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와 인내

19:45-21:38(B.21:5-38);12:1-12;14:26-35




눅21:5-38절은 다른 공관 복음서에도 나온다. 하지만 누가 기자는 이 부분을 이용해 자기의 독특한 개 념들을 전개한다. 예를 들면, 마24:1-3절과 마13:1-4절은 성전 밖, 감람산 위에서 제자들에게(마태), 혹 은 구체적으로 이름이 기록된 네 제자들에게(마가) 예수가 가르치만, 누가복음에는 성전 안에서 모든 백성들에게 가르친다(20:45; 21:37-38절). 물론 내용적으로 21:12-19절처럼 제자들을 대상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든 백성들이 듣는 가운데 가르친다. 눅21:5-26절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행한 예수의 두 번째 회중 가르침이다(19:45-21:38절).

눅21장은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다(5절). 성전 감탄에 대한 응답으로서(비교. 14:15절) 예수는 예언 신탁을 말한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6절). 이것은 미가(Micah) 선지자(3:2절)와 예레미야(Jeremiah) 선지자(7; 22:5절)가 성전 파괴를 예언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7절) 이 질문에 예수 는 더 큰 스케일의 묵시적 담화로 답변한다(8-36절). 그 대화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A. 종말의 때, 미혹되지 말라(8-9).

B. 정치적 혼란(10)

C. 우주적 혼돈(11)

D. 증언의 때(이 모든 일 전에)(12-19)

C′우주적 혼돈(25-26)

B′정치적 혼란 (이 때 예루살렘도 멸망)(20-24)

A′종말의 때, 항상 깨어 있으라(27-36)

위 내용을 순서적으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⑴ 증언의 때(12절a에서 다른 모든 일 전에 이 때가 온다고 말한다.)

⑵ 거짓 메시아의 등장

⑶ 정치적 혼란(예루살렘 멸망을 포함해서)

⑷ 우주적 혼돈

⑸ 인자의 오심

7절에서 제기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이 묵시적 시간표에서 찾을 수 있다. 언제 성전이 파괴될 것 인가? 성전 파괴는 종말 이전에 있을 정치적 혼란의 때에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징조는 무엇 인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 에워싸이는 것이다(20절). 성전파괴에 관한 예언이 담화를 시작하게 한 질 문들을 제기했음에도, 21장에서 누가 기자의 관심은 예루살렘 멸망이나 성전 파괴보다 더 광범위하다 (비록 예루살렘 멸망이나 성전 파괴가 누가에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임에도: 13:31-35; 19:28-44, 23:26-31절).

예루살렘 파괴에 덧붙여진 21장의 주요 관심사는 두 가지이다.

⑴ 증언의 때에 있을 박해(12-19)

⑵ 인내; 인자의 오심을 준비함(34-36)

박해에 대한 누가의 견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앞 부분을 살 펴보아야 한다. 12:1-12절은 21:12-19절에 나오는 시험의 배경이다. 12:1-12절은 예수 부활 후,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향해 명령하고 있다. (1) 이 단편은 위선에 대한 경고로 시작한다. 위선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가꾸지 보다 겉모습을 꾸미려고 한다(1절). 이런 삶은 어리석다. 왜냐하면 때가(박해의 때?) 되 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2-3절).

(2) 단지 몸만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전파하기를 멈춰서는 안된다(4절). 오히려 죽은 후에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가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한다(5절). 게헨나(Gehenna)는 원래 예루살렘 인근의 한 계곡을 가리킨다. 이곳에서는 몰렉(Molech)에게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다(렘7:31-32절). 그러 나 요시아(Josiah)가 종교개혁을 하고 난 후부터 이곳은 쓰레기 하치장이 되었다(왕하23:10절). 결국 게 헨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의 상징이 되었다(계14:7-13; 비교 막9:43-48; 벧전 4:17-19절). 하나님이 너희 최후의 운명을 다스리는 분이다. 그러므로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6-7 절).

