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왕권의 관점에서 본 시온신학 연구

― 시온신학의 형성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

 

 

                                                      권혁 승

                                                   (서울신학대학교)

   

 

I. 시온-예루살렘의 중요성

 

   

   ‘예루살렘’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지명이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언급된 경우는 약 750여 회에 이르고 있으며, 시가서를 중심으로 자주 등장하는‘시온'이라는 지명도 180여 회나 언급되고 있다. 이런 표현 이외에도 다윗성, 모리아산, 유다의 도성, 성전산, 성산, 거룩한 도시, 살렘, 여부스, 아리엘 등과 같은 예루살렘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이 수 백여 회나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을 모두 포함하면, 구약에서 ‘예루살렘’은 무려 2000여 회 이상 언급되고 있는 셈이다.  

   구약성서에서의 ‘예루살렘’은 단순한 지명 혹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로서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의 신앙을 표현하는 구약신학의 한 주제이며 구약 전체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신학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히브리대학의 Talmon교수는, 예루살렘의 성서적 의미를 논하는 자신의 논문에서 시온-예루살렘의 의미를 시내산과 대비시켜 설명하였다. 시내산과 시온산을 이스라엘 구속의 시작과 정착이라는 관점에서 서로 대비시킨 그는 시온산으로 표현되는 예루살렘이 갖고있는 역사적-신학적 중심성을 강조하였다.1)

   시온-예루살렘이 지니고 있는 성서신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늦게 등장한 도시였다. 이런 점은 예루살렘이 지니고 있는 지형적 위치와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예루살렘은 주변이 산과 골짜기가 둘러 싸여 자연방어가 가능한 도시였다.2) 그러한 지형적 여건은 안보적 차원에서는 유리한 요소가 될 수 있었지만, 외부와 단절된 소외 지역라는 단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초기의 이곳은 벧엘, 기브온, 세겜, 헤브론, 브엘세바 등과 같은 이스라엘의 다른 많은 도시들처럼 종교 혹은 정치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였다. 예루살렘은 오경에서 멜기세덱 기사(창 14장)를 제외하면 주요한 도시로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예루살렘은 족장시대나 초기 이스라엘시대 어느 때도 종교의식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였다.3) 또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땅과 관련된 어떤 약속들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다.4) 다윗 시대까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영토의 중심지인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영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정복되지 않은 외곽지역의 이방도시였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그의 수도로 선택한 이유도, 이 도시가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와도 연관성이 없는 중립적 성격의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도, 이곳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 전승들과는 상관없이 단지 다윗의 개인적 차원의 왕실도시(royal city)로 얼마동안 유지가 되었다. Noth가 지적한 것처럼, 다윗은 단지 그의 가족을 비롯한 신하들, 그리고 그가 거느리고 있었던 용병들 정도만을 예루살렘에 주둔시켰을 것이다. 다윗이 그의 통치 초기에 예루살렘을 '다윗성'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등장이 역사적으로 후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에 끼친 영향력은 지속적이고 주도적이었다. 다윗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예루살렘은 정치의 중심지라는 지역성을 넘어 이스라엘의 민족적, 그리고 종교적 의식 속에서 항상 살아있는 불멸의 신학적 요소가 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운명이 유지할 때에는 물론 나라 전체가 멸망당하였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한 지역이 역사의 긴 과정 속에서 그러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역사에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었다. 한때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였었던 실로가 이에 대한 좋은 예이다. 에벤에셀 전투 이후 실로는 블레셋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파괴 이후 실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 안에서 더 이상 중요한 위치를 유지하지 못하였다.5)  그런 반면, 예루살렘은 적어도 바벨론과 로마에 의하여 두 차례나 실로보다 더 심각한 파괴를 당하였다. 성과 성전은 완전히 불타 소실되었고, 대다수의 상류층 엘리트들은 해외로 강제 추방되었다. 주권도 빼앗겨 더 이상 국가로서의 역사적 맥을 이어갈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역사적 비극을 극복하고 오늘까지 현존하는 도시이며 세계 삼대 종교의 성지로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폐허로 남아있는 고대의 유명한 도시들과 극적인 대조를 보여주는 점이다.6) 이러한 사실은 예루살렘이 더 이상 한 나라의 수도로서 행정의 중심지나 국가적 성전이 위치하였던 종교의 중심지로서의 의미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신앙과 삶에 중심적 요소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7)

   예루살렘이 국가적 재난들을 극복할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긴 역사 속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그의 지상적 통치와 거처의 장소로 선택하였다는 시온신학에서 찾을 수 있다. Bright가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시온신학은 다윗의 정치적 업적과 깊은 관련이 있다.8)  Bright는 예루살렘과 다윗에 관련된 두 가지의 선택신학에서 시온신학의 기원을 찾았다. 즉 (1) 여호와는 예루살렘을 그의 지상적 거주지로서 선택하셨다는 점과, (2) 다윗을 그의 지상적 대리 통치자로 선택하였다는 점이다. Roberts 역시 같은 입장에서 여호와의 예루살렘 선택과 관련된 전승은 다윗 시대의 제국주의적 확장이라는 역사적 경험과 접촉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9) 여호와의 예루살렘 선택은 다윗 통치의 초기에 형성되었음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이다. 다윗의 위대한 업적을 고려한다해도 이스라엘의 이전 전승과 전혀 상관없이 이스라엘의 역사 토양에 새롭게 등장하게 된 예루살렘이 그렇게 짧은 기간동안 이스라엘 종교에 확고하고 지속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갖게 된다. 과연 시온신학 형성의 배경이 단지 다윗의 정치적 업적 뿐인가? 아니면 시온신학 형성에 영향을 끼친 다른 요소들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동안에 확고한 시온신학 형성이 가능하였는가?  

   어려운 성경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일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고대 근동지방의 문서들 속에서 해결의 암시를 얻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고대 근동지방의 문헌에 관한 최근 연구는 시온신학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즉 고대 근동에서 신적인 왕권은 왕궁도시의 선택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더구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시온신학의 형성이 고대 근동지방의 다양한 신화적 요소들에 의하여 직접 내지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음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이기도 하다.

   본고에서는 우선 시온신학의 주제들을 하나님 통치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시온신학의 중심 주제인 신적인 왕권사상과 왕궁도시 선택 사이의 관계성을 고대 근동의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성들이 어떠한 형태로 구약성경에서 제시되고 있는가를 논의의 주제로 삼도록 하겠다. 논의의 말미에서는 시온신학의 신학적 의미와 암시들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II. 시온신학의 중심 주제들

 

 

   신학적 주제로서의 시온-예루살렘 개념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 시도되었던 연구 분야이다. 시온신학에 관한 연구는 Noth와 von Rad 두 구약학자에 의하여 그 기초가 세워졌다. 1949년 Von Rad는 이사야 2장과 60장 그리고 학개 2장 등 세 예언서 본문 속에 나타난 예루살렘 찬양에 관한 짤막한 논문을 발표하였다.10) 그 다음해인 1950년, Noth는 구약신학에서 예루살렘의 의미가 중요시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예루살렘이 초기 이스라엘 전승들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였다.11) 그러나 시온신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von Rad의 제자이기도 하였던 Rohland에 의하여서였다. 그는 연구 범위를 시편, 특히 시온의 노래들(Zion Songs)과 제왕시들(Royal Psalms)에 국한시켜 시온신학을 연구하였다.

