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된 용서

(7:36-50, 18-35)




베다니 여인이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마26:6-13/막14:3-9/요12:1-8절 이야기는 눅7:36-50와 유사하다. 예수 생애의 마지막 주간 때에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예수 머리에 기름을 부은 사람이 마태와 마가에서는 이 무명 여자이다. 요한 복음서에서 이 여인은 예수의 마지막 주간이 시작할 때에 예수 발 에 기름을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는 마리아이다. 이 마리아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나 오는 베다니의 그 마리아이다. 여기서 이 무명의 여인은 예수 공생애 초기에 갈릴리, 바리새인 시몬 집 에 있었다. 자기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그의 발에 입 맞추고 기름을 부었다. 단락(unit)의 내적 구성과 맥락에 집중할 때, 우리는 두드러진 누가적인 전승 형태의 의미를 파 악할 수 있을 것이다.

7:36-50절의 이야기가 29-35절에 묘사된 주요 주제를 제공하고 있음을 맥락이 보여준다. 이 이야기 바 로 앞 구절, 7:36-50절은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결합된 큰 자료 단락(unit)이다. 이 구절 여러 부분에 (7:18-23, 24-28, 29-30, 31-35절) 이러한 사실이 기록되었다. 하나님을 의롭다 하는 백성들을 언급함으 로써, 마지막 두 부분이 연결되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이 하나님을 의롭다고 함"(29절), "지혜는 자 기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는다"(35절) ("지혜"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목적의 다른 표현이 다.). 언듯 보면, 이 "의롭다"는 동사의 사용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유대적인 용법은 그렇지 않음 을 보여준다. 솔로몬의 시편(the Psalms of Solomon)에서 '의롭게 하다(dikaio,w)'는 인간의 의가 아니 라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그를 의롭게 한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 판단, 선언을 옹호할 뿐 아니라 이것들을 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한다(2:16; 3:3; 4:9; 8:7, 27). 이같은 용법은 시51:4절에 있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 순전하시다 하리 라"(참고 제2 에스드라서 10:16; Berakoth b. 19a.). 시51:4절을 인용한 롬3:4절과 딤전3:16절에서도 이같 은 용법을 볼 수 있다. 눅7:29절(참. 마21:32)과 7:35절(마 11:19)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dikaio,w"을 사용한다. 여기서 "의롭다"는 동사는 "의로움을 드러내거나 의로움을 알고 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 다"(G. Schrenk, TDNT, 2:213-15).

7:29절과 7:35절, 이 두 구절에서 '하나님을 의롭다' 하는 것은 요한과 예수의 사역의 입장이 옳다는 것 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세례 요한과 마리아의 아들 사역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두 경우에서 진술된 것과 같은 사람의 생을 위해서 하나님 뜻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참고 30절). 눅7:29절은 세리들이 하나님을 의롭게 하였다고 말한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종 요한이 말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눅7:35절은 하나님 의 자녀는 하나님을 의롭게 하는 자라고 말한다. 즉 이들은 자기 삶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요한의 사역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죄를 용서하는 표인 세례"라는 말로 요약되기 때문에(3:3), 바 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였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뉘우치지 도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가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왔기 때문에(5:32), 예수를 거 절하는 것은 예수의 삶(presence)이 중재하고 있는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5:17-26, 27-32절). '하나님을 의롭다' 하는 것은 예수와 요한의 초청이 옳다고 인정하여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이다: 백성과 세리들은 이렇게 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7:36절에서 바리새인은 7:29-30절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특성을 지닌 자이다. 37절 이하에 나오는 이 여 인은 세리처럼 하나님이 자기에게 행한 판단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였 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떤 방법의 용서도 받아들이지 않았 다. 그러므로 7:36-50절은 하나님을 의롭게 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이다.

맥락을 통해서 볼 때, 공공연한 죄인들(백성과 세리들)이야 말로 요한과 예수의 선포 속에서 제시되는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용서받는 자들이다. 감춰진 죄인들(바 리새인들과 율법사)은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 님의 신적 용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화 속에서 "예수가 용서한 것은 육신의 죄이며, 꾸짖었던 것 은 영적인 죄이다"(Luther's Mediatation on the Gospels, R. H. Bainton trans.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2], p. 49.).