(3) 예수와의 관계가 최후의 운명을 결정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 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 인함을 받으리라."(8-9절) 10절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 시대와 교회 시대를 철저하게 다르게 보고 있는 누가 기자의 견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예수 시대에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예수를 보고 즐거워하면 되었다. 그러나 교회 시대에는 그 성령이 제자들에 임했다. 지상 예수를 부인하거나 적대한 행동은 용서받을 수 있다. 베드로도 부인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용서했다(22:54 이하). 알지 못해 죄를 범한 유대인은 예수 부활 후에 다시 한번 더 기회를 갖는다(행3:14-15, 17, 19, 26; 5:30-31 절). 그러나 예수 부활 후에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가 없다(10절). 불신자들이 기독교 메 시지를 거절하면, 곧 성령을 거역한 것이다(행7:51, 비교. 28:25-28절). 누가 기자는 제자들의 행동에 주 목한다. 박해자들이 시험할 때, 성령의 가르침에 반하여 예수를 부인하면 이것이 곧 성령을 거역한 것 이다(11-12절; 비교. 21:14-15; 행4:8, 19-20, 5:30절).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자기 속에 있는 성 령을 거역한 것이요, 하나님의 용서를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을 모독한 것이다. 박해 앞에서 당당할 것을 말하는 누가의 이 권면은 21:12-19절을 위한 배경이다.

21:8-19절에 기록된 사건들의 연대기는 기록된 순서와는 다르다. 거짓 메시야들과 종말을 생각하게 하 는 다른 징조들(8-9절), 정치적 혼란(10절), 우주적 혼돈(11절), 박해들(12-19절).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박해는 다른 사건들보다 앞서 일어난다(비교. 12a-이 모든 일 전에): 즉 종말이 있기 전에 잠시동안 제 자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다(비교. 6:22-23, 8:13; 12:11; 행4-5; 12; 16; 18; 21절).

두 형태의 박해가 있을 것이다(비교. 12:11절):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유대의 회당으로 끌고갈 것이다 (11a). 그리고 그들이 왕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갈 것이다(11b). 물론 이것은 사도행전 이야기와 정확 하게 연결된다(예. 행4-5; 9:1 유대인들의 체포; 24; 25-26 총독과 왕 앞에서의 재판). 이 사도행전 이야 기는 역사적으로 있었다. 적어도 고후11:23절 이하에 나오는 바울의 경우는 분명히 역사적이다. 이렇 게 회당과 정부의 박해가 있으면, "바로 그때가 증언할 때이다"(13절).

이 증언의 때에 제자들은 무엇을 말할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가 너희의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 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15절). 비슷한 내용이 12:11-12절에도 나온다.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눅21:15절에 나오는 "내가....너희에게....주리라"는 출 4:15절과 같은 형식이다. 다시 이 약속은 사도행전에서 성취된다(4:8-13;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 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박해가 일어나면, 심지어 가족나 친구들까지도 배교자가 될 수 있다(16a). 이 구절은 14:26절에 나오는 어록(logion)에 영향을 주었다(참고. 행21:27; 22:1; 23:12-부형들). 박해로 죽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비 교. 7:58-60, 12:1-2절). 순교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18절의 "너 희 머리털 하나라도 상치 아니하리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16절은 단지 몇 사람의 순교를, 18 절은 교회 전체의 안전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16절은 몸을 말하고 있고, 18절은 본질적인 존재를 말하고 있는가? 물론 12:4절 이하에 따르면, 후자가 더 좋은 해석인 것 같다. 몸을 죽이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보호하신다. 이 사실을 아는 제자들은 (끝까지) 견디어 영생에 이른다. 14:14절과 21:35절을 보면, 누가는 단지 의인만이 부활한다고 믿고 있다. 이는 부활이 곧 생명 임을 의미한다. 초대 교회는 박해에 직면한 기독교인들에게 인내하라고 격려한다(비교. 히10:32-39; 계 2:2; 21:7-8; 약1:2-4; 롬5:3-4절).

눅21장에 나오는 기자의 두 번째 주된 관심사는 제자들의 인내 혹은 인자의 오심에 대한 준비이다 (34-36절). 이 장에서 예수가 말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복음서 앞 부분에서 이미 말해진 내용 들과 대립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4:25-35절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이 성급한 열광 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한다. 인내하며 제자의 길을 가기 위해선 그 치뤄야 할 댓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급한 열광주의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눅14:26-35절은 이러한 제자의 자세를 엄격하게 요구한다.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1) 26-27절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자세를 요구한다. 두 가지 모두 반복구로 끝난다. "능히 나의 제 자가 되지 못한다"

(a) 26절의 자기 가족과 자기 목숨을 '미워함'은 절대적이고 전적인 분리를 뜻하는 셈족 어투이다. 어느 것에 충성할 것인가의 갈등에 접하게 될 때, 제자라면, 무엇보다 예수에게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이다 (9:59-62; 18:28-30; 비교. 신33:9절).