   시편을 중심으로 시온신학의 내용을 분석하였던 Rohland는 시온신학의 주제를 다음의 네 가지 요소로 이해하였다: (1) 시온은 가장 높은 산인 북방 (Zaphon)의 정상이다 (시48:3-4); (2) 낙원의 강이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시46:5); (3) 하나님은 그곳에서 혼돈의 세력인 물의 공격을 격파시켰다 (시46:3); (4) 하나님은 그곳에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열방과 그 백성들을 대파하였다 (시46:7; 48:5-7; 48:5-7; 76:4, 6-7). Rohland는 위의 네 가지 중 마지막 요소인 열국의 대파를 다시 세 가지 내용으로 세분화시켰다. 즉 이러한 하나님의 승리는 (a) 하나님 현현이나 하나님의 책망을 통하여 나타나는 두려움으로 이루어지며 (시48:6; 46:7; 76:7), (b) 아침이 되기 전에 일어나며(시46:6), (c) 이 승리에서 하나님은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들을 파멸시킴으로 전쟁 그 자체를 결정적으로 종식시키게 된다 (시76:4).12)  

   Rohland의 시온신학 분석은 대체적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13) Wildberger는 위에 언급된 Rohland의 네 가지 주제 이외에 다섯 번째 주제로서 열국의 예루살렘 순례를 추가시켰다.14)  Wildberger의 제안은 Junker에 의하여 지지를 받았다.15)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위에서 주장된 다섯 번째 요소는 포로기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포로기 이전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기적인 예루살렘 순례와 예루살렘 왕에 대한 열방의 방문 등의 모티브가 시온신학과 결합된 것으로 보고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새로운 요소이기보다는 Rohland의 네 번째 주제의 결론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Gowan은 Rohland의 분석을 받아들이면서 위에서 언급한 시온신학의 네 가지 요소 이외에 (1)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그의 거처로 선택하셨다는 점(시78:68; 132:13)과 (2) 시온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주어지는 축복들을 나누게 된다는 점(시48:12-14; 132:13-18; 133:1-3; 147:12-20) 등의 두 가지 요소를 더 추가시켰다.16)     

   최근에 이르러 시온신학 내용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Roberts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그는 Rohland와는 달리 연구 범위를 시편 이외에 시가서와 산문체의 내용까지 확대시켰다. Roberts는 시온신학의 내용을 두 가지의 요소로 대별하였다. 즉 (1)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의 큰 왕이시라는 점과, (2)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선택하여 그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점이다. 그는 시온신학의 두 번째 요소 즉 하나님이 그의 거처로 삼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선택하셨다는 점을 다시 세 가지 내용으로 세분화시켰다: (a)시온--예루살렘의 지형에 관련된 암시 (시온의 위치는 높은 산 위에 있으며 또한 시온은 낙원의 흐르는 강물로 둘러 쌓여있다); (b) 시온--예루살렘의 안전에 관련된 암시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침입하여 오는 혼돈의 세력과 외적의 군대를 막아주신다); (c) 시온--예루살렘의 거주 백성들과 관련된 암시 (하나님이 시온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내리는 하나님 축복의 근거가 되며, 동시에 시온에 거하는 자들은 그러한 하나님 축복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17) Roberts의 이러한 시온신학 분석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개념과 하나님의 선택사상에 중점을 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온신학은 이미 오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왕권사상을 이스라엘의 역사 현실과 관련시켜 확고한 신학적 정립을 이룬 신학의 흐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Mettinger 역시 그의 ‘Zion-Sabaoth 신학’에 관한 연구에서 시온신학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하였다. 즉 (1) 이스라엘의 하나님은‘만군의 여호와’로 지칭되는 왕이시며 (2) 그러한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임재하신다는 개념이다.18) Roberts의 시온신학 분석을 지지하는 Ollenburger는 시온의 상징적인 의미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에 의하면, 시온신학의 일차적 요소는 여호와의 왕권이며, 여호와의 왕권은 그의 창조자-보호자라는 이중적 역할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그는 시온을 여호와가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제공하는 안전성과 보호성을 상징한다고 이해하였다.19)  

 

 

III. 고대 근동의 문헌에 나타난 왕권과 왕궁도시

 

 

1. '수멜군주목록' (The Sumerian King List)

 

   ‘수멜군주목록’은 이 기록이 있기까지 수멜을 통치하였던 왕들의 긴 목록이다.20) 이 문헌은 기원전 20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메소포타미아의 도시인 이신(Isin)에서 기록된 것 같다.21)  수멜 군주목록의 일차적인 관심은, 왕권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 통치가 시작된 에리두(Eridu)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언급되고 있는 도시인 이신(Isin)에 이르기까지 왕권이 계승되었던 도시들에게 있었다.

   ‘수멜군주목록’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왕들의 이름들, 왕궁도시들, 그리고 왕의 통치기간들이다. 그러므로 군주목록은 왕명과 왕궁 도시 이름들을 단순히 반복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이 군주목록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군주목록은 고대시대 이곳에서 왕정제도가 일찍부터 정착된 정치제도이었음을 확증시켜준다. '수멜군주목록'을 기록한 역사가들에 의하면, 하늘에 있는 신들로부터 왕권이 주어짐으로 역사와 문명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수멜군주목록'은 왕권의 외형적 확립은 항상 왕궁도시에서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왕궁도시는 문명의 바탕으로서의 왕권이 확립되기 이전 벌써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수멜군주목록'은 왕권과 왕궁도시들의 관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세계관에 의하면, 왕정정치제도보다 앞서 존재한 것은 왕궁도시들이다. 그와 같은 왕궁도시들에 대한 강조는 새로운 왕조가 시작이 될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다음과 같은 표현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In) Eridu A-lulim (became) king.”이것은 왕조의 시작을 왕궁도시와 연관시키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수멜군주목록' 전체에서 24번이나 등장하고 있다. 왕궁도시에 대한 강조는 새로운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이 새로운 도시로 왕권이 옮겨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잘 나타나 있다.22) 그런 점에서 왕궁도시에 대한 표현은 언제나 절대적이었다. 여기에서 주어진 일정 기간동안 하나의 왕궁도시는 하나의 왕권만을 소유할 수가 있다는 원칙이 성립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왕권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옮겨진다는 것은 새로운 왕권을 정당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였다.23)   

 

2. ‘바벨론 역대기’ (The Babylonian Chronicle)

 

   '수멜왕조목록'과 유사한 형식이 ‘바벨론 역대기’에도 나오고 있다. 바벨론 역대기에서 왕의 합법적 통치를 규정하기 위하여 규칙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형식은  “a certain king sat himself on the throne in Babylon.”이다. 때로 바벨론 왕이 그의 종속군주를 임명할 때에도 다음과 같은 유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to place someone on the throne in Babylon.” 이 두 표현은 모두 새로운 왕의 등극이 이루어질 때에는 예외없이 사용되었다.24)  바벨론 역대기의 표현형식이 다소 '수멜군주목록'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왕궁도시가 강조되는 점은 두 문헌 모두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25)  

 

3. ‘에누마 엘리쉬’ (Enuma Elish)

 

   바벨론의 창조설화 ‘에누마 엘리쉬’는 혼돈의 세력에 대한 승리는 왕궁도시 혹은 왕궁신전을 건축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와 같은 연관성은 일종의 고정된 형식처럼 나타나고 있다. 즉 혼돈의 세력을 격파시킨 뒤에 승리한 신은 전쟁터로부터 그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새로 세워진 신전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에누마 엘리쉬'에서 적어도 세 번 정도 나오고 있다.26) '에누마 엘리쉬'의 첫 번째 판 (I, 69-78)에서 에아(Ea)는 압수(Apsu)를 살해하고  압수의 신하인 뭄무(Mummu)를 투옥시킨 뒤, 압수에 그의 거주지를 건설하게 된다. '에누마 엘리쉬'의 네 번째 판(IV, 105, 141-46)에서는, 티아맛(Tiamat)을 격파시킨  마르둑(Marduk)은 귀환과 더불어 그의 거주지로서 에샤라(Esharra)를 건축하였다.  '에누마 엘리쉬'의 여섯째 판(Vi, 45-72)에 의하면, 마르둑의 허락을 받은 다른 신들은 마르둑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바벨론에 에사길라(Esagila) 신전을 건축하였다. 이 신전은 일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완공되었고, 신전 완공 후에는 이곳에서 거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다.

   이러한 신화적 형태는 어느 면에서 인간 왕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왕궁이나 신전을 건축하게 된다는 역사적 사건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에누마 엘리쉬'와 ‘구데아 원통’(the Gudea Cylinders)을 비교 연구한 Kapelrud에 의하면, 신들에 의한 신전건축은 곧 인간들의 의한 신전건축 혹은 왕궁건축을 전제한다.27) 고대 사회에서 인간 왕은 신의 허락 없이 자신의 왕궁이나 신전을 건축할 수가 없다.28) 그러나 일단 신전이 건축되면, 인간 왕은 신전을 건축한 공을 인정받아 영원한 통치권을 약속 받게 된다. '구데아 원통'의 경우, 신전을 건축한 왕은 신들의 위치에까지 격상되기도 하였다.29)     

   '에누마 엘리쉬'에 나오는 신전건축에 관한 주제는 신의 왕권과 신의 왕궁도시 혹은 신전의 선택이 어떤 관계성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에누마 엘리쉬'에서 혼돈의 세력에 대한 신의 승리는 곧 세계의 창조를 의미하는데, 그와 같은 형태의 창조설화(Chaoskampf)는 신이 왕으로 등극하는 것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런 점에서 Mettinger의 다음과 같은 제안은 본고의 주제와 관련하여 중요성을 갖는다. 그는 '에누마 엘리쉬'에 나오는 구조적 내용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1) 신의 혼돈의 세력에 대한 승리; (2) 신의 왕됨에 대한 환호; (3) 왕의 도시나 신전의 건축. 그의 창조설화 분석에 의하면, 신의 왕권 주장은 혼돈의 세력에 대한 그의 승리를 통하여 확정되지만 왕으로서의 통치를 가시화시켜 주는 것은 그의 신전건축을 통해서이다.30)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의 왕궁도시로서 바벨론은 마르둑의 거처이며, 그가 신들의 왕으로서 하늘과 땅에 대한 그의 통치를 행사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마르둑의 왕권은 왕궁도시를 선택함으로서 재확인되었으며, 따라서 그 도시는 마르둑의 왕권 자체만큼이나 중요성을 띄게 된다.

