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사역

(8:1-21절)




눅8:1-21절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비유를 가진 사상 단락(unit)(8:4-8절), 이야기 해석에 대한 제자들 의 요구(8:9-10절), 비유에 대한 해석(8:11-15절)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진 서론(8:1-3절)과 이 비유의 주 제에 대해 보다 더 분명하게 해주는 작은 두 단락들(units)로 구성된다(8:16-18, 19-21절). "듣다 (hear)"(8:8b, 10, 12, 13, 14, 15, 18, 21절)와 "말씀(word)"(8:11, 13, 15, 21절)이 이 단락들을 연결시켜 주는 핵심 단어(key terms)이다.

서론(1-3절)은 비유와 해석(4-8절, 11-15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 선포에 권위가 있음을 말한 다. 이 교회 선포는 하나님 왕국이 열릴 때 예수와 함께 한 증인들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다(W. C. Robinson, Jr., "On Preaching the Word of God [Luke8:4-21]," in Studies in Luke-Acts, ed. L.E.Keck and J.L.Martyn [Nashville: Abingdon, 1966], p. 136). "예수와 함께(1b-2절)" 있었던 두 그 룹(group) 있다:

(1) 열 둘과 여자들. 그 밖에 다른 곳에서 저자는 이 두 그룹들을 갈릴리로부터 예수와 함께 온 자 (23:49; 23:55; 24:10; 행1:11; 13:31절)로 그린다.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사실의 보증자로서 열 둘과 여인 들을 나란히 놓는 것이 누가의 의도처럼 보인다.

저자는 예수와 초기 교회 이야기를 통해 여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엘리사벳/눅1:24절이하(누가에만 나온다), 마리아/1:26절이하(누가에만 나온다), 안나/2:36절 이하(누가에 만 나온다.), 시몬의 장모/4:38절 이하, 나인 성 과부/7:11절 이하(누가에만 나온다.), 죄있는 여자/7:36절 이하(누가에만 나온다), 예수와 제자들을 섬긴 여자들/8:2-3절(누가에만 나온다.), 혈루증 여인/8:43절 이 하, 마리아와 마르다/10:38절 이하(누가에만 나온다.), 18년동안 불구인 여자/13:10절 이하(누가에만 나온 다.), 잃어버린 동전을 가진 여인 비유/15:8-10절 이하(누가에만 나온다.), 과부에 대한 비유/18:1-8절(누 가에만 나온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준 과부/21:1절 이하, 십자가 상의 여인들/24:10-11절, 무덤의 여인들/24:10-11절, 22-23절, 기도하는 여인들과 마리아/행1:14절, 삽비라/행5:1절 이하, 과부들/행6:1 절 이하, 도르가(Dorcas)/행9:36절 이하,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Mary)와 로데(Rhoda)/행12:12절 이하, 루디아(Lydia)/행16:14절 이하, 치유받은 여종/행16:16절 이하, 믿음 있는 고위층 헬라 여인들/행17:12절, 다마리스(Damaris)/행17:34절, 브르스길라(Pris cilla)/행18:2, 18, 26절, 빌립(Philip)의 네 딸/행21:9절, 바 울의 누이/행23:16절, 버니게(Bernice)/행25:13절.

수많은 사역들 속에서 남자들과 함께 여자들을 저자가 자주 배치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이미 예수 사역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보증해 주는 갈릴리 남자들과 그와 함께 한 갈릴리 여인들에 대해 주목해 왔다. 또 다른 예들이 있다.

(1) 눅8:3절의 여인들은 행6:2절에 나오는 남자들이 식탁에서 "봉사하는(diakonei/n)" 것처럼 "봉사한다 (dihko,noun). 이런 점에서 누가는 일반적으로 초기 기독교가 지닌 연속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롬16:1절 에는 여자 일꾼(dia,konon) 뵈뵈(Phoebe)가 나온다. 딤전3:8-12절은 아마도 일꾼(개역성경에는 집사로 번역되었다.)의 아내에 대해서가 아니라 여자 일꾼(dia,konon)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다. 2세기 초, 트 라얀(Trajan)에게 보내는 프리니(Pliny)의 편지에서도 여자 일꾼에 대해서 말한다.

