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독교 영성의 표지(9)

활천 2000년 11월   

 

 

들어가는 말

며칠 전 TV를 통해 새로운(?) 현대인의 모습을 보았다.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사람들이 무대의 백댄서, 가수가 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전전긍긍하는 모습과 그 대담 내용이 방영되었다.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돈도 벌고 이름을 날릴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TV 프로그램에 방영되는 사람들은 특별한 존재에 대한 갈망을 더 느끼는 자들처럼 보였다.


특별하고자 하는 욕구

동방교회의 전통을 따라 ‘영혼의 거울’(the Eneagram)을 통해 인간 유형을 본 수피에 따르면, 유형4의 사람은 특별하고자 하는 욕구(The Need to be special)를 지닌 사람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친 자신의 이미지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주로 아동기에 참지 못할 상황과 무의미(고통스런 상실의 경험)를 많이 경험한 사람으로 본다. 다시 말해 멘토링(Mentoring)을 받지 못하고, 긍정적인 역할 모델이 없는 사람이다. 받는 상처(trauma)의 치유나 성숙의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하고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를 많이 지니고 성인기 접어든 사람들, 그래서 성숙한 아버지의 역할이나 어머니의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 주로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은 부모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이 더 지속되거나 심화될 경우, 그들은 자신의 ‘나쁨’을 더 계발하며 거절당하거나 버림받는 상황을 만든다. 특별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 사람은 이면에 우울증이 도사리고 있다. 이 욕구 때문에 유형4의 사람은 권위를 존중하고 권위 있는 사람을 따르거나 숭배한다. 다른 한편, 일반적인 범인과는 관계 형성이 쉽지 않다.

유형4의 사람의 방어기제는 “인위적 승화”(artificial sublimation)이다. 밖으로 드러난 고상한 태도나 몸가짐은 내면의 불균형이나 혼돈을 위장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유형4의 사람이 지닐 수 있는 뿌리깊은 죄는 시기이다. 권위자나 사회적으로 인정 혹은 추앙을 받는 자는 항상 시기의 대상이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우선 우리 목회자들의 인격 성숙(혹은 구속)이 시급한 과제이다. 만일 유형4의 사람이 성령의 역사로 구속(救贖)되면 그/그녀에게서 나타나는 영성은 조화(Harmony)와 깊은 영성적 삶(Souledness)이 될 것이다.

 

지각에 대한 욕구

유형5의 사람은 사고가(thinker) 혹은 지각에 대한 욕구(The need to perceive)를 가진 자이다. 이 유형의 사람은 행동과 실천 이전에 먼저 생각하고 확실한 객관성을 추구한다. 만일 유형5의 사람의 인격이 구속(救贖)될 경우, 그들의 삶은 공감적 삶이 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들의 내면은 공허감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이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얻는 것을 축적한다. 축적에 대한 열망, 그리고 축적에서 얻는 안정감은 오히려 자아(the ego)의 혼란, 진정한 자기(the Self)와의 대면과 그 대면을 통한 성숙에 큰 장애물이 된다.

다른 한편 구속되지 못할 경우, 유형5의 사람은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형5의 주변 사람들은 그/그녀가 관계를 통한 자기발견이나 성숙은 어렵게 된다. 이런 사람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 그들은 부모 역할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유형5의 사람의 제1 방어기제는 퇴행(withdrawal)이다. 이것의 결과는 의존을 창조하는 감정과 성적 관계에 한없이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외면상으로는 보수적이다. 제2의 방어기제는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인데, 이는 상호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칸막이를 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과 세계 사이에 연결 혹은 연대(connectedness)가 부재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뿌리깊은 죄는 탐욕이다. 만일 유형5의 사람이 성령의 역사로 인격이 구속된다면, 그/그녀에게서 나타나는 영성적 삶은 초연(detachment)이다.

 

안전에 대한 욕구

유형6의 사람은 안전에 대한 욕구(The need for Security)를 지닌 자로 흔히 “로얄리스트”(Royalist)라고 부른다. 이 유형의 사람은 협동적이며, 팀 플레이어(team-player)이며, 따뜻한 마음과 위트가 있다.

다른 한편, 내면에 두려움 있고 빠지기 쉬운 죄가 기만이므로 쉽게 자기 의심에 빠지며, 자기 확신의 결여로 인하여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권위를 지닌 사람, 제도, 교회, 정당, 국가, 과학, 책 등에 매어 달린다(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관점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자를 신앙이 좋은 자로 오인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신앙중독이 있을 수 있고, 자기확신의 결여로 교회에 집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형6의 사람은 인생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비관적이며 성공 불안증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포빅(Phobic), 즉 관계장애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유형6의 뿌리깊은 죄는 불안이며, 다른 사람과의 냉전이 병리적 신드롬이다. 자신을 불신하는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유형6의 사람의 인격이 구속될 경우, 그/그녀는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인격적인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가는 말

신앙과 삶이 일치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인격을 구속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바른 관계 속에 서게 하신다. 항간에 추석특별 축복성회라는 선전물이 쇄도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축복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교회, 특히 우리 성결교회는 이제 한 영혼의 진정한 변화와 성숙에 관심의 초점을 모아야 할 줄 안다. 성장 이데올로기, 그릇된 부흥 이데올로기의 사슬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목회자 자신이 에더프스 콤플렉스(Ediface Complex)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하겠다. 이웃교회가 교회당을 허물고 더 크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든지, 아니면 이런 저런 요인으로 인하여 사람이 많이 모이면 상대적 빈곤감, 패배감, 혹은 열등감을 갖게 되는데, 우리는 이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성숙과 성도의 성숙을 귀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