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정기 세미나 30회 기념 공개 토론회

성결교회 신학,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한영태

목창균

박명수

지형은

 

    1. 들어가는 말

    성결신학연구소는 그 동안 성결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종합해 왔다. 마침 성결교회역사연구소가 정기 세미나 30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성결교회 신학,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걸고 공개 토론회를 열었기에, 그 내용을 요약하고 나(이신건)의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2. 내용요약

한영태

1. 교단헌법 제12장 13조(교리와 신조)와 신학자들(이명직,이천영, 조종남, 강근환 등)의 가르침, 성결교회의 신앙고백문(83년차?), 역사책들(이명직, 이천영, 교단역사편찬위원회 등)에 의하면 성결교회의 신학적 입장은 웨슬레안 복음주의다.

2. 서울신대의 교육이념과 신조는 성서와 웨슬레 정신에 입각한 복음주의 신학을 구현하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3. 감리교회와의 차이점은 옛날 웨슬레, 초순시대 감리교회의 교리와 정신을 계승하는 데 있으며, 19세기 미국의 성결-부흥운동 또는 성결-부흥운동에 따라 중생과 성결의 체험을 강조하는 열정적 신앙과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운동에 주력하는 데 있다.   

4. 나아갈 방향은 복음주의의 수구성과 폐쇄성은 극복하고 개방에 따른 전통의 희석화와 자유주의를 경계하면서 웨슬레안 복음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웨슬레 정신에 따라 신학 각 분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목창균

1. 성결교회 신학을 정립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부터 아래로 접근하는 것으로서 종교개혁 신학, 알미니안주의, 웨슬리주의, 19세기 성결운동의 맥을 따라 성결교회 신앙체험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 위로 접근하는 것으로서 성결교회의 신앙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결교회 신학 노선으로 올라라는 길이다. 두 방법은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성결교회 신학에 대한 연구는 전자에 치중했지만, 앞으로는 지난 100년의 성결교회 신앙체험과 전통을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2. 성결교회가 뿌리를 두고 있는 신학 노선은 웨슬리 신학 전통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웨슬리는 체계적인 신학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이해와 해석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결교회 신학을 정립하려면, 18세기 웨슬리와 20세기 한국성결교회를 연결하는 19세기 미국 성결운동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3. 성결교회 신학의 정립은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의 자극을 받아들여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작업이어야 한다. 신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옛것을 끄집어내어 정리하거나 반복해서는 안 되고, 성결교회의 전통을 오늘의 상황에서, 또는 현대의 도전 속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박명수

1.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성결교인들의 신앙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교단신학은 엘리트의 신학이 아니라 교단 구성원의 신앙 경험을 기초로 형성되어야 한다.

2. 성결교회의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전통과 부단히 대화해야 한다. 성결교회의 신학은 18세기의 웨슬리운동, 19세기의 미국성결운동, 20세기의 오순절운동과 대화를 해야 한다.

3. 성결교회의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성결운동의 성서해석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신학은 근본적으로 성서에 기초해야 하므로, 성서신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된다.

4. 성결교회의 신학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근대복음주의의 흐름(개인적인 회심, 대중적인 영성, 정교의 분리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5. 성결교회의 신학은 교회를 도그마에 가두어 넣은 개신교 정통주의와 기독교 신학을 도덕으로 전락시킨 자유주의로 흘러서는 안 된다. 양극에 빠지 말고, 신앙의 전통을 수호하면서도 융통성을 잃지 않는 복음주의적인 신학이 되어야 한다.

6. 성결교회의 신학을 수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파라다임을 갖는 것이다. 새로운 정신을 담을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

지형은

1. 어떤 사상적인 체계가 신학이라고 불릴 때, 거기에는 특수성과 보편성이 함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결교회 신학의 특수성은 한국교회 보편적인 신학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

2. 교회, 곧 신앙 공동체는 신학의 모태와 같다. 신학은 교회 공동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3. 성결교회의 신학은 현장 중심적이다. 19세기 성결운동과 19세기의 웨슬리 부흥운동은 모두 현장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임상적 신학을 가지고 있다.

4. 루터는 "기도와 학문과 삶의 체험이 신학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신학은 두 번째 요소(학문)에만 치중되어 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신학, 사역의 임상 현장에서 검증되지 않는 신학 때문에 위기가 왔다.