(2) 누가-행전(Luke-Acts)에서 여인들이 남자들과 함께 예언한다(눅2:36-38절의 안나와 2:25-35절의 시 몬이 나란히 나온다. 행 2:17-18절은 "너희 아들과 딸들이 예언하도록" 영이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지게 될 것이라 말한다. 행 21:9-11절에는 예언했던 빌립의 네 딸이 아가보와 나란히 나온다.). 예언에 있어 서 누가는 다시 초기 교회와 동일 선상에 있다(예. 고전 11:5절[1세기]과 터툴리안[Tertullian]의 마리시 온 논박[Against Marcion], 5:8, [거의 A.D. 200년경])

(3) 행 1:12-14절을 보면, 오순절 전 기도할 때에 여인들이 열 둘과 나란히 나온다(고전 11:4-5절, 딤전 2:8-9절, Didascalia Apos tolorum 15:124.).

(4) 여인들은 남자들처럼(행18:7절) 때로는 그의 집에서 교회적인 일을 한다.(행12:5, 12, 16:15절) 이런 모습에 대해서는 롬16:3-5절과 빌1-2장에서 볼 수 있다.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 위에 있는 브리스길라(Priscilla) 묘지는 기독교 여인들이 교회 예배를 위해 자기 집이나 땅을 사용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다시 일반 기독교인의 모습에 대해서 누가는 말한다.

(5) 적어도 남편과 함께 한 여인이 가르친다. 그 남편은 두 번째로 거명된다. 또 다르게 가르치는 사람 은 남자 선포자이다.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guila)는 행18:26절에서 아볼로(Apolos)를 가르친 다. 이것은 신약에서는 드물게 나오는 표현이다. 딤전2:12절(개역/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 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과 그리고 아마도 고전14:34-35절(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다만 복종할 것이요---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남편에게 물으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과도 매우 다르다. 이것은 딤전 2:12절과 같은 견해를 가진 바울 계열에서부터 생긴 후기 바울 학파의 해 석일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게 여자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아마도 고린도전서 전체의 입장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열광주의(Maenadism/디오니소스처럼 열광적인 신적인 지배 하에 있는 여자의 광적인 행동)에 대해서 혹은 다른 형태로는 분열을 조장하는 소란을 염두에 두고 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열을 조장하는 소란은 금지되었을 것이다(Richard and Catherine Kroeger, "An Inquiry into Evidence of Maenadism in the Corinthian Congregation," in SBL 1978 Seminar Papers, ed. P. J. Achtemeier [Missoula: Scholars Press, 1978], 2:331-38.). 만일 고전 14:34-35절이 딤전 2:12 절을 반영해 쓴 것이라고 한다면, 이 구절은 누가-행전(Luke-Acts)과는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만일 이 구절이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는 어떤 류의 소리를 금하는 것이 라고 한다면, 이 고린도전서 구절은 여자 교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 18:26절에 드러난 누가 의 입장과 딤전 2:12절 저자의 입장의 차이는 이렇다. 누가 이야기에서 브리스길라는 정통 바울 학파의 입장(참고 행 18:1절이하)을 나타내며, 목회 서신(예. 딤후 3:6-7절)에서 여인들은 이단들에 빠지기 쉬운 자들이었다. 목회서신에서 말하는 입장은 특별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후기 기독교에서 기 독교인들의 행동을 지배한 것은 누가-행전(Luke-Acts)의 입장이라기보다는 목회서신의 입장이었다. 누 가의 작품 구도 속에서 보면, 기독교 사역에서 여인들이 남자들과 대등하게 역할하는 것에는 가르치는 사역도 포함된다.

이들의 사역이 짐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될 경우에도, 누가-행전(Luke-Acts) 이야기에 나오는 여인들의 사역이 사회에서의 여인들의 전통적인 역할들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에겐 사회에서의 다양한 역 할들이 있다.

(1) 부모와 함께 사는 독신녀들이 있다(예. 행21:8-9절. 결혼한 빌립의 네 딸).

(2) 가족은 있지만 분명히 남편 없이 장사하는 여자가 있다(예. 루디아-행 16:14-15절).

(3) 가족 일로 남편과 함께 일하는 여자가 있다(예. 아굴라와 함께 천막을 만드는 브르스길라/행18:2-3 절).

(4) 모성애를 지닌 결혼한 여자가 있다(예. 마리아/제자의 모델, 눅2:1이하, 41절 이하).

이런 경우에서 여자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행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그들이 해야할 역할들을 모두 하는 것이다. 이들의 사역은 사회에서 이들이 행했던 역할만큼이나 다양했다. 하지만 특별한 역할 을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만 이들은 사역하였다.