   

4. ‘우가릿 문서들’(Ugaritic Texts)

 

   신전이 그 사회 안에서 갖는 기능 중의 하나는 왕에게 적절한 통치적 정당성을 부여하여 신이 창조한 세계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었다.31) 우가릿 문서 중의 하나인 바알 신화에 관한 문서는 특별히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첫째는, 그 문서가 성경에 나오는 시적인 표현들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가나안의 환경 속에서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바알 신화와 관련된 우가릿 문서 연구의 개척자 역할을 하였던 Cassuto는 구약성경과 가나안 문헌 사이의 문학적 유사성을 열 가지의 문학적 표현방식을 통하여 지적하였다.32) 둘째는 이 문서가 신적인 왕권과 관련하여 궁전이나 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Cassuto는 바알 신화 연구에서 바알의 신전의 중요성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특히 바알 신화에서의 ‘신전’은 다른 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예배의 처소가 아니라 바알의 거주지로서의 ‘궁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거주지’와 ‘신전’을 다른 두 개념으로 구분하고 있다. 즉 바알의 실제적 거주지는 하늘이지만, 인간은 바알에게 예배할 목적으로 하늘 거주지를 닮은 신전인 그의 궁전을 세웠다는 것이다.33) 바알의 궁전의 건축은 바알과 모트 사이의 투쟁 이야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즉 왕궁의 건축은 모트와의 투쟁에서 바알에게 유리한 입장 곧 모트를 물리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사실은 그에게 속한 그의 왕궁에서 인간을 비롯한 다른 신들에게 자신의 왕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바알이 기필코 그의 왕궁을 갖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완권 확립을 위하여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34)  

   풍요의 신 바알과 전쟁의 여신 아나트와 관련된 우가릿 문서들은 크고 작은 단편들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바알-아나트의 신화의 내용이 무엇이며, 어느 것이 이 내용에 속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다. Clifford에 의하면, 바알은 신들의 왕이 되기 위해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신적 왕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바알이 취한 행동은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1) 첫 단계--바알은 얌과 모트에게서 승리를 얻기 이전에는 정치적인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신전이나 왕궁이 없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2) 두 번째 단계--그의 승리 이후에도 바알은 그에게 신전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왕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한 여신에게 부탁하여 엘 신으로부터 신전을 건축할 수 있는 허락을 얻어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3) 세 번째 단계--여신의 부탁을 받은 엘 신은 신들의 회집에서 신전건축을 허락하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4) 네 번째 단계-- 신전건축을 축하하는 연회가 벌어지며, 바알은 비로서 왕적 권위를 선포하게 된다.35)    

   바알신화의 중심 주제는 왕권을 확보키 위한 바알의 투쟁기록이다. 이점에서 학자들의 의견은 대체적으로 일치한다.36) 그런데 여기에서 신적 왕권은 왕궁도시나 신전의 건축과 직결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알이 왕위에 오르는 네 단계는 신의 왕권과 관련하여 신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혼돈의 세력을 격파하고 난 이후에도 바알은 그의 왕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가 없었다. 그와 같은 상황을 표현하기 위하여 바알신화는 'Baal has no palace like the other gods' 라는 구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37)  바알이 왕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은 엘신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신전을 건축하고 난 이후부터이다. 바벨론의 창조설화 ‘에누마 엘리쉬’와 같이 바알신화의 기본적 요소도 신적 왕권이 혼돈의 세력을 파멸시키는 것과 더불어 왕궁도시나 신전을 건축함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III.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왕권과 예루살렘과의 관계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왕정을 도입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을 ‘왕’이라고 호칭하였다. Buber는 기드온과 관련된 내용인 사사기 8장 23절을 다루면서 이스라엘에서 신정정치의 이상은 성경의 가장 오래된 내용에서 잘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민 10:35-36; 23:21-23; 삿 5장 등) 그에 따르면, 왕정을 지지하는 견해와 반대하는 견해가 사사기서에 공존하고 있음은 곧 왕정이 실시되기 이전부터 신정정치의 이상이 이미 이스라엘에 널리 알려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38) Uffenheimer 역시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왕권사상이 이스라엘에 존재하였음을 주장하였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곧 신정정치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그는 이해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절대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39)  

   다윗에 의하여 이스라엘에 왕정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왕권사상이 이스라엘 사회에 존재해 왔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신적 왕권사상은 근동지방의 문화 속에서 자연히 신전이나 왕궁도시 건설과 관련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왕권과 관련하여 왕궁도시나 신전을 강조하는 내용은 구약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찾아 볼 있다. 이러한 성경 내용들은 다른 고대근동지방의 문서에서와 같이 이스라엘에서도 신적 왕권이 왕궁도시와 긴밀한 관계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먼저 구약성경에 나타난 인간 왕권과 왕궁도시인 예루살렘과의 관련성을 살펴보고, 다음에 하나님의 왕권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이스라엘의 왕권과 예루살렘

 

   성경에는 이스라엘 왕들의 등극과 관련하여 몇 가지 공식적인 양식이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양식들은 비록 인간 왕의 등극에 국한되긴 하지만, 간접적으로는 고대 세계에서의 왕권개념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일이 생기게 될 때, 이에 대한 표현으로서 이스라엘에서는 두 가지의 다른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make someone king'이고 다른 하나는 'become king'이다. 전자의 경우는 아비멜렉 (삿 9:6), 사울 (삼상 11:15), 다윗 (삼하 5:3), 그리고 오모리 (왕상 16:16) 등의 등극과 관련하여 사용이 되었고, 후자의 경우는 암살롬(삼하 15:10), 아합 (왕상 22:52) 그리고  여호람 (왕하 3:1) 등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이 두 동사의 사용에 있어서 의미상 차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전자는 사역형 동사로서 왕권의 근거가 분명하게 언급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동사가 사용된 모든 경우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점은 그 왕이 왕으로 임명되거나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장소이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를 설명하거나 요약하는 특별한 형식이 없다. 다만 몇 가지의 다른 표현 방식들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1)‘Solomon reigned in Jerusalem over all Israel for forty years.’이 표현 형식은 일정한 기간동안 왕이 통치하는 영역과 그의 통치가 그의 왕궁도시에서 있었음을 보여준다.40)   

   (2)‘In the eighteenth year of the reign of Jeroboam son of Nebat, Abijah became king of Judah,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or three years.’ 두 번째 형태의 특징은, 왕이 통치하였던 영역에 관한 언급과 더불어 왕궁도시의 언급이 문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41)  

   (3) ‘In the seventh year of Jehu, Joash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for forty years.’성경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세 번째 형태는 통치 영역에 관한 언급은 없고 단지 왕의 통치가 행사되었던 왕궁도시만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주로 유다의 왕들에게 적용되고 있다.42)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형태들은 약간씩 다르게 왕들의 통치를 요약해 주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모두가 왕궁도시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왕의 통치와 관련하여 왕궁도시의 중요성이 그만큼 큰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왕궁도시의 언급은 어떤 구체적인 역사기술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그 당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역사기술 형식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관습으로 사용되었던 그런 형식이 어떻게 기원되었는가하는 질문은 남게 된다. 그에 대한 해답은 이스라엘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고대근동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앞부분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대근동의 문헌에는 왕궁도시가 신의 특별한 선택 대상임을 보여주는 여러 근거들이 있다. 그러므로 왕이 새롭게 왕위에 오르는 사건은 엄격하게 왕궁도시로 제한되어 있으며, 등극의 형식에 그 도시 이름이 거명되는 것은 신과 관련된 종교적 이유임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Weinfeld는 성전과 왕궁의 건축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거대한 제국으로 등장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지적하였다.43)

 

2. 하나님의 왕권과 예루살렘

 

   여기에서 다룰 주제는 하나님의 왕권과 예루살렘-시온이라는 장소성이 밀접하게 관련된 내용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권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혼돈의 세력이 어떤 성격을 띄느냐에 따라 논의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도록 하겠다: (1) 하나님의 대적이 신화적인 요소를 지닌 원초적(primodial) 혼돈의 세력인 경우; (2) 하나님의 대적이 역사적 형태를 띈 혼돈의 세력인 경우; (3) 하나님의 대적이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 혼돈의 세력인 경우.44)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형을 고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왕권과 관련된 세 가지 요소--혼돈의 세력과의 투쟁, 시온의 언급, 하나님의 왕권 확립--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대표적 본문을 선정하여 그 내용을 주석하는 방법을 취하도록 하겠다.    

