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 성결교회 신학의 회고와 전망

 

 

 발제 및 토론 참석자

정진경 목사

조종남 박사

이신건 박사

정재우 목사

박명수 박사

정용섭 박사

김석천 목사

임인호 목사

오영근 목사

 

 

  발제1. 정진경: 역사적 관점에서 본 성결교회의 과제와 사명

  발제2. 조종남: 한국 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과 기원

  발제3. 정용섭: 성결신학연구소의 신학방향

  발제4. 박명수: 성결교회 신학의 정체성과 과제

종합 토론

이신건 박사: 올해로 우리는 성결교회 창립 9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본 교회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뜻있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 줄 아는데, "성결교회의 정체성과 보편성"이라는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신학적으로 반성하는 행사가 없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창립 2주년을 맞이한 성결신학연구소가 이 문제를 한번 다루려고 한 것이다.

성결신학연구소는 그 어떤 신학을 고수하거나 표방하려는 자세보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이고자 한다. 바쁘신 중에도 발제해 주신 강사님들과 토론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별한 형식이 없이 자유롭게 토론하려고 한다.

오영근 목사: 정진경 목사님께 드리는 질문인데, 본 교단이 간접선교에 실패했다고 말씀하신 뜻은 무엇인가?

정진경 목사: 선교사들이 개인전도를 강조했기 때문에, 병원이나 학교 설립 등을 통한 선교를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125개의 유치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고, 숭실대학교로부터 600명 이상의 목회자들이 배출되었다. 실제로 우리는 교단의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힘이 없었고, 정신의 방향도 달랐다. 그래서 개인 전도와 회개, 성결을 강조하였는데, 시대도 그러했다.

오영근 목사: 소외된 자를 향한 웨슬레의 열정에서 볼 때, 뭔가 맞지 않는다.

조종남 박사: 사도적 전통, 개신교 전통, 복음주의 전통에서 은총관과 구원론이 중요한 것이었다. 단지 교리해석에 따라 칼빈과 웨슬레의 차이가 있었다. 18세기의 미국성결 운동은 원칙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간접선교에 대한 반대운동(Reaction)으로서 개인전도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 반대운동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퇴조한 것은 지나친 것이었다. 웨슬레는 성결을 사랑과 연결하였지만,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성령을 능력과 결부하여 강조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 성결을 등한시하는 것은 분명히 웨슬레의 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웨슬레의 정신은 온전한 복음(Whole Gospel)을 전파하는 데 있으며,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 1981년)도 온전한 복음(Whole, Full Gospel)을 강조했다.

정진경 목사: 진보적인 사람만이 사회성을 강조하고, 보수적 사람은 신앙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에 대한 신앙은 전체적이다. 복음적, 보수적인 사람이 실제로는 더 많이 사회적인 활동을 한다.

박명수 박사: 복음주의가 사회적으로 약한가? 하바드 대학은 남녀차별을 철폐하였고, 찰스 피니는 남녀공학을 세웠다. 성결운동의 일파인 구세군도 사회봉사 활동을 많이 한다. 단지 접근방법이 다를 뿐이다. 즉 복음주의는 인간의 변화를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조종남 박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전도하게 되어 있다. 사회복음(Social Gospel)은 힘이 없다.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 사랑에 있다.

김석천 목사: 성결에도 능력이 있지 않은가? 웨슬레도 능력을 강조하였다.

조종남 박사: 둘 다 강조했지만, 서로 싸우다 보니 한 쪽으로 치우쳤다.

박명수 박사: 우리의 신앙선배들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 전도자로 나섰다.

김석천 목사: 웨슬레는 성결과 능력을 균형있게 강조했으나, 미국에서는 능력 쪽으로 기울여졌다. 이것은 웨슬레와 다른 것인데, 한국에서도 달라졌다.

이신건 박사: 흔히 복음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복음을 순복음(純福音)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Full Gospel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온전한 복음' 혹은 '총체적 복음'이라고 해야 맞다. 웨슬레가 칭의에 이어 성화를 강조했고, 또 사회적 성결을 이루려고 노력하였다면, 그의 정신에서 볼 때, 성결교회가 복음주의, 순복음을 내세워 사회적 성결, 사회참여를 무시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조종남 박사: 순수하고 온전한 복음(pure and full Gospel)이 맞다.

박명수 박사: 일본에서도 자유주의와 대결하는 가운데 순복음(純福音)이 강조되었다. 원래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이었는데, 최근의 교단헌법에서는 순(純)이 빠졌다. Full Gospel이 사중복음(四重福音)보다 더 좋은 것이다.