5. 한국교회의 위기를 넘어서는 길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적인 신학을 세우는 데 있다. 목회의 일선 현장이 신학 작업의 지형에 들어와야 한다. 신학은 잃어버린 지평(현장)을 회복해야 한다.

 

    2. 나의 소견

    생각을 달리하는 학자들이 함께 모여 자신 의견을 솔직히 토로하고 대화하고 토론한 것은 의의가 있는 일이다. 과거에는 한 인물이나 특정한 신학의 영향 아래서 신학대학 안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신학은 이미 정립되어 있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그대로 따르면 될 일이다"라는 입장에 눌려 반문조차 할 수 없었던 과거의 분위기에 비해 상당히 발전된 분위기다. 과거에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엄청난 손해를 입거나 소리도 없이 제거되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결교회의 신학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는 면에서는 공통성이 드러나지만, 성결교회 신학을 정립하는 방법론에서는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한영태

그는 언제나 "오직 웨슬리주의"를 강조한다. 그 근거로서 그는 교단헌법과 신학자들의 가르침, 성결교회의 신앙고백문, 역사책들을 끌어온다. 외적-형식적인 면에서는 그의 입장은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기록된 것만큼 분명한 것은 없고, 지도자들의 언행만큼 무게 있는 것도 없다. 물론 그도 "복음주의의 수구성과 폐쇄성은 극복해야 한다". "웨슬레안 복음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폐쇄주의자로 비치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전통의 희석화와 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전통은 세우기 어렵지만, 허무는 것은 쉽다"는 그의 발언을 통해 우리는 그가 아직도 다분히 전통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문서적으로는 우리의 신학이 "웨슬리 신학 그대로", "초순시대 감리교회의 교리와 정신"에 입각해 있다고 쓰여져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는 것을 그는 인정해야 한다. 즉 웨슬리 신학과 성결교회의 신학 간에는 분명한 발전 혹은 변화가 있다. 이러한 긴장과 모순을 그는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있다. 만약 그가 조문에 충실하길 원한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성결교회의 신학은 오직 웨슬리 신학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렇지 않은 교단의 신학(교리와 신조)과 교단신학자들의 신학은 개정, 아니 추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옳다. 만약 그가 현실을 중시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신학의 발전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새로운 신학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발전은 전통의 희석화만이 아니라 전통의 재해석 혹은 심지어는 전통의 혁파까지 초래한다. 전통을 희석화하거나 자유주의로 빠지지 않으면서 어떻게 신학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그의 활동을 통해 가늠할 수밖에 없겠다. 변덕스러운 상황적 신학자와 현실주의적인 신학자만이 아니라 전통지향적인 학자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단지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 전통을 사랑한다면 웨슬리의 전통보다 더 오래되고 근원적인 성서의 전통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으며, 진정 신학의 발전을 바란다면 전통의 희석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전통의 변화와 새로운 신학도 수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목창균

그는 한영태보다 조금 덜 전통지향적이고 조금 더 미래개방적이다. "앞으로는 지난 100년의 성결교회 신앙체험과 전통을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점에서는 그도 전통지향적이지만, 다른 전통보다 한국성결교회의 전통을 중심에 놓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는 한영태보다 덜 전통지향적이다. 하지만 "웨슬리는 체계적인 신학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이해와 해석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성결교회 신학의 정립은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의 자극을 받아들여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점에서 그는 한영태보다 더 미래개방적이다. 그는 "성결교회의 전통"과 "오늘의 상황"을 함께 고민하는 신학자로 보인다.

인간은 과거와 현대의 대화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한다. 인간 과거를 반추하면서 새로운 미래로 도약한다. 이런 점에서 목창균은 전통에 충실하기보다는 역사의 본질에 충실하다. 즉 그는 가장 가까운 성결교회의 전통을 존중하여 이를 현대적인 도전 앞에 세우려 한다. 성결교회의 신학은 분명히 과거를 앵무새처럼 답습한 신학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 앞에서 주체적으로 응답하는 신학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로 우리 앞의 전통을 중시하면서 - 아니 우리를 낳고 길러온 그런 전통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수밖에 없다 - 이를 토대로 창조적인 신학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성결교회 신학의 재발견과 재해석, 새로운 신학과의 부단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만 우리의 신학은 감리교회의 신학과도 다르고 미국의 성결신학과도 다른 한국성결교회적, 주체적인 신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목창균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성결교회의 신학전통은 짧은 역사처럼 그리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못하다. 우리의 샘에서 충분한 물을 길러 목을 축일 수 있다면, 누가 남의 우물을 엿보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옹달샘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 물로는 우리의 해갈을 넉넉히 해결할 수 없다면, 남의 샘물을 끌어와서 우리의 샘터를 더 넓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우물을 찾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끌어와야 샘물은 무엇인가? 목창균은 아직까지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

