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독교 영성의 표지(2)

 
활천 2000년 3월


들어가는 말

지난 2월호에서는 글 제목을 “성도여, 목회자들이여, 성숙한 전사가 되자”라고 삼았는데, 이번호 부터는 “진정한 기독교 영성의 표지”라는 제목 아래 계속 글을 쓰려고 한다. 전사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왕’혹은 ‘여왕’을 문지방을 넘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림자 왕 또는 여왕

우리 내면에는 혼돈과 무질서 그리고 파괴적인 성격을 띤 그림자가 있다. 그것을 그림자 왕 혹은 그림자 여왕이라 부른다. 이 그림자 왕의 외적 표현이 바로 ‘가부장’이다. 가부장은 진정한 남 성다움의 왜곡된 그리고 미성숙한 표현이다. 미성숙한 남자와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이기적인 방향을 찾을 뿐 아니라 자기 방어적이며, 자기 보호적이다. 그들의 행동 목표는 오 로지 자기 이득이다. 권력 게임이 그들이 갖는 최고 이슈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왕을 죽음의 한계를 지닌 자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어리석은 자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왕은 섬기는 종이었고, 이 섬기는 종이야말로 대인관계에서 보여지 는 ‘원형적 왕’의 모습이었다. 조언을 구하는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노인들)은 이렇게 응답했 다.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왕상 12:7).

예수님의 자기 이해에서도 왕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 은 진정한 원형적 왕이시다. 그분은 섬기는 자가 진정한 왕적 힘의 소유자이심을 아셨다. 그러기 에 그분은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왕)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7).

그러므로 진정한 원형적 왕과는 달리 그림자 왕 혹은 그림자 여왕은 혼돈과 무질서의 상징으로서 자기 중심성과 자기 권력 충족을 목표로 삼는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부족은 자신들의 왕을 ‘비의 왕’으로 불렀다. 왕의 주요 기능이 농 사와 수확, 그리고 목축에 필요한 충분한 비를 내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비의 왕은 천상의 신적 존재와 교통하며 신의 역할을 대행하여 사람들에게 복을 내림으로 ‘비의 왕’으로 불리웠 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그들의 왕을 신적 왕의 힘을 전달하는 일시적인 용기(用器)로 생각했 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유감스럽게도 이런 왕의 범주 안에 들지 못했다. 그는 왕의 지위와 힘 을 백성들을 섬기고 축복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고, 오로지 경쟁자인 다윗을 제거하는 데 사용했 다. 사울은 그림자 왕의 전형이다.

정한 왕의 미덕

에릭슨이 주창한 인간발달 8단계를 분석한 ‘단 브라우닝’(Don Browning)은, 진정한 남성의 에 너지, 왕의 힘을 소유한 사람이 갖춘 미덕을 사랑, 돌봄, 지혜라고 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특성 에서 신뢰와 희망이 산출된다. 그리고 신뢰와 희망은 힘과 성숙을 산출한다. 그의 말은 곧 진정한 원형적 왕 혹은 여왕의 에너지는 상대방에게 힘을 부여하며 상대방을 성숙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정한 왕(여왕)과 그림자 왕(여왕)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봤으므로 이제부터는 그림자 왕의 특성을 논하고자 한다.

폭력적인 강탈자인 그림자 왕

이스라엘의 그림자 왕(여왕)은 ‘강탈 신드롬’에 빠져 있다. 이 폭군의 마음(정신)은 상처입은 연 약함에 의해 소유당하고 있다. 이 상처입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연약한 남자 또는 여자를 미워하 고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곧 바로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는 강하다”라고 쓰는 말은 곧 이 진리를 여실히 반영한다. “약한 자에게 강하다”라는 말의 뜻은 일단 상대방에게서 연약한 모습이 보이면, 그 사람에 대해 완강해지거나 정신적, 육체적인 면에서 그를 폭력적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폭군 연산 군의 폭력적 잔인성은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그림자 투사이다.

가부장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리고 그림자 왕에 의해 소유당한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와 평신 도의 경우, 항상 강탈 신드롬에 시달리는 병리적 증후가 교인과 대인관계에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섬기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지배자로 군림하게 마련이고, 교회 생활과 사역 등 모든 부 분에서 자기의 뜻과 견해만을 고집하며 관철시키려고 한다. 결과는 혼돈과 무질서 그것이다.