사회가 정한 역할들이 어떤 경우에는 여인들의 사역으로 확장되었다. 눅8:1-3절은 이런 경우를 말해주 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이다: 여인들이 자기 돈이나 소유 혹은 먹을 것들로 선생들이나 제자들을 공급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j. Horayot 48a, 1.44; Esther Rabbah Ⅱ, 3; b. Shabbath 62a; b. Berakoth 10b; b. Rabba Kamma 119a). 하지만 여인들이 집을 떠나 잘 알려진 선생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Ben Witherngton, Ⅲ, "On the Rord with Mary Magdalence, Joanna, Susanna, and Other Disciple-Luke 8:1-3," Zeitchrift für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70:243-47 [1979]). 헤롯의 관원인 구사의 아내, 요안나를 말하고 있는 8:1-3절의 여인들은 아직도 예수와 제자들 을 위해 공급할 뿐 아니라, 그들을 따른다. 여기서 이들에게 사회적 역할이 없어지지 않고 더 늘어났다. 바울보다 더 이전 세대는 여인의 사회적 역할을 파괴하려는 입장에 대항한다.(예. 고전 7장은 종교적인 체험들 때문에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 논박한다. 고전11: 2-16절은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여 성을 성적 상징으로 보려고 하는 여인의 역할에 대해서 반박한다. )

비록 가족법이 기독교적인 은총의 영향 하에서 몇 가지 수정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가 시기에 가족법(골 3:18절이하. 엡15:21절이하, 벧전3:1절이하)은 사회적 역할을 든든하게 하는 데 이바지 한다. 기독교가 여인들에게 전달되어, 가족 생활의 견고성을 파괴하는 평판이 나쁜 동양 제의처럼 여기게 될 것을 염려 한다. 누가 사회 구조가 허락하고 있는 한, 누가는 교회에서 여인들의 사역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 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누가는 그레코-로마 문화 안에 있는 교회가 "로마인들이 받아들이고 행동하 기에 적법하지 않은 풍습(행16:21절)"을 옹호함으로써 교회가 가진 기회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고대 교회에서 여인들에게 사역을 주는 3가지 방법이 있다: 평신도 사역(예. 교회에서의 복음전파, 기도 하는 것, 예언하는 것, 자신의 집을 교회로 개방하는 것), 직분있는 사역(예. 3세기에 있어서 과부와 여 집사 제도), 수도자 사역(예. 비잔틴 세계에서 그리고 서양의 중세에서, 노인 과부와 여집사의 중요한 특권을 이어받은 수녀: 참고. Jean Daniélou, The Ministery of Women in the Early Chruch [London: Faith Press, 1961]). 이런 3중 구조의 용어로 말하면, 누가가 여인의 사역을 평신도 사역으로 보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가 여인의 사역을 평신도 사역을 보는 것은 저자가 살고 있는 세계의 사회적 구조에 의해 정해진 역할인 것이다.

눅8:4-21절은 교회 선포에 대한 반응에 주목한다. 이 단락(unit)은 씨 뿌리는 비유(4-8절)로 시작한다. 9 절에서 제자들은 예수께 이 특별한 비유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막4:10절에서처럼 일반적인 비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행6:7; 12:24; 13:49; 19:20절)"에 응답하는 것이 요지라고 해석(11-15절)은 설명 한다. 질문은 이것이다: 아주 적은 소수만이 복음에 대해 마지막까지 반응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잘못된 반응은 악마가 주며(참. 눅22:3절), 유혹으로 상처입은 뿌리의 문제(참. 눅22:40, 46; 벧후3:17절) 에서, 그리고 생활에 대한 고민, 부와 쾌락에서 기인한다(참. 행5:1-11절). "정직과 선한 마음으로 말씀 을 꼭 붙잡아, 인내로 결실에 이르게 하는 것이 말씀을 듣고 올바르게 반응하는 것이다(15절. 참. 롬 5:3-4; 히6:11-12; 12:1-3절 등등). "인내를 가지고( evn u`pomonh)"라는 누가의 특별한 시각은 모든 잘 못된 반응에 대해 반대편에 서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을 행하게(21절)" 한다. 이것 이 누가-행전(Luke-Acts)에서 말하는 예수 가족의 성격이며(눅1:38, 45; 행1:14절), 모든 제자들의 성격 이다(눅6:47; 10:37; 11:28절. 참. 약1:22-25절).

누가 이야기에서 예수의 가족들이 행했던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해 바르게 반응하는 자들이 하나님 의 가족으로 들어오려는 자들을 위한 빛이 될 것이다(16절). 위에서 언급한대로, 집은 로마형식인 듯하 며, 이 집 현관에는 등불이 설치되어 있어,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빛을 비춰 준다. 이렇게 참고 견디 어서 이미 제자가 된 사람들은 새로운 회심자들을 위한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