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된 기도에서 나오는 영적 능력 
(3:21-22, 15-17) 





 

세 번째 일화(Episode)(눅1:5-4:15절)인 눅3:21-22, 15-17절은 눅3:1-4:15절에 속한다; 21-22절은 요한이 예수께 준 세례에 대해서, 15-17절은 오실 분에 대한 세례 요한의 설교를 말한다.

다른 복음서들이 말하는 예수 세례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 볼 때, 21-22절은 누가적인 관점을 더 분명 하게 드러낸다.

(1) 마3:13-17절에 속한, 14-15절은 정경적인 전승 어디에서도 보이지는 않지만, 최초 저자가 무엇을 중 요하게 강조하고자 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아마도 예수가 죄인이었다는 비난에 대해 방어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가 죄사함을 받기 위해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은 것은 그가 죄인임을 말한다(참 고. 마3:2, 6, 8절). 하지만, 마태는 히브리서를 가지고 복음서 내에 반영된 이와 같은 문제와 씨름한다 (Jerome, Against Pelagius, 3:2).

주의 모친과 주의 형제들이 예수께 말했다. "죄 사함을 위해 세례 요한은 세례를 베푼다; 우리 도 가서 그에게 세례를 받자." 그러자 예수가 저들에게 말했다, "내가 어떤 죄를 지었길래 내 가 가서 세례받아야 하느냐?" 내가 죄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에는 이런 내용들이 없다.

(2) 요1:31-34절에 의하면, 세례자는 예수에게 임한 성령 강림때문에-아마도 그의 세례 시에-예수의 정 체를 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에 대해 이스라엘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누가복음 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3) 마가는 성령 강림이 수반된 예수의 세례를 말한다. 이 성령 강림은 사탄이나 악마적인 힘과 싸울 수 있게 하는 하나님 아들이라는 능력부음이다(참고 막3:22-27절). 누가 관점은 마태나 요한보다는 막 1:9-11절에 더 가깝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가 성령 강림을 능력과 관련해서 말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관점이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누가는 예수 사역을 제2 이사야의 섬기는 주의 종의 역할로 본 다(참고. 4:16-21). 누가는 세례 사건과 능력 받음을 구분한다. 능력 받음은 분명히 기도와 연결된다. 이 러한 누가의 세부적인 시각은 지금 검증되어야만 한다.

예수 세례를 단지 배경으로만 말하고 있는 눅3:21-22절은 환상과 해석된 말로 이루워진 기도-장면이다. 저자는 예수 세례에 대한 이야기를 기도 일화로 바꾸고 있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에서 기도를 대단히 강조한다(예. 3:21; 5:16; 6:12; 9:18; 28-29; 11:1; 22:32, 39-46; 23:34, 46). 누가가 말하는 기도의 특징은 환상과 소리를 동반한다. 예를 들면 눅9:28-36절은 예수가 기도하는 동안 천상적인 변모-모세와 엘리야 가 나타남-가 일어났으며, 해석된 소리가 연이어 나온다: "이는 내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참고. 행10; 12:5이하; 1:14 첨가. 2:1이하; 눅22:39-46; 1:10이하).

눅3:21-22절을 보면, 세례 후 예수가 기도할 때 천상적인 변모가 있었다: 성령이 비둘기의 형체로 그 위에 임하였다. 그레코-로마(Greco-Roman) 사람들은 누가 이야기를 운명의 선언을 분별하기 위해 로 마 사람들이 사용한 그 방법을 반영한 것이라 여길 것이다. 이들은 새의 비행을 통해 나타나는 징조를 운명의 선고로 여겼다. 예를 들면, 로물러스(Romulus)에 이어서 누마(Numa)가 어떻게 왕으로 선택되었 는가를 말하고 있는 플루타크(Plutarch)를 보면, 왕으로 선택받은 누마는 자기 왕에 대한 권위가 인정 되기 전에 먼저 하늘로부터 재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두머리 점쟁이이는 누마로 하 여금 베일을 쓴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하고,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자기 뒤에 서게 한다. 그러 면 이 우두머리 점쟁이는 크게 소리질러 기도한다. 그리고는 새 혹은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징조들 을 관찰하기 위해서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적합한 새들이 다가올 때, 누마는 왕복을 입고는 "신들의 가장 사랑받는 자"로서 인정된다. 누가 이야기에서 예수 변모의 징조도 이러한 사상 체계 속에서 이해 되어져야만 한다. 그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가는 새, 비둘기, 하늘에서 들려오는 해석의 소리로부터 정확 하게 분간할 수 있다.