폭력적 그림자 왕(여왕)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섬길 어떤 대상이 없다. 엄격히 말해서 그 또는 그 녀는 ‘섬김’이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한다(알기는 알아도 실천이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아 버지의 경우 그가 폭력적 그림자 왕을 투사할 때, 아이들 앞에서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라 는 식으로 아내를 격하시킨다. 역으로 그림자 여왕을 투사하는 아내의 경우 “저게 남자야?” 하 는 식이다. 목회자의 경우는 성도들을 향해 “뭐 저런 것들이 신자냐?” 하는 식일 것이고, 목회 자에 대한 신자의 경우는 “저게 목사냐?” 하는 식일 것이다. 이 모든 경우는 폭력적인 그림자 왕(여왕)의 투사 결과이다.

또한 이 그림자 왕(여왕)은 어느 정도 편집증 증세를 갖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항상 경계의 대상 이다. 그 또는 그녀는 추측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나를 노리고 있다. 나의 지위, 명예, 권 력, 돈 등 무엇이든지 다 노린다.” 그래서 쉽게 안식하지 못한다. 자기 방어를 위해 항상 다른 사 람들의 행동을 면밀히 조사해야 하며, 때로는 스파이를 두어서라도 상대방을 감시해야 한다.

그 또는 그녀는 질투심과 탐욕 또한 많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헤롯왕이 그 전형이다. 헤롯은 새로 운 왕의 탄생 소식을 듣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림자를 투사하여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했 다. 필리핀의 아키노 대통령, 그리고 가깝게는 전, 노 대통령이 그림자 왕에 해당된다.

만일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의 경우, 권력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있다면 교회는 권력 투쟁장으로 변할 것이고 교회와 성도들은 그 탐욕의 희생 또는 제물이 될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경우, 만일 그들이 질투심에 사로잡히면 폭넓은 인간관계를 통한 자아 실현과 사랑 의 능력의 증대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 자명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정체된다. 또 탐욕에 사로잡힐 경우, 무분별한 섹스 관계에 빠져들거나 돈의 절대화 또는 신격화에 의해 신앙과 인성은 황폐화될 것이다 .

그림자 왕(여왕)은 또한 교만하며 그의 언행은 유치하다. 그림자 왕에 사로잡힌 사울은 “자신의 손을 들었고” “자신을 위해 승전 기념비를 세웠다”(왕상 15:12). 교회를 위해 헌금하고 봉사한 것을 자기 권력의 기초로 삼는 경우를 흔히 본다(교회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에서는 이런 경우를 ‘pioneer fixation’이라 한다). 대개 이런 신자의 경우, 목회자의 어느 면이 마음에 안들거나 자 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목사를 추방하는 일에 앞장서거나 목사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연약한 왕(여왕)

폭군적인 그림자 왕의 이면은 연약한 왕이다. 삶과 일에 대한 의욕이 없고, ‘관계’는 아무런 의 미가 없다. 그 또는 그녀는 항상 우울하다. 그런데 이런 우울, 나태, 무열정 배후에는 항상 자신에 대한 과대 망상이 도사리고 있다. 한 개인이 과대망상에 빠져 있을 경우,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의욕 있는 창조적 삶을 추구하는 에너지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개 이럴 경우, 아내는 남편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벌어 먹여 살려야 한다. 남편은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술독에 빠진다. 아니면 노름에 빠진다. 아내는 허리띠를 졸라매어 밑돈을 대어 주지 않으면 항상 얻어 맞는다. 여자의 경우, 자기가 무슨 여왕이나 공주가 된 것처럼 행세한다.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 주거나 치켜세워 주지 않으면 우울해 한다.

어떤 여성도는 목사가 항상 치켜세워 주지 않으면 “목사가 사랑이 없다. 쌀쌀맞다”는 둥 비난하 기 일쑤다. 목회자의 경우, 목회 의욕을 상실하고 자기 개선이나 발전을 위한 노력을 포기한 채 “나는 주의 종님이다” 하고 섬김만을 받으려 할 것이며, 이것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에는 우울감 을 권위 아래 숨기려 할 것이다.

나가는 말

지금까지 그림자 왕(여왕)의 모습을 더듬어 보았다. 다음호에서는 진정한 원형적 왕(여왕)의 모습 을 살펴볼 것이다. 부족한 필자의 글을 읽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성찰과 개선의 기회를 부여하 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어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왕(여왕)을 기다리고 있다. 목회자들이여, 교회 지도자들이여! 그림자 왕을 벗고 진정한 왕이 되자. 그러기 위해 믿음의 조상 야곱이 경험한 문지 방, 그 얍복강을 찾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