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바른 사용과 잘못된 사용

(16:1-31)




분명히 16장 전체에서 말하려는 일관된 흐름은 소유에 대한 것이다. 이 장은 16:1-13절과 16;14-31절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각 비유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부자가 있었다(1, 19절)" 첫 번째 부분은 제자들에게(1절),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바리새인들에게(14절-참고. 17:1절에서 청중들이 제자로 바뀐 다.) 행한 연설이다.

16장의 첫 부분인 1-13절은 비유와 해석(18:6절 이하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보인다)으로 구성된다. 1절a 는 누가적인 서론이다; 1절b-8절a는 비유이다; 8절b는 이 이야기에 대한 해석적인 주석이다; 9절은 두 번째 해석이다; 10-12절은 두 번째 해석에 대한 상술이다; 13절은 두 번째 해석과 상술(9-12절)에 대한 결론이다. 이 단편들은 연결어를 통해 잘 짜여진 망으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8절a는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kai. evph,|nesen o` ku,rioj to.n oivkono,mon th/j avdiki,aj( o[ti froni,mwj evpoi,hsen)"인데, 다음의 나오는 굵게 쓴 단어들이 연결 어이다.

(1) 8절b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fronimw,teroi)"이다;

(2) 9절은 제자들에게 말한다. "불의의(th/j avdiki,aj)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Poih,sate)"; 더 나아가 서 9절에서는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게 될(de,xwntai) 것을 말하는데, 이 구절은 4절에서 말하고 있는 바, 지상에서 자기 집으로 영접하게 될(de,xwntai) 것이라는 말을 반영한다;

(3)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a;dikoj)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a;dikoj)"라는 구절은 8절a 와 9절의 불의한(avdiki,aj)을 반영한다.

8절a의 연결어 말고도 뒤 구절 사이에는 다른 연결어가 있다. 11절의 불의한 재물(avdi,kw| mamwna/) 은 9절과 관계가 있다. "충성"이라는 단어가 10절과 12절을 연결하며, 11절과 12절은 이와 비슷한 단어 로 연결된다: "만일 충성되지 않는다면......누가.....?" 13절에서 다시 재물이 나온다. 이런 연결 수단으 로 저자는 1-13절의 다양한 자료들을 하나의 단락(unit)으로 만든다. 저자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부를 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지혜롭게 되라고 요구하며, 이런 지혜를 가져야 할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누가는 청지기 비유(1절b-8절a)와 첫 번째 해석(8절b)에서 제자들에게 부를 바르게 사용하라고 한다. 이 비유는 쓸데없이, 자주, 너무 많이 논쟁이 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어떤 사람 이 지혜롭게 대처한 이야기이다(참고.12:57-59절).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행동이 발각되자, 청지기는 하던 일을 끝내라는 말을 듣는다. 손으로 일하기엔 힘이 없고, 구걸하기엔 자존심이 상하니, 주어질 것 이 아무 것도 없을 미래를 위해서 청지기는 미래를 대비하게 하는 행동을 한다. 내가 무엇을 할꼬? 이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주목할 만한데, 두 가지 가능한 독서 방법이 있다.

(1) 어떤 사람은 말한다. 대리인으로서 일하고 있었는데, 해고 당하는 것을 알자, 자신에게 보답할 사람 들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실직 당했을 때 자기를 그들의 집으로 받아줄 사람을 얻기 위한(4절) 일을 감행하기로 결정하였다(참고 6:32절). 그의 행동에는 부정직한 면이 없다. 단지 미래를 위해 준비 하려는 사려 깊음만이 있을 뿐이다.

