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B: 누가의 상황과 누가-행전에서의 기적




기적에 대한 누가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상황 하의 기적에 대한 태도 이해를 이해해야 한다: 이방인, 유대인, 기독교인.

(1) 기적에 대한 이방인들의 이해는 견해가 표영되는 상황(context)/집단(circle)에 따라서 부정적인 태도에서부터 긍정적인 태도까지 다양하다.

(a) 어떤 집단들은 전적으로 기적이 신성을 입증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아폴로니우스의 생애(the Life of Apollonius), 7:38에서 필로스트라투스(Philostratus)는 자기 동료 다미스(Damis)에게 도미티안 (Domitian) 때문에 감옥에 있을 때, 다리에 채워진 족쇄를 풀고, 어떻게 자유롭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자 했다. 이 일 후에 다시 자기 다리가 묶이자, 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 먼저 아폴로니 우스가 신과 같으며, 인간 이상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알았다고 말했다. 다시 수에토니우스 (Suetonius)는 그의 책 "베스파니안의 생애" 7: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스파니안은 아직 명성과 분 명한 신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기대를 받지 못했고, 최근에야 비로소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성과 신성이 곧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두 가지 기적 을 행했다. 베스파니안은 소경을 고치고, 걷지 못하는 절름발이를 고쳤다. 기적에는 신성을 입증해 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여러 종교 제의에서 기적은 승리로운 변화를 뜻한다. 오비드(Ovid)(Metamorphoses, 3:695 이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기적적인 사건과 함께 신의 현현(epiphany)이 있자, 아코 에테스(Acoetes)로 불리는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사제는 자기가 신의 추종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영웅이 자기에게 했던 것을 대해 말한 포도원지기(vinetender)의 말 때문에 회심하게 된 페르시아 상인 에 대해서 필로스트라투스(Philostratus)는 영웅전(Herocicus)에서 말한다. 아풀레이우스(Apuleius)는 이 시스(Isis)가 행한 기적으로 루시우스(Lucius)가 당나귀에서 인간으로 다시 회복되었음을 말한다 (Metamorphoses, 11). 그래서 그는 여신에게 헌신하였고, 이시스 제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마도 기적은 제의 신자의 헌신을 격려하기 위한 한 방법인 것 같다. 스트라보(Strabo)(c.801)는 기적 이야기들이 카노푸스(Canopus)에서 세라피음(Serapeum)을 위해 수집된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를 믿는 자들에게 힘을 주려는 목적을 위한 것 같다.

(b)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기적을 믿지 않는 집단들이 있다. 루시안(Lucian)은 가장 좋은 예이다. [거짓 을 사랑하는 자들(Lovers of Lies)]에서 그는 수많은 철학파 사람들이 기적 설화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 때문에 그들을 조롱한다. 루시안은 기이함 때문에 당혹스럽게 되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왜 진지한 사람 들이 기적과 같은 거짓말에 관심을 갖는가? 루시안은 마술이나 기적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알렉산 더의 거짓 예언(Alexander the False Prophet)]에서 루시안은 기적이나 예언 성취와 같은 것들을 통한 제의 기원(cult's origin)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전체 내용은 신탁과 신탁의 설립자를 믿지 않는다는 것 이다. 아폴로니우스의 생애(the Life of Apollonius of Tyana)에서 필로스트라투스(Philostratus)는 이보 다 좀 더 나은 증거를 보여준다. 기적을 행한다고 해서 마술사로 불리게 된 철학자들의 비난에 대항하 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집단들에게 기적은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거리였다.

(2) 기적에 대한 유대인의 입장은 이방 단체들 속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혼합된 반응을 보여준다.