조종남 박사: 1945년(재흥헌법) 때까지는 사중복음이 쓰이지 않았다. 옛날 것이 더 세련되었다.

정진경 목사: 이명직 목사님도 사대복음(四大福音)이라고 했다.

정재우 목사: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 하지 않나?

조종남 박사: 각자대로 불렀다.

박명수 박사: 원래대로 '온전한 복음'이 더 좋다. 순복음 교회와 구분하려고 사중복음을 썼지만, 미래지향적으로 온전한 복음이 좋다.

정진경 목사: 미래지향적으로 넓혀나가야 좋겠다.

박명수 박사: 그런데 오늘날엔 오순절 교단이 부흥하고 있지 않은가?

정진경 목사: 신학적 접근을 해보면, 사중복음도 전인적인 것이다. 칭의와 더불어 성결(성화)이 강조되어야 하며, 또 성결은 사회적 성결로 나아가야 한다. 또 신유는 육체적 구원을 포함하며, 재림도 전인적인 구원을 포함한다.

조종남 박사: 베를린 선언, 로잔언약, 마닐라 선언을 이어가면서 온전한 복음을 강조한 선배들의 가르침이 메아리치고 있다.

박명수 박사: 신유, 재림이 성결과 무관해질 때는 혼합적이 될 위험이 있다. 능력을 강조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문제일 수 있다.

조종남 박사: 그 정신이 헌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중복음은 성결론 중심의 사중복음이었다.

이신건 박사: 영국의 웨슬레가 루터와 칼빈과 달리 칭의에 이은 성화를 특별히 더 강조했고, 미국의 성결운동은 이에 신유와 재림을 독특하게 가미하였다. 그리고 사중복음이 한국에 유입되었지만, 한국적 요소(일제식민지배 상황과 한국 지도자의 체험과 신학 등)도 분명히 가미되었다. 이처럼 웨슬레 전통으로부터 미국 성결운동을 거쳐 한국에 토착화된 사중복음은 분명히 상황적 요소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라지거나 뒤바뀐 것이다. 예를 들면, 웨슬레의 성결론은 윤리적 요소(완전한 사랑, 사회적 성결)를 강하게 갖고 있는 반면, 미국의 성결론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였다. 또 웨슬레의 성결론이 갖는 점진적 요소가 미국에서는 현저히 후퇴하고 있다. 그리고 웨슬레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구제와 치료 사역을 많이 행했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기적적인 신유만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웨슬레는 전천년설이나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이처럼 웨슬레적 요소가 그대로 전수된 것이 아니라 지역과 상황에 따라 변해왔다. 그런데 미국성결운동의 한 분파인 오순절 교단(조용기 목사)도 4중복음에 '축복'을 가미하여 5중복음을 주장하고 있는 형편인데, 우리도 그처럼 우리의 상황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추가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면 소명(召命) 같은 것을 말이다. 왜 점차로 추가, 변화되어 온 것을 우리만이 그대로 고수해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이것은 어느 개인이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김석천 목사: 웨슬레적 요소를 제대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사중복음의 순서보다 중요한 것으로서, 한국의 상황에서 추가될 수 있지 않을까?

정진경 목사: 웨슬레적 상황에서는 충분히 표현되었다. 그러나 예를 들면, 관악산의 등산길은 여러 가지이나, 자기의 길을 강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토플러가 말한 제4의 물결은 통합(統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을 고수하면서도 넓혀나가야 한다.

정용섭 목사: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겠다. 웨슬레와 만국성결운동이 직접 들어온 것이 아니라 OMS(동양선교회)를 통해 들어왔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확실한 신학을 갖고 시작했을까? 신앙적 특색이나 선교적 열정은 있었으나, 신학은 없지 않았나? 선교적 열정에 미래지향적 종합이 있어야 한다.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는가?

조종남 박사: 만국성결운동을 통해 웨슬레가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동양선교회의 교리적 선언은 웨슬레의 신학에 기초해 있다. 문서상으로는 웨슬레 신학과 만국성결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나타나 있다. 이명직 목사의 성결교 약사(略史)에 그대로 나와 있다. 일단 우리 것은 인정하고, 이것을 우리의 콘텍스트(상황)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텍스트(전통)를 인정하고 콘텍스트를 고민해야 한다. 텍스트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박명수 박사: 우리 것이 있다. 그것은 만국성결운동이다.