지중해 세계에서 비둘기는 "사랑으로 주는 신적 축복"의 상징이며, 신적 삶 자체의 특징을 사랑하는 것 을 의미한다(E. R. Goodenough, Jewish Symbols in the Greco-Roman Period, [New York: Pantheon Books, 1953-], Ⅷ: 40-41.).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예수에게 임했다는 표현을 고대 근동사람들이 읽 는다면, 이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이해할 것이다. 누가는 하늘로부터 나온 소리에서 사건을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너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네 안에서 내가 매우 기뻐하였다." 이 구절은 사42:1절의 인용이며, 이 구절과 유사한 구절들이 마12:18절에서 발견된다. 이 구절은 하나 님이 자기 영을 준, 하나님의 종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자 이다.

눅3:21-22절 문맥은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 되는 순간에 성령 강림이 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다: 예수는 성령에 의한 임신을 통해 이미 성령을 받았다(1:35; 참고. 3:23). 세례 이후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 종으로서 사역을 하기 위한 예수의 기름부음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예수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 사역의 시작을 말하는 공식 문구인 눅4:16-21절을 보면, 예수는 이사야서 를 읽는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 시고.

성경을 돌려준 후에 예수는 앉아 말하였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물론 이 인용은 예수에게 임한 성령 강림을 가진 세례-기도 장면에 대한 것이다(참고. 행4:27; 10:38). 성령은 기름 부음 받은 예수 사역을 위해서 임했다. 이러한 묘사는 누가적인 이해와 같은 선상에 있다(참고. 눅24:49; 행 1:8). 일반적으로 누가는 성령을 사역을 위한 능력부음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성령은 기도의 응답으로 온다. 눅3:21-22절에서 저자는 세례 시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세 례를 받고 난 이후, 예수가 기도하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관심을 모은다. 누가가 말하고 자 하는 핵심은 성령이 세례 안에서 혹은 세례를 통해서가 아니라(예. 행8:14-17; 10:44-48; 19:5-6), 분명 히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눅11:13; 행1:14과 2:1-4; 2:21과 2:39; 4:23-31; 8:15-17; 참 고. 22:16).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아들은 다가올 사역을 위해 능력을 받는다. 이 능력은 기도의 응답인 영의 선물로 주어진다.

이 점이 복음서 구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가 공적 사역 수행에 앞서서 이 사역을 위한 능력부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성령에 의해 임신되었다; 소년인 그가 부모에 의해 하나님에게 드려졌다; 그는 자기에 대한 부모들의 결정에 인격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리고 그는 의 식적으로 왕국의 멍에를 졌다. 세례 후 그가 기도할 때, 예수에게 분명 기름부음-능력부음이 주어졌다. 어떤 것도 이것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누가적인 이해에 의하면, 적절한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 보다 먼저 성령에 의한 능력부음이다. 예수와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것은 사실이다 (참고. 행1:8, 이 구절에는 사도들이 성령이 그 위에 임한 후에 능력을 받을 것이며 그리고 그들이 중인 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 나온다.). 만일 이것이 필요하다면, 이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눅3:15-17절을 살펴보자. 역사적 요한은 기독교 설교자도 아니며, 그는 예수를 오실 그 분이라 생각하 지도 않는다. 하지만 누가 저자는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16절에서 예수를 성령과 불로 세례할 자로, 그 리고 17절에서는 종말에 올 천상적인 심판자로 말한다.

