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준비, 회개

(12:1-13:21)




눅12:1-13:21절의 대부분 자료들은 공관 복음 전승의 다른 곳과 병행을 이룬다. 다른 곳에서 이 자료는 누가복음 저자가 사용한 것과는 다르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마10:27절은 선교사가 적대자들을 두려 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하지만, 눅12:3절은 위선자에 대한 경고이다. 마5:25-26절에서는 적 과 함께 하지 말라는 말이지만, 눅12:57-59절의 요점은 적을 피하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저자는 이 다 양한 자료들을 두 단원으로 구성한다.

첫 단원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연설한 것이다(12:1-53절). 예수는 이들에게 먼저(12:1절) 삶의 세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촉구한다: 박해(12:1-2절), 소유(12:13-34절), 내림을 위한 준비(12:35-48 절). 이 책임은 예수의 사역의 분열적인 효과를 말하는 구절에서 절정을 이룬다.

두 번째 단원은 군중들에게 연설한 것이다(12:54-13:21절). 예수는 그들의 회심을 촉구한다. 눅 12:1-13:24절은 다양한 전승 모음을 저자가 하나의 구조로 편집한 것이다. 이 큰 단락(unit)은 먼저 제 자들에게(12:1-53절), 그리고 다음으로는 현재의 불신자들에게(12:54 -13:21절) 주어진 기독교 설교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고전14:23-25절에서 비기독교인들이 초기 기독교 예배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제자들에게 말해진 첫 번째 부분(part)(12:1-53절)은 세 가지 영역에 대해서 교훈한다: (1)박해 (2)소유 (3)재림준비. 박해에 관한 눅12:1-12절은 21:12-19절과 관련된 주석에서 논의할 것이다. 눅12:13-34절은 소유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3-21절은 탐욕의 문제에 대해서, 22-32절은 염려의 문제에 대해서, 33-34절은 대체적으로 이 단원에 대한 일반적인 결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단원은 "무리(1, 13절)", "염려하지 말라(11, 22절)", 새들(참새-6, 까마귀-24)의 반복을 통해 12:1-12절과 연 결된다. 탐욕을 다루는 13-21절은 22-34절과 결합된다. 22-34절은 "보물(21, 33, 34절)", "곳간(18, 24 절)" 그리고 15절b와 23절의 비슷한 말들을 가지고 염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한다.

탐욕의 문제를 말하는 눅12:13-21절은 이 복음서의 특색이다. 이 단편은 꾸짖음으로(13-15절) 절정을 이루는 선언 이야기로 구성된다. 연이어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16-21)는 이런 탐욕스런 태도의 어리석 음에 대해서 설명한다. 탐욕은 십계명(출20:17; 신6:2)에서 금지되었고, 예언자들에 의해서 비난되었다 (예, 미2:2). 탐욕은 누가 이전(롬1:29; 막7:22)과 누가-행전(골3:5; 엡5:5; 딤전6:10) 시기의 교회에 있었 던 문제이다. 15절a에서 예수는 "모든 탐욕을 물리치라"고 경고한다. 그 이유가 15절b에서 원리의 형태 로 제시된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사람의 됨됨이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 혼동될 수 없다고 말한다.

16-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탐욕스런 태도가 왜 어리석으며, 탐욕이 무엇인가를 설명한 다. 여기서 탐욕은 필요한 것을 충분하게 이미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 하는 욕망이다. 탐욕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쌓아두려는 욕망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갈망하는 것이다. 안전의 수단으로 쌓아두는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며, 이웃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골3:5과 엡5:5에서 탐욕을 우상숭배로 여기는 이유이다. 축적된 부를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 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9:25; 참고 시락11:18-19; 시39:6)." 풍성하게 가졌을 때, 부차적인 물질들의 축적은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우상숭배자로 전 락하게 만든다. 누가-행전에서 부의 목적은 함께 나누는 데에 있다. 눅12:22-32절 이 구절은 소유에 대 한 근심 문제를 다루는데, 균형있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22-28; 29-32).