는 "성결교회의 신학은 18세기의 웨슬리운동, 19세기의 미국성결운동, 20세기의 오순절운동과 대화를 해야 한다",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성결교인들의 신앙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신학은 근본적으로 성서에 기초해야 하므로 성서신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청된다"고 말하는 점에서 한영태와 목창균보다 훨씬 더 전통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는 아마도 그가 교의학자가 아니라 역사신학자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는 다분히 근대복음주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웨슬리를 강조하는 한영태와 한국성결교회의 전통을 강조하는 목창균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근대복음주의를 우리에게 많이 소개하였고, 이것이 한국성결교회 신학의 직접적인 뿌리가 된다는 것을 여러 각도로 증명해 주었다. 역사의 잃어버린 공백을 메워준 그의 공로를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간의 입장은 때로는 어정쩡한 입장처럼 보인다. 왜 가까운 전통보다 조금 더 먼 전통을 더 사랑해야 하는가? 굳이 과거로 돌아가자면, 차라리 웨슬리나 종교개혁자, 아니 성서로 돌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리고 성결교회의 신학이 근대 복음주의의 흐름을 타고 흘러들어왔다면, 성결교회의 신학이  앞으로 다른 흐름을 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우리는 지금 이미 도도한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성결교회의 신학은 교회를 도그마에 가두어 넣은 개신교 정통주의와 기독교 신학을 도덕으로 전락시킨 자유주의로 흘러서는 안 된다.

양극에 빠지 말고, 신앙의 전통을 수호하면서도 융통성을 잃지 않는 복음주의적인 신학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에서도 우리는 박명수의 어정쩡한 입장을 본다. 양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정확한 중도를 발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니 정확한 중도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라도 하는가? 신학사상은 물과 같아서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신학의 중도는 결코 시소의 중간축이 아니다. 그리고 경직된 도그마주의는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도대체 도그마(교의)가 없는 신학이 어디 있는가? 도그마에 대한 그의 몰이해와 자유주의를 단순히 도덕과 동일시하는 편견은 분명히 시정되어야 한다. 체험이 없는 도그마는 공허한 이론이지만, 도그마가 없는 체험은 위험한 신비주의다.

지형은

그는 현장에서 목회하고 있는 사람답게 상당히 현장중심적이다. 하지만 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입장은 전통으로부터 지지를 끌어낸다. 즉 전통적 신학(예컨대 루터의 신학)은 학문만이 아니라 기도와 현장의 체험을 통해 형성되었고, 성결교회의 신학도 현장 중심적이었다는 것이다. 현장을 무시하는 신학은 결국 교회의 위기를 가져왔고, 그래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넘어서는 길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적인 신학을 세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 비단 신학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은 현장과 무관할 수 없고, 또 무관해서도 안 된다. 현장과 무관한 신학은 "공허한 이론 놀음"에 불과하다는 그의 고언에 신학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를 섬기고 돕는 신학의 기능은 시급히 회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성결교회의 신학이나 그 발전, 아니 도그마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성서와 현장을 연결하는 데만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오늘날의 목회 현장에서는 교단의 특수성 혹은 교단의 차별성은 상당히 약화되어 있으며, 교리 혹은 조직신학의 유용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왜 자신이 굳이 성결교회의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으며, 왜 성도들이 굳이 성결교회에 속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을까? "칼빈주의적인 성서해석이라도 성도들을 감명시키면 된다"는 그의 입장(토론 중에서 그가 한 말)은 상당히 포용적이다. 아니 어쩌면 그가 상당히 성서중심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성서와 현장을 연결하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현장중심주의는 교단의 신학과 교리는 물론이고 때로는 성서마저도 왜곡할 위험이 있지 않을까? 현장을 잃어버린 신학이 공허한 이론 놀음이라면, 현장에 끌려가는 목회는 위험한 숫자놀음(교회성장주의)이 아닐까? 비록 성서를 보는 안경을 자주 바꾸는 경우가 발생하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인간은 성서를 보기 위해 어떤 교리와 교파의 안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교회를 위한 신학의 필연성(토대와 뼈대)은 물론이고 그 유용성(안경)도 충분히 강조해야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