(a) 기독교 발생 시기에 유대인은 기적을 신적인 지위, 신적인 사람, 혹은 하나님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 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입장으로, 사람들은 기적이 세상 혹은 예언자의 지위 그리 고 랍비의 지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예언하려는 예언자가 표적(sign)과 기적을 증거로 제 시하면, 그에게 주목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를 따르지 않는다"고 시프리 신명기(Sifre Deut 18:19)는 말한다; 이 내용이 말해진 시기는 매우 이르다. 요세 하 겔리리(Jose ha-Gelili)와 아키바 (Akiba) 사이에 논의에서 이미 이 내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b. Sanh90a; Sifre Deut13:3.) 요세푸 스는 고대사, 2:12:3 §280에서 하나님이 3가지 표적을 주었다고 말한다(지팡이를 뱀이 되게 함: 문둥병 이 걸린 손; 물을 피가 되게 함.). 그리고 말하였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신임을 받도록 이 표적들 (signs)을 사용하라,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내 명령에 따라 이 모든 것을 행하라." 요세푸스의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동기가 나온다(예. Ant. 9:2:1 §23; 10:2:1 §28; 20:5:1 §168). b Ta'anith 23a을 보면, 1세기에 기도함으로써 비를 오게 한 호니(Honi)에 대한 전승이 나온다. 가뭄이 들자, 사람들은 호 니에게 기도하기를 요청하였다. 그가 기도하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집단 안으로 들어 가, 그 안에 서서 신 앞에서 크게 외쳤다. "당신 자녀에게 능력을 줄 때까지 나는 결코 여기서 떠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그때 단지 약간의 빗방울만이 떨어지자, 그는 신에게 격렬하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요구한 바가 아닙니다. 그러자 피해가 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는 강력히 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축복스런 비를 요구한 것이지, 삶을 손상케 하는 비를 요구한 것은 아닙니다. 그 러자 그때 정상적인 비가 내렸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 내려 홍수가 되었다. 호니는 다시 신에게 강력히 간청하였다. 이제 비가 그쳐야 할 때입니다. 즉시 구름이 사라지고 태양이 나왔다. 그러자 시몬 b 세 타(Simeon b Shetah)가 말했다. "당신이 호니가 아니라면, 당신에게 금지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신 앞에서 조차 별나게 행동하는 당신에게 내가 무엇을 하라고 할 것인가? 신이 당신 욕망을 당연히 여길까?" 호니의 태도는 거절되었지만 호니의 기도가 기적적인 비를 오게 했다고 하는 것이 시몬의 반 응이다. 그래서 그의 태도가 정당화되었다. 이 이야기는 집단을 이끄는 사람 호니(Honi) 때에 신에 대 한 태도가 기적에 의해 정착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지지받았다: a bath qol 혹은 하늘로부터 나온 소리는 할라카(유대교 관련 법규[역자주])적인 질문을 나오게 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대해 기원 후 70년까지 베스 힐렐(Beth Hillel)은 찬성하고, 얌니아(Jamnia)에 있는 베스 샴마이(Beth Shammai)는 반대하였다(Alexander Guttmann, "The Significance of Miracles for Talmudic Judaism," Hebrew Union College Annual, 20 [1947]: 363-406, 특히 369-71.).

두 번째 입장으로, 기적이 사람의 무죄 혹은 의로움을 입증해 주는 것으로 믿었다. j. Berakoth 5:1에는 랍비 하니나 b 도사(Haninah b. Dosa)가 기도하는 중에 뱀이 물렸지만, 그의 기도를 방해하지는 못했 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랍비가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문 뱀이 굴에 들어가 죽었다. 랍비는 뱀에 물렸지만 그 독으로 해를 받지 않음으로써, 자기 의로움을 인정받았다. b. Baba Mezia 58b-59에는 엘리에제르(R.Eliezer)의 파문 이후 가말리엘(R.Gamaliel)이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그 때 거대한 바람이 일어나 그를 덮쳤다. 그가 말했다, "엘리에제르의 아들 힐카누스(Hyrcannus) 때문에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 소리쳤다. "천지의 지배자이시여, 당신은 내가 내 명예를 위해,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행동하지 않았고, 다만 당신의 명예를 위해 행동했다는 것을 아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나와 당신의 생각의 차이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 다." 그러자 요동치는 바다가 잔잔해졌다. 여기서 바다가 잔잔해진 기적은 랍비의 죄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뱀의 상처로부터, 그리고 바다의 풍랑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의 의미는 일반적인 문화 배경에 대해 아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이방인과 유대인에게서 공통된 믿음은 신적인 힘은 자연(특히 바다 폭풍 에서)과 협력하며, 동물 세계(특히 뱀)의 사악함을 벌하신다는 것이다. 호머(Homer)는 [오디세이 (Odyssey)], 12:127-41과 259-44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디세우스(Odysseus)의 일원들이 난파선 에서 모두 멸망당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헬리오스(Helios)(그리스의 태양신[역자주])의 성스러운 소를 죽였기 때문이다. 칼리톤(Chariton)의 소설(3:3:10; 3:3:18; 3:4:9-10.)도 죄인들은 바다에 빠져 죽지만 의 인들은 구출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스타티루스 프락쿠스(Statyllus Flaccus)의 묘비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한다. 어떤 난파선 선원이 폭풍을 피해 도망가려 했지만, 요동치는 바다는 그들을 좌초시켜, 벌거숭이가 되어, 기진 맥진한 채로 리디아(Lydia) 모래 해변가에 내려 놓았다. 갑자기 독사가 그를 공 격하여 그를 죽였다. 묘비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왜 그는 바다를 대항해 싸웠는가? 육지에서 그를 기 다리고 있는 운명을 그는 피할 수 없었다"(H. Conzelmann, Die Apostelgeschichte [Tübingen: Mohr, 1963], p. 147.). 세타의 아들 시몬(R. Simeon ben Shetah, c. 80. B.C.)은 말하였다(Tosefta, Sanhedrin 8:3). 그는 검을 가지고 동료 뒤를 쫓는 사람을 보았다. 이 두 사람은 버려진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시 몬은 들어가 죽은 한 사람과 피 훌리는 검을 가지고 있는 다른 한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사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죄인에게 복수하도록 시킨다; 살인자는 뱀이 그를 죽이려고 공격하기 전에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 속에 있으면서도 폭풍이나 뱀에 의한 처벌이 없다는 것을 죄 없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이러한 처벌도 분명하게 믿을 수 있다. 아테네 연설가인 안티폰(Athenian orato Antiphon)(480-411 B.C.)은 자기의 의뢰인, 헬리온(Helion)을 위해 연설문을 섰다. 의뢰인은 바다 여행 중에 살인자로 고소 당했다. 연설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징벌이 범죄에 대한 것이고, 그가 여기 에 가담되었다고 하더라도, "내 경우에 모든 기소 요인의 반대도 역시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항해를 즐겼기 때문이다. 고소인이 나를 거짓으로 고소한 이 비난에 대한 확 실한 증거로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주장한다"(G. B. Miles and G.Trompf, "Luke and Antiphon: The Theology of Acts 27-28 in the Light of Pagan Belifes about Divine Retribution, Pollution, and Shipwreck," Harvard Theological Review, 69:259-67, esp. p. 262. [1976]). 랍비는 독사에 물린 후, 그 리고 바다 폭풍 가운데서 죽음으로부터 구출되어, 자기 죄 없음과 의로움을 증명하였다(참조. 바울, 행 27-28장).