(1) 첫 부분인 22-28절은 금지 명령으로 시작한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 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2절)" 그 이유가 나온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3절)." "음식"과 "의복"에 대한 설명이 연이어 나온다. 24-26절은 "음식"에 대한 설명이다. 만일 하나 님이 새들을 먹이신다면, 너희들은 그것들보다 훨씬 더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들도 역시 먹이 실 것이다(24절). 게다가 먹거리에 대한 염려는 키에 18인치를 더하려고 하는 것처럼 쓸데 없는 것이다 (25-26절). 27-28절은 "의복"에 대한 설명이다. 만일 하나님이 풀을 입히신다면-꽃 중에서 백합화의 영 화가 보여주는 것처럼-너희들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입히시지 않겠느냐(27, 28절)?

(2) 근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 단편의 두 번째 부분인 29-32절은 균등하게 둘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피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하나는 구하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29절에서 제자들은 "구하지 말며.....근심 하지도 말라"는 말을 듣는다. 30절은 그 이유(가르, ???)를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 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32a에서 제자들은 "대 신에 구하라.......적은 무리여 무서워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32절b는 호티(`???) 문장으로 그 이유를 말한다.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 기뻐하시느니라." 눅12:22-32절에서 제자들은 목 숨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식과 의복에 대해서까지도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을 듣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은(누가에서 하나님 나라는 성령의 경험의 현재뿐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예수와 함께 거하는 것이며, 새 시대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에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모든 필 요들을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염려하지 말라. 미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가 채우실 것이다(시23:1). 목숨을 부지해 주고 목숨을 보호하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은 하나님의 선물 이다. 목숨을 주신 분의 선함과 능력을 신뢰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근심을 버리고, 움켜진 손을 펴고, 탐 욕을 관대함으로 바꿔야 한다. 구제에 대한 특별한 명령을 말하는 소유에 대한 이 부분은 12:33-34절에 서 절정을 이룬다(참고. 11:41; 16:9; 18:22; 19:8; 행2:44-45; 4:32-39; 9:36; 10:2,4,31; 20:35; 24:17). 구제 에 대한 유대적인 실례는 (옳은 일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너에게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공동 번역]) 토비트4:7-11과 (구제는 죄를 없앤다. 참고 29:12) 시락3:30절과 같은 구절에 나온다. 누가 공동 체에서 소유를 가진 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공급이 기대되었다(33절-참고 행2:44-45; 4:32; 4:34-37; 11:27-30): 이것은 그들의 보물이 하늘에 있으며, 그들의 마음 또한 그곳에 있다는 표시이다 (33-34절). 이러한 누가의 태도는 딤전 6:17-19절에서도 반복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탐심은 하나님 나라 가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염려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탐심은 하나님의 능력과 선함을 신 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참고. 창3:1-6절, 죄란 하나님의 선함과 공급을 신뢰하지 못하고 근심하는 것 이라 정의된다). 비록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이라 예수가 여기고 있다 하더라도, 33-34절에서 예수는 돈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그의 제자들을 불렀다.

눅12:35-48절에서 저자는 돌연 초점을 재림을 위한 준비에 대한 문제로 바꾼다. 이 단편은 부활절 이후 의 시각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부재중인 자기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제자들의 상황과 지도자와 목회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단락에서 저자는 먼저 모든 기 독교인들에게, 다음은 목회 지도자들에게 말한다.

(1) 35-40절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두 비유는 요점을 가지고 있다(35-38, 39절). 첫 번째 비유는 그의 주인이 결혼 잔치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종에 대해 말한다. 주인이 돌아오자, 그는 들어보지도 못한 보상을 받는다: 주인이 종을 섬긴다. 이러한 보상을 받는 자는 어떤 종인가? 의 미를 담고 있는 두 가지 놀라운 장면이 있다. "띠 띠고"는 힘든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겉옷을 매라 는 뜻이다. 이 동사는 완료 명령법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지시한다. "띠 띠고 있으라"는 이 말은 "늘 띠를 매야하는 상황에 살고 있기 때문에 띠 띠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그런 종이 되 라"는 것이다. 늘 띠 띠고 산다면, 그의 등잔은 계속해서 타고 있는(현재 명령법) 것이다. 이런 식의 준 비야말로 주인의 보상을 받을 만하다. 두 번째 비유, 집주인과 도적(39절)은 늘 깨어있어야 함을 설명한 다: 비록 집주인이 도적을 예비해서 늘 깨어 있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제자들은 부단없는 경계 를 요구받는다. 40절이 누가의 요점이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이 구절은 언제든지 주인에게 열어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명령한다(36절). 열어주려 하는 이런 준비 가 기독교인 모두에게 요구된다.

