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논쟁

교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pauline_syk님의 글 "기장성과 성결성"이 활천에 게재된 이후로 활천성결광장에서 전개된 논쟁의 내용입니다.

 

 

  1.pauline_syk: 기장성과 성결성

  2.전성용: 기장성과 성결성에 대하여

  3.pauline_syk: 전성용 교수의 논지에 대한 반론

  3.popcorn: 폴님과 전성용 교수님의 토론에 부쳐

 

 

기장성과 성결성

pauline_syk

 

성결신문에 보면, 기장은 희년대회를 기점으로 진보교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선교의 사명을 다짐하는 희년선포문을 발표했는데, 선포문에 따르면 생명공동체 구현, 생명문화로의 전환, 하나의 교회로의 고백, 교회갱신, 남녀평등 등이 주된 과제로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선포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소위 기장의 어김없는 기장성(基長性)이다. 기장성은 종교를 지나치게 피안적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 차안적인 현실을 중시하는 신학적인 감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 일반에 상생과 평등,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실현하는 교회 공동체의 비전을 실현하자는 희년의 깊은 의미를, 우리로서는 보충하며 배워야 할 것이다. 보충하자는 것은 우리 교단이 등한시하고 있는 현실적인 감각을 우리 것에도 채우자는 것이요, 배우자는 것은 기장의 기장성이 자신들의 것으로 배달되듯, 우리 교단도 두 번째 희년을 맞이하며 성결성 회복의 실현에 무게를 두어 성결성을 내놓을 만한 승격된 신학적 품질로 다듬자는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신학적 상품화 작업 중에 “하나님 나라와 정의”를 성결의 시각으로 접근한 여름행사의 주제는 ‘성결성’에 관한 해석적 지평을 넓히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성결을 내부 심령의 영역에서 이제는 역사 일반화의 영역으로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그 어떤 교단도 역사 현실을 외면하고는 그 생명이 길게 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 교단의 성결성도 결코 비역사화시켜서는 안되며, 한국 역사와 함께 숨을 쉬고, 한국 역사와 함께 춤을 추다가, 한국 역사 속에 파묻힐 각오로 나아가야 한다.

희년을 두 번 맞는 우리 교단으로서는, 이제 한국 역사와 함께 가는 교단,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교단,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교단으로의 위상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활천 2003년 8월호>

 

기장성과 성결성에 대하여


     
 전성용 교수
서울신학대학교(조직신학)

 

활천 8월호 활천광장에 실린 pauline_syk 님의 “기장성과 성결성”을 읽고 몇마디 논평하고자 한다.

이 글은 기장 희년대회에서 발표된 선포문의 내용을 요약하였는데 생명공동체 구현, 생명문화로의 전환, 하나의 교회로의 고백, 교회갱신, 남녀평등 등의 과제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 글은 이 선언문의 내용이 기장성의 전형으로서 피안적인 종교가 아니라 차안적 현실적 종교로서의 교회의 비전을 제시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더 나아가서 이 글에서는 성결교회의 성결성이 비역사적이거나 내부심령적인 영역에서 역사 일반화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교단으로서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첫째로, 나는 기장성은 현실적이고 역사적이며 성결성은 비현실적, 비역사적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반대한다. 1960년대까지 한국교회의 케리그마는 “예수천당”이라는 구호로 요약되며 그것은 비현실적, 비역사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케리그마는 “축복과 신유”라고 하는 현실주의적이고 현세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장을 중심으로 한 민중신학계열에서는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선포하였는데 그것 역시 현실적인 케리그마였다. 즉 70년대 이후 보수적인 교회나 진보적인 진영이나 둘 다 현실주의였으며 다만 보수교회의 현실은 개인적인 삶의 현실이고 진보진영의 현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현실이라고 하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둘째로, 개인적인 현실과 사회적인 현실은 양자택일(either, or)을 해야 하는 모순대립의 관계에 있지 않다. 이 둘은 양자긍정(both, and)의 관계로 보고 상호보완해야 할 것이지 “성결을 내부심령의 영역에서 이제는 역사일반화의 영역으로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뿌리를 잃어 버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옛사람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예수님도 옛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고 온전케 하고자 하였다. 성결교회가 그 성장이 정체상태에 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잃어버리고 남의 흉내를 내거나 지금까지 사회정의문제에 침묵했다고 해서 전통을 버리고 사회운동으로 달려간다고 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결코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셋째로, 성결성은 성령세례의 결과이지 도덕적인 수련의 결과가 아니다. 거룩한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우리는 성결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 성결한 삶을 살려고 다짐하고, 노력하고, 훈련하다고 해서 성결해지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7:17절에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디모데전서 4: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학적인 캠페인이나 선전으로 또는 사회적인 이슈에 참여함으로 성결하여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과 기도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문제는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있다.

