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투에서의 승리

(4:1-13; 3:23-38; 4:14-15)




눅3:23-38절, 눅4:1-13절, 눅4:14-15절은 눅1:5-4:15절 단원의 세 번째 일화(눅3:1-4:15)에 속한다. 이 구 절에 나오는 일화 절반은 세례 이야기(3:21-22.)와 예수에 관한 내용이다. 이 구절은 눅3:1-20절의 세례 요한에 대한 자료들과 엇비슷하게 대응된다. '하나님의 아들(3:22, 3:38, 4:3, 9)'이라는 용어를 반복 사용 함으로써 누가는 세례, 족보, 유혹 기사를 형식적으로 연결한다. 그리고 '성령(3:22; 4:1; 4:14)'이라는 말 을 사용함으로써 요약된 결구와 형식적으로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만일 독자가 유혹 이야기를 정확하게 읽으려고 한다면, 눅3:21-4:15절 맥락과 연결해서 읽어야만 한다.

예수 유혹에 관한 한, 신약성서에는 적어도 3가지 다른 이해 방법이 있다.

(1) 막1:12-13절에 나오는 유혹은 '능력을 가지라는 유혹'이다. 성령을 가진 자가 강한 사람을 묶을 때 에만 저의 소유들을 빼앗을 수 있다(막3:27). 즉 예수가 어떻게 해서 자기 공적 사역에서 악마를 압도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지니게 되었는가를 이 구절이 설명해 준다.

(2) '격려하기 위한 유혹'이다. 예수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 라"고 히4:15절이 말할 때, 그것은 '격려하기 위한 유혹'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 을 위대한 제사장도 받았으며, 더 나아가서 그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있음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께 탄원하며, 가까이 나갈 수 있다.

(3) 눅4:1-13절은 '전형적인 유혹'에 대해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 이야기가 유혹에 직면한 기독교인들 을 격려하기 위해서, 그리고 유혹을 깨달아 유혹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공해 주고자 유혹에 대해 말한 다"(I.M.Marshall, The Gospel of Luke, p. 166.)는 것이다.

독자는 유혹을 받는 자가 누구인가를 주목해야만 한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하나님의 종(참고 사42:1) 이 유혹을 받았다고 문맥(눅3:22절)은 분명히 밝힌다. 예수가 성령으로 능력 받았다고 해서, 유혹을 받 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능력 때문에 예수는 유혹에서 승리하였다.

예수는 첫 번째 유혹을 지혜로운 성경 사용으로 승리하였다(참고 2:41-51 그리고 24:25-27). 세 가지 유 혹을 가지고 다가오는 악마들을 예수는 신명기를 인용하여 대항했다. 그는 4절에서는 신8:3절을 사용 하였고, 8절에서는 신6:13절을 차용하였으며, 12절에서는 신6:16절을 인용하였다. 더 나아가 10-11절에 서는, 시91:11-12절을 가지고 말하는 사탄의 해석에 대항해서 예수는 사탄과는 다르게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였다. 사실 사탄은 예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누구에게나 때와 장소 그리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적용된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이것들만을 주장하려고 한다면, 예수는 이 약속이 주장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이런 약속은 이 경우에 적절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 약속은 주어진 상황에서만 주장해야 하는 특별한 약속이다. 누가복음에서 이 분별력은 성 경을 토론하는 변증적인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성경을 올바로 사용하여 유혹을 극복했으며, 이 승리는 하늘로부터 나온 것이다. 분별력의 근원 은 성령이다. 눅3:21-22절을 보면, 예수는 사역을 위해 성령으로 기름부음(능력부음)을 받았다. 눅4:1-2 절에서 문자적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성령에 충만한 예수는 요단으로부터 돌아왔고, 그가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고 있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이것은 막1:12절(그리고 즉시 영이 그를 광야로 던졌다 그리고 그는 광야에서 40일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았다[사역].)과 마4:1절(그때 예수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기 위해서 영에 의해 광야로 인도되었다[사역])과 매우 다르다. 이 두 사람과는 다 르게 누가는 예수가 성령의 인도로 유혹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성령으로 능력부음을 받았기에 예수는 성령에 충만하여 돌아왔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는 이 능력으로 사탄을 다룬다. 저자의 관점처럼 예수는 유혹을 이겼다. 왜냐하면 예수는 성령의 능력부음으로 인해 당면한 유혹에서 자기를 지켜줄 성경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누가의 관점은 복음서와 비슷한 시기에 바울 학파가 쓴 에베소서 6장과 매우 유사하다. 종 말에 대해 말하는, 확장된 단편(parenetic section)인 편지(4-6장)에는 악마의 간계와 싸워 이길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권고한다. 사나운 영적인 적들과 싸워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영적 무장의 목록(6:12절)은 다음의 명령에서 절정에 이른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17b) 하나님의 말씀이(성경을 포함해서) 무기이지만, 이 검은 성령이 장악하고 있는 검이다. 우리는 1세기 말 바울 학파가 쓴 서간문 형식과 복음서 저자가 쓴 이야기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독교인처럼 그리스도 역시 성령의 듣게 하심과 성경의 사용으로 승리한다.

유혹을 이긴 예수의 승리는 단순한 예 이상의 본보기가 된다. 승리한 예수는 두 번째 아담이며, 하나님 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행동하셨던 모든 것들의 정점이다.

