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춤(liturgical dance)

활천 1999년 9월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 6:13-15).

 

들어가는 말

필자가 90년 유학의 길에 올라 게렛신학대학원(Garr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한 몇 주 후의 채플시간이었다. 흰 예복을 입은 여인들(liturgists)이 회중의 찬송에 맞춰 흰 유리잔에 담긴 촛불을 양손에 들고 춤추며 회중석 뒤에서부터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와 강대상 아랫부분에서 계속 춤을 추었다. 회중 찬송이 끝날 즈음에 그들은 다시 통로를 따라 퇴장했다. 찬양하며 춤추는 ‘리터지스터’들과 찬양하는 회중은 은혜의 임재 안에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어색함이라든가 위선(?) 같은 데는 한 군데도 없었고, 오로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예배의 진행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예배의 영성에서 찬양, 특히 예전춤(liturgical dance)이 예배의 영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기회를 갖기 시작했다.

 

다윗은 진정한 영성의 소유자였다

다윗은 “온몸을 다하여 기쁘게 찬양하라”고 여러 번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손을 치켜 올려 경배하는 것, 춤추며, 껑충껑충 뛰며, 승리의 환호를 울리며, 큰 소리를 지르며, 기뻐 뛰며 찬송하는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울이 전사한 후, 바야흐로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다윗이 맨 처음 한 일은 노숙하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여 편히 쉬도록 하는 일이었다(시온과 예루살렘은 이 일로 인하여 우주의 중심 ― Axis Mundi - 이 된다). 예루살렘 성에 제사장들이 멘 언약궤가 입성할 때, 다윗은 베 에봇(어떤 문헌에는 ‘벌거벗고’/naked 라고 되어 있는데, 완전 알몸이 아니라 국부는 가려졌을 것이다)을 입고 엑스타시 속에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윗의 이 모습을 추하고 천하게 여겼다. 이후 다윗의 은총을 잃어버린 그녀는(실상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렸다)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체면과 위신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온몸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은 진정한 영성, 성숙한 영성의 소유자이다. 온몸으로 드리는 찬양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이 경이롭고 신비한 예배 경험을 한 다윗은 말한다. “춤추며 찬양하라”(시 150:4).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시149:3). 춤은 찬양의 극치이다. 중국의 ‘노리자’는 나이가 든 노인이었지만 살아 계신 노모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노모 앞에서 춤추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춤의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최상의 제사이다.

위튼 칼리지(Wheaton Collage)의 예전춤 교사인 수잔 페이(Susan Fay)는 말한다. “진실로 우리는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가르치는 이 헬라적인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재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과 함께 우리의 몸도 만드셨다. 그러므로 육체에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없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과 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을 듣는다. 예배에는 우리의 물질적인 육체의 사용이 포함되어야 함을 나는 믿는다”(Robert E. Webber, Worship is a Verb. p.189). 그녀는 계속하여 말한다. “춤은 구약에서 예배의 자연스런 한 부분이다”(Ibid). “영적 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 찬양, 그리고 경배를 유발한다”(Ibid, p.190).

 

춤은 성숙한 영성에서 나온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춤으로 찬양하기까지에는 많은 영적 훈련과정이 있었다. 목동 시절부터 다윗은 시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고, 사울의 추격을 받아 힘든 방랑생활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고 하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찬양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고 형통할 때만 찬양 드린 것이 아니라 힘든 역경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찬양했기 때문에 그는 분명히 성숙한 영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에 대한 지고한 사랑의 영성 없이 누가 과연 춤의 찬양을 드릴 수 있을까?

로버트 무어(Robert Moore)는 성숙한 인간 ― 특히 남성 ― 의 내면의 정신을 왕(king) 혹은 여왕(queen), 전사(warrior), 제의 지도자(magician), 그리고 연인(lover)으로 묘사하는데, 만일 누군가가 이 네 가지를 통전적으로 겸비하면 그는 우주의 중심(Aixs Mundi)이 되고 그의 삶은 춤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내면의 성숙한 정신 또는 영성에서 신령한 춤(spiritual dancing)이 나오며, 다윗은 이 영성을 갖고 있었다.

 

신령한 춤은 영성을 심화시킨다

원주교회에 부임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48년의 오랜 전통을 가진 교회의 예배 갱신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도로 뒷받침하며 조금씩 조금씩 갱신을 시도했다. 사도신경을 통한 신앙고백 후 ‘영광송’─ gloria gloria in excellsis Deo, gloria gloria allellujah allellujah, 글로리아 글로리아 높이 계신 주님, 글로리아 글로리아 알렐루야 알렐루야 ― 을 부르며, 대표기도 후 회중 전체가 “살아 계신 성령님’(Spirit of the living God) 혹은 “주님의 성령 지금 이곳에”(Spirit of the Lord, Come here now)를 부른다. 축도 전에는 두 손을 높이 들고 ‘할렐루야송’이나 ‘주기도송’을 부르는데, 일반 회중의 예배 영성이 한 단계 성숙한 것이 분명해졌다.

30대 말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중년여성들로 구성된 필그림(Pilgrim) 찬양단을 조직하여 훈련한 것이 3년에 접어들었다. 이 찬양단은 기도훈련과 더불어 예전춤을 훈련받으면서 주일예배에 봉사한다. 더불어 이들의 예전춤은 예배 영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성찬식에도 예전춤이 활용된다. 회중의 찬송에 맞춰 리터지스트인 이들은 성찬 엘리먼트(elements)를 들고 두 줄로 입장한다. 맨 앞에는 십자가를 든 리터지스트, 그 다음 둘은 촛불 점화기(candle lighter), 그 다음 둘씩은 떡상, 그 다음 둘씩 두 줄은 포도주 잔을 들고 입례하여 성찬상에 진설한다. 진설이 끝나면 그들은 회중 앞에서 회중 찬송에 맞춰 예전춤을 추며 회중 찬송이 끝날 무렵 찬송에 맞춰 퇴장한다. 회중 찬송시의 예전춤, 그리고 성찬식 때의 예전춤은 회중의 예배 영성을 심화 또는 성숙시키고 있음이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아직도 회중 전체가 예전춤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만 ― 복음송을 부르며 율동하는 차원에 있다 ― 어느 시기에는 회중 전체가 예전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숙한 영성에 이르기를 희망하며 이를 비전으로 삼고 있다.

 

나가는 말

나는 개인적으로, 찬송을 인도하는 목회자는 회중 앞에서 다윗처럼 춤추며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목회자는 회중을 하나님의 지성소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예전춤에 대해 마음을 열고 수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성경에 대한 오해나 편견의 소치이다. 예전춤은 개인뿐 아니라 회중 전체의 전인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