 노만. 1992.『예수의 가르침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서울: 무림출판사.

홍준기, 1994. "정신분석학과 맑스주의: 라깡과 알뛰쎄를 중심으로."『창작과 비평}, (1994 여름) 제 22권 제 2호, 357-368.

Chilton, Bruce. 1996. Pure Kingdom: Jesus' Vision of God. Grand Rapids: W. B. Eedrdmans Pub.

Crossan, John Dominic. 1991. The Historical Jesus: The Life of A Mediterranean Jewish Peasant. New York: HarperCollins.

______, 1994. Jesus: A Revolutionary Biography. Sanfrancisco: HarperSan francisco.

Horsley, Richard A. 1987. Jesus and the Spiral of Violence: Popular Jewish Resistance in Roman Palestine. San Francisco: Harper & Row.

Perrin, Norman. 1976. Rediscovering the Teaching of Jesus. New York: Haper & Row.

Schüssler-Fiorenza, Elisabeth. 1995. In Memory of Her: A Feminist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Christian Origin. New York: Crossroad.

Theissen, Gerd and Merz, Annette. 1998. The Historical Jesus :Comprehensive Guide John Bowden. tr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