 

   (a) 원초적 혼돈 세력과의 싸움 (시 24편)

 

   하나님의 원초적 혼돈세력과의 싸움은 시편 24편에서 발견되는 중심 주제이다. 그러나 이 시편은 여호와의 싸움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시편 24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 24: 1-2)

 

   시편 24: 2은 여호와께서 ‘바다’와 ‘강’위에 땅을 세우셨다고 노래한다. 이 부분은 고대 가나안 지방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고대 우가릿 문헌에서 혼돈의 세력은 ‘얌’과 ‘나할’곧‘바다’와‘강’으로 표현되었다. 바알은 이런 혼돈의 세력을 격파시킴으로서 질서 잡힌 세상을 만들 수 있었고, 자신이 그런 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가 있었다.45) 여기에서 여호와의 싸움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여호와께서 바다와 강들 위에 세계를 창조하였다는 것은 이들 혼돈의 세력에 대한 전적인 통제를 의미한다. 시편 24: 8 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여호와의 싸움을 묘사하고 있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 24: 8)

 

우가릿 문헌에서와 같이 ‘얌’을 정복한 결과는 여호와의 왕권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2절에서 언급된 여호와의 창조는 8절에서 그의 왕권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8절의 하나님 왕권은 군사적인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 “영광의 왕”은 ‘강하고'과 ‘능한'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되고 있는데, 이는 출애굽기 15:2-3에 나오는 ‘my strength'와 ‘warrior'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46) 또한‘Strong and mighty’라는 표현은 성경 여러 구절에서 전사로서의 여호와가 지니고 있는 속성임을 보여준다 (신 10:17; 사 10:21; 렘 32:18; 느 9:32).  Von Rad와 Riggren이 지적한 것처럼, 여호와의 이러한 속성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 개념에서 기원된 것으로 이해된다.47)  그런 점에서 볼 때, 여호와를 전사이면서 왕으로 이해한 것은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역사 경험인 출애굽에서 기원된 것임이 분명하다.         

   여호와의 왕권은 그가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행렬을 표현하고 있는 7절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 7)

 

‘머리를 들지어다’라는 표현은  ‘extend your height’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은 왕의 영광이 너무도 높기 때문에 낮은 문들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의인화된 문들을 향하여 여호와의 입장하심을 기뻐하라는 명령의 은유적 표현일 수 있다.48) Dahood는 이 구절을 ‘to rejoice, be of good hope’ 를 의미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 구절은 우가릿 문헌에서 긴 여름의 가뭄을 보내는 농부가 첫 비를 기다리는 소망을 표현하는 내용이다.49) 다른 면에서, Clifford는 ‘머리를 들지어다’라는 표현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신들을 향하여 그들의 머리를 들라는 바알의 부름으로 이해하였다.50)  그런 점에서 ‘머리를 들라’는 명령은 성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하나님을 축하하라는 부름으로 이해된다. Cross 역시 시편 24편 7-10절을 "the reenactment of the victory of Yahweh in the primordial battle and his enthronement in the divine council or, better, in his newly built temple" 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51) 여기에서 우리들이 ‘문들’을 ‘도시’자체를 의미하는 환유로 이해한다면, 여호와의 왕권은 그의 왕궁도시에서 완전하게 인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가릿 문서에 나오는 왕 명칭 중의 하나가 "king of the gate" 인데, 이것은 왕과 문으로 표현되는 왕궁도시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52)  

 

   (b) 역사화된 혼돈 세력과의 싸움 (시 46편; 사 51:9-11; 출 15: 1-18)

 

   혼돈 세력의 역사화란 혼돈의 세력을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나라 혹은 나라들에게 적용하게 함을 의미한다. 역사화된 혼돈의 세력은 시편과 예언서 등에 자주 나오고 있다.

   시편 46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시면서 이스라엘의 피난처와 힘과 도움이 되심을 전제하고 있다. 여호와는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위대한 왕이시며, 이 도시에 평화와 생명의 물을 공급하시는 분이다. 여기에서 혼돈의 세력은 하나님의 도성인 시온을 공격하는 열국으로 역사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열국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들인지에 관하여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 세력들과의 싸우시는 여호와를 과거 회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시온을 공격하는 열국들에 대한 여호와의 싸움과 승리는 이미 성취된 과거의 사건이며, 그러한 승리는 곧 현재 예루살렘에게 주어진 복의 원인이다.     

   시편 46편에서 혼돈의 세력들과 싸우시는 여호와의 모습은 두 군데에서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게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 46: 1-3)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 (시 46: 6)

 

이 시편의 시작부분에서 혼돈의 세력은 물과 산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6절에서 이들 세력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세상의 열국들로 바뀐다. 이렇게 물과 산들로 표현된 혼돈의 세력들이 시온을 공격하는 열국으로 동일시시키는 것은 두 곳에서 사용된 동사의 평행적 사용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 그러한 동일한 동사들의 사용으로 '물'과 '산'은 시온을 공격하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열국으로 연결되고 있다.

 

        2-3절: 바닷물이 흉용하여 뛰놀다/ 산이 빠지다

        6절: 이방이 훤화하다 / 왕국이 동하다

 

   성경의 시적인 표현에서 여호와의 싸우심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이 되는 단어는 'rebuke'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혼돈의 세력과 싸우시는 여호와 전쟁의 대표적인 용어로 이해되고 있다53).  6절에서 언급되고 있는‘여호와의 목소리’도 역시 여호와 전쟁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표현은 시편 18편 14절-16절과 29편 3절-9절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Day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바알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왕권을 드러내는 천둥소리로 이해하였다.54)    

   여호와의 승리는 혼돈의 ‘물’이 ‘하나님의 성을 즐겁게 하는 강’(시 46: 4)으로 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루살렘에서 흐르는 평화로운 강의 이미지는 거칠게 노도하는 바다물과는 대조적이다. Weiser가 지적한 것처럼, 예루살렘의 강물이 그 백성들에게 축복을 불러일으키는 물이라고 하다면, 바닷물은 파괴와 멸망을 일으키는 물이다.55) 히브리어의 '강'은 상시천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그러한 강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시편기자가 염두에 둔 것은 기혼샘이나 히스기아의 수로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창세기 2:14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강이나 우가릿 문서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엘신의 거주지로서의 강 주변 등을 생각할 수도 있다.56)  

   이사야 51: 9-11은 혼돈의 세력에 대한 여호와의 승리가 시온에서의 그의 왕권과 어떠한 관계를 갖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여호와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라합, 용, 바다, 깊은 물, 바다 깊은 곳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이사야 51:9,10). 이러한 모든 형태들은 원초적인 혼돈세력들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이다. 그러나 라합은 일반적으로 이집트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이사야 30:7에서 이집트를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사야 51:9-11의 문맥이 출애굽사건이라는 점에서도 명백해 진다. 이집트를 라합과 동일시시킴으로서 이사야는 창조 때 혼돈에 대한 여호와의 승리를 출애굽과,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는 새로운 출애굽 사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을 새로운 출애굽의 사건 곧 새로운 창조의 사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바벨론에서의 귀환 주제는 이사야 후반부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다57). 이것은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역사의 무대에서, 특별히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위하여 어떻게 활동하시는가를 보여준다. 혼돈과의 싸움 모티브는 역사화되어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출애굽을 통한 여호와의 구속사역을 표현하고 있다.