넷째로, 우리는 웨슬리안 복음주의의 전통 위에서 우리의 신학적인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명직, 이성봉, 조종남, 정진경 등 훌륭한 선배 스승들이 있다. 지금도 목회 일선에서 별같이 빛나는 모델들이 있으며 앞으로도 숨은 보화들을 캐내어 교단의 보배로서 길러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자산을 소중히 여기고 갈고 닦아서 21세기에 더욱더 빛나는 교단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사회문제는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발언함으로써 그 동안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참여 문제는 우리의 전통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는 교단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성결교회 신학정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단 100주년을 맞이하여 100만 성도 운동을 통해서 교단이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결한 열매를 맺는 교단이 되어가는 것도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기장성은 기장성이고 성결성은 성결성이다.

<활천 2003년 9월호>

 

전성용 교수의 논지에 대한 반론

pauline_syk

 

활천 9월호에 등재된 "기장성과 성결성"이란 졸고에 관심과 논평을 아끼지 않으신 전성용 교수님께 먼저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 교수님의 논평은 성결교단 정체성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동반되는 "신학적" 논쟁의 담론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활천 애독자들이 존람하는 가운데 함께 필연적이고 포괄적인 변화를 모색해 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전 교수님께서는 "기장성은 현실적이고 역사적이며 성결성은 비현실적, 비역사적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반대한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한국교회의 케리그마를 1960년대까지와 1970년대 이후를 이분법적 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장성과 성결성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전형적인 신학적 색채를 대표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이분법적 도식이 가능하지만, 한국교회의 케리그마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양분된다는 이분법적인 도표화는 심각한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history)에 있어서 '사실'(fact)은 항상 '해석'(interpretation)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전 교수님의 방법과 같이, 통시적인(通時的-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관점에서 신앙의 패러다임을 시대별로 구분하는 변화과정과 '변천(變遷)'을 밝혀내는 일 외에도, 어떤 특별한 역사적인 중요한 시기나 또는 사회생활의 횡단면을 부여하는 전형적인 순간의 사회현실에 대해서 공시적(公時的-동일한 시간 안에서의 변화) 접근의 '변동(變動)'도 반드시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교수님의 주장은 "1960년대까지 한국교회의 케리그마는 [예수 천당]이라는 구호로 요약되며 그것은 비현실적, 비역사적인것"이고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케리그마는 [축복과 신유]라고 하는 현실주의적이고 현세적인 것으로 비취었다"라는 역사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960년대까지 한국교회의 케리그마가 [예수 천당]이라는 구호로 요약되며 그것은 비현실적, 비역사적인것"이라는 전 교수님의 역사해석이 과연 어떠한 오류를 나타내고 있는가?