(2) 41-48절은 기독교 공동체내의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충성을 요구한다. 41절의 베드로의 질문(누가에서만 유일하게)은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 지위를 남용하는 것을 경고한다(참고 행20:28 이하; 고전3:10절 이하; 11:21; 딤전4:12-16; 벧후2:1-2, 13). 예수의 비유적인 말씀은(42-43절) 다른 종들을 책 임지는 종의 상황에 관심을 가진다. 만일 주인이 올 때에 그가 자기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복 받을 것이다(43-44절). 하지만 자기 의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면, 그는 주인으로부터 벌 받을 것이다. 단계적으로 처벌 내용이 나온다: (a) 전제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46절에 나오는 'dicotomh,sei'는 '둘 로 자르다'는 의미이다. 즉 비난받은 사람을 절단하는 것이다.) 죽음; (b) 의도적인 무시에 대해서는 엄 한 매질; (c) 고의가 아닌 무시에 대해서는 가벼운 매질. 이런 생각은 고의적인 죄보다 무의식적인 잘 못을 가볍게 생각하는 유대적인 사고를 반영한 것이다(민15:27-31; 신17:12; 시19:12-13; b. Baba Bathra 60b.). 더 나아가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이 주어졌다면, 그들에게 그만 큼 더 많은 것이 기대될 것이다(48b; 참고. 약3:1). 그러므로 제자들뿐 아니라 기독교 지도자라고 한다 면, 재림-심판을 준비해야 한다(참고. 21:34-36; 고전4:1-5). 재림과 심판에 대해 준비하라는 것은 주인 이 자신에게 맡긴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라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말해진 이 단편(12:1-53절)은 예수 사역으로 인한 분쟁을 다루는 단락에서 절정을 이룬다 (12:49-53). 이 단위는 본래 독립된 3개의 말씀(49; 50; 51-53)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비슷한 형태이 다; "내가 왔다", "내가 가지고 있다", "내가 와 있다". 이것들을 함께 다루면, 사고의 연결은 다음과 같 이 이어진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분이라고 말한(3:16절) 그 예수가 49절에서 그 순간을 향해 나아가며, 그 순간을 갈망한다. 바로 그 때에 타오는 불처럼 성령이 백성의 마음 속에 서 심판의 사역을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세례"는 일어날 일에 대한 전 단계이다(50절). 막 10:38절에 나타나는 변형은 예수의 세례가 그의 고난과 죽음임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 이후에 불이 올 것이다. 이것은 누가의 연대기와 일치한다: 고난 후에 성경이 강림한다. 예수의 오심, 성령과 불의 쏟아 짐, 복음의 선포는 분열(division)을 초래할 것이다. 이 주제는 탄생 이야기에서 예시되었다(2:34-35): "결단에 대한 요청은 분리를 요구한다"(E. E. Ellis, The Gospel of Luke, p. 182.). 누가 관점에 의하면 교회의 삶과 선포 속에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는 하나가 되게 하기 이전에 분열을 초래한다. 예수는 위 대한 분쟁자이다.

12:1-13:21절의 두 주요 단편 두 번째는 무리들에게 한 연설이다(12:54-13:21). 이 연설의 부분은 "외식 하는 자(12:56; 13:15; 참고 12:1절은 외식.)"라는 말로써 첫 번째(12:1-53)와 연결된다. 무리에게 말하 면서(12:54; 13:17. 참고. 12:1, 13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le,gw soi(-12:59절, le,gw u`mi/n-13:3, 5, 참고. 12:51, 44, 37, 27, 22, 8, 4)를 세 번 사용하였다. 무리에 대한 연설은 두 부분에서 회개를 촉구한 다(12:54-59; 13:1-21절).