눅3:16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를 성령과 불로 세례할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행2:1-4절의 사건과 관련해 이해한다. 누가의 관점에 의하면, 이 세례(원문에는 Baptist인데 Baptism의 오자가 아닐 까 생각된다.)는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을 예시한다(행2:1-4; 4:31; 8:14-17; 10:44-48; 11:15-18; 19:1-7). 고양된 그리스도(행2:33)가 제자들에게 능력을 선물로 부어(empow ring) 주었다.

눅3:21-22절에 이와 동일한 강조점이 함축적으로 나온다. 내용과 순서 그리고 사건과 사람들 사이에 뚜 렷한 상응점들이 누가와 사도행전에서 발견된다(보라 C. H. Talbert, Literary Patterns, Theological Themes and the Genre of Luke-Acts [Missoula: Scholas Press, 1974], pp. 15-23.). 이러한 상응점 중 에서 기도를 수반하는 예수의 세례와 외형적인 형태로 임하는 성령 강림이 제자들의 기도와 병행된다 (2:1-13). 이 제자들도 역시 외형적인 징조들과 함께 일어나는 성령 세례를 기다리며 기도한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 사역에서 세례-기도 장면을 예수의 제자들도 경험할 것이라 예견한다. 성령이 회개 세례 후에 예수에게 임했던 것처럼, 그리고 예수가 해야할 사역을 위해 기도의 응답으로 예수에게 능력을 주 었던 것처럼, 제자들의 사역을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기 위해서 부활하신 주님은 그 성 령(행2:33)을 자기 제자들에게 주었다. 눅3:21-22절을 보면 성령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그 사람은 자기 고양을 통해 그 영을 부어 준다. 그의 제자들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 받는다. 이러한 세례가 제자들의 사역을 위하여 그들에게 능력을 준다.

그러면 어떠한 형태의 경험을 저자는 성령과 불의 세례라고 말하고 있는가?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이런 경험의 증거로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영의 선물은 증인되게 하는 힘과 연결된다(1:8; 2:1-42; 4:29-31; 9:17-22; 여러 곳에서). 더욱이 이것은 필수적인 힘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약속을 받을 때까지는 모험하지 않을 것이다(행1:8; 눅24:49). 다른 면에서 처음으로 경험했을 때, 성령의 실재 는 방언과 예언같은 비상한 현상과 연결되어 나타난다(2:4; 10:46; 19:6). 그리고 이 경험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어났던 기적적인 사건들과 연결된다(3; 5:12-15; 참. 5:32; 8:5-7, 이곳저곳에서). 누가 관점에 의하면 이 첫 경험은 물세례 이전(10:44-48)에 일어나기도 했으며, 물세례와 거의 동시에(19:5-6) 일어 나기도 했고, 물세례 이후에 일어나기도 했다(8:14-17). 누가 공동체에서 이러한 경험은 예측할 수 있는 공식구로 표현하기란 어렵다(참고. 요3:8). 바로 이런 점이 바울과 약간 다른 점이다(갈3:1-5; 고전2:1-5; 살전1:5). 바울에서는 선포할 시에 성령의 경험이 결과로 드러난다(갈3:1-5; 고전2:1-5; 살전 1:5절). 신 학은 늘 경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회심을 경험하고 사도로 부름을 받고, 이것에 부응하는 사 역을 위하여 능력을 받은 사도들에게는 규범적인 것이 된다. 1세기 말의 사람들은 사도행전에서 다양하 게 묘사된 각각의 시대에 맞게 성령의 능력주심을 경험하였다. 누가-행전(Luke-Acts)이 환상, 환청, 방 언과 같은 기적적인 외적인 종교적 경험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행전에서 저자가 성령의 선물에 대해서 말할 때, 저자는 이와 같은 일반적인 경향을 제공함으로써, 확신하게 하 고 회심하게 하는 것 같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내적 능력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드러나는 영적 구원(release)의 순간에 대해서 말한다. 영의 구원은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때때로 특별한 현상과 사역을 위한 능력주심이 나타난다. 이것을 누가는 성령 세례라고 부른다. 예수는 스스로 성령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자기 지상 사역을 위해 능력을 받았다. 지금은 고양되어 하나님 우편에 있다. 바로 이 예수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런 능력부음을 경험시킬 근원이다(행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