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독교 영성의 표지(5)


활천 2000년 7월

 

 

들어가는 말

한 인간의 정신 성숙도는 그 또는 그녀가 사랑의 에너지에 얼마나 가까이 이르렀느냐에 달려 있다. 사도 바울의 표현으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다. 사랑의 에너지 혹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한 한 인간의 정신(psyche)과 삶에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은 다양하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호에서 지적한 ‘오디푸스적 아이’ 이외의 다른 모습들을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정신적 이유(離乳)가 없는 마마보이와 파파걸

마마보이(The Mama-boy)는 육체적으로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정신적으로는 떨어져 나오지 못한 사람이다. 분화, 즉 개별성을 성취하지 못한 이 사람은 첫째로, 항상 어머니의 앞치마에 달라붙어 있으려고 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항상 그의 어머니와의 일치(union)이다.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항상 어머니를 의식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으로 희열을 느낀다.

만일 이런 아들이 배우자를 얻게 되면, 그녀는 즉시 이 마마보이의 도덕적 어머니(the Moral Mother)의 경쟁자 또는 적수가 된다. 현대사회 가정에서 빚어지는 온갖 병리현상 가운데 하나인 고부간의 갈등이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 이 마마보이는 그의 남성기를 전능한 것으로 여기며 세상의 모든 여자를 소유하려는 자기 욕망에 빠진다. 그는 이런 무의식에 사로잡혀 모든 여자를 경험하려고 시도한다. 한 아내와의 정신과 육체의 연합이라는 한계는 지리멸렬한 것이다.

정신적 이유가 없는 여자(The fafa-girl)의 경우, 그녀는 아버지와의 도덕적 결합을 시도할 것이다. 그녀는 아니무스(Animus)에 사로잡혀 그 어느 남성과도 사랑의 연합과 결속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녀의 성은 남성들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어서, 외면적으로는 부도덕한 여성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마마보이와 파파걸의 대극은 몽상가(The dreamer)이다. 그는 항상 소외감을 느끼며 모든 인간관계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소외시키기 전에, 그리고 소외시키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움츠러들고 외로움(aloneness)에 스스로를 파묻는다. 말하자면 대인기피증이 병리적 특성이다.

빅터프랭클은 그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Man’s will to meaning)에서 인간은 고통, 사랑, 그리고 책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성숙시켜 나간다고 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사랑의 관계의 기피 또는 단절은 개인의 분화와 개별성의 성취에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중독된 사랑

미성숙한 그림자적 원형 또는 에너지의 하나는 중독된 사랑이다. 사랑의 원형 에너지가 없으면 그 또는 그녀는 탐식 또는 대식에 빠지거나, 술에 중독 되거나, 성에 중독된 나머지 한계를 모른다. 결국 몸이 비대해지거나 망가지며, 이와 비례하여 정신과 영혼도 황폐화된다. 부부싸움 후 흔히 술에 빠지거나 음식을 많이 그리고 쉬지 않고 먹는 것도 미성숙한 그림자 원형의 한 면이다.

 

무력한 사랑

미성숙한 사랑의 그림자 원형의 다른 한 면은 무력한 사랑이다. 삶의 의욕이나 노력, 자기개선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다. 항상 기분이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고, 주변을 어둡게 만든다.

 

어떻게 그림자에서 벗어날 것인가?

그림자 원형에 붙들려 분화 또는 성숙을 이루지 못한 자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어떤 치료가 가능한가? 추천하고 싶은 몇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 명상(meditation)과 관상(contemplation), 그리고 의미 있는 의례(Ritual)이다.

1. 묵상

묵상은 관상에 이르는 준비과정으로서, 목적은 마음을 청결케 하고 비우는 것(emptiness)이다. 묵상과정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는 것,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데 묵상에 있어서, 마음을 비우는 기도를 “정돈 기도”(dispositional prayer)라 한다. 이 기도는 말로써 우리의 관심사와 영적, 육적 필요를 표현하고 구하는 적극적인 기도(Active prayer)보다 내면에 이르는 여정과 내면의 치유에 더 유효하다.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에 떠오르는 관심사와 이미지들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들을 흘러가도록 내어 보내면서(letting-it-go),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무언의 정돈 기도를 하는 가운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기도는 예수 기도(Jesus prayer)이다. 이 기도는 우리의 내면의 중심에 이르는 데 도움을 주므로 센터링 기도(Centering prayer)라고 한다. 예수 기도는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또는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사랑’ ‘아멘’을 사용할 수 있다.

의식에 떠오르는 관심, 이미지들을 흘러보내면서 마음을 비우고 예수 기도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내면 중심에 이를 수 있다(참조: 아빌라의 데레사의 글 “영혼의 성” Interior Castle. 드와이트 H. 쥬디, 이기승 역, 『그리스도인의 묵상과 내적치유』 Christian Meditation and Inner Healing, 두란노 근간).

아빌라의 데레사는 기도의 단계를 1궁방에서 7궁방으로 이르는 단계로 말한다. 그녀는 마지막 제7궁방에서 하나님과 자신의 영혼이 결합되는 것을 경험한다. 7궁방에서는 우리의 영혼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의 내면과 육체를 치유하신다. 이 깊은 기도의 단계를 관상이라 한다.

관상의 단계에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의 정신 외상(the trauma), 그림자(the Sadow), 거짓 자아감 등 모든 병리적인 것을 치유하시며 우리를 전인(wholeness)으로 인도하신다.

2. 의례(Ritual)

우리 모두는 의례를 필요로 한다. 의례가 없는 삶은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 특히 통과의례(Rite of passage), 야곱이 얍복강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문지방 경험(Liminal experience)은 내면의 치유와 온전함에 이르는 성숙에 없어서는 안될 의례이다. 성스런 음악에 맞춘 춤, 특히 예전 춤(liturgical Dancing), 가정 안에서 시행되는 축복의례(Rite of blessing)도 치유와 전인에 이르는 길이다. 의례는 상처를 치유하고, 깨어진 관계를 연결시켜주며, 해체된 자기가치(self-worth)를 재통합시켜주는 힘이 있다.

 

나가는 말

우리는 영혼을 돌보는 자로서 여러 가지 목회 상담과 치유에 직접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또는 교회 지도자)로서 우리는 죄의 심각성뿐 아니라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상처입고 왜곡된 내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또 내면을 알아야 한다.

오랜 신앙의 경험과 역사를 가진 성도들이 거짓자기 또는 거짓자기 이미지를 갖고서 그로 말미암는 영적 정신적 혼란에 빠져 있고, 가족관계와 대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입히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부끄러운 얘기가 될는지 모르지만, 그런 현상은 당회와 직원회에도 투사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인간 내면을 보고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익숙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