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독교 영성의 표지(8)

활천 2000년 10월 

 

 

들어가는 말

좀 엉뚱한 물음이 될는지도 모르지만, 만일 우리 생활 속에 거울이 없다면 어떨까? 여인네들은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데 하루 평균 2-3시간 소모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정네들은 거울 앞에 서는 일이 없을까? 직장에 출근하기 전 넥타이를 메는 등, 하루 2-3번은 거울과 대면한다. 이 자기 직면과 자기 지식을 토대로 그/그녀의 모습과 태도는 변한다. 이처럼 동방교회의 전통을 따라 진정한 영성과 삶을 추구했던 수피(Sufi)들은 이니어그램(Enneagram, 구각형이란 뜻. 인격을 중심한 인간의 유형 구조)을 영혼의 거울로 사용했다. 이번 글은 거울에 비치는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의 모습을 숙고하고자 한다.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들을 필요로 하고 또한 남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며 또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필요에 대한 욕구는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유형2의 사람은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the need to be needed)에 있어서 좋은 면도 갖지만 동시에 겉으로 보아서는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면을 많이 갖고 있다.유형2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멋있고 도움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이 욕구는 밝은 면이지만, 동시에 이 욕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많이 받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약해지고 도움을 준 사람 앞에서 자신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또 도움을 준 사람이 도움을 받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조종하려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한다.다른 한편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유형2의 사람은 항시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 다중자기(多重自己, multiple Self)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자아-세계 축(the ego-World Axis)이 온전해야 자아-세계 축(the ego-World Axis)을 통한 주변과 세계와의 온전한 관계가 가능하지만, 유형2의 경우는 두 가지 차원이 거의 불가능해진다.내면적으로, 유형2는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면서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정서적인 삶을 회피한다. 밖으로 드러나는 이타주의는 자신의 에고이즘을 탐닉하는 합리적인 방편일 수 있다.


유형2가 범할 수 있는 죄

퍼스낼리티의 구속(救贖)을 받지 못한 유형2의 사람의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만(自慢) 혹은 팽창된 자아가 깔려 있다. 이럴 경우, 그/그녀는 진정한 자기에 도달하지 못할 뿐 아니라(의식의 중심인 자아가 내면의 중심인 자기에 이르러야 한다), 실상은 하나님께 도달하기 어렵다. 외면상으로는 종교적이며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형2의 사람은 퍼스낼리티의 구속을 경험해야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겸손(Humility)을 통해 이웃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다른 한편 회심 또는 구속이 일어날 경우, 그/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허용한다.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지금까지 견지해온 태도, 즉 거짓 친절, 아첨, 자아 팽창 등을 철회한다.

침묵과 고독의 장소를 찾으라!

유형2의 사람은 침묵(Silence)과 고독(Solitude)의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자리를 우리는 객관성의 자리라고 일컫는다. 깊은 침묵과 묵상 안에서 유형2의 사람은 자신 안의 욕구와 직면하여 그 욕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규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내주와 치유를 기원함으로써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면을 치유받음으로써 자기 발달과 성숙한 관계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그 세계는 지배와 조종, 착취와 이용이 없는 순수한 만남의 세계이다. 나(I)와 그것(it)의 세계가 아닌, 나(I)와 너(Thou)의 세계이다. 그 세계의 중심(Axis)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유형3의 사람: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

유형3의 사람을 달리 표현하여 ‘지위 추구자’(Status Seeker)라 하는데, 이 유형의 사람은 주로 관계의 그물을 만드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주력한다. 관계의 그물은 실상 자기가 추구하는 지위에 올라가는 계단이다. 내면적으로, 이 유형의 사람에게 인생은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투쟁의 장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관계 그물을 만들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은 이 유형의 전형이다. 이 유형의 사람은 외면적인 성취를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한다. 그러니까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가기 위해 분주하며 쉼이 없다. 양심이나 초자아가 잘 발달되지 않았고, 본능과 페르조나(가면)가 발달되어 있다.


회심과 구속

이 유형의 사람은 개인적 목표에 근거한 삶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통치의 포괄적인 목표에 근거를 둔 희망의 삶으로 구속되어야 한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얍복강의 문지방 경험(liminal experience) 회심을 통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야 한다.


비평과 숙고와 제안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영성! 영성!’ 하고, ‘영성운동’ ‘영성세미나’ 하고 외친다. 그런데 이런 운동과 세미나의 배후에도 어두움은 역시 드리워져 있다. 영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 자기 확장의 수단이 될 수 없고, 영적 영웅 창조를 위한 과정이 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영적 콤플렉스의 지배를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적 영웅신화의 콤플렉스에 걸려들어 여기저기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그 어디든 고요한 시간과 장소 - 상징적 환경 - 를 찾아 깊은 침묵과 묵상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내 영혼의 거울 앞에 앉는 시간에 비례하여 나의 진정한 모습인 자기가 더욱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