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세계 사람 모두를 위하여

(4:16-30)




"자기 고향"(막6:1; 마13:53) 혹은 "나사렛"(눅4:16절)에서의 예수 배척이 나오는 눅4:16-30절은 분명히 누가적인 형식이다: 비록 이들이 정확한 문맥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마13:53-58절과 막 6:1-6절은 매우 유사한 방법으로 사건들을 연결한다. 첫 번째 복음서에서는 7개의 비유 집합(13:1-52절) 으로 이 내용이 끝난다: 두 번째 복음서에는 4개의 기적 사이클(4:35-5:43절)로 내용이 끝난다. 이 두 복음서에서 배척 장면은 갈릴리 사역에서만 잘 나타난다. 하지만 누가는 길게 그리고 매우 다른 방법으 로 배척을 이야기하면서, 예수의 공적 사역 시작에 이 배척 사건을 배치한다. 이것은 눅4:31-44절을 생 각나게 하는 눅4:23절의 빛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이렇게 배치하면서 저자는 자기 이야기를 통해 다음의 것들을 보여준다. 이 장면이 단순히 다른 것들 가운데 한 사건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참고. 행13:13-52,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바울의 선교 사역 시작 장면).

눅4:16-30절, 이 단락(unit)의 문학적 구조(pattern)가 의미의 실마리가 된다(H. J. B. Combrink, "The Structure and Significance of Luke 4:16-30," Neotestamentica 7:27-47 [1973]). 이 단락은 한 범주 안 에 있다: 4:16a, b, 예수가 "나사렛에 오심" 과 "회당으로 들어가심"; 4:30절에서 그는 군중을 "통하여 지나갔다" 그리고 "떠나갔다". 이 범주안에서 이 구절이 AB : A'B' 패턴으로 나눠진다. A와 A'에서는 예수가 말씀하신다; B와 B'에서는 군중들이 이 말씀에 대해 반응한다. 시작하는 말인 A부분은 예수 사 역의 형태에 대해 다루는데 4:16c-21절에 나오며, 이 구절은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1) 읽기(16c-20절) 와 가르치기(20-21절).

읽기(16c-20절) 부분은 체계적으로 이루워진 단락(unit)이다:

A 읽기 위해 섰다(16c)

B 그에게 주었다(17a)

C 이 책을 열어(17b)

D 사61:1절 이하와 58:6절(18-19)

C' 이 책을 닫고(20a)

B' 다시 시중드는 자에게 책을 주었다(20b)

A' 앉았다(20c) (V.E.McEachern, "Dual Witness and Sabbath Motif in Luke," Canadian Journal of Theology 12:273 [1966].)

더 나아가서 인용부분(D)은 사61:1-2절과; 사58:6절의 결합이다:

주의 영이 내 위에 임하였다.

그가 내게 기름부었기 때문이다(사61장).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도록(euaggelisasthai)(사61장)

포도된 자들에게 해방(aphesin)을 선언하기 위하여(사61장)

그리고 장님에게 보게 하기 위하여(사61장)

압제받은 자들에게 자유(aphesei)를(사58:6절)

주의 영접할만한 해를 선포하기(k?ruxai) 위하여(사61장)

가르치는(20-21절) 부분에서 예수는 이 성경을 자기가 이루었음을 선언하였다. 물론 성령의 기름부음은 눅3:21-22절에 대한 언급이다. 예수 세례 시에 일어난 성령 강림은 성령으로 계속되는 능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4:1, 14절에서 저자는 분명히 보여주고자 애쓴다. 이런 식으로 독자는 모든 예수 사역과 성령을 연결하고 있는 4:18절의 선언을 듣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님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18a, 19) 그리고 소경 고치는 것을 선언하도록(18c) 성령은 예수를 능력있게 하였다.