   전쟁의 모티브를 출애굽 사건에 적용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출애굽의 마지막 종착지인 시온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출애굽은 가야할 방향 없이 단순히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가는 것이다 (참조. 창 15:16; 출 3:8; 6:8; 13:5; 15:17 등). 첫 번째 출애굽의 패턴과 마찬가지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인 두 번째 출애굽 역시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이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출애굽의 종착지가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특정 지역으로 명시되어 있다.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사 51장 11절)

 

    여기에서 우리들은 출애굽의 여정과 시온으로 행진하는 의식과의 흥미로운 결합을 볼 수가 있다.58)  시온으로의 귀환 주제는 약간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이사야 52: 7-8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의 시작부분은 전언자로 하여금 시온을 향하여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를 외치는 것으로 되고 있다. 이것은, McKenzie가 주장한 것처럼, 예루살렘의 회복이 곧 여호와 통치의 회복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59) 이사야는 여기에서 마루둑의 등극을 축하하는 바벨론의 신년축제의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사야는 과감하게 고대 세계의 종교적 의식을 도입하여 그것을 역사적 사건의 차원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제의 전승의 원래적 요소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선택과 관련이 있다. 즉 다윗을 그의 지상적 대리적 왕으로 선택하신 것과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로서의 시온을 선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전승을 재구성하고 있다. Muilenburg는 그러한 전승의 재구성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였다: (1) 시온은 다시 선택이 되고, 여호와의 시온으로의 귀환은 이스라엘의 선택을 확증하는 사건이 되고 있다; (2) 이제는 다윗 계통의 왕이 아닌 여호와 자신이 직접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60)

   혼돈의 세력을 역사화 시킨 내용은 '바다의 노래' (출 15:1-18)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부분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제와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우선, 이 노래는 구약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취급되고 있다. 비록 이 노래의 저작 년대를 정확하게 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노래가 가장 오래된 노래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61) '바다의 노래' 는 또한 전쟁에서의 승리-왕권-성소라는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본 논의와 특별히 중요성을 갖는다.

   이 노래는 여호와의 용사되심으로 시작된다 (15:3). 이것은 고대 근동 신화의 중심주제인 Chaoskamph 모티브가 출애굽이라는 역사 속에 역사화되었음을 보여준다62). Chaoskamph의 역사화는 이 노래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는 '바다'의 역할 변화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서 '바다'는 고대 근동 신화 속에 등장하는 '얌'과의 연관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러나 '바다'는 더 이상 싸움의 상대가 아니라 오히려 싸움의 장소로 전락되어 있다. '바다'는 여호와 대적하여 싸우는 적이 아니라  이집트 군대를 격파시키는 도구 역할을 한다 (15:4-8). 이와 유사한 상응 모티프는 거센 기손강물이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시키는 내용인 사사기 15:20-22에서 찾아 볼 수 있다.63) 그런데 여호와의 용사되심으로 시작된 '바다의 노래'는 그 마지막 절에서 여호와의 왕되심을 강조하고 있다.64) 이 노래의 절정은 여호와의 왕권에 대한 찬양이다: "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시도다" (출 15:18). 여기에서 여호와의 영원한 왕권은 바로 앞 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의 기업의 산'으로의 인도, '주의 처소'를 삼으심, '성소'를 세우심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바다의 노래'는 고대 근동의 왕권 수립과 관련된 기본 요소인 신적 용사의 승리-성소/왕궁도시의 건설-영원한 왕권의 선언이라는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65)

 

   (c) 종말론적 혼돈 세력과의 싸움 (사 24장; 슥 14장)

 

   혼돈의 세력과의 싸움이 종말론화 되었다는 것은 ‘Urzeit wird Endzeit’라는 신학적 관점에서 혼돈의 세력과의 투쟁이 미래 혹은 종말에서의 싸움으로 전이됨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싸움의 종말론화를 잘 보여주는 구절은 이사야 24:21-23이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들은 죄수가 깊은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사 24:21-23)

 

이 구절에서의 중심적 주제는 시온산에서 통치하시는 여호와의 왕권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시온산 위에서의 왕권은 그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패배시키고 난 이후에 구체화됨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왕권이 전세계를 다스리시는 우주적 통치권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사야 24장은 여호와의 우주적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보다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선포된 여호와의 심판은 그 앞부분인 이사야 13장-23장의 문맥과 연결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인접국들에 대한 심판선언으로 구성된 이사야 13-23장은 각 나라들에 임할 구체적인 심판들을 선언하고 있다.66) 관심의 주제가 특정한 나라들에서 일반적인 세계로 바뀌게 된 것은 이사야가 여기에서 종말에 일어날 보다 넓은 세계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사야 24장에서는 여호와를 대적하는 세력을 ‘높은 군대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제기되었다.  몇몇 학자들은 이 표현을 ‘별들’과 연관시키기도 하였다 (렘 19:13; 시 33:6 등). 여기에서의 별들은 각 나라들의 운명을 주관하는 별들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해석은 같은 절에서 사용된 ‘땅의 왕들’이라는 표현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67)‘높은 군대’는 또한 역대하 33장 5절에서와 같이, 이방인들의 예배 대상이 되는 이방인들 중의 최고신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Watts는 지리적인 관점에서 이들의 정체에 관하여 좀더 색다른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에 따르면, ‘높은 군대’는 실제적으로 고지대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의 군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였다. 따라서‘높은데서’의 대응 구절인‘땅에서’는 실제적으로 낮은 지역인 해안평야나 요르단 계곡을 지칭한다. 이 구절에 대하여 Watts는 다음과 같이 그의 사역을 제시하였다:“army of the highlands in the height and of the kings of the lowlands in the lowlands.”68) 대부분의 다른 학자들은 이 표현을 하늘 위에서 거주하고 있는 천사들의 존재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어떤 천사들은 이방 나라들의 수호신들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신 32:8; 단 10:13, 21)69)  구약시대의 후기와 신구약 중간시기에 이르러서는 수호신 천사들을 사람들에게 악한 영을 불어넣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타락한 천사로 이해되었다.(제1 에녹서 6-10장).  

   이사야 24장 21절-24절에서 여호와의 혼돈과의 싸움은 Urzeit-Endzeit의 구조를 갖고 있는 종말론적 개념으로 표현되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높은 군대’와 ‘땅의 왕들’로 나타낸 것은 대적하는 세력이 하늘과 땅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고, 또한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승리가 단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는 여호와의 왕권은 적대세력이 전혀 없이 모든 세상 백성들에게 드러나는 왕권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의 왕권은 또한 인간사회로부터 죽음과 슬픔을 영원히 제거되는 마지막 축복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이상적 사회는 여호와의 왕권을 축하하는 시온산 축제에서 선언되고 있다. (사 25장 6-8절).

   동일한 종말론적 전쟁의 모티브는 스가랴 14: 1-11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여호와는 종말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신 후에 온 세계를 다스리는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그의 왕권은 높이 들린 예루살렘과 관련된다. 여기에서 혼돈의 세력과의 전쟁 모티브는 세상 백성들과의 전쟁으로 바뀌어 있다. 다시 말하여 신적인 전쟁에 포함되어 있는 신화적 요소들은 모두가 제거되고, 혼돈의 세력은 비록 이름들은 구체적으로 거명되지 않지만 역사적인 나라들로 대치되어 있다. 스가랴 14장은 세상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스가랴서의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슥 12장 3절, 9절; 13장 7-9절). 예루살렘 도시가 이방인들에 의하여 점령당하여 커다란 피해를 입은 다음, 위대한 전사이신 여호와는 마지막 전쟁에 개입하셔서 인간역사와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이 부분에서의 절정은 승전하신 여호와께서 새롭게 형성된 계곡을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우주적인 왕국을 세우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여호와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종말론적으로 변형된 도시로 표현되어 있다. 즉 새 예루살렘은 시간과 계절, 그리고 생태학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슥 14장 6절)  이러한 변화들은 세계의 환경적인 조건들이 타락 이전인 원래적 창조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Smith는 이러한 생태적인 변화를 노아의 언약 (창세기 8장 22절)과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노아를 통하여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고 계속될 것이고 하였다.70) 생태적인 변화와 더불어, 예루살렘은 항상 흐르는 생명의 강물로 축복된 지역이 된다. (슥 14장 8절), 그리고 지형적으로도 높이 솟아  올라 주변의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 된다. (슥 14장 10절).