한국역사 속의 기독교가 가장 현실적이고 역사감각을 지닌 시기는 오히려 197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국교회와 민족운동은 대부분이 1970년대 이전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개화운동을 전개하던 개화기의 새로운 정치문화운동의 개신교 80년은 곧 한국 근대 80년이 지닌 역사적 도정을 그대로 함께 밟아옴으로써, 일본의 침략, 식민지 정책 수행, 해방 20년의 사회적 혼란속에서 기독교정신이야말로 한국인에게 민족적 자의식을 함양시킨 기간이었다. 기독교를 전하기 위한 성서번역의 문화운동, 독립협회와 민권운동, 갑신정변, 찬미가를 통한 애국심 고취, 항일투쟁의 3.1 운동, 기독교청년의 활동, 소년운동, 스포츠의 장려, 농촌지도 계발, 물산장려, 국제적인 연결, 기독교학교의 설립 등을 통해 기독교는 현실적이고 역사적이었으며, 민족을 위한 교회로서 민족의 구원을 위한 출발 기간이었던 것이다. 1907년의 대부흥운동도 1905년 민족적 위기와 망국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한국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기도운동으로, 그 배경은 현실적, 역사적인 것임을 부인할수 없다.

전 교수님의 주장인 "축복과 신유"를 현실주의적, 현세적인 케리그마로 보면서 동시에 "민주화와 사회정의"도 현실적인 케리그마로 동등 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은 "현실"이란 개념구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장성의 "현실:이 역사의식을 동반한 현실참여적 사회구원을 주장하는 신학적 성향이라면, 성결성의 "현실"은 역사의식없는 개인구원을 주장하는 신학적 성향임을 해석하는 신학의 해석학적 지평과 해석자의 지평이 융합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따라서 "보수 교회의 개인적인 삶의 현실"과 진보진영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현실:은 같은 현실이지만, 그 해석적 지평을 달리하는 현실이요, 신학적 구원론에서 현저한 차이가 전제되어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기장성은 현실적이고 역사적이며 성결성은 비현실적 비역사적인 것이다.

