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여, 목회자들이여, 성숙한 전사가 되자!



활천 2000년 2월

 

들어가는 말

지난 1월호에서 문지방 경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간략히 논하는 가운데, 인간 내면의 원형 네 가 지 모델을 언급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좀더 확대하여 문지방 경험 전과 후의 성숙한 전사(戰士)의 모습을 살피고자 한다.

한 가지 부연할 점은 성숙에 대한 전통적인 융의 견해상 ‘전일성’ 혹은 ‘온전함’은 ‘자아’ 와 ‘그림자’ 사이의 균열이 극복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문지방 경험 이전의 모습은 사실상 인간 내면의 그림자이다. 심리적인 성숙은 자아가 그림자를 의식에 어느 정도 통합하느냐 하는 정 도에 달려 있다.

그림자 전사

문지방을 넘기 전의 미성숙한 그림자 전사는 피에 대한 갈증을 지니고 있고, 이글거리는 분노를 내면에 감추고 있다. 이러한 미성숙한 소년들(성인아이)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절대권력 혹은 절대적인 힘을 추구한다. 그들이 지닌 파괴성은 자신들을 공격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로 분출된다.

내면에 들어 있는 이 분노가 문지방 경험을 거쳐서 변형되지 않을 때, 분노 그 자체는 놀라울 정 도로 잔인한 행동으로 분출된다. 내면의 아이는 성인의 정서와 삶을 혼란시키고 조종한다.

예를 들자면 아돌프 히틀러는 이 내면의 그림자 아이에 희생된 자이다. 수백 만의 유태인에 대한 증오와 학살은 이 내면의 아이 혹은 그림자 전사가 밖으로 돌출한 결과이다.

실상, 공격성은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이 존속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성취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지만, 온전함 혹은 전일성을 향해 한 개인의 변형을 이끌어 줄 사람 - 특히 아버지와 멘토 - 이 없는 사회와 시대에는 폭력의 문제 해결에 길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 혹은 멘토가 없는 불행한 세대

오늘 우리가 처한 이 시대는 아버지 없는 세대, 멘토가 없는 세대라고 한다. 아버지는 존재하지만, 교사와 스승, 그리고 목회자와 지도자들은 많지만, 아버지와 멘토의 역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 렇게 된 이유는 오늘 우리들 아버지와 멘토들이 문지방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어(Moore)는 말한다.

“만일 아버지가 거리에 없다면, 혹은 아버지가 아들을 이끌 수 없다면, 어머니는 나쁜 위치에 처 하게 된다. 그녀의 아들은 그녀를 하나의 인간 존재가 아니라 엄청난 힘의 원천으로 경험할 수밖 에 없다. 아들은 어머니를 살해하지 않고 어머니로부터 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남성적 영 역과 연결되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나 멘토의 도움으로 문지방을 넘지 못한 사람은 도덕적 어머니 와, 무한정한 힘 또는 권력 충동에 붙잡혀 있게 된다.”


메조키스트((the Masochist)

문지방을 넘지 못한 ‘그림자 전사’의 한 모습이 피가학자인 메조키스트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 이나 공격성, 분노에 대해 정직하지 않다. 이 메조키스트가 나타내는 특징은 ‘의존적인 퍼스널리 티 무질서’이다. 이 무질서란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행동에 대한 불안이다. 이 의존적인 인성 때 문에 메조키스트는 항시 수동적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배, 이용, 조종하도록 허용한 다. 말하자면 자긍심이나 줏대 없이 끌려다닌다.


사디스트(the Sadist)

사디스트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러움이란 파괴적인 정서 인데, 부러워하는 자와 부러움을 받는 자 모두에게 불편한 정서이다. 밖으로는 힘이 드러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있다. 즉, 밖으로 드러난 파괴적 인 힘은 자기 기만이다.

한 인간의 행동과 정서가 이처럼 가학적인 면이 있을 때, 실상 그 또는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그 림자와 연약함을 은폐하려는 허망한 시도임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전사에 이르는 길

문지방 경험을 거친 사람은 남녀 할 것 없이 진정한 전사에 도달하고 있다. “여호와는 전사이시 다”(출 15:3). 여호와는 하층 노예민을 자유민으로, 미성숙한 백성을 성숙한 신앙의 백성으로 이 끌어 가시는 진정한 전사이시다.

성숙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문지방 경험을 할 필요가 있었다. 광야 40년 방랑생활도 이스라 엘에게는 문지방 경험이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문지방 경험을 통과한 자요, 광야에서 엎드러 져 죽은 자들은 문지방 경험의 실패자들이다.

문지방을 거치면서 ‘내면의 아이’, 내면의 ‘그림자 전사’를 벗어버린 자들, 곧 진정한 전사에 이른 자들은 인생의 목표가 분명하고 소명을 갖는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서 이웃을 위해 봉사 하고 헌신하려고 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그림자 전사)가 아니라 섬기려 하고(진정한 전사),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분명한 생의 목표)”(막10:45).

전사의 사명을 위해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의 문지방경험을 거치셨고, 또한 자주 빈들 을 찾아 기도하셨다. 이처럼 ‘자기 훈련’은 전사의 특징이다.


나가는 말

강대상에 서서 외치지만, 위로한답시고 성도들을 찾아 심방하느라 분주하지만, 말씀을 가르치느라 애를 쓰지만, ‘그림자 전사’는 자신과 성도들을 이용하고 조종하고 정서적, 심리적으로 학대할 수 있다. 교회에서 중직을 받았지만 자신의 권력을 한없이 충족시키고 군림하기 위해 그림자 전사 의 그늘을 회중과 교회 위에 드리우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 교회가 갱신되고, 살맛나는 진정한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원한다면, 목회자들이여, 지도자 들이여, 그림자 전사의 가면과 옷을 훌훌 벗어 던지자. 그리고 예수님 기도하시던 광야로 나아가 자. 진정한 전사를 거기서 배우자. 그래야만 교회가 살고, 성도들의 영혼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