 

 

IV. 시온신학의 성서신학적 의미와 암시

 

 

1. 시온신학의 중심주제

 

   1950년대부터 논의가 시작된 시온신학의 중심적 주제는 여호와의 왕권이며 그 왕권이 시온에서 행사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정치제도로서 왕정을 도입하기 이전부터 여호와를 그들의 왕으로 고백하였다.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한 것은 바알을 왕으로 고백한 가나안 지역의 문화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고대근동의 문헌이나 성경의 증거들 모두는 신을 왕으로 이해한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기본적인 개념이 들어있다: (1) 신의 혼돈 세력과의 싸움; (2) 신의 왕권; (3) 신의 왕궁도시 혹은 성전 건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들에 의하면, 신은 두 가지 행동 곧 혼돈의 세력들에 대한 승리와 왕궁도시의 선택이나 신전의 건축을 통하여 자신의 왕권을 확정적으로 주장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Buccellati가 지적한 것처럼, 왕으로의 등극 장소인 왕궁도시의 선택은 실제적으로 왕권이 확인되고 확정되는 행위자체이었으며, 왕위 등극 자체처럼 중요한 것이었다.71)    

 

2. 시온신학과 다윗전승과의 관계

 

   여호와의 왕권과 여호와의 예루살렘 선택은 시온신학의 기본적 개념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시온신학의 기본적 의미는 이 두 상호적 개념의 정의 없이는 적절하게 이해될 수가 없다. 시편과 예언서에는 이 두 요소들이 긴밀하게 관련된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72)  이것은, 우주적인 왕으로서의 여호와의 통치가 역설적으로 지상의 한 특정 지역인 예루살렘에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시온신학이 다윗 및 다윗 왕가의 통치를 합법화시키는 왕정신학으로 오해되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다윗에 의하여 통일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가 되기 이전에는 역사적으로 전혀 중요성을 띄지 못하였던 도시였다. 따라서 시온신학이 태동된 시대적 정황에 관심을 집중시켜온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시온신학 형성의 적절한 시기를 다윗-솔로몬 시대로 보았다. Bright 같은 학자는 시온신학을 구체화시켰던 역사적 사건을 다윗의 예루살렘 점령(삼하 5장),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일(삼하 6장), 그리고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전달된 다윗과 예루살렘 선택에 관한 메시지(삼하 7장)라고 주장한다.73) Noth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동맹체의 신앙적 핵심이었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이전시킨 일과 그 후 솔로몬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이 시온신학 형성의 원동력이었다고 보았다.74) 다윗-솔로몬에 의하여 통일왕국이 이루어지고 또한 국제적으로 정치세력을 확장시켰던 당시대의 정황은 자연히 예루살렘의 우위성을 중심한 새로운 신학적 작업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다윗 언약 전승은 분명 하나님의 왕권이 어떻게 다윗 왕가에 의하여 실현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온신학과 다윗언약 모두 시온을 하나님과 다윗의 통치 중심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시온신학의 중심주제인 신적 왕권사상은 이미 왕정제도 도입 이전부터 이스라엘 사회에 정착된 신학개념이었음을 고려할 때, 다윗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시온신학의 태동 원인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예루살렘 정복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도입되어 발전된 시온신학의 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다윗의 왕권은 시온신학에서 천명하고 있는 하나님의 왕권이 지상의 대리자에게 전이된 통치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시온신학과 다윗전승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은 성경 자체가 보여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다윗전승이 시온신학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편 여러 곳에서는 다윗 왕권에 관한 언급이 없이 시온신학에 관한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다.75) 이러한 표현들은 시온신학의 우위성과 충족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오히려 창조의 우주적 질서를 비롯하여 역사적 질서를 유지시키는 하나님의 책임성과 관련된 시온신학은 다윗 왕정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시온신학은 다윗 왕정을 유지하는 신학이 아니라, 초월성의 하나님이 한 지역에 임재하심으로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내재성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신학이라 할 수 있다.76)   

 

    3. 시온신학의 발전

 

   시온신학이 이스라엘 토양에 뿌리를 내리면서 시온-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왕권이 행사되는 영원한 장소로 상징되었다. 이러한 시온의 상징성은 두 가지 곧 통치의  중심지라는 개념과 축복의 중심지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온은 바알신화와 관련하여 신들의 회집이 이루어지는 북방산 곧 '챠폰'(????????)과 동일시되었다 (시 48:2). 여호와의 우주적 왕권이 행사되는 시온은 지형적으로도 높이 솟아오르는 세계의 중심지이며 여호와의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그곳으로 모든 나라들이 몰려 드는 순례지로 묘사되었다 (사 2:2-4; 미 4:1-4). 또한 시온은 낙원의 강이 발원하는 중심지로서 온 세계를 축복하는 생명의 원천이자 모든 악을 제거하는 치유의 중심지가 된다 (겔 47장; 슥 13:1; 14:8).  

   다윗왕가의 지배적 신학으로 자리잡은 시온신학은 이스라엘과 양분 등으로 인하여 유다왕국의 지배권이 급속히 저하된 정치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가신학으로서 그 면모를 지켜나갔다. 바벨론에 의하여 유다왕국이 멸망 당하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도 시온신학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회복된 이스라엘을 위한 희망의 신학으로 자리를 지켰다. 시온신학이 역사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신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온신학이 다윗왕가의 정당성을 세워주는 신학아 아니라  여호와의 영원한 왕권이 그 중심주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Von Rad가 지적한 것처럼, 시온신학은 한 시대의 요구에만 머물르는 고정개념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각각 다른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유연성의 신학'(fluid tradition)이 될 수 있었다.77) 시편에서 시온신학은 당대의 왕정 및 성전제도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였다면, 예언서에서의 시온신학은 격변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신학 모습을 보여주었다. Donaldson은 구약예언자들에 의하여 종말론적 관점에서 재해석된 시온신학을 '시온 종말론'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78) 이러한 시온신학의 발전은, de Young이 그의 학위논문에서 논증하였듯이, 구약과 신구약 중간시기를 거쳐 신약에 이르기까지 종말론적 구속사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79)    

 

 

 

4. 신약의 '하나님나라' 이해 배경으로서의 시온신학

 

   구약에서 하나님의 통치개념은 널리 사용이 되고 있지만, 신약성서의 중심주제인 '하나님나라'라는 표현이 그대로 사용된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구약성서에서 신약의 중심주제인 '하나님나라'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대안인 '시온신학'이 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시온신학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왕권 곧 하나님이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온 세계를 통치하심을 천명하고 있다. 더구나 시온신학에 포함된 다양한 내용들은 하나님 통치의 구체성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신약과 구약성경 전체는 '하나님나라'사상을 신학적 중심으로 일관성있게 이어주는 신학적 흐름을 포함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나라'라는 표현으로 나타나지만, 구약에서는 '시온신학'이라는 표현으로 구약의 전 역사 속에 일관성있게 유지되고 있다.    

   '하나님나라'의 배경을 구약의 '시온신학'에서 찾게 될 때 '하나님나라'와 관련된 신약의 뜨거운 논쟁에 일말의 단서를 제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나라' 개념은 그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제이다. 이 주제에 관하여 다양한 논란이 제기된 것은 신약성서 자체가 '하나님나라'에 관하여 어떠한 설명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 개념에 관한 논의 중 핵심적인 쟁점은 과연 '하나님나라'가 통치의 영역(realm)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reign)를 의미하는가의 문제이다.80) 그러나 시온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논쟁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온신학의 기본적 구조는 혼돈의 세력을 패배시킴과 더불어 왕궁도시를 선택함으로 신적인 왕권이 확립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나라의 대망은 하나님의 개입과 시온을 중심으로 그의 왕권이 세워지는 것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나라의 기본적인 의미는 통치냐 영역이냐 하는 논쟁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인 영역으로서의 개념이 추상적인 통치로서의 개념을 보다 생생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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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emaryahu Talmon, "The Biblical Concept of Jerusalem," 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Spring, 1971), p. 190.

 2. Menashe Har-El, This is Jerusalem (Los-Angeles: Ridgefield Publishing Co., 1981), p. 17.

 3. R. J. Zwi Werblowsky, The Meaning of Jerusalem to Jews, Christians and Muslims          (Jerusalem: Israel Universities Study Group, 1988), p. 10.

 4. M. Noth, The Law in the Pentateuch and Other Studie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67), p. 133.

 5. R. A. F. MacKenzie, "The City and Israelite Religion," Catholic Biblical Quarterly 25   (1963), p. 62.

 6. Norman W. Porteous, "Jerusalem-Zion: The Growth of a Symbol." A. Kuschke (ed.),         Verbannung und Heimkehe (Tuebingen: Mohr, 1961), p. 236.

 7. M. Noth, op. cit., p. 135.

 8. John Bright, Covenant and Promise (London: SCM Press, 1977), p. 55.

 9. J. J. M. Roberts, "Zion in the Theology of the Davidic-Solomonic Empire," Tomoo         Ishida (ed.), Studies in the Period of David and Solomon and Other Essays (Winona      Lake, IN: Eisenbrauns, 1982), p. 108.

10. Gerhard von Rad, "Die Stadt auf dem Berge," Evangelische Theologie (1948-9), pp.       439-47.

11. Martin Noth, "Jerusalem und die israelitische Tradition," Oudtestamentische Studien 8   (1950), pp. 28-46.

12. Edzard Rohland, Die Bedeutung der Erwaehlungstraditionen Israels fuer die            

    Eschatoglogie der Alttestamentlichen Propheten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Heidelberg, 1956), p. 142.  