둘째, 전 교수님께서는 "성결을 내부심령의 영역에서 이제는 역사일반화의 영역으로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필자의 논지를 오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옛율법을 페하듯 "성결성"을 폐하거나 전면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요, 역사 일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결성"이 되도록 현실적인 감각을 우리 것에 채우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긍정적인 실례로 한국성결교회연합회 여름성경학교 공동교재의 주제였던 "하나님 나라와 정의"가 성결의 시각으로 접근한 매우 의미있는 시도였음을 밝힌 바 있다. 그 주제해설에 보면,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거룩"의 개념이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며, 여기서 강조하는 거룩은 우리가 흔히 잘못 이해하듯이 추상적이거나 피안적인 신비한 내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구현되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공)의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제시함으로써, 거룩(성결)이 추상적이거나 피안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구현되는 차안적 현실에서 실현해야 할 개념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바로 필자가 주장한 "성결을 내부심령의 영역에서 이제는 역사일반화의 영역으로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이 전 교수님의 말대로 어리석은 발상이라면 전 교수님이야말로 지난 여름성경학교의 전반적인 성서교육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어리석은 발상의 장본인으로, 모처럼 "성결성"을 우리 현실에 접목시키려는 자기-극복의 시도를 무참히 짓밟는 반교단 정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학대학 강단의 가르침과 교단의 가르침이 일관성이 없다면, 이는 서울신학대학의 학문성과 교수지침에 분명 큰 문제가 있는 것이며, 교회를 위한 신학이 아니라 신학을 위한 신학을 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적어도 교단신학의 교수라면 교단교육의 흐름 정도는 간파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셋째, 전 교수님의 독선적 주장은 이 항목에서도 계속된다. 필자는 성결성을 "도덕적인 수련의 결과"라든가 "다짐하고, 노력하고, 훈련하자"는 논지를 편 적이 없다. 성결성을 성취하는 방법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성결성"이 개인구원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요, 사회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차안적인 현실을 중시하자는 요지였다. 여름성경학교 공동교재의 주제해설에 의하면 [레위기의 일관된 주제가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공(의)"이며, 특히 거룩에 대한 명령은 레위기 17-27장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레위기 19장은 "거룩하라"라는 명령으로 시작하여 거룩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레위기 19장은 십계명에 대한 적용을 포함하여 가난한 자의 구제, 도적질하지 말라,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에 이어,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 에바, 힌의 사용을 강조함으로 끝난다... 중략...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거룩하므로 이스라엘도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전할 것을 요구한다(레 11:45; 20:26; 19장)]고 설명함으로써, 인간들이 "다짐하고, 노력하고, 훈련하는" 도덕적, 윤리적 결단을 전혀 배제시키지 않고 있다. 성령세례의 결과로 오는 성결성이라 할지라도, 그 성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찌 인간의 노력 자체를 부인할수 있는가? 사도 바울이 자신의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고백한 것은, 성결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과 노력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넷째로, 전 교수님은 "웨슬리안 복음주의의 전통 위에서 우리의 신학적인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웨슬리 신학에 대해 통전적인 전망으로 접근해야 할 성격의 것이다. 웨슬리는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종교이며, 따라서 이 기독교를 고립된 종교로 만들 때 기독교는 파괴되고 만다"( Wesley, Sermons 2, 382)고 말함으로써 기독교를 사회에서 분리시키려는 시도를 비판했으며, 또한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인 종교 외에 다른 종교를 알지 못하고, 사회적인 성결 외에 다른 성결을 알지 못한다"(The Political Works of John & Charles Wesley, Vol 1, Wesleyan Methodist Conference Office, 1868, p. XXII)고 말함으로써, 웨슬리의 성화의 교리는 이같이 사회적인 개념과 아울러 사회개혁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웨슬리가 구원론을 칭의에서 끝내지 않고 성화에까지 강조함으로써, 18C 부패한 영국사회를 구원하는 큰 변혁을 가져온 것은, 이같이 기독교를 사회적인 종교로 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회적인 성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 교수님께서는 "우리에게는 이명직, 이성봉, 조종남, 정진경" 등 훌륭한 선배 스승들이 있다는 주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지만, 그 "훌륭함"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입증할 만한 적절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들 중에는 고난의 역사를 지닌 한국역사 속에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웨슬리 앞에서 부끄럽고, 역사 앞에서 부끄러운 행위를 한 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활천 1940년 2월호에 실린 L사부님의 글 "八紘一宇의 大理想"은 신앙양심을 속인 치욕적인 언사이며, 군사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청와대의 조찬기도회에서 그들을 축도한 J목사 역시 훌륭함을 앞세우기 이전에 비난을 면키 어려운 치욕의 역사로 남아 있다. C목사가 참여한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 국제대회'에서 발표된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과 1989년 같은 목적으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 세계복음화 국제대회'에서 발표된 '마닐라 선언문', 그리고 1977년 시카고 근처에서 복음주의의 소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던 45명의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에 발표된 '시카고 성명'은 모두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전 교수님은 "기장성은 기장성이고 성결성은 성결성이다"라는 결론을 맺고 있는데, 이것은 스스로 자기논리를 뒤집는 주장이다. 전 교수님은 앞서 "기장성과 성결성의 이분법적 현실을 반대" 했을뿐만 아니라 분명 "개인적인 현실과 사회적인 현실이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긍정의 관계로 보고 상호보완해야 할 것"으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장성은 기장성이고 성결성은 성결성"이라는 압축된 논리로 상호보완의 여지를 차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교단이든, 자기중심적인 편견은 "신학적 상대성"(theological relativity)을 통해 극복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자기신학을 버리면서까지 남의 신학만 맹목적으로 용납하라는 주장은 아닌 것이다. 보수와 진보,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논쟁은 이미 종지부를 찍은지 오래 된 논쟁이다. 왜냐하면 그 어느 하나도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성결교회의 성결성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을 때, 그 성결성이 개인도 구원하고 사회도 구원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성결성과 기장성으로 대표되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신학은 끊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연결고리이다. 왜냐하면 성결성없는 기장성이 하나님께 버림 받는다면, 기장성없는 성결성은 역사에 버림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결광장의 토론마당>