(b) 27절은 근본적으로 9:23절과 같은 말씀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의 확장이다. 사람이 예수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할 것인가 하는 갈등을 하게 될 때, 자기를 따 르게 되면 죽은 자가 되고, 예수를 따르면 영원히 사는 자가 된다: "제자도란 자기 입장에서, 자기가 편 리할 때 하는 자원봉사가 아니다"(Robert J. Karris, Gospel of St. Luke, [Chicago: Franciscan Herald Press, 1974], p. 59).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떠나고, 예수를 전적으로 따를 때, 비로소 제자 가 된다. 메시야 잔치에 참여하라는 초청을 받았을 때, 이 엄격한 요구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

(2)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세 번이나 반복해 언급한다.

(a) 28-30절에서 이 비극은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추수 때에 도둑들로부터 자기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망대를 세우기 위해,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하는 농부와 같다. 그는 시작한 일을 능히 이루 지 못하였기 때문에 받는 비웃음을 피하려고 계산을 한다.

(b) 31-32절에서 비극은 이웃 임금에게 정복당하는 것이다. 다른 임금과 싸우려 갈 때에 먼저 앉아 자 기 군대로 침략자들을 대적할 수 있는가를 헤아리는 임금과 같다.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c) 34-35절a에서 비극은 버려진 소금 신세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소금은 사해의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 는다. 사해 바닷물엔 많은 것들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 물을 증발시킨 후엔 소금과 석회와 광로석과 같은 결정물들이 남는다. 이 혼합물이 비록 순수한 소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짠 맛이 있기에 소금으 로 쓰인다. 그러나 운반 중에 소금기가 녹아 없어져 버리면, 남아있는 것은 소금과 같은 모양이지만 결 코 짠 맛을 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이미 쓸모가 없어진 남은 것은 버려진다. 마5:13절에서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주어지지만, 누가에서는 제자가 되려고 하는 허다한 무리에게 주어진다(25절). 그는 말한다. "초대를 수락하기 전에 치뤄야 할 대가를 헤아려라.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맛을 잃어 쓸모가 없어진 소 금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제자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14:25-35절의 자료들을 나열하였다. 즉 기독교인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사려 깊이 계산할 것과 시작한 일을 마치지 못하게 되면 비극에 처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 다. 인내는 제자들에게 필수적이다. 14:25-35절이 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말하고 있다면, 21:34-36절은 이미 제자가 된 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내를 동일하게 강조한다.

누가는 묵시적 구도로 기독교인이 깨어 대비할 것을(34-36) 촉구한다.

(1) 정치적 혼란(예루살렘의 멸망을 포함하여)(20-24절)

(2) 우주적 혼돈(25-26절)

(3) 구름 타고 인자가 오심(9:34; 행1:9)

"이런 일이 있기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28절) 예루살렘 멸망을 지 켜보았고, 많은 우주적 징조들을 보면서 살고 있는 누가 교회 입장에서 이제 남아있는 것은 오직 인자 의 오심이다. 봄철의 푸릇푸릇한 잎이 여름이 다가옴을 나타내듯이, 재난과 우주적 혼돈은 마지막이 가 까이 왔음을 나타내고 있음을 누가 독자들은 알고 있다(29-31절). 누가는 묵시적 구도에서, 인자의 오 심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일어났기에 끝이 가까왔다고 믿고 있다. 이 관점에서 32절을 보면, 누가는 이 (자기)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끝이 올 것을 믿고 있다(물론 I QpHab 2:7; 7:2을 보면, '마지막 세대'는 '서너 생애'를 의미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초대 교회와 함께 누가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살전 4:15, 고전15:51-52, 막9:1, 히10:25, 37; 벧전 4:7; 약5:8-9, 계22:7, 12, 20절). 눅21:33절은 32절을 믿는 근거이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임박한 인자의 오심(우주적 심판)의 맥락 안에서, 누가는 그의 독자들에게 항상 깨어(준비하고) 있으라 고 권하고 있다(비교 12:35-40; 18:8절.). 준비하는 것은 이 구절에서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다(36b; 비교 11:4b; 22:40, 46절). 누가에게 기도는 낙망하는 것과 반대이다(18:1). 기도는 끈질기게 견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준비한 것으로 처음 먹은 마음 혹은 자신을 흐트러트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34절). 두 가지 위험이 거론된다:

(a) 호색(여기에선 방탕과 술취함-비교 8:14; 12:45-46; 롬13:11-14절).

(b) 생활의 염려(비교 8:14; 14:15-24; 17:26-27, 28:30절).

인내하라! 준비하라! 이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우주적 심판이 임하리라(35절; 비교. 19:11-27; 행 17:31; 계20:11-13; 벧전4:5; 롬2:5-11; 14:12; 마12:36; 유14-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