13. J. J. M. Roberts, "The Davidic Origin of the Zion Tradition," JBL (1973), pp. 329-44;   R. E. Clements, Isaiah and the Deliverance of Jerusalem. JSOT Supplement Series 13     (Sheffield: JSOT Press, 1980).

14. Hans Wildberger, "Die Volkerwakfahrtzum Zion, Jes. 2:1-5," Vetus Testamentum 8         (1957), pp. 62-81.

15. H. Junker, "Sancta Civitas, Jerusalem Nova: Eine formkritische und

    uberlieferungs-geschichtliche Studie zu Is. 2," Trierer theologische Studien 15        (1962), pp. 62-81.

16. Donald E. Gowan, Eschatology in the Old Testament (Edinburgh: T. & T. Clark, 1986),     p. 7.

17. J. J. M. Roberts, "Zion in the Theology of the Davidic-Solomonic Empire," Studies in   the Period of David and Solomon and Other Essays. ed. Tomoo Ishida (Winnoa Lake:       Eisenbrauns, 1982), pp. 94f.

18. Tryggve N. D. Mettinger, The Dethronement of Sabaoth: Studies in the Shem and Kabod    Theologies (Lund: Gleerup, 1982), p. 24.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구약성경의 다음    구절에서 시온신학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시온과 관련된 하나님의 왕권사상을 표   현하고 있다: 출 15:18; 사 24:23; 33:33; 52:7; 렘 8:19; 미 4:7; 슥 3:15; 14:9, 16, 17;   시 10:16; 48:3; 68:25; 74:12; 84:4; 93:1; 95:3; 96:10; 97:1; 99:1; 146:10; 149:2.

19. Ben C. Ollenburger, Zion, the City of Great King. JSOT Supplement Series 41             (Shefield: Shefield Academic Press, 1987), p. 80.

20. 여러 개의 단편들로 남아있는 '수멜군주목록'은 여러 차례의 편집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표   준적인 것은 Thorkild Jacobsen에 의한 편집이다. 이 표준 편집 The Sumerian King Lis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37)에는 수멜군주들의 전체 목록이 담겨져 있    다. 그의 군주목록 첫 부분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When the kingship was lowered from heaven

       the kingship was in (the city of) E갸여.

       (In) Eridu A-lulim (became) king

       and reigned 28,800 years;

       Alalgar reigned 36,000 years.

       Two kings reigned its 64,800 years.

       I drop (the topic of) Eridu;

       its kingship to (the city of) Bad-tibira was carried."

21. '수멜군주목록' 자체가 이 문서의 기록 연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록    시기는 단지 문서의 언어, 형태, 그리고 기본적 개념 등을 통한 추정에 불과하다.

22. Moshe Weinfeld, "Zion and Jerusalem as Religious and Political Capital: Ideology and   Utopia." in Richard Elliott Friedman (ed.) The Poet and the Historian: Essays in       Literary and Historical Biblical Criticism. Harvard Semitic Studies 26 (Chico:         Scholars Press, 1983), p. 94; Idem., "Polegomena to a Comparative Study of the Book    of Psalms and Sumerian Literatur," Bet Miqra 19 (1974), pp. 151ff. (in Hebrew)

23. Robert R. Wilson, Genealogy and History in the Biblical Worl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7), pp. 80-3.

24. '바벨론 역대기'는 A. Leo Oppenheim에 의하여 "Text from the First Year of Belibni to     the Accession Year of Shamsh-Shumukin" (in ANET, pp. 3-1-3)이라는 제목으로 부분 번역    되었다. 다음 구절들은 이 번역에서 발췌한 예문들이다:

      "Sennacherib placed his son Ashurnadinshumi upon the throne in Babylon...

       Mushezib-Marduk sat himself in the throne in Babylon....

       The king of Elan placed Nergalushezib on the throne in Babylon..."

25. Giorgio Buccellati, "The Enthronement of the King and the Capital City in Texts from   Ancient Mesopotamia and Syria," in Studies Presented to A Leo Oppenheim (Chicago:      Oriental Institute of the University of Chicago, 1964), p. 54.

26. '에누마 엘리쉬'는 E. A. Speiser에 의하여 ANET의 "Akkadian Myths and Epics" 항목으로     번역되었다 (ANET, pp. 60-72)

27. Arvid S. Kaperlrud, "Temple building: A Task for Gods and Kings," Orientalia 32 (1963),   pp. 56-62; G. A. Barton, The Royal Inscriptions of Sumer and Akkad. Library of Ancient    Semitic Inscriptions. 1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29), p. 204-55.

28. Victor Hurwitz, I Have Built You An Exalted House: Temple Building in the Bible in     the Light of Mesopotamian and Northwest Semitic Writings. JSOT Supplement Series 115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2), p. 96.

29. Victor Hurwitz, op. cit., p. 93.

30. Tryggve N. D. Mettinger, In Search of God: The Meaning and Message of the Everlasting   Names. trans. by Frederick H. Cryer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8), p. 96.

31. Richard J. Clifford, "The Temple in the Ugaritic Myth of Baal," Symposia: Celebrating   the Seventy-fif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1900-1975] (ed.) F. M. Cross (Cambridge, MA: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1979), p. 137.

32. Umberto Cassuto, "Biblical and Canaanite Literature," Biblical and Oriental Stidies:   Biblical and Ancient Oriental Texts (Jerusalem: The Magnes Press, 1975), pp. 16-59.    Cassuto가 지적한 10가지의 유사 표현 방식들은 다음과 같다: (1) formulas of trasition;   (2) other streotyped formulas; (3) streotyped literary pattern; (4) metaphors; (5)     ornamental epithets and designations; (6) similes; (7) streotyped terms; (8)           correlated parallel words; (9) correlated parallel phrases; (10) special sues of       verbal forms.

33. Idem. "The Palace of Baal," JBL 61 (1942), p. 52.

34. Idem. "Palace of Baal in Tablet II AB Ras Shamra," Biblical and Oriental Studies:       Biblical and Ancient Oriental Texts (Jerusalem: The Magnes Press, 1975), pp. 118f.

35. Clifford, op. cit., p. 138.

36. 참조. Mettinger, op. cit., pp. 75-6; K. Koch, "Zur Entstehung der Baar-Verehrung,"      Ugarit-Forschungen 11 (1979), pp. 465-75; E. Th. Mullen. The Divine Council in         Canaanite and Early Hebrew Literature. Harvard Semitic Monographs 24 (Chico:           Scholars Press, 1980)

37. 다음 구절들은 ANET에 수록된 H. L. Ginsberg의 번역에서 발췌한 것이다:

    "I have no house like the gods. Nor court like the holy ones." (III, 18-19); "Look,     no house has Baal like the gods. Nor court like the children of Asherah. The abode     of El is the shelter of his son. The abode of Lady Asherah of the Sea is the abode     of the perfect brides: 'Tis the dwelling of Padriya daughter of Ar. The shelter of     Talliya the daughter of Rabb. And the abode of Arsiya the daughter of Ya'abdar.'"      (II, 10-19; col. iv II 50-57)

 

38. Martin Buber, Kingship of God. trans. by Richard Scheimann (New York: Harper & Row,    1967), pp. 59-84.

39. Benjamin Uffenheimer, "Myth and Reality in Ancient Israel." The Origins and Diversity   of Axial Age Civilizations. ed. S. N. Eisenstadt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6), p. 151.

40. 삼하 5:4-5; 왕상 2:11; 11:42; 16:29; 왕하 10:36; 대상 3:4; 29:27; 대하 9:30.

41. 왕상 14:21; 15:1-2; 15:9-10; 16:23; 22:41-42; 왕하 8:16-17, 25-26.

42. 왕하 12:2; 14:2; 15:2, 33; 16:2; 18:2; 21:1, 19; 22:1; 23:31, 33, 36; 24:8, 18.

43. Weinfeld, "Zion and Jerusalem." pp. 91-93.

44.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은 John Day에 의하여 사용된 구분방법이다. 그러나 Day는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경우 이외에 혼돈의 세력을 비신화화 시키는 유형--신화의 혼돈 세력을 자연의 한   평범한 생물로 간주하는 유형--을 추가하여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John Day, God's         Conflict with the Dragon and the Sea: Echoes of a Canaanite Myth in the Old            Testament. University of Cambridge Oriental Publications 35(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45. '바알'과 '얌'의 싸움에 관한 내용은 "Poems about Baal and Anath iii. 5-32" (ANET. pp.   130f)를 참조할 것. 혼돈의 세력인 '바다'와 '강'에 대한 언급은 다른 시편에서도 자주 등   장하고 있다 (시 74:12-17; 89:9-14; 94:1-5; 104: 6-7).

