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결지향적 영성훈련 총화의 장

 

 

성결교회 초기에 성결의 은혜를 받기 위해 특별히 모였던 집회가 있었다. 이른바 성별회였다. 이 모임은 보통 집회 혹은 예배와 그 성격이 달랐다. 성별회는 성결의 교리를 명백히 설교하고, 체험한 성결의 은혜를 간증하는 집회였다. 그러므로 성별회는 아무나 인도할 수 없었다. 성결의 은혜를 경험한 목사라야 했고 참석대상은 중생의 은혜를 체험한 자로서 특히 성결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자들로 정하였다. 이 성별회는 무교정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매주일 오후마다 서울시내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는 신자들이 회원제로 모였고, 나중에는 그 성과의 여세를 몰아 성서학원에서 개최된 심령 수양회, 순회 장막전도 집회시에도 가졌다. 특히 순회 장막집회 시에는 미신자를 위한 구령회와 성결의 은혜를 받기 원하는 신자들의 성별회로 따로 나누어 진행하였는데 매집회마다 성결의 은혜를 체험한 자들을 숫자상으로 파악하여 체험을 통해 성결의 은혜를 받은 자들을 확인하였다.

성별회의 성과는 상당히 컸던 것 같다. 왓슨(G.D. Watson)은 성별회의 성과를 말하면서 성별회를 통한 성결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성결을 성대히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은 특별한 집회를 개최한 까닭이니... 장래에도 성결을 보급하려면 서적이나 설교나 어떤 집회보다 특별한 방법 즉 성별회를 통한 성결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성별회는 교단 해산과 더불어 잠시 중단되었다가 해방과 더불어 재흥되었고 6.25까지 계속되다가 사라졌다. 성별회는 오늘날로 말하면 성결지향적 영성훈련의 의미를 가진다. 성결지향적 영성훈련은 오늘의 옷으로 갈아입은 성별회의 성격을 가진다.

회개의 장 --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

회개하지 않고 거듭날 수 없듯이, 회개하지 않고 성결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거듭남을 위해서는 행위의 죄를 회개해야 하지만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내재적인 죄를 회개해야 한다. 이사야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 전 입술이 부정한 것을 회개했다. 이사야는 내재적인 죄, 인간의 악성, 원죄까지를 회개한 것이다. 말에 온전치 못함까지를 회개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씻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문 1)

롬 5:15-19, 히 9:12, 히 2:9,17

2. 속죄라는 단어가 구약에서는 무슨 뜻으로 사용되었는가? (문 2)

시 65:3, 단 9:24, 시 79:9

3. 우리가 어떠한 사람들이었는가 ?

사 53: 6

누가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는가 ?

사 53:6

이 사실을 믿는가, 묵상해보자.

  3.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 (문 3)
요일 1:8-9, 시 32:1-5

  찰스 피니는 “진정한 회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죄에 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1) 죄의 본질에 대해 회개하기 전에는 호감이 가고 매혹적인 것이라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지극히 추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이게 되어야 한다.

2) 죄의 본성에 대해 하나님이 왜 죄에 대해 그렇게 끔찍한 징벌을 내리시는지 전에는 그 이유를 몰랐으나 이제는 그것을 마땅한 것으로 깨닫게 된다.

3) 죄의 성향에 대해 영원한 죽음을 받을 만하다고 시인한다.

4) 죄의 결과에 관해 영원한 죽음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낀다.

2. 진정한 회개는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죄를 증오하고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라 생각할 뿐 아니라 실제로 죄를 싫어하고 죄를 진정 미워한다.

진정한 회개의 행위와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우리 마음속에 죄에 대한 견해와 감정에 의식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2) 죄를 되풀이하는 경향이 사라진다.

3) 행동의 변화를 일으킨다.

4) 고백과 동시에 범죄한 일에 대해 배상한다.

5) 성격과 행동이 영원히 변화하게 된다.

3. 거짓된 회개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2) 자기 죄로 자신이 불행케 되거나, 하나님 진노를 두려워하여, 또는 가족 친구들이 상하게 되니, 자신이 현세와 내세에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 회개하노라는 이기심의 발로에 의한 회개는 일시적 후회에 지나지 않는다. 두려워 떨기는 하나 그 심중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 혐오하는 마음이 없고, 죄가 무한한 악이라는 생각도 없고 그런 확신을 따라 생활하려는 마음이 없다.

4. 위선적 회개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죄에 대한 감정이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2) 거짓된 회개는 사망을 초래한다.

3) 거짓된 회개는 그 행동이 부분적으로 변화한다.

4) 거짓된 근심에서 나온 변화는 일시적이어서 옛 상태로 되돌아간다.

5) 거짓된 회개가 낳은 변화는 마지못해 행한 변화이다.

6) 위선적 회개는 독선을 낳는다.

7) 거짓된 안전을 기대하게 한다.

8) 거짓된 회개는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

9) 양심을 마비시킨다.

10) 소망의 근거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다.

11) 거짓된 회개는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다.

이제는 십자가를 지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십자가를 지는 일은 자기를 부인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해 내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를 져내지 못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 정욕과 욕망을 함께 못박는다(갈 5:24).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힌다. 세상 일 일체에 대하여 완전히 죽어야 한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속에 아버지의 사랑이 없다 하셨다(요일 2:15,16).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고 달리신 절정이 십자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 속죄 사업의 완성이 십자가였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다. 십자가를 빼놓으면 기독교는 없어지고 만다.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택해야 한다. 이 십자가는 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기독신자들은 날마다 몸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로 가야 한다.
 

응답 1) 죄인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려고
응답 2) 죄를 용서해 주심
응답 3) 자복해야 한다.
응답 4) 회개는 죄를 예수님께 자백하는 것이요 후회는 양심의 가책이 있어 괴로워하기는 하나 자백하지 않고 마는 것이다.