(1) 족보는 예수가 이스라엘 역사의 최고봉임을 말한다(3:23-38). 하나님이 하신 옛날 약속과 예수가 연 속선상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족보는 예수를 아브라함(34절)과 연결하여 말한다(참고. 1:55, 73). 그 리고 예수를 다윗(31절)과 연결하여 말함으로써 다윗적인 왕권에 대한 예수의 선언을 정당화한다(참고 1:27, 32, 69; 2:4; 3:11). 누가의 족보가 다윗(David)으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세 번째 아들인 나단 (Nathan); (삼하 5:14; 대상3:5; 14:4)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이름을 통해서, 스알디엘 (Shealtiel)과 스룹바벨(Zerubbabel)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을 거쳐서 요셉 (Joseph)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연결한 것은, 아마도 예수를 예언자와 연결하려는 누가의 의도일 것이다. 소수의 유대인 전승은 다윗의 아들 나단이 예언자이기도 하며, 비(非) 왕권적인 계열로터 나온 메시야 (Messiah)의 계보이기도 하다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M.D.Johnson, "The Purpose of the Biblical Genea logies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Setting of the Genealogies of Jesus," Th.D. dissertation, Union Theological Seminary, New York, 1966, pp. 282-95). 만일 독특한 유대 전승의 관점에서 이 계 보를 이해한다면, 다윗에서 나단에 이르는 이 계보가 예수를 예언자 전승과 연결하고 있다고 이해할 것 이다(예수를 예언자로 보는 구절을 참고. 4:24; 9:8; 7:11-17; 24:19; 행7:52; 3:22). 족보의 이런 배열은 예수와 예언자 전승사이의 연결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출6:14-25절에 나오는 모세의 족보가 그의 소명 후에, 그리고 이집트(Egypt)로부터 그의 동족을 이끌어 내는 그의 사명을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것처 럼, 예수의 족보도 하나님에 의해 자기의 아들임이 인정된 후에야 나오며(3:21-22), 공적인 갈릴리 사역 바로 전에 나온다(4:16-30). 예수를 이렇게 그리는 것은 예수가 모세와 같은 예언자임을 보여 주기 위 함이다(행3:22; 7:52). 그러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는 이스라엘 역사의 정점이다.

(2) 족보는 또한 예수가 두 번째 아담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가문을 영웅 혹은 신에게까지 소급시키는 많은 그레코-로마 족보처럼 누가 계보에서 예수는 77개의 이름을 거쳐서 아담에게까지, 그리고 아담을 통해 하나님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족보의 마지막은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로 말한다. 눅 4:3, 9절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족보는 말한다. 하나님이 직접 만든 피조물인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예수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왜냐하면 예수 역시 하나님의 직접적인 피조물이기 때문이다(1:35절). 이런 방법으로 족보를 읽는다면, 두 번째 아담인 예수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눅4:1-13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활동해 온 모든 것의 정점이 예수이며, 두 번째 아담이라는 생각으로 읽어야만 한다. 막1:12-13절과는 다르게 이 단락은 긴 형식으로 예수의 유혹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마4:1-11절과 비슷하게 누가 이야기는 3가지 유혹에 대해 말한다: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 악마 에게 경배하는 것,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것. 그렇지만 유혹의 순서는 마태와 다르다. 마태는 빵, 성전 꼭대기, 사탄숭배 순서로 3가지 유혹을 말하지만, 누가는 마지막 두 개를 뒤바꾼다. 바로 이 문맥에서 가장 좋은 해석은 예수의 3가지 유혹을 창3:6절에 나오는 아담(Adam)과 이브(Eve)의 3중적인 유혹(이 나무가 좋은 음식이며, 눈을 밝게 하는 것이며 그리고 사람을 지혜롭게 할 것이다)과 연결하여 해석하 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또한 요일2:16절(육적인 욕망, 안목의 욕망, 생명에 대한 자만심)에, 그리고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유혹에도 반영되어 나온다. 시106편은 누가 이야기(음식, 거짖 예배, 주를 시험 하는 것.)와 동일한 순서로 이스라엘의 유혹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은 고전10:6-9절에 나온다. 예수의 유혹은 광야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경험과는 반대 모습이며,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이브의 실패와는 다른 유형이다: 예수는 타락 이전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두 번째 아담으로서, 이스라엘 유산의 참된 정점으로서, 아담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죄와는 다르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예수는 하나님 영의 능력으로 최초의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하나님 백성들, 믿음있는 자들의 앞선 자가 되었다. 그는 승리하였다. 그리고 예수가 성령을 부어 주었기 때문에(행2:33절), 예수의 추종 자들도 자신들이 싸울 영적 전투에서 예수처럼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예수가 받는 유혹이 예수의 영적인 근원을 없애지는 못했다: 그는 영적인 힘을 지녔다. 눅4:1-13절의 유혹 이야기 주변에는 다음의 구절들이 있다.(4:1a, 14절): 눅4:1a..."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 단강에서 돌아 오사": 눅4:14절에서도 반복된다..."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이 런 문장 기법으로 저자는 성령에 의해 인도된 유혹을 통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아들이 적을 이겼을 뿐 아니라, 자기 영적인 능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능력을 가지고(4:14절) 예수는 광야 싸움에서 벗어나 갈릴리로 간다(4:14-15절). 광야 시련 이상으로 갈릴리 사역(4:16-9:50절)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를 통하여 드러나는 능력있는 성령의 장(the scence of the Spirit's might)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