46. 사마리아오경에 따르면, 마소라 본문의 ?????????? ??????는 ???????? ??????로 바뀌어 있다.

47. Gerhard von Rad, Holy War in Ancient Israel. trans. by Marva J. Dawn (Grand Rapids:    Eerdmans, 1991), pp. 131-33; Helmer Ringgren, Israelite Religion. trans. by David      Green (London: SPCK, 1966), pp. 53f.

48. A. A. Anderson, The Book of Psalms 1-75. New Century Bible (London: Oliphants, 1972),   p. 204.

49. Mitchell Dahood, Psalms 1-50. Anchor Bible (Garden City: Doubleday, 1965), p. 152. 다   음은 C. H. Gordon의 Ugaritic Textbook (Rome, 1965)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The plowmen   lift up their heads, upwards the planters of wheat, for spent was the grain from       their jars, spent the wine from their bottles, spent the oil from their vats." (126:   III 12).

50. Clifford, op. cit., pp. 139-40. 다음은 Clifford 가 우가릿 문헌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Why have you lowered, O gods, your heads upon your knees, and on your princely        thrones? I see, O gods, you are terrified from fear of the messengers of Yam, the      envoys of Judge river. Lift up, O gods, your heads from upon your knees, from your     princely thrones."

51. Frank Moore 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 Essays in the History of the         Religion of Israel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3), p. 93.

52. Dahood, op. cit., p. 153. 우가릿 왕이었던 Niqmepa를 우가릿 문헌에서는 'legitimate      lord, governor of the palace, king of gate'라고 호칭하였다.

53. 동사형태는 시 9:6; 106:9; 사 17:13; 54:9 훔 1:4 등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명사형태는 시   18:16; 76:6; 104:7; 사 50:2; 66:15; 삼하 22:16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54. Day, op. cit., pp. 57-61.

55. Arthur Weiser, The Paslm: A Commentary. trans. by Herbert Hartwell (Philadephia:        Westminster Press, 1962), p. 369.

56. G. R. Driver, Canaanite Myths and Legends (Edinburgh: T. & T. Clark, 1956), pp.        97-109; R. E. Clements, God and Temple: The Idea of the Divine Presence in Ancient     Israel (Oxford: Basil Blackwell, 1965), p. 72.

57. B. W. Anderson, "Exodus Typology in Second Isaiah," in B. W. Anderson & W. Harrelson   (eds.), Israel's Prophetic Heritage: Essays in Honor of James Muilenburg (New York:    Harper & Brothers, 1962), pp. 181-2. Anderson이 제시한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새로   운 출애굽으로 언급한 이사야서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40:3-5; 41:17-20; 42:14-16;        43:1-3, 14-21; 48:20-21; 48:8-12; 51:9-10; 52:11-12; 55:12-13.

58. Cross, op. cit., pp. 107f.

59. John I. McKenzie, Second Isaiah. Anchor Bible (Garden City: Doubleday, 1968), p. 124.

60. James Muilenburg, "Isaiah 40-66." Interpreter's Bible Vol. 5 (New York: Abingdon        Press, 1956), p. 611.

61. W. F.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New York: Doubleday 1957), p. 14;   F. M. Cross and D. N. Freedman, Studies in Ancient Yahwistic Poetry. SBL 21            (Missoula: Scholars Press, 1975), pp. 45-67. Albright dates the song in the 13th       century B.C.E. on the basis of Ugaritic parallels, while Cross and Freedman date its   composition in the 12th century B.C.E. For further detailed discussion on its dating,   see Milard C. Lind, Yahweh is a Warrior: The Theology of Warfare in Ancient Israel     (Scottsdale, Pennsylvania: Herald Press, 1980), p. 185. n. 16; Sa-Moon Kang, Divine    War in the Old Testament and in the Ancient Near East (Berlin: Walter de Gruyter,      1989), pp. 115-6. n. 9.

62. '바다의 노래'가 Chaoskamph적 요소을 지니고 있음은 이 시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즉  '힘'으로 번역된 ???? 'strength' (출 15:2, 13)나 '영광' '흉용함'    등으로 번역된 ???????? 'mighty, majesty' (출 15:6, 10, 11), '이적들'로 번역된 ????????????      'marvelous deeds'(출 3:20) 등은 여호와와 혼돈의 세력간의 다툼을 묘사하는 표현들이다.

63. Moshe Weinfeld, "Divine Intervention in War in Ancient Israel and in the Ancient Near   East" in H. Tadmor and M. Weinfeld (eds.) History, Historiography and Interpretation:   Studies in Biblical and Cuneiform Literature (Jerusalem: The Magnes Press, 1984), pp.   124f. Weinfeld는 출애굽 사건과 사사기에 등장하는 시스라 군대 격파 이야기에 연관된 세   가지 모티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the pillar of fire and cloud which causes   panic in the Egyptian camp (출 14:24)/ the heavenly factors which wage battle on the   enemy (삿 5: 20); (2) the hurling of the Egyptians into the midst of the sea (출       14:27; 15:8, 10)/ the torrent which sweeps away the enemy (삿 5:21); and (3) the       dismantling of the chariotry (출 14: 25)/ the destruction of the enemy's chariotry     (삿 5: 22).

64. D. N. Freedman, 'Strophe and Meter in Exodus 15'  in Howard N. Bream, Raph D. Heim,    Carey A. Moore (eds.) A Light unto My Path: Old Testament Studies in Honor of Jacob    M. Myers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1974), pp. 169, 192.

 

65. F. M. Cross, 'The Song of the Sea and Canaanite Myth,' God and Christ: Existence and   Providence.  Journal for Theology and the Church 5 (1968), p. 24.

66. 이사야 24-27장은 독특한 문체와 내용 때문에 이사야서의 다른 부분과 구별하여 취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Oswalt는 이 부분을 이사야 13-23장의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John N. Oswalt, The Book of Isaiah 1-39.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86), pp. 440f.; 이사야 24-27장에 관한 다양한 논쟁에 관하여는 D. G.         Johnson의 연구를 참조할 것. D. G. Johnson, From chaos to Restoration: An Integrative   Reading of Isaiah 24-27. JSOT Supplement Series 61 (Sheffield: JSOT Press, 1988), pp.   11-17.

67. S. H. Widyapranawa, Isaiah 1-39. 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90), pp. 140f.

68. John D. W. Watts, Isaiah 1-33. WBC 24 (Waco, Texas: Word Books, 1985), pp. 322f.

69. G. B. Gray,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Isaiah, I-XXVII           (Edinburgh: T. & T. Clark, 1912), p. 423; O. Kaiser, Isaiah 13-39. OTL                 (Philadelphia: Westmister Press, 1974), p. 196; Oswalt, op. cit., p. 456.

70. Ralph L. Smith, Micah-Malachi. WBC 32 (Waco, Texas: Word Books, 1984), p. 288.

71. Buccellati, op. cit., p. 61.

72. 참고. 사 2:2-4 (미 4:1-4); 24:23; 33:21; 52:1-2, 8; 렘 8:19; 미 4:7; 슥 9:9;            14:16-19; 시 48:2; 99:1-2; 146:10.

73. John Bright, Covenant and Promise (London: SCM Press, 1977), pp. 49-77.

74. Maritn Noth, The Law in the Pentateuch and Other Studie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67), p. 135.

75. cf. 시 46, 48, 76. Ollenburger, Zion, pp. 59-66.

76. Thomas Renz, "The Use of the Zion Tradition in the Book of Ezekiel," in Zion, City of   Our God, (eds.) Richard S. Hess & Gordon J. Wenham (Grand Rapids: Eerdmans, 1999),

    p. 86.

77. Gerhard von Rad, The Message of the Prophets (New York: Harper & Row, 1965), p. 262.

78. Trence L. Donaldson, Jesus on the Mountain. JSNT Supplement Series (Sheffield: JSOT    Press, 1985), p. 41.

79. J. C. de Young, Jerusalem in the New Testament: The Significance of the City in the    History of Redemption and in Eschatology (Kampen: J. H. Kok, 1960)

80. 참조. George E. Ladd, "The Kingdom of God: Reign or Realm?," JBL 81 (1962), pp.         230-38; Sverre Aalen, "'Reign' and 'House' in the Kingdom of God in the Gospels,"      New Testament Studies 8 (1962), pp. 21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