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독교 영성의 표지(6)

 

활천 2000년 8월

 

 

들어가는 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려 해갈이 되는 것 같다. 우중충함도 때로는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신앙생활이 십 년, 아니 수십 년이 되었어도 변치 않는 우리들의 내면에도 성령의 단비가 촉촉이 내렸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실상 신앙경력이 높을수록 자기체계(방어기재)를 고수하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영적 생활(영성)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이번 글은 우리 자신의 내면의 실재를 들여다보며,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은 리처드 로어(Richard Rohr)의 분석적 이론을 많이 참조하였음을 밝혀 둔다. 로어는 『영혼의 거울』(Discovering the Enneagram)에서 진정한 영성을 추구했던 수피(Sufi)들의 분석과, 변화되어야 할 인간의 내면과 삶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니어그램’(Enneagram: 구각형이라는 뜻)은 사람들을 도와서 지적 및 영적 성숙을 돕는 탁월한 도구이다.

 

영적순례의 전제

우리의 영적인 순례에는 자기지식(Self-knowledge)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 자기지식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영적 생활은 불가능하며, ‘내면으로의 여행’(inner journey) 역시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흔히 드러나는 병리적 증상들은 거짓 자아감이나 치유되지 못한 내면의 정신적 외상(experience of trauma)과 그로 말미암는 자기 방어기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은총은 이 거짓 자아감이나 상처에서 생긴 방어기재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케 하시며, 동시에 우리의 자존감(‘나는 중요한 존재이다’)을 높여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다. 거짓 자아감으로 인해 겪는 갈등과 부인(否認)은 자기지식을 근거로 한 내면의 여행에 장애물이 되며, 성장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는 방어기재를 강화함으로써 관계(하나님과의 관계 및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방해한다.

카렌 호니(Karen Horney)에 의하면,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공포 때문이며 이 공포는 세 가지 면에서 우리를 제한시킨다. 그 첫째는 굴복이며 이는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지향하는 것이다. 둘째는 적개심, 셋째는 퇴행인데 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다.

정신분석자인 프리츠 리만(Fritz Riemann)은 가까워짐에 대한 공포, 멀어짐에 대한 공포, 변화에 대한 공포, 영원성에 대한 공포, 이 네 가지가 우리를 제한시키며, 이 네 가지 공포의 결과는 정신분열, 절망 또는 우울, 강박적 충동 그리고 히스테리를 낳는다고 말한다.

거짓 자아와 방어기재에 붙들린 자는, 그 또는 그녀가 신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수용하지 못하고(외면상으로는 그런 것 같아 보여도), 그래서 진정한 영적 성숙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수피들은 영혼의 거울인 이니어그램을 통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았고, 진정한 자기를 찾는 길을 발견했던 것이다.

로어에 의하면, 이니어그램은 우리의 인식을 정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정직하도록 도와주며, 우리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분별하도록 도와주며, 우리를 편견의 감옥에서 자유하도록 도와준다. 이니어그램을 통해 우리 내면의 ‘어두운 면’과 뿌리 깊은 죄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치유된 후의 아홉 가지 영적인 열매를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수피들이 가졌던 이니어그램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보는 일을 시작하도록 하자.

 

로어는 9가지 유형을 논하기 전, 기본적으로 세 유형의 사람을 다음과 같이 논한다.

1. 배 중심의 사람(Gut Center)

이 사람은 적대적인 유형이다. 그들에게 인생은 투쟁장이며,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권력이나 정의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쉽게 적대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항상 자기의 영역을 주장한다. 일이 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나는 왜 이래?” 하면서 자신을 쉽게 비난한다. 다른 한편, 그들은 자신들의 불안이나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주장이라는 겉모습 뒤에 숨는다.

2. 마음 중심의 사람(Heart Center)

마음 중심의 사람은 주관적인 감정의 세계가 그들의 영역이다.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상호 주관적인 관계(intersubjective relations)이다. 이들에게 관계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한편, 그들은 남을 위하면서 자신의 명성이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신경을 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지배당한다.

사실상 그들은 남에게 보이는 친절과 활동 배후에 있는 공격성을 억압한다. 외면상으로는 자기 확신과 조화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공허감, 무력감, 슬픔과 수치심을 감추고 있다.

3. 머리 중심의 사람(Head Center)

머리 중심의 유형은 자기가 소속하고 있는 집단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가서 자신과 자신의 입장에 대해 반성한다. 이들은 질서와 의무에 대한 감각을 지닌다. 이들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자신들이 맡은 바를 방법론적으로 처리해 나간다.

크게 3형태로 분류한 모든 사람들은 ‘구속된 퍼스낼리티’(the redeemed personality)를 가져야 하는데, 사실상 이 구속된 퍼스낼리티는 성령의 열매에 해당된다. 그리고 구속된 퍼스낼리티를 갖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는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그 반대로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퍼스낼리티가 구속받지 못했을 경우에 교회는 여러 가지 분쟁과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

필자는 그 동안 목회를 하면서, “신앙 연륜은 깊고, 봉사도 많이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모습과 삶이 왜 보이지 않는가? 수많은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 아멘’ 하는데 예배를 끝마치고 나면 얼마 가지 않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난하는가?” 등등을 생각하면서 ‘도대체 예배는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위해 설교하고 있는가?’ 회의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웨슬리가 말한 대로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거룩하고,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과 성례전으로 교회(성도)를 지속적으로 거룩하게 만드신다는 데는 조금의 의심이나 회의가 없다. 그러나 문제투성이 크리스천의 관계와 삶을 비판적으로 조명, 해석하는 이니어그램(영혼의 거울)을 통해서 이는 구속받지 못한 퍼스낼리티의 문제라는 통찰을 얻게 되었다.

 

나가는 말

이번 글은 기본적인 3가지 유형의 인격(personality)을 고찰하였다. 다음 글은 좀더 구체적으로 9가지 유형과 그 유형들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고찰하면서, 우리 모두가 빠질 수 있는 함정, 뿌리 깊은 죄, 그리고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구속)을 논하면서 하나님께서 애초에 계획하신 삶(the authentic life)에 이르는 길을 제시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인내와 이해의 협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