"포도된 자에게 자유(aphesin)를 선언하는 것"과 "압제받는 자들에게 자유(aphesei)를 주는 것", 이것을 누가는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aphesis", 이 단어의 의미는 일반 기독교인들은 "용서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고 저자도 이 단어 를 분명히 여러 곳에서 이런 식으로 사용한다(1:77; 3:3; 24:47; 행2:38; 5:31; 10:43; 13:38; 26:18). 그러 기에 독자는 이 단어 안에 내재된 의미를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용어는 또한 "포로된 상태 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61장과 58장의 문맥에서 이 단어가 이런 의미로 사용된 것이 분명하며, 눅4:18절에서도 이런 내용으로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 연이어 나오는 자료 (4:31-41절)에서 예수를 귀신 축출자와 치유자로 묘사한다. 그래서 눅4:43절은 이러한 행위를 왕국에 대 한 좋은 소식을 선언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서의 이 단어를 사용하 여 예수의 사역이 신체적 치유와 귀신 축출을 하는 사역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묘사는 구원을 신체 적인 치유와 종말론적인 하나님 백성에 속하는 것 모두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일반적인 누가 경향에 잘 들어 맞는다(예. 구원이 치유이다. 8:36, 48; 18:42; 행4:9; 14:9; 구원이 종말론적인 가족에 속 하는 것이다. 8:12; 13:23; 17:19; 18:26; 19:10; 행11:14; 15:1; 16:30).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눅4:18-19절 에 사용된 것처럼, 예수 사역을 선포, 신체적 치유 그리고 귀신 축출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는 누가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은 옳은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 3중적인 활동을 사도행전(선포-예. 행2:14이하; 3:12이하; 10:34이하; 13:16이하; 치유-예. 행3:1이하; 9:33이하; 9:36이하; 14:8이하; 귀신축출-예. 행16:16 이하; 19:12이하)은 제자들의 사역에서 계속되는 것으로 그린다.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은 예수와 제자들 안에서 이 3중적인 사역 형태로 나온다: 선생과 제자들의 사역은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마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A(4:16c-21절)에서, 예수의 말은 이사야 61장과 58장의 예언이 자기에게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다. 백 성의 반응 부분인 B는 두 부분으로 주어진다. 첫 번째 부분인 22절은 그들의 반응에 대한 진술이다: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두 번째 부분인 22b는 그 들의 말에 대한 인용이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이들 반응의 의도가 기본적인 주제이다. 이 구절의 부분들은 같은 의도인가? 이것들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연이어 나오는 4:22절 두 부분 모두 에 대한 가장 좋은 읽기는 이것들이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4:22절을 "이 사람이 고향 소년이 아 닌가?" 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22a를 위해 필요하며, 22b에도 자연스럽다. 이 인용 속에는 암시 하는 바가 있다: 그가 "우리 아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종인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해서 우리 를 위해 행해진 위대한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예수를 가족과의 연결하여 말한 나사렛 백성들의 추론은 예수로 하여금 두 번째 말을 하게 한다.

A'(4:23-27절) 부분에서 예수 사역의 영역은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1) 첫 부분인 23절은 22절을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사실 예수는 말한다. "너희는 고향 소년인 나에게 나사렛 여기서도 실행하라고 요구한다.

(2) 24-27절인 두 번째 문단에는 암시적인 요구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있다. 잠언적인 지혜(24절/ 예언 자가 자기고향에서 영접받는 일이 없다.)와 성서(25-26절/ 시돈의 땅 과부, 27절/시리아의 나아만)를 가 지고 이러한 요구에 반박한다. 이러한 반응에서 고향 소년은 자기 사명 때문에 고향을 떠날 것임을 암 시한다. 이사야 61장과 58장에 약속된 하나님 축복은 이방인까지 위한 것이다(25-26, 27절).

물론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유형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 구속의 보편적인 영역을 예수 안에서 배려하고 있는 저자의 관심에 접하게 된다. 이것은 예수 공생애 이전 단락에서 이미 들어온 주제이다.(2:31-32; 3:6, 23-38) 이러한 관심이 눅4:16-30절 직후에 나온다: "나는 다른 도시에서도 하나님 왕국에 대한 좋 은 소식을 전해야만 한다, 나는 이 목적을 위해 보냄 받았다" 라 말하는 43절은 귀신축출 시리즈 (4:31-41절) 이후 나오는데, 이 구절에서 예수는 자신을 이 지역에서 떠나게 하려 하는 자들에 대해 서 저항한다(4:43절). 눅24:47절에서 부활한 주님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죄에 대한 용 서가 전파되어야만 한다고 자기 제자들에게 말한다. 세상 끝까지 가야만 하는 사명이 행1:8절에 반복되 어 나온다. 사도행전 나머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복음의 사명 이야기이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방인을 향하도록 베드로에게 역사한 분은 성령이다. 하지만 이 사명은 이미 누가 복음 10:1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의 70인(혹은 72인) 파송에서 상징화되었다. 만일 예수의 능력있는 사 역의 형태가 선포하는 것, 고치는 것, 귀신축출이라고 한다면, 이 사역의 영역도 보편적인 것이다. 눅 4:24-27절에서 예수는 말한다. 눅4:24-27절에서 예수는 자기가 왕국의 복음을 증거해야만 한다고 말한 다. 이 복음은 자신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된 지역적, 문화적, 인종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B'인 눅4:28-29절은 예수의 두 번째 말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다: 백성들이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예수는 자기가 거절받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곳 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사명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거절당한 것이다(R. C. Tannehill, "The Mission of Jesus according to Luke 4:16-30," in Jesus in Nazareth, ed. W.Eltester [Berlin: Walter De Gruyter, 1972], p. 62.). 예수는 사도행전에서 자기 제자들의 당할 운명을 확대된 선교에 대한 그 의 관심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으로, 예시한다(예. 13:44-50; 14:19; 17:4-5; 18:12; 20:3; 22:21; 28:23-29). 이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 때문에 비난받을 때도 있었고(22:21절), 유대인들에 의한 배척의 결과로 이방인들에게 향하기도 했다(13:44-50; 28:23-29). 이미 눅2:34b에는 이러한 배척과 같은 암시가 있었다. 예수의 탈출(4:30절)은 적의와 배척같은 행위로부터 복음이 찬란하게 살아 남았던 사도행전 이야기를 예시한다.

요약하면: 눅4:16-30절에서 저자는 성령으로 능력 부음받은 예수 사역에 대한 실질적인 말을 한다. - 더 나아가 교회의 사역에 대해서도 말한다. - 예수 사역은 선포하는 것뿐 아니라 치유하는 것 그리고 귀신 축출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해 밖으로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