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결지향 영성훈련

 

성결은 의도된 영성훈련을 통하여 이룰 수 있다. 성결교회 초기 성별회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고, 성결의 삶을 살게 하고 성결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특별히 가졌던 의도된 모임이었으나, 6.25 이후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의도된 영성훈련은 현대적 성별회의 성격을 가진다. 성결을 이루기 위해 실시했으면 하는 영성훈련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영성훈련의 전통적 주제

영성훈련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특징을 지닌 주제로 실시되어 왔다. 고대는 명상과 기도가, 중세는 성례전적 수련이, 종교개혁 이후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강조되었고, 현대는 성령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하여 네 가지 주제는 영성훈련의 전통적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네 가지 주제는 어느 하나만 강조될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조화롭게 영성훈련을 이루어야 성결에 이르는 데 이상적이다.

1) 명상과 기도

고대교회는 영성훈련의 주제로 명상과 기도가 강조되었다. 이는 성서에 근거를 두고 사도들을 통해 계승되어 온 전통이다. 명상과 기도는 다르다. 명상은 기도의 문이며 기도는 명상을 통하여 더욱 깊어질 수 있다.

2) 성례전과 수련

중세 로마카톨릭교회의 영성훈련은 성례전적 수련이 그 특징이었다. 카톨릭교회는 신자가 세례를 통하여 새 생명을 얻고 성찬을 통하여 점점 성장하여 기독자의 완전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성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결합하게 하므로 고난이 요구된다. 그리하여 고난, 고행, 수련을 성례에 포함시켰다. 여기에서 중세 카톨릭교회는 고행주의 공적주의에 빠졌다. 개신교회는 성례전을 수련과 별도로 봄으로써 카톨릭의 고행주의, 공적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성례전과 수련을 영성훈련의 주제로 채택한 것이다.

3) 말씀

개혁자들은 로마카톨릭의 교황 절대권과 행동주의에 항거하고 성서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Sola Scriptula)을 내세웠다. 개혁자들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강조는 개신교의 영성훈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루터는 “말씀만 있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영혼은 행동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에서 영혼은 어떤 도움과 은혜도 입을 수 없다. 그러나 말씀만 가진다면 영혼은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말씀은 생명, 진리, 빛, 평화, 의, 구원, 기쁨, 자유, 지혜, 능력, 은총, 영광,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다.

4) 성령

말씀을 강조하면서 출발한 개혁주의는 성령을 말함에 소홀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성서관이 기록된 문자에 치우친 나머지 성서 안에서 또는 성서를 통하여 사역하는 성령을 중요시할 필요을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경건주의가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을 강조하며 등장하였고, 그 뒤를 이어 요한 웨슬리는 성령운동을 성결운동과 함께 일으켰다. 그의 성령운동은 개신교 성령운동의 도관에 불을 붙였고, 영성훈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령은 영성훈련에서 절대적 주역이기 때문이다.

 

2. 영성훈련의 장

기독교 영성훈련은 골방기도, 친교, 공동체 참여, 사회봉사를 통해서 시행된다. 그러므로 골방, 친교, 공동체 참여, 사회봉사는 영성훈련의 장이다. 이상 네 가지 영역은 네 개의 바퀴와 같아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나가야 이상적이다. 네 영역은 성령이 성결을 이루시도록 마련하여 드리는 장이요 인간이 참여하는 장이다.

1) 골방기도

예수님은 외식하는 기도를 경계하면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고 말씀하셨다. 골방훈련은 세상 쪽으로 난 문을 닫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훈련이다. 이것은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앙훈련을 의미한다.

2) 성도의 교제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이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주의 사랑으로 교제하는 훈련까지를 일컫는다. 골방훈련을 통해서 내면적 차원의 삶이 변화된 사람은 대인관계를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올바른 골방훈련은 성도의 교제를 가능케 하고 성도의 교제는 올바른 골방훈련을 전제로 한다. 성도들은 교제를 통하여 신앙생활의 감격과 기쁨을 체험하며 서로가 자극과 격려를 받아 공동훈련과 봉사의 훈련에 힘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의 교제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역사의 장이기도 한다.

3) 공동체 참여

공동체 참여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장이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서는 행위이다. 골방훈련은 개인의 영성훈련으로서 개인이 하나님 앞에 서는 훈련이며, 성도의 교제가 인격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소수집단이 나눔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훈련이라고 한다면 공동체 훈련은 다수의 성도 전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공동으로 서는 훈련이다.

4) 사회봉사

영성훈련의 네번째 바퀴는 사회봉사이다. 이 바퀴는 다른 세 바퀴의 훈련을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며 세상을 봉사하는 가운데서 그들 속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훈련이다. 물론 영성훈련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국한시키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서는 훈련만을 영성훈련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개인주의적 신비주의 신앙 경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의 입장에서 볼 때 수용될 수 없는 견해이다. 영성훈련은 개인주의적 신비체험에서 출발할 수 있으나 그것이 영성훈련의 전부는 될 수 없다. 기독교 영성은 개인적, 대인관계적, 사회적 차원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이 세 가지 차원을 다 포함하는 전인적인 구원을 이루신다.

 

3. 영성훈련의 3대 요소

믿음, 사랑, 소망은 영성훈련의 3대 요소이다. 이 세 가지는 성결을 이루게 하는 기본 요소이면서 성결한 삶을 살게 하는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1) 믿음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골방에 들어가게 하고, 공동체로 모이게 하여 성결을 향해 나아가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한다. 성결한 자는 그 믿음 가지고 다시 골방에 들어가고, 공동체에 참여함으로 성결한 삶을 산다. 그리하여 요한 웨슬리는 신앙을 ‘신앙의 분명한 확신’(clear assurance of faith)과 신앙의 ‘충만한 확신’(full assurance of faith)으로 나누었다. 이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 이전과 이후의 믿음을 구분하는 견해이다.

2) 사랑

성도의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을 받은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인간을 또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은 첫째요 이웃을 사랑해야 함은 그 다음이다. 이 두 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37-40). 이웃사랑은 이웃과 친교하게 하고 성결의 은혜에로 신자를 인도한다. 사랑은 성결 전후로 나눈다. 성결 전의 사랑은 아직 미완성의 사랑이요 성결을 이룬 후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성결과 완전한 사랑을 동일시하였다.

3) 소망

예수 그리스도는 미래의 시간과 사회의 공간에서 문을 열어놓고 신자가 역사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미래를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역사와 사회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면 신자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와 사회의 현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소망은 지극히 작은 자까지 찾아가 그를 만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결의 은혜에 도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