세 번째 입장으로는, 때때로 기적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는 것이다. 왕 하5:15-19절에서 문둥병을 치유받은 시리아 사람 나아만(Naaman)은 이스라엘 하나님에게 자기 믿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가 자기 고국 신의 제단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이해해 주실 것을 요구한다. 마카 비후서 3:35-39절에서 헬리오도루스(Heliodorus)는 기적을 경험한 후, 유대인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한 다.

(b) 하지만 1세기가 끝난 후에 유대교 내에 있는 여러 집단들은 기적을 정당한 능력으로 인정하는 것 을 꺼렸다. 결정적인 점은 할라카(halakah)의 자료들 속에 기적이 어떤 입장을 입증하는 것으로 여겨지 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b. Baba Mezia 58b-59b에 나온다. 탄나임(Tannaim) 두 번째 세대 기 간(A.D. 90-130)중에 엘리에제르(R. Eliezer)와 엘리에제르에 대항하다가 망한 요수아(R. Joshua) 사이 에 논쟁이 있었다. 기적이 엘리에제르의 입장을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일어났다(뽕나 무가 뿌리째 뽑히는 것; 물이 거꾸로 넘친다; a bath qol). 왜냐하면 토라(Torah)가 이미 시내(Sinai) 산 에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탄나임 세대(Tannaitic generation)를 계승해서 세 번째는 "기적을 말하지 않 아야 한다"는 원칙이 기적에 대한 입장이다. 이것은 크게 부상하는 기독교의 기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밤베르거(B. J. Bamberger)는 기적을 통한 어떤 개종자의 예도 말하지 않는다 (Proselytism in the Talmudic Period [reprint ed., New York: KTAV 1968] ). 그러므로 100년 이후 유대교에서 기적은 앞에서처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지 않았다.

(3) 고대 교회도 기적에 대한 혼합된 입장을 분명히 보여준다.

(a) 한 편으로, 기적이 교회의 삶 속에 여전히 일어나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Justin, Apology Ⅱ, 6; Irenaeus, Against Heresies, 2:48-49; 2:48-49; 2:31:2; 2:32:4; Tertullian, Apology, 23; Origen, Against Celsus, 1:2:46; 3:24; Eusebius, Church History, 5:7; Augustine, City of God, 22:8; Sermon, 322.). 더 나아가서 기적은 저자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거나, 이미 그렇게 하였다(Quadratus [according to Eusebius, HE, 4:3:2]; Acts of Paul; Arnobius 2:12; Marcion [according to Tertullian, Aganist Marcion, 3:2-3]; Abgar legend [related by Eusebius, HE, 1:13]; Origen, Against Celsus, 1:46; Origen, Eusebius, Church History, 2:32).