(2) 또 다른 사람은 청지기가 해고당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상황에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청지기는 채권 변제가 정당하다고 여기는 채무자들을 불렀다(청지기는 채무자들 을 부른다. 이들은 완전한 채권 변제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주인이 빚을 탕감해 줄 권위를 청지기에게 주었으며, 청지기가 이것을 주인에게 보고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주인 에게 탕감 내역서의 내용을 전한다. 주인은 내역서를 보고는 청지기의 양수 겹장적인 태도를 보고는 깊 이 생각한다. 만일 주인이 청지기를 책망할 경우에는 채무자에게 가서 그는 해명하면 되고, 주인이 채 무자들의 찬양을 받아들이면 그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 주인은 그 지혜로운 청지기가 대중적인 환호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주인은 후자를 선택하였고,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구나"라고 청지기에게 말한다. 청지기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부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도록 행동하였다. 주 인(부자, 예수가 아니다)은 청지기의 지혜로운 태도를 칭찬하였다. 처음 그가 한 허비를 칭찬한 것은 아 니다. 이것은 차라리 청지기의 이어지는 행동이 자신의 미래를 지혜롭게 예비하려 했다는 것만을 인정 하는 것이다. 비유의 첫 번째 해석(8절b)은 비기독교도인들이 제자들보다도 돈의 사용에서 지혜롭다는 것을 말한다. 즉 불의한 청지기처럼 이들은 돈으로 자기 미래를 대비하는 데 사용한다. 이 구절은 예수 의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부를 지혜롭게 사용하게 한다.

제자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인가? 9절은 8절b에서 함축하는 바를 설명해준 다. 불의한 청지기가 소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면, 빛의 아들들은 주어진 부(불의한 맘몬은 불의하게 얻은 소유가 아니라, 세속적 부를 의미한다)를 구제에 사용하여 하 늘(빛의 자녀는 하나님의 완곡한 표현이다; 참고. 미쉬나(Mishna), 요마(Yorma) 8:9. -'나는 죄짓고 회 개하고 다시 죄짓고 회개한다' 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회개할 어떤 기회도 그들은 주지 않는다)에서 자 신들의 미래를 얼마든지 잘 준비할 수 있다.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자는 하늘의 환대를 받을 것이다 ("영원한 집"-참고. 에녹1서 39:4; 에스드라 후서 2:11). 10-12절은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만일 제자들이 하나님이 맡긴 세속적인 부를 충성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Pirke Abot Ⅲ:7), 어떻게 그들이 영원한 생 명의 참된 부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구절은 청지기 개념을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것으로 말하는 신약의 몇 안 되는 구절 중 하나이다.

제자들의 부의 사용이 왜 하늘의 미래와 연결되는가? 분명히 13절은 부(富)의 사용이 섬기는 것임을 말한다. 예수는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런 전제 하에서 기독교 인들은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부를 지혜롭게 사용하라는 명령에 응답해야 한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풍요로움은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으로 거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예수 요청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 사도행전 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동체 내에서 어려운 자들을 돕는 부의 나눔이 처 음에는 자발적(행2:44-45; 4:32, 34절 이하)이지만, 후에는 조직화(행6:1 이하)되었다.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회중들 사이에서도 나눔이 이루어졌다(행11;27절 이하). 이러한 누가적인 정신은 초기 교 부들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순교자 저스틴(Justin)(Apology Ⅰ, 67.)은 말한다.

이들은 잘 행동하고, 올바르다 생각하는 바를 기꺼이 행한다; 이들이 지도자에게 모아둔 것들 을 맡기며, 그는 병이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들 때문에 궁핍한 자들과 억류된 자들 그리고 우 리 중에 거하는 이방인들이며 고아와 과부들을 돕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핀다.

터툴리안(Terullian)(Apology 39:10)은 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땅에서의 물질들을 서로서로 나 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부인만을 제외한 모든 것은 공동 소유이다." 제자들이 부를 지혜롭게 사용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데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더 이상 돈 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표시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따뜻한 반응을 받게 한다.

두 번째 부분인 16;14-31절은 바리새인들에게 행한 연설이다(14 -15절). 이들은 부유한 소유를 가진 자 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부에 대한 이런 바리새적인 생각을 공격하는 이 단락은 양 면적인 말씀(a two-pronged group of sayings)으로 이루어져 있다(14-18절). 연이어 양면적인 비유(a double-edged para ble)(19 -31절)가 나온다. 비유 중 19-26절은 14-15절에 대한 해석이고, 27-31절은 16-18절에 대한 설명이다(E. E. Ellis, The Gos pel of Luke, p.201, 요한 칼빈[John Calvin]의 힌트가 연이어 나온다). 이 단락은 이런 식으로 하나의 단락을 이룬다.

