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결(성별회)과 영성훈련

 

 

성결교회는 성결의 복음을 전파하고 모든 신자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고 성결한 삶을 살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창립되었다. 이것이 성결교회의 정체성이다.

그 동안 성결교회는 이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해왔다. 특히 초기부터 훌륭한 영성훈련의 전통을 지니고 있었는데, ‘성별회’가 그것이다. 성별회는 성결의 교리를 명백히 가르치고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여 성결의 복음을 확대 보급하고자 성결교회가 주관했던 특별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약화되어 6.25 이후에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성결교회도 그 때를 기점으로 성결을 강조하는 일을 점점 더 소홀히 해왔고 지금은 그 정체성의 위기까지 맞고 있다.

그렇다면 성별회와 성결교회의 정체성 확립과는 어떤 상관성이 있지 않을까?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성결교회는 이제 성별회를 재흥시켜 그 정체성 회복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본 글은 성결교회의 사명을 자각하고 성결의 복음을 널리 전하여 성결의 은혜를 확산시키고, 모든 성도들이 성결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12회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특기할 것은 영성훈련의 이론을 성결론의 입장에서 선별 채택, 정리하여 성결의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한 방법에 접목시켜 성결지향 영성훈련을 위해 집필한 점이다. 그러므로 이 방안은 영성훈련의 옷을 입힌 현대적 성별회의 성격을 가지며 목회 현장과 교역자들의 모임에서 검증을 거쳐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효율성 또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론과 실제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제시된 제안과 준수사항을 철저하게 지키며 영성훈련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

1. 영성과 성결

영성(Spirituality)이란 말은 오늘날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러 종교에서, 문화, 이념, 철학, 세계관에서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개인의 위대한 정신을 후대 사람들이 계승하려고 할 때도 ‘영성’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럴 경우 영성은 사람이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사상이나 정신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 사상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성은, 우리의 인생이 무엇과 같을 때 가장 이상적이 될 것인가, 또는 인간의 최고의 덕과 가치와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관이 있다.

기독교 영성은 그런 면에서는 일반 영성과 같은 정의를 내릴 수 있으나 그 지향하는 목표와, 추구하는 덕과 가치가 일반 영성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특수성을 지니며 독특한 성격과 의미를 가진다. 물론 기독교 영성도 역사상에 실제로 사셨던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서 일반 영성과 같은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간으로 죽으셨을 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성도들에게 찾아오셔서 관계를 맺으시고, 살아 계신 인격자로서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고 계시다는 점에서 일반 영성을 뛰어넘는 독특한 요소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본받아 구체적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이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전제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만나는 체험을 하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구체적으로 역사현장에서 살아가게 하는 역동성은 성령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삼위일체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삼위일체적 영성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은 신자가 성령을 통하여 체험한 신령한 능력을 가지고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제자의 삶이다.

삼위일체적 영성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래에 적어보라.


성결이란 중생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자가 성령세례를 받고 정결해진 심령의 능력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제자의 삶이다(성결에 대해서는 뒤에 더 논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삼위일체적 영성은 바로 성결이다. 물론 저급한 영성이 있고 높은 차원의 영성이 있을 수 있다. 성결은 높은 차원의 영성이다. 영성훈련은 저급한 영성을 높은 차원의 영성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영성훈련은 성결을 지향해야 이상적이다.

스데반의 삶을 묵상해 보자

행 7:54-60

스데반은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우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였다. 스데반의 영성은 높은 차원의 삼위일체적 영성이요 성결을 체험한 자의 성결한 삶이었다. 스데반의 영성은 성결영성이었다.

영성의 3대 요소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고전 13:13

① 

믿음, 소망, 사랑은 기독교 영성의 3대 요소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성령이 주시는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 영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약한 믿음, 나약한 소망, 나약한 사랑을 소유한 영성이 있다. 그런 영성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영성이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 더 좋은 소망, 온전한 사랑을 소유한 영성이 있다. 이러한 영성은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영성훈련은 낮은 수준의 믿음, 소망, 사랑을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작업이다. 영성훈련을 통해서 얻은 높은 수준의 믿음, 소망, 사랑 즉 온전한 믿음(히 10:22), 더 좋은 소망(히 7:19), 온전한 사랑(요일 4:12,17)은 성결의 은혜를 받은 자의 믿음, 소망, 사랑이다. 높은 수준의 기독교 영성은 곧 성결이다.

온전한 믿음, 더 좋은 소망, 온전한 사랑에 대해서 묵상해보자.

2. 성결지향 영성훈련

훈련(Discipline)이란 말은 가르침을 뜻하는 라틴어 ‘디시프리나’(disciplina)에서 유래되었고 ‘제자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성훈련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제자로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훈련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결한 자 되어 성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훈련이다. 이 일은 성령이 역사하고 인간이 참여함으로 이루어진다.

성결은 은혜로 얻는다.

다음 성경을 기록하여 상고해보자.

고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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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은 인간이 참여함으로 이루는 은혜이다.

다음 성경을 기록하여 상고해보자.

고후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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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훈련이란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마련하여 드리는 장(場)이다. 성령은 인간을 거듭나게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성결하게도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역사의 현장에서 죄와 사탄의 권세를 멸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능력을 준다. 즉 그리스도인의 생명과 인격을 성장시키고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한다. 영성훈련은 성령께서 이와 같은 사역을 하시도록 마련해 드리는 장이다. 웨슬리는 구원의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구원의 전 과정은 죄인을 깨우치고 회개케 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할뿐 아니라 성결케 하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

행 2:1-4 을 읽으라. 누가 역사하시는 장이었는가.

영성훈련은 인간이 참여하는 책임 이행의 활동이다. 의(義)는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나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의가 하나님의 선물로만 주어지고 인간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진다면 도덕 무용론에 빠진다. 반대로 인간의 행위와 책임만 강조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되지 않는다면 도덕주의, 공적주의에 빠진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참여,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일이 영성훈련이다. 이는 로마카톨릭교회의 견해나 칼빈주의와는 다른 요한 웨슬리의 입장이다.

행 1:14-16을 읽으라.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 제자들이 참여한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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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훈련은 성결을 이루시는 성령의 사역에 인간이 참여하는 활동이다. 이 참여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훈련 또한 은혜이다.

※ 제시된 질문에 대한 응답

① 믿음, 소망, 사랑

② 성령

③ 마음을 같이하여, 모여, 기도하며, 말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