누가 관점에서 보면, 육적으로 드러난 죄를 가진 자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감춰진 죄를 가진 자들은 모 두 용서가 필요하다. 눅7:36-50절은 신의 용서를 받아들인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7:36-50절에는 적어도 결정적인 두 유형의 구조가 있다. 전체가 교차대칭(Chiasm) 구조로 되어 있다. 7:36절의 도입 부분은 이 사건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는 중에 일어났음을 말한다. 그 이후 이야기 는 AB:A'B'형태를 지닌다.

A: 예수에게 행한 여인의 행위: 특별한 애정의 표시(7:37-38)

B: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부정적인 판단(7:39)

B':시몬의 비난에 대한 예수의 반응(7:40-47)

A':여인에 대한 예수의 반응(7:48, 50)

A와 A'는 분명한 행동을 그리고 있다. 이 구절들은 예수에 대한 여인의 애정 표현과 그녀를 용서하는 예수의 보증에 초점이 모여 있다(48절). B와 B'는 두 질문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첫째, 여인의 애 정의 표현으로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번째, 어떻게 예수는 그녀의 용서에 대 한 보증을 선언할 수 있었는가? 이런 물음들은 다음 구절에서 토론에 대한 윤곽을 제공해 줄 것이다.

축제 중에는 불청객이라고 하더라도 들어가고 나올 수 있도록 동방의 식사하는 방문은 열려 있다. 그리 고 담 옆에 앉아, 주인과 손님들이 대화하는 것을 듣을 수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예수가 바리새인 시 몬과 함께 식탁에 앉았을 때, 이 지역의 어떤 여인이 들어 왔다. 그녀는 담 옆에 앉아 듣는 대신에, 예 수에게 자기 애정을 충분히 표현했다:

(a) 그녀는 예수의 발을 그의 눈물로 적셨다.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으로 그의 발을 닦았다.;

(b) 그녀는 예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c) 그녀는 그의 발에 기름을 부었다(37-38절). 주인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그녀의 행위를 예 수는 인정했다(39절).

39-47절(B와 B') 의미는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이라고 일컬어진다. 4개의 구성 요소로 되어있다:

(a) 반대자에 의한 질문(39절);

(b) 반박하는 질문(42b);

(c) 반대자로부터 대답이 주어진다(43b);

(d) 주어진 대답에 대한 논박(47절). 헬라 수사법으로부터 나온 이 형태를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자 기 자료의 구성을 위해 사용하였다(E. E. Ellis. The Gospel of Luke [rev. ed., Greenwood, S.C.: Attic Press, 1974], p. 121.).

(a) 7:39절에 나타난 바리새인이 속으로 하는 질문은 현재의 상태가 가상의 상황이며, 허구임을 보여준 다. 바리새인은 추측한다. 예수는 이 여인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예언자일 수 없다. 예수가 참 으로 예언자라고 하는 사실을 시몬이 알지 못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그는 바리새인이 무엇을 생각하는 가를 알고, 아래의 결구를 가진 비유로 말했다(41-42a).

(b) 반박하는 질문: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42b).

(c) 시몬의 답은 이것이다;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43a).

(d) 예수는 동의한다(43b). 그리고 다음과 같은 추론을 이끌어 낸다(44-47절): "시몬아, 너는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고, 환대의 어떤 행위도 행하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내게 풍성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녀가 왜 이렇게 했겠느냐?" 예수는 47절에서 자신의 질문에 대해 답한다. 47절을 읽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1) "그녀의 행동 때문에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다." 여기서 죄 많은 여인의 사랑은 용서의 이유가 된다.

(2) "여기서 많은 죄들이 용서받았다는 것은 그녀의 행위로 명백해졌다" 여기서 죄 많은 여인의 사랑은 용서의 증거이다. 두 번째의 읽기는 언어적으로 가능하다(예, 1:22 [역자 주/원문이 틀린 것처럼 보인다. 1:52, 53절인 듯 싶다]; 6:21). 그리고 그것은 문맥이 요구하는 방법이다. 새 영어 성경(New English Bible)은 다음과 같이 주목해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그녀의 큰 사랑은 자기 많은 죄 가 사함 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여인이 용서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 대답은 그녀의 애정 어린 행동이 용서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용서가 적으면 사랑도 적게 나타난다. 왜 그 여인이 용서받은 자 로 알려졌는가? 그녀의 애정 표현이 그 증거라고 대답할 수 있다.