양면적인 말씀 첫 번째 14-15절은 두가지 요점을 말한다.

(1) 하나님은 외형적인 의로움이나 그에 대한 결과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14-15절a는 강조한다. 바리새인들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비웃는다(13 절). 그들의 생각이 이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불행은 하나님이 기뻐하 지 않는다는 표시이다; 성공(예. 재정적인 번창)은 그의 옳음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증거이다. "하나 님이든 돈이든, 하나만을 섬길 수밖에 없다"는 예수의 태도에 대해 비웃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 다(참고. 18:24-26절에서 예수가 부자가 구원받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 이후에, 제자들은 묻는다. "그런 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그들에게 돈은 하나님의 사랑과 왕국에서의 자신들 기쁨에 대한 분명한 표시이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예. 신28:12-13절에서 부와 풍성함은 하나님 축복의 표시이다). 공개적이고 외형적인 바리새인들의 비웃음에 대해 예수는 대조적으로 내적이고 개인 적인 태도로 반응한다(참고. 11;39-41; 18:9-14절).

(2) 내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교만하였다(즉, 자기만족,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은 미워하신다(15절b). 가난한 자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징으로 그리고, 부자를 의존이 필요 없 는 자의 상징으로 그리고 있는 구약의 다른 흐름을 근거로 예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는 구제하 는(신15:11절) 대신에 가난한 형제들을 압박하고, 계약을 파기하였다(암8:4-6절). 그러므로 예수의 요점 은 외적인 성공만을 보고서 그 사람이 의로운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마음에 대하여 알아야만 그 사람이 의로운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19-25절; 26절은 전이 문장이다.)의 첫 번째 부분은 14-15절의 두 가지 주제를 확 대한다.

(1) 첫 번째는 부유함이 반드시 의로움의 표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유에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 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부자는 부를 잘못 사용한 전형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관련된 율법을 무시하였다. 신15:4절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 가난한 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환대하는 것이 의로 여겨졌다(잠11:23-24; 21:26; 29:7절). 친절함으로(잠14:31; 17:5절), 빌려줌 으로(잠19:17절), 자유롭게 해줌으로(잠11:25; 21:26절)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돕는 것이 선한 일이다. 시프리의 신명기(Sifre Deuteronomy) 116-18을 보면 신15:7-11절에 대한 랍비적인 주석이 나온다. 신15 장9절에 이런 교훈이 나온다: "삼가 너희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 까웠다하고 네 궁핌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 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정통 유대교 전승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요구하는 구조의 손을 외면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이 비유에서 나사로(Lazarus)는 식탁에서 땅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을 먹을 수 있 었다 - 이것은 개들이 먹는 것이다. 나사로는 이렇게 중요한 자선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자는 의롭지 못한 자로 규정된다(참고. 요일3:17절).

부가 그 사람의 의로움을 보증하지 않는다면, 가난도 역시 그 사람의 악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예수 비유의 특징이다. 나사로(하나님이 그를 돕는다)라는 그 이름은 거지가 경건한 자임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더욱이 의식적인 더러움이 경건하지 않다는 증거는 못된다(바리새적 관점에서 본다면, 불결한 개가 그의 상처를 핥는 것이 그를 불결하게 한 것이다-참고 눅10:29-37; 행10장). 사마리아 사 람을 영웅으로 묘사함으로써 바리새적인 생각(깨끗함과 부유함을 의라고 생각한다)에 충격을 준 것처 럼, 비유는 분명히 더러운 거지를 영웅으로 그림으로써 충격을 준다. 비유의 첫 번째 부분은 14-15절의 주요 주제-성공이 의롭다고 판단하는 분명한 기준이 아니다-를 보여준다.