 

폴님과 전성용 교수님의 토론에 부쳐

popcorn

 

폴님의 발제는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우리 교단도 기장의 기장성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감각을 "보충해 보자는 것"과 둘째, 기장의 기장성 회복과 같은 우리교단의 "성결성 회복"을 추구해 보자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주장은 사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폴님이 생각하는 성결성의 회복이 다름아닌 현실참여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님의 주장은 따라서, "현실참여를 통한 성결성의 회복"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전성용교수님의 반론은, 우선 폴님의 논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조금 성급한 비판이었다고 본다.

첫째, 폴님은 전교수님의 분석과 같이, "성결성"을 비현실적,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폄하하지 않았다. 폴님은 이미 현실참여를 전제하고 있는 성결성을 단지 "회복하자고" 주장한 것일 뿐이다. 둘째, 폴님은 또한 개인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을 양자택일의 것으로도 주장하지 않았다. 폴님의 "보충하자는" 주장은 전교수님의 "양자긍정"과 전혀 다른 방법론이 아니다. 셋째, 폴님은 현실참여나 도덕적인 수련으로 "성결해진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폴님이 만일, 성결성의 회복을 위해 "먼저" 현실참여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비로소 전교수님의 반론,"말씀과 성령과 기도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폴님의 글 어디에도, 현실참여가 성결을 이루기 위한 "최우선"의 조건임을 내세운 곳은 없다.

그 이외에도 다른 두 가지 논점이 더 있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각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첫째, 지난 60, 70년대의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평가하고 해석하느냐의 문제와 둘째, 우리 교단 선배들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그것인데, 이는 사실상 본 토론의 논지에서 조금은 비껴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음의 두 가지 주제에 대한 두 분의 견해는 한번 되새겨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토론의 주된 논지가 "현실참여"에 있는 까닭에, 두 분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사못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전교수님의 조금 색다른 견해, 즉 현실의 의미를 사회참여에만 국한시켜왔던 전통적인 견해에 반하여, "축복과 신유"의 현실도 과감하게 "현실의 지평"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전교수님의 시도는 과연 신학자다운 착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회참여의 대의 앞에 어쩌면 속으로만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개인의 현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논의가, "현실" 혹은 "실재"(Re)의 의미를 차안에서 찾느냐 아니면 피안에서 찾느냐의 오래된 철학적 논의와 맞물려있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둘째, 성결의 방법론에 대해 어쩌면 두 분은, 사회참여 등을 통한 "점진적"인 방법과 성령세례를 통한 "순간적인" 방법 사이의 오래된 신학적 논쟁을 의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역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종합해 보건대, 두 분은 오히려 많은 부분에 있어 서로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분 공히, "온전한 성결성의 회복"을 위해 개인과 사회의 현실 모두를 고려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 회복의 움직임이 그동안 우리가 등한시 해왔던 사회의 현실에 주목하고자 할 때, 전교수님은 혹여 개인의 현실이 무시되거나 오히려 역차별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교수님의 그러한 염려는, "그러나 사회참여 문제는 우리의 전통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는 그의 결론 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

끝으로 한가지, 폴님의 주장에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또한 불편한 것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전교수님의 반론은 상당 부분 "텍스트읽기"에서부터 실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토론이나 논의 중에 결코 사용해서는 안될 표현들을 그렇게 거침없이 내뱉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아무리 자신의 논지가 오해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을 차분히 논박하기에 앞서, 감정에 치우진 언사들을 늘어 놓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니었다. 혹여 그러한 표현들이 전교수님의 이곳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약올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기를 마음 가득히 빌어 본다.

<성결광장의 토론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