조종남 박사: 정체성(Identity)을 밝혀 놓고, 오늘의 의미(Implication)를 찾자.

정용섭 박사: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성서이해인데, 복음주의가 근본적으로 역사비평을 부정하면 어떻게 하나?

조종남 박사: 복음주의 신학이 왜 고등비평을 하지 않았나? 1942년부터 풀러(Fuller) 대학과 에즈베리(Asbury) 대학 등이 다 하고 있다.

정용섭 박사: 역사비평을 부정하니까 신학적 신학적 대화가 불충분하다.

조종남 박사: 과거 근본주의는 반지성주의적이었으나, 지금은 복음주의 신학자가 더 많이 공부한다.

박명수 박사: 고등비평은 근대이후의 신학이다. 그전엔 신학이 없었나? 성서를 보는 방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고등비평도 한계를 갖는 것이다.

조종남 박사: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가 다를 뿐이지, 복음주의권도 공부한다.

임인호 목사: 정체성에 대해 너무 많은 토론을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지나갔다. 이제 전망(前望)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 목회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급적 '성결'이라는 글자를 가리라고 충고한다. 성결교인이 오히려 성결인임을 부끄러워한다.

조종남 박사: 웨슬레도 초신자에게는 성결을 강조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활력이 없는 신자들에게 성결을 가르쳤다. 성결교회는 대체로 교리와 정체성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다. 전도전략상 성결을 강조하지 말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정진경 목사: 주의(Ism)化는 위험한 것이다. 진보주의도 더 폐쇄적일 수 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정신을 본받자는 말이다. 성결교회의 간판을 달면, 부흥이 안 되나? 아니다. 나는 언제나 신촌성결교회의 지도자였음을 강조해 왔다. 성결교회는 교파 배경이 없이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교회도 비정직하다(교세통계 등). 사회적 영향력도 점점 더 줄어든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임인호 목사: 성결교인들에게는 자격지심(自激之心)이 깔려 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이다.

이신건 박사: 어떤 후배들은 교회를 개척할 때, 주보에나 간판에 아예 성결교회라는 이름을 지우거나 조그맣게 써넣으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아직도 성결교회의 전통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 완전히 새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도 종종 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정진경 목사: 저변에 열등의식이 깔려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이제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박재범(대학원생): 신학교육에서부터 정체성 교육이 약한 것이 아닌가?

정재우 목사: 요즈음 사회적 성결에 관해 논의가 많은데,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조종남 박사: 웨슬레는 열광주의에 반대해서 사랑을 강조했다. 생활, 윤리 면에서 정직해야 한다. 성장의 신학, 번영의 신학 때문에 복음의 색깔이 희미해져 간다. 소명이 약해지고, 고난을 받기 싫어한다.

정재우 목사: 윤리적 성결이 강조되어야 한다.

조종남 박사: 요즈음에 능력을 강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윤리적인 면은 퇴색한다.

정진경 목사: 기독교문화 형성이 시급해졌다. 요즈음 샤마니즘이 늘어나는 것은 기독교 문화형성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임인호 목사: 목회현장에서 이론과 실천 간의 괴리가 심하고,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 웨슬레와 교단정책 간에도 괴리가 심하다. 윤리적 설교를 하는 것은 비복음적이라고 하여, 혼선이 생긴다. 이론에 입각해야 할텐데.

조종남 박사: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감동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윤리적 열매를 맺어야 한다.

임인호 목사: 사중복음도 개인주의적이고, 교단도 사회적 성결에 무관심하다. 지금도 반대운동(Reaction)이 필요하지 않는가?

조종남 박사: 타락한 죄인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박명수 박사: 이명직 목사님은 학교로부터 회개운동을 전개하여, 회개운동이 교단까지 파급되었다. 프로그램(Program)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로부터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누군가 준비되어 있지 않겠는가?

조종남 박사: 근본이 문제다. 성령과 회개-각성이 빠지고 정치 프로그램으로 나아가는 것은 비성서적이다.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자가 소망적이다.

정진경 목사: 여러분들은 선배들을 답습하지 말라.

조종남 박사: "성실이냐 끈(정치)이냐"를 고민하는 젊은 목회자의 편지를 받은 적 있다. 엘리야 시대처럼 하나님은 남은 자를 준비하실 것이다. 정치에 몰두하기보다 외로움, 괴로움 속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용섭 박사: 성결을 강조하는 성결교회가 왜 그런가?

조종남 박사: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도리 밖에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