(2) 또한 비유의 첫 번째 부분은 14-15절의 그 다음 요점도 보여준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거만한 자를 혐오스럽게 여기신다. 마침내 부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는 불꽃 중에서 신음하며, 아브라 함에게 나사로를 보내 그의 손 끝에 차가운 물을 적셔서 자신의 혀를 차갑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사는 동안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았던 거만한 부자의 모습은 다음 생에서는 역전되어 나타난다. 누가의 하나님은 거만한 자들(가난한 사람의 필요에 둔감한 거만한 자)에게는 적대적이다.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다음 생에서 비참한 삶으로 이어진다고 눅16:19-25절 은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부자와 나사로 비유의 전반부는 14-15절의 두 가지 주제를 모두 보여준 다.

말씀의 두 번째 부분(16-18)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요점을 말한다.

(1) 16절은 왕국의 포용성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이 점은 마11:12-13절에 나오는 말씀과는 매우 다 르다. 세례 요한이후 하나님 나라의 복음(참고 4:18; 행1:21-22절)이 선포되었다고 누가는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두 가지 결론이 가능하며, 이것들은 주목할 만하다. (a) 모든 사람(???-참고3:6; 4:25-27; 7:1-10; 8:26절 이하)이 그 안으로 열심히 침입해(bia,zetai는 "힘으로 압도하는 것, 강하게 압 박하는 것, 폭력을 휘두르며 행동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며, 중간태이다) 들어가려고 하는가? (b) 혹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력히 초청되었다는 것이다(bia,zomai 는 칠십인역에서 이와 같은 의미가 발견되며 수동태이다 - 예, 창33:11에서는 '진정으로 간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동 태를 취한다.)" 어떤 것이든 간에, 누가적인 상황에서의 강조점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들어갈 수 있 도록 해주는 하나님 나라의 초청과 선택이 보편적이라는 것이다(참고. 행13:48; 28:28절)

(2) 17절(참고. 마5:18절)은 율법의 영원한 가치에 대해서 말한다(참고. 행20:27-28절). 의심할 것도 없이 저자는 이 문맥에서 율법이 가난한 자들을 돌볼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구제 혹은 도와줌 이 아니라 사회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구조적인 공급으로 가난한 사람을 돌보라고 구약 율법 이 말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기억해야만 한다(예. 레25장에서 50년마다 땅의 소유권을 원주인에게 되돌 리라고 한다; 신15장에서는 안식년에 히브리 사람 노예를 풀어주라고 한다; 룻2장에는 하나님 백성과 그 땅에 사는 자들이 날로 더해 가는 빈곤을 막기 위해서 잘 구성된 이삭줍기에 관한 율법이 나온다).

비유의 두 번째 부분(27-31절)은 16-18절의 두 주제를 더 자세히 보여준다.

(1) 첫 번째 주제는 왕국을 이루는 자의 보편성이다. 모든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분명 이것은 더 러운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서 보여준 것과 같다. 이생의 결과로 아브라함 품에 있으며, 부자의 형제들 에게 경고하기 위해 가달라는 요청을 받은 그는 누구인가? 만일 그가 나사로라면 그 왕국은 분명 배타 적이지 않다.

(2) 두 번째 주제는 율법이 여전히 힘이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대우에 대해 다루는 율법 일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비유에서 부자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자기 다섯 형제 를 경고하도록 나사로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였다. 아브라함은 대답하였다. "저희에겐 모세와 선지자들 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29절)." 회개하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소리를 부자가 듣지 않았다고 한 다면, 비록 죽은 자 중에 살아난 자가 그들에게 말하더라도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비유는 앞선 단락(16-18절)에서 다루었던 주제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양면 비유에서 두 번째 부분에서의 강조점을 받아들여서, 저자는 율법의 영속적인 가치와 율법이 가난한 자들을 위 해서 부를 사용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누가16장에서 저자는 초청과 경고를 말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 부를 지혜롭게 사용한 청지기처럼 제자들도 지혜롭게 되라고 요청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부를 하나님이 그 사람의 운 명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며, 적게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것을 경고한 다. 그러므로 모세와 선지자의 경고를 따르지 않는 자는 밖에 던짐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