저자는 예수가 영적이든 육체적이든 간에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한 행위에 대해 말한 후에, 그가 옳다 고 여기는 반응을 자주 말한다. 때때로 이 반응은 수평적이기도 하고 윤리적인 반응이다.(예, 19:8-"주 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 나 갚겠나이다.") 다른 때에 이 반응은 수직적이다. 인간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반응한 다.(예,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다./ 5:25-26; 7:16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17:18) 이 이야기에서는 예수에 대해 반응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에 대한 수평적(윤리)인 반응과 수직적(예배)인 반응을 보 여주고 있다. 7:36-50절은 예수에게 보여준 풍부한 애정이 먼저 일어난 인간의 구원의 표시임을 강조한 다(50절). 반면에 애정 표현의 결핍은 용서를 받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예수에 대한 풍부한 찬양과 애 정은 하나님의 신적 용서의 참된 증거이다. 애정과 찬양의 결핍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이다. 여인의 놵 아붓는 사랑을 보면서, 예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48절)."

예수와 함께 식사하는 자들은 다음 구절처럼 질문한다: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49절)" 예수는 어 떻게 여인에 대해 확실한 용서를 선언할 수 있었는가? 이 실마리는 39절 즉 예수에 대해 시몬이 한 무 언의 부정적인 판단에서 찾을 수 있다. :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예수는 시몬의 속 생각을 아시고 저에게 반응하였다: 바로 이것이 예수가 예언자임을 분명히 드러내 보인다. 예언자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까지도 안다(참고. 왕상22:19절 이하).

누가복음의 저자는 예수를 예언자적인 용어로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 4:16-30절에서 그 동기가 시작 된다: 예수는 자기 고향에서 배척받는 기름 부음 받은 예언자이다; 눅7:16절에서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 을 일으킨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반응하며 외친다. "위대한 예언자가 우리 중에 나타났다"(참고, 또 13:33; 24:19; 행3:22-23). 여기서 예언자의 표시는 그의 영적인 분별력과 사건의 겉과 속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예수는 분명히 이러한 범주에 해당된다: 그는 궁극적인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다 (6:20-26절); 그는 시몬의 생각을 알고 있다(7:39절이하); 그는 여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있다(7:48절). 여인에 대한 하나님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죄 용서의 선언은 예언자적인 행위이 다(삼하 12:13; 사40:2; 참고. 4QPrNab 1. 3:2-4, 쿰란 동굴에서 나온 아람어 단편 본문들, 여기에는 유 대인 구마자가 바빌론 왕, 나보니두스[Nabonidus]의 죄를 용서한다.). 여기의 이 방식은 눅5:17-26에서 예수가 행한 행위와 비슷한 것임이 틀림없다. 예수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 기 때문이다(4:18-19절). 그래서 예수는 "포로 된 자에게 해방을" 선언할 수 있었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같은 식으로 그린다: 성령이 임한 예수가(1:32절)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예, 요 1:48: 2:25; 4:17-19, 39). 예수의 분별력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자자로소이다(요4:19절)." 요한도 예수도 아버지의 생각을 안다(예, 요5:19-20; 8:28-29).

기름 부음 받은 예수의 영적인 분별력은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세례를 받은 제자들의 무기로 주어진다 (예, 5:3-4; 8:23). 이와 똑같은 것이 요한복음에서도 나온다: 부활한 주님이 성령 강림 이후에 제자들에 게 말할 수 있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 라(20:23절)." 영적인 분별력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예언자적인 확신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옛 예언자들처럼 성령 충만한 자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견해가 바울 에서도 나온다: 고전2:10-12절에서 기독교인들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 생각을 안다고 사도는 말하였다. 고전12:8절에서 영에 의해 주어진 은사로서 지식을 말한다. 이 지식은 성령이 예언자들의 삶 속에 드 러남으로 나오는 영적 분별력이다. 그가 예수이든 기독교인이든 마찬가지이다. 바울이 위에서 말한 범 주(지식)을 이용하여 눅7:39-47, 48절에서 우리는 예수가 말하는 지식에 대한 두 말을 찾을 수 있다. 성 령에 의해서 예수는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을 분별한다. 이러한 영 분별의 예언적인 능력을 행 함에 있어서 누가는 자기 제자들을 위한 모델로서 예수를 말한다(하나님 생각에 대한 지식-행2:14이하; 13:1-3; 16;9-10; 사람의 마음에 대한 지식-행5:1-11; 20:29-30). 영적인 분별력을 예언자 예수의 제자 공동체에게 줌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났다. 예수가 이와 같은 분별력을 가지고 있음을 눅7:36-50 절은 분명히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