첫 번째 부분인 12:54-59절은 시대의 표징(sign)을 적절하게 해석하라는 것과(54-56절), 순간의 도전 에 대해 올바르게 응답하라(57-59절)는 이중적인 경고이다. 54-56절에서 예수는 그들이 날씨를 구분하 는 것처럼 시대에 대한 해석에 관심 가질 필요가 있음(즉, 예수의 선교의 의미)을 무리에게 말한다. 만 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재난은 확산될 것이다(참고, 19:41-44). 57-59절에서 예수는 사람들이 채권자 를 만나게 될 때처럼 하나님 심판의 실재에 대해서 관심 가질 필요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말한다. 재판 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기 전에, 그리고 채무자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사 건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이와 같은 지혜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것을 요청한다(행 10:42-43; 17:30-31).

두 번째 부분인 13:1-21절은 적절한 해석과 더불어 두 가지 중요한 표징(sign)을 제공한다. 눅13:1-9절 은 인간의 삶 속에 있는 비극적인 결핍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평탄하다. 대개 의 선한 유대인이 알고 있는 대로, 어려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고, 평탄함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의 삶은 평탄하다; 어떤 재난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왜 후회하는가?" 눅13;1-9절에는 이런 경우에 대한 세 가지 응답이 나온다.

(1) 첫 번째 두 부분은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다(1-3, 4-5절): 빌라도가 저지른 몇 명의 갈릴리 사람의 학살(인간적인 원인에 의한 비극)과 실로암 망대(tower of Siloam)의 무너짐으 로 인한 몇 사람의 죽음(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비극). 예수는 말하기를, 비극은 사람이 죄가 많다는 것 을 표시하는 것도 아니고, 회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평탄한 삶도 회개해야 한 다.

(2) 세 번째 부분인 13:6-9절은 심은 지 3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에 대한 비유이다. 아마도 무화과 나무가 3년이 지난 성장하였지만,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주인은 그 나무를 잘라 내고 다시 심고자 했다. 그러나 포도원 관리자는 열매 맺는 것을 볼 수 있도록 1년 간의 유예를 요청하였다. 지금, 여기서의 심판이 없는 것이 그 사람의 정당함의 표시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 다. 오히려 심판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움의 표시이지, 하나님의 인정이 아니라는 것이다(참고. 행14:15-17; 17:30; 롬2:4절 이하; 벧후 3:9절 이하).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이 다. 13:1-9절의 3가지 요소를 함께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고통 없는 삶을 산다고 해서, 자신 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비극은 죄 많음에 대한 표시가 분명히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극이 없다는 것도 또한 정의로움의 표시가 분명히 아니다. 비극적으로 사는 자들이나 평탄하게 사는 자들이나 모두 죄인이며, 모두 하나님의 심판 이 자기에게 임하기 전에 회개해야만 한다(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 사탄의 결박으로부터 여인을 자 유롭게 함으로써 꼬부라진 그녀를 고친, 눅13:10-21절의 사건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하고 있는 표징이 다(참고. 11:20절). 구름이 일어나는 것(12:54)이나 남풍(12:25)과 같이 비록 작고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고 하더라도, 구름이나 바람처럼 이러한 사탄의 전적인 패배는 분명한 결과를 알려주는 신호이다. 즉 악에 대한 궁극적이고 우주적인 승리(13:18-21절)를 예고한다.

분명히 무리에게 도전이 주어졌다. 불행을 당하지 않는 것이 네 자신의 옳음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하지 말라: 이것들은 어떤 결과를 지적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회개하라고 너희에게 준 마지막 기회 이다. 예수의 치유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통치의 실재를 놓치지 말라. 이것들은 어떤 결과를 지시하는 표징이다. 적어도 너희는 날씨를 읽는 것과 법정의 심판을 피하는 것만큼 이런 문제들에 대해 민첩하 라. 회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