(b) 다른 한 면으로, 지금은 필요하지 않지만, 초대 교회 세대에서는 기적이 신앙을 생기게 하는 중요 요소라고 다른 사람들은 믿었다(John Chrysostom, Homily in Matt 12:2; 14:3; Homily in John 12:3; Homily in 1 Cor 6:2). 기적이 문제거리이기도 하고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믿었다: 안디옥의 데오필루스 (Theophilus of Antioch)(To Autolycus 1:13)는 자기가 죽은 자와 산 자로부터 일어난 사람의 예를 제 공하더라도, 자기의 적대자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유대인/이방인은 기적에 만족 스러워 하고 있는 기독교인을 공격한다:

1) 기독교인의 기적은 다른 신이나 영웅들에 대해 말하는 놀라운 일 이상으로 주목할 만한 것도 아니 다;

2) 기독교 기적 이야기는 허구적이다;

3) 기독교 기적은 마술적인 것에서 나온다(G.W.H.Lampe, "Miracles and Early Christian Apologetic," in Miracle, ed. C.F.D.Moule [London: Mowbray, 1965], pp. 205-18.).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 때, 기독 교인들 중에는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혀 기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누가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이런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에서 기적의 기능에 대한 누가의 태도에 대 해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a) 아마도 복음서들 중에서 누가-행전이 기적에 대해서 가장 긍정적인 입장을 ?여주는 것 같다.

첫 번째 입장은, 4:31-5:11절에 대한 토론이 잘 보여준다. 저자는 기적이 복음을 전하는 기능을 가지 고 있다고 믿는다. 기적은 신앙을 격려한다(참고. 행5:12-16; 8:6-7, 12; 9:32-35, 36-42; 13:6-12; 16:16-34; 19:11-20절).

두 번째 입장은, 누가는 기적이 자기 위치와 말을 정당화한다고 믿는다. 행2:22절에서 예수는 "큰 권능 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였다" 이것은 눅7:11-17, 18-23절과 같은 구절에 나오는 경우처럼 보인다. 눅6:6-11절과 같은 구절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율법적인 질문에 대해 기적으로 도전한 것처럼 보인다(참고. Honi's experience). 행15:12절에서 기적은 교회가 이방 세 계로 확장해 나가도록 영향을 주었다.

세 번째 입장에서, 기적이 자신의 죄없음 혹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 준다는 것이 누가의 생각이다. 행2:32-36절과 3:14-15절에서 죽음으로부터 일어난 예수가 자기를 배척하였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당 성을 드러내 보인다. 행27-28장에서 바울이 난파선으로부터, 그리고 뱀의 독으로부터 구출된 것은 그의 죄없음을 입증한다.

(b) 동시에 누가는 기적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는 물론 기적의 가치에 대해서 결코 소박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첫 번째, 이방인과 유대인처럼 저자도 기적이 회심을 강요하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참고. 6:6-11; 8:26-39; 1:14절 이하; 행4:16-21; 14:8-18; 16:16절 이하).

두 번째, 기적 자체가 적절한 안내자는 아니다. 기적은 구약성서와 예수의 말씀(행15:12, 13-19; 11:15-16; 눅9:1-6; 10:9, 17-19절)으로 지원받을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기적을 행하는 자들의 착한 품성 때문에 일어난 기적은 마술적인 것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 예수가 처음부터 자기도취적이거나 능력에 굶주리지도 않았음을 보여주는 눅4:1-13절을 주목하라. 4:1-13절의 삼 중 유혹을 반영하고 있는 눅23:35-39절에서 이와 똑같은 점이 다시 나온다. 예수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을 해치기 위하여 자신의 기적적인 능력을 사용한 적은 전혀 없다. 플라톤(Plato)(Rep. Ⅱ:364.)은 이 세상의 적들을 처벌하겠다고 약속하는 예언가들에 대해서 경고한다; 어떤 유대인들은 호 니가 자기의 적들을 파괴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를 죽인다. 트 라얀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of Tyana)(Life 3:7)는 마술사들이 말로 비난하는 것에 대항하여 자기 를 방어한다. 그는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다. - 누가가 무화과 나무에 대한 저주를 생략한 것은 매우 중 요하다. 사도행전은 헛된 것에 빠지게 하는 마술사에 대한 베드로의 적의를 보여준다(8:18-19절). 바울 도 마술사(13:6절 이하)와 마술(19:18-19절)에 대해 적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바울은 탐 욕이 없는 사람으로 그려진다(18:3; 20:33-35절).

네 번째, 기적을 경험하는 것과 신앙을 가지는 것이 같은 것은 아니라고 누가는 믿고 있다. 치유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은 아니다(눅17:11-19절.). 마지막으로 무엇이 더 우선적인가를 말하자면, 기적적 인 능력을 가지는 것은